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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창세기-011 하나님의 형상2(창세기 2장 1-6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2장 1절부터 6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읽기는 여기까지 읽고 시간이 되는데까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다 지으신 이야기를 2장 2절까지 하고, 그 다음에 2장 3절에 복을 주셨는데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그 창조하시던 일이 모든 일을 마쳤기 때문에 쉬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 피곤해서 쉰 게 아닙니다.
우리 사람은 피곤해서 쉬고 그렇게 하지만 하나님은 피곤해서 쉰 게 아니고 창조하신 일을 마쳤기 때문에 쉬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것은, 엿새 동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는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다 하는 그 원리에 기초해서, 우리도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계명으로 주셨는데,
이것은 보통 우리가 엿새까지 일하고 이레째 쉬는 것, 거기에 그게 굉장한 것처럼 거기에만 비중을 두어서 강조해서 바리새주의적 안식일 개념을 막 엄청나게 이렇게 세분화해가지고 사람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이 힘이 들어서 신경을 쓰다가 병이 들만큼..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한 거예요.
이 안식일 이야기를 하실 때 먼저 말씀하신 게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을 힘써하고’ 라는 말이 있는데, 엿새 동안에 모든 일을 힘써 하지도 않은 사람이 이레째 쉬겠다고 나오는 거야. 그것은 잘못된 거죠.
일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엿새 동안에..
그래서 우리가 일을 해야 될 날,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누리기 위해서는 엿새 동안에 열심히 일해야 돼요.
지치도록 일을 해서 이레째 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고 그리고 일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안식을 누리는 거예요.
그걸 처음에 아직도 이 의미를 모르고 몸에 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키는’ 거죠.
처음에는 그것을 ‘지키다가’ 나중에 그 의미를 알고 나면 지키는 게 아니라 ‘누리는’ 거예요.
쉬는 것을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리는 거죠.
개념이 다른 거예요.
보통 제가 이런 이야기를 집안에 처이모님댁 쪽으로 고신측 교단에 어려서부터 고신측 교단에서 자라온 사람들인데, 이분들에게 ‘안식일은 지키는 게 아니라 참된 의미는 누리는 겁니다.’ 하니까 이게 도무지 소화가 안 되는 거라. 못 받아들여요.
‘지키라 했는데 무슨 딴소리 하느냐?’ 그러면서..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중에 그 의미를 해석할 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하면서 누린다는 개념이 확실해졌잖습니까?
그래서 안식일에 무슨 일 한 것을 가지고, 사실은 처음에는 그런 법을 낼 때 몸에 배지 않은 것을 길들이기 위해서 지키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의미를 알고 나면 지키는 게 아니라 누리는 거예요.
안식일에 일 하라고 하면 화를 낼 텐데요..
누리는 사람에게는 그 안식일을 정말 즐거워하며 누리는 사람에게는 그걸 지키지 못하게 하면 화를 내지 않겠어요?
그래서 법의 정신을 목적을 바르게 알고 지키고 누리고 하는 자유가 있어야 돼요.
지금도 우리가 교회에서 주일에 예배드리고 하는 것은 이것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또 그걸 옛날 할아버지들 보면 역시 보수교단 사람들이 그러는데,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
주일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겨서 예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을 두고 ‘안식일을 범했다’고 노발대발 하는 거요.
아니 안식일날 자기도 범해놓고..
안식일은 주일 그 전날이 안식일인데 자기도 범했잖아..
그래서 주일과 안식일이 달라요.
그리고 성경에는, 이것도 잘 들어야 됩니다. 성경에는 주일 지키라는 말이 없어요.
신구약 성경 66권 다 뒤져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런 말 없습니다.
구약시대 안식일이란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때, 그 때는 노예제도가 있었어요.
노예제도가 있어서 노예들은 그야말로 죽으라고 일만하는 데도 아무것도 제것이 없어.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얘기죠.
뼈빠지게 일하면 무슨 성과급이 있든지 아니면 내꺼라는 게 뭐가 나와야 되는데..
노예들은 뼈빠지게 해도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육체를 가지고 있는 노동하는 사람에게 쉼을 주고 숨을 돌리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
이것이 안식일의 목적이거든요.
그 주인되는 사람은 놀 자격이 없는 지도 몰라. 사실은..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주인은 안식일에 쉴 수 있는 권리도 없는지 모른다고..
정말 안식일이 주어진 것은 성경을 자세히 보면 ‘네 남종이나 여종을 일 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살다가 쉬는 날도 있어야 되지..
그래서 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주신건데, 사람중에서도 땀 흘리고 노동하는 사람을 위해서 주신 거예요.
그러면 오늘 우리가 주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게 아니고 교회가 정한 거예요.
두가지를 생각해봐야 돼요.
하나는 우리가 안식일에 메이지는 않지만, 안식일이라는 의식법에 메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신 선하신 뜻은 여전히 이어져야 되니까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 생체 리듬을 보거나 사람의 육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고,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한 거예요. 우리 교회가 정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일날 주일 예배 드리고 지켜라. 이렇게 한 게 아녜요.
성경 어디에도 주일날 예배 드려라 그런 말 없어요.
우리가 적어도 신약시대에는 교회가 좀 성장하고 성숙한거죠.
그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 먼저 드리고, 그러니까 엿새 일하고 쉬는 게 아닙니다.
예배드리고 하루 쉬고, 일하자는 겁니다.
육체적으로 하던 그런 일 하루 쉬고 쉬는 게 먼저예요.
하루 쉬고 영적인 일을 위해 은혜를 받고 그리고 나서 일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일이 주말이 아닙니다. 주말은 토요일이고 주일은 주의 맨첫날에..
우리 달력을 보세요. 빨간 주일이 맨 앞에 나와있죠?
한 주간의 첫날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리고 일 하는 거예요. 거꾸로.
개념이 전혀 안식일법과 달라요.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세례 받을 때, 교회의 세례 받고 정식 교회 회원으로서 의무를 말할 때, ‘공예배를 하나님앞에 정성을 다해서 드리겠다.’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 손을 들어서 약속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속한 것을 우리가 지키는 것이지..
주일을 성경에서 지키라 하고 말고 이런 게 없거든요
그걸 알고 있어야 되는데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누가 물으면 깜짝 놀라고 당하는 거예요.
안식일이라고 하는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언약을 한 것이고, 우리 교회에는 시내산 언약을 우리하고 직접 체결한 게 아녜요.
좋은 것은 우리가 배워서 그대로 합니다.
유대인들과 맺은 언약이지만 옳고 좋고 한 것은 우리가 하는데,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우리하고는 달라요.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성경에 주일 지키라는 말 없다고 주일날 놀러 가고.. 그리하라는 말이 아니죠.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우리편에서 오히려 그렇게 하자고 한 거예요.
하나님앞에 한주의 첫날에 예배드리고 하겠다 이렇게 교회가 한 건데,
우리 모두가 교회에 들어올 때는 그런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께 우리가 입을 열어서 약속한 전통을 성실히 지키겠다고 우리가 서약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켜야죠..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 하나가 구약시대의 안식일에는 예배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안식일이라는 것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냥 가만히 집에서 쉬는 거예요. 예배하는 게 아닙니다.
예배하는 것은 순전히 기독교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런 점들을 역사적으로 명확히 알아야 되는데, 대부분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잘 안하는 것은 성경에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다고 말하면 성도들이 얼씨구나 하면서 주일 절반이나 교회에 안 나올까 싶어서 겁이나서 말 못하고 거예요.
저는 솔직히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수준이나 신앙을 믿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그런 것 하나도 감춰놓지 않고 다 알려줍니다.
성숙하게 여러분을 대접 했으니까 여러분이 알아서 스스로 잘하십시오.
그러니까 안식일은 구약시대에 예배하는 게 아니고 쉬는 거예요.
우리는 주일에 주말이 아니고,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게 아니고, 예배드리고 한 주간을 출발한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2장 4절에,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하면서 아까 1장 1절에서부터 2장 3절까지 이야기가 한 단락이 끝났어요.
창조의 순서를 다 이야기 해 놓고는
2장 4절에 와서 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하시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 하면, 이 2장 4절 이하에는 다른 창조한 것은 다 빼버리고 사람 창조하는데다가 특별히 확대한 거예요. 사람 창조에 대해서 상세하게 한 거죠.
이리 보세요.
히브리 인들의 기술방식 속에 역사를 쭈욱 뭉떵거리 내려오다가 어디쯤 와서는 한 갈래를 딱 잡아요.
그리고 한 갈래를 이야기 하다가, 다 할 수 없으니까 또 한갈래 또 잡습니다.
그렇게 내려가서 자꾸자꾸 어떤 것은 제껴 버리고 하나를 붙잡고, 어떤 것은 제끼고 또 하나 붙잡고 이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원역사에서는 전체를 다루는 듯 하다가, 12장에 가면 아브라함 이야기 한 가닥만 딱 잡아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는데, 이스마엘을 제치고 이삭 얘기만 붙잡고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삭 얘기는 야곱과 에서가 있는데, 에서 얘기는 간단하게 하고 야곱 얘기만 붙잡고 내려오고,
야곱 이야기 중에서는 열두 아들이 있는데 열두 아들 다 아들낳고 손자낳고 하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두꺼워지니까 야곱에게서 낳은 아들 중에 요셉 이야기와 유다 이야기 두개로 하다가, 더 가다보면 유다 이야기 쪽으로 가닥을 잡아요.
그렇게 내려오면 유다의 자손 중에서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에서 예수님이 나와요.
그러니까 그 모든 전부를 다룰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일 동안 창조한 것 중에서 맨 마지막에 창조한 것 인간창조 이것을 한가닥 새로 붙잡고 조금 세밀히 다룬다 그말이예요.
흐름이 이해가 됩니까?
그렇게 해 나가는데 그걸 몰라서 재창조설이라든지 별 신학학설이 나와가지고..
유대인들의 논리 전개하는 방식이나 습관을 모르니까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재창조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또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세히 보면 말하는 글쓰는 분이 어떤 때는 ‘하나님’이라고 하다가, 어떤 때는 ‘여호라’라고 한다 이거죠.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두 가지 창조 기사의 문서가 있었는데, 이것도 조금 편집하고 저것도 조금 편집해서 모자이크 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이 더러 있었죠.
글쎄요. 그럴 수 있어요.
한 군데에서는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하다가 갑자기 여호와라는 말을 쓸 때는 엘로힘이란 말을 안 쓰고 하니까 E문서 혹은 J문서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 창조에다가 포커스를 맞추고 좀더 클로즈업 하는 장면인데,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안개만 올라온다는 것은 땅이 막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셔서 뜨거운 땅이 점점 식어갈 때,
뜨거운 열기와 함께 안개가 올라오는데, 안개라는 것은 온도차 일교차가 생겨야 안개가 올라오죠.
그러니까 햇빛이 저쪽을 비쳤다가 이쪽을 비쳤다가 하면 안개가 올라오는 원리인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사실은 안개만 올라와서 땅을 적시는 시기가 노아 홍수때까지 가요.
노아 홍수때까지 비라든지 무슨 이런 개념이 없고 바람이라는 말도 없어.
바람이 불어버리면 안개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바람도 나중에 궁창위에 있던 물이 다 쏟아져버리고 직사광선이 들어오니까, 직사광선이 가장 짧은 투과거리를 통해서 지면에 닿는 거기하고,
직사광선이지만 엇비슷하게 긴 거리를 투과해서 닿는 위도가 높은 쪽에는 온도가 차이가 나니까, 온도차에 의해가지고 기압차가 생기고, 기압차에 의해서 공기가 이동하는 것이 바람인데 홍수 이전에는 바람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홍수 쏟아지고 난 이후에 바람으로 불게 하셨다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러니까 바람이 없기 때문에 안개가 올라와요.
안개가 올라오면 나무가 엄청나게 잘 자라고 높이 자라요.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서 킹스케년이라는 데가 있어요.
킹스케년이라 개곡에 세콰이어파크라고 삼나무 공원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거기 가면 나무가, 세콰이어는 삼나무죠.
삼나무가 제가 걸어서 제 걸음으로 42걸음, 둘레가 20미터 넘는 거죠.
그런 나무가 있어요. 높이가 100m넘어요. 나무 키가..
그렇게 키가 큰 삼나무 자라는 곳이 미국에 몇군데 있는데 대체로 캘리포니아 주 안에 여러 군데 있어요.
세콰이어파크도 그렇고, 빅트리공원이라는 데도 그렇고 레드우드라는 곳도 북쪽인데 거기도 그렇습니다.
전체가 나무가 곧게 올라가는 원리가 뭐냐 하면 거기는 거의 1년 내내 안개가 있어요.
안개가 있으니까 나무 옆면에 수분 공급도 잘되고, 한편은 안개 때문에 나무는 생각할 때 빛이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나무가..
그래서 빛을 찾아 자꾸 올라가는 거예요.
콩나물이 왜 그렇게 키가 큽니까? 빛을 찾아 자꾸 올라가니까 콩나물이 키가 크는 거죠.
원리가 빛이 바로 와서 닿아 버리면 나무가 키가 안 큽니다.
그래서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안개가 낀다는 것은 바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또 빛을 찾아서 자꾸 올라가는 그 원리 때문에..
그 두가지 세가지 원리 때문에 빅트리 공원이나 레드우드나 킹스케년에 세콰이어 파크에 가면 42걸음이나 될 만큼의 나무 둘레, 나무 키가 100m. 나무 키가 100m이면 아찔합니다.
여러분 100m 달리기 해봤죠? 나무가 그렇게 크다니까.. 까마득해요..
내가 그것을 보고 우리 성도들 한번 모시고 가야겠다.
성경에 탐내지 말라고 했는데 보면 탐나요.
그 나무 두개만 주면 정말 기가막힌 목조주택 지을 수 있겠다. 내가 목수니까..
그런 생각이 몇 번 드는 거야..
어떤 큰 나무는 밑둥치가 썩어 들어가는데 양쪽에는 살아있고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는데 트럭이 들락날락 한다니까.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어떤 경우는 나무를 한 둥치 뚝 잘라다가 나무를 파서 방을 만들었어요. 안에다가..
그렇게 나무가 커요.
그런데 나무가 목질이 아주 곧게 올라갑니다.
바람이 없고 안개 때문에 빛을 찾아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홍수 이전에는 나무들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런 나무가 보통 나무예요.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의 목선인데 배 길이가 135m가 넘어요.
지금 무악산에 가서 나무 해가지고 그런 것 갖고는 노아 방주의 빗자루도 안돼.
이런 나무로는 지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무가 엄청나게 크게 보는데 그것은 안개만 올라와서 땅을 적실 때 바람이 불지 않을 때, 태풍이 불어버리면 그런 나무는 남아날 수 없어요.
바람이 없어야 안개가 생기고 안개 때문에 그렇게 키가 크는 거죠.
이런 것도 예사로 볼 때는 예사로 보이는데, 그런 것을 공부를 하면 ‘안개만 올라와 땅을 적셨더라’ 하는 말도 예사롭지 않다는 거요.
그때,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이 되었다’ 하는데 ‘생령’이란 말은 의역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네페쉬하야’. 네페쉬하야라는 것은 ‘하야’는 히브리어로 비동사처럼 ‘존재’ ‘있다’.
그러니까 존재하는데 네페쉬, 목숨을 가진, ‘목숨을 가진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런 뜻이지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영’이란 말은 ‘프뉴마’ 인데. ‘프뉴마하야’가 아니고 ‘네페쉬하야’하는 말은 혼이야. 혼.
정확하게 번역하면 ‘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해야 정확한 겁니다.
이걸 또 우리말로 된 생령이 영이었다고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네페쉬하야예요. 영이라는 말은 ‘루아흐’라고 되어야 되는데 루아흐.
헬라어 영은 ‘프뉴마’가 되어야 되는데 아니고,
네페쉬, 헬라어로는‘ 푸쉬케’ 혼이예요. 혼..
쉽게 말하면 물질적인 육체적인 부분을 먼저 만들어가지고 거기다가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순서가 육체 부분을 먼저 만드시고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거죠.
그리고 사람이 돌아가실 때에는 육체는 가만히 있는데 영혼부터 빼내어 간다고..
결합하는 것과 반대 순서죠.
영혼을 빼내어 가버리면, 여러분 아무리 예뻐서 미스코리아 미스 유니버스 하다가 영혼 빠져나가버리면 금방 색깔이 푸르딩딩하게 바꿔지면서 하루 이틀 지나면 냄새나고 파묻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사람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그냥 송장이야.
우리가 송장을 사랑할 수 없잖아요.
정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생명이야. 생명..
또 그 생명도 생명 나름이지 악한 생명도 있고 선한 생명도 있는데, 선한 영혼 착한 마음씨를 가진 생명 그게 소중한 것이지 육체라는 것은 그릇에 불과한 거죠.
육세가 영혼이 나가버리고 나면 영혼없는 몸이 죽은 거죠.
죽고 나면 송장이 되어 아무리 귀하던 아들 딸 사랑하던 사람 해도 다 흙에다가 파묻어 버려요.
흙에서 온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가든지 아니면 음부로 가든지 두 곳으로 간다는 거예요. 죽어서..
여기 이제 사람이 처음에 만들어지는 과정이 일단 물질적인 부분 육체적인 부분을 먼저 만드시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 넣었죠. 생기라는 말은 생명의 기운이죠.
그리고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우리는 ‘동산’이라 그러면 어때요? 한국사람의 동산은 볼록하게 올라오는 거죠.
볼록하게 올라와야 동산인데, 저쪽 아카드라든지 히브리라든지 동산이란 말이 밭입니다. 밭..
‘에데누’라는 말이 정원입니다. 정원. 펀펀한..
우리는 ‘동산’ 하면 볼록하게 올라와야 동산이라 생각하는데, 꽃동산 무슨 동산 하면서..
조금 높기는 하겠죠. 약간 높기는 하지만 고원지대 편편하고 넓은 그런 스타일이에요.
에데누 에덴 하는 말이..
거기에서 사람을 살게 하셨는데,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이게 과일나무죠.
여러분 먹는 과일은 대개 과일이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못 먹는 것 더러 있는데 못먹는 것은 보기에도 징그러워요.
산에 가서 사람이 먹지 못하는 열매가 있거든요. 맛도 없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못생긴 것이 있어요.
솔방울 먹을 수 있어요? 그게 꽃은 꽃인데 별로 꽃도 시원찮고 열매도 이상하게 생겨가지고 먹을 수 없어요.
우리 사람을 위해 지은 게 아녜요.
그래서 열매들도 보기에 아름답고 향기도 좋고 먹으면 맛도 좋고 영양도 우리 몸에 딱맞고.
과일들이 너무 달고 그런 게 없거든요. 적당하게 달고 그리고 우리 몸에 맞게 만들었어요.
..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제가 시험문제를 낼 때 ‘동산 중앙에 무슨 나무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꼭 선악과만 있었다고 해요. 아니고 ‘생명나무와’ 생명나무가 먼저 예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더라.
꼭 먹지 말라는 것만 보는 거야. 생명나무를 먼저 써놨다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하는데, 이게 참 성경학자들을 몇천년간 애를 먹이는 거라.
여기 강 하나는 확실해요.
유브라데 강은 확실하고, 나머지는 티그리스 강을 힛데겔 강이라고 말을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아닌 것 같애요.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이 거의 가까이 붙어있어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이 대체로 어디쯤이었느냐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아홍수때 천지대격변이 나가지고 어디가 비손강이며, 어디가 기혼강인지 전혀 알 수 없어요.
별의 별 억측을 하는데, 예루살렘에 가면 기드론 계곡 조금 위쪽에 기혼샘이라고 있어요.
기혼샘이란 게 있는데 그 샘이 중턱에서 나오는데 그걸 물길을 갖다가 예루살렘 성 안으로 기울어지게 수로를 만들어 히스기야가 터널을 만들어서 예루살렘성 안 사람이 퍼먹게 했죠.
기혼 그것을 강이라 할 수 없잖아요.
기혼 샘이죠. 샘..
적어도 강이라면 그렇지는 않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저가 생각할 때는 아마도 지금 현재 터어키 땅에 하란, 하란하고 아랏랏산이 있는, 하란에서 아라랏산 그 근방 어디엔가 에덴 동산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강 하나는 제 생각에 흑해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고, 하나는 지중해 쪽으로 흘러할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지금 현재 페르시아만 쪽으로 유브라데강 방향으로 그런 식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 싶어요.
그런데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워낙 대 화산들이 터져서 아예 산들이 뿌리째 뽑혀 날아가버린데가 많아요. 산이..
아라랏산 밑에 가면 터키에서 제일 큰 호수가 반(van)이라는 호수예요. 반..
반이라는 호수가 경상남도만 하지 않겠나.
어떻든 자동차로 거의 한나절이나 갈 만큼 오래 가는데 엄청나게 커요. 호수가..
그런데 염호예요. 해발 1700고지에 있는데 염호예요. 바다의 청어같은 물고기가 있어요.
거기가 전설에 의하면 호수 있던 그 자리에 ‘리어레’라는 산과 ‘핫’산이라는 산이 두개 있었는데 이게 화산에 의해서 산이 뿌리째 뽑혀가지고 서쪽으로 날아가서 오늘날 가파도기아 화산재 지대 전체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거든요.
너무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지만, 확실한 것은 화산재 지층이 우리 몇길 한 열길 두께가 화산재 두께가 열길 다섯길 두께가 앉혀 있는데, 이것이 넓이가 자동차로 하루종일 달려가도 화산재 지층이 끝이 안나요.
그 정도로 가파도기아 지역 전체가 화산재로 덮여있는 것을 볼 때 에덴 동산 전체가 그냥 완전히 하나님이 박살을 내가지고 흩어거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인지 어떻든 그 근방 같애.
유브라데 강이 거기에서 발원했다고 하면 아라랏산에서 반호수 있는 옛날 아나돌리아 그 지역이라는 하는데 그 지역 어디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어제도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에덴 동산에 대해서 좀 자료가 뭐 없나 싶어서 찾아보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해 놨어요.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 내려오다가 중간에 어디에다가 여기가 에덴 동산이었고, 그래서 밑으로 내려간 것은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이고, 위에 있는 강이 가다가 잘못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놨어요. 그것도 석연찮고..
어떻든 모든 구약성경 학자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에덴동산 자리가 어디었는가.
늘 애를 먹이는 것이데, 제 생각에는 틀림없이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근방 어디였다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가 워낙 큰 대격변을 겪었기 때문에, 강이라는 확실한 흔적은 유브라데스 티그리스강 정도의 흔적만 있고 나머지 기혼 비손 강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새로 시간이 나면 지중해와 흑해 그 어떤 근방 쪽을 다시 한번 지도를 가지고 지구과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답사를 하면 뭐좀 찾을 수 있을 것 같애요.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하는 것 때문에 얼마나 하윌라를 찾을려고 사람들이 금을 찾을려고.. 이런 것을 찾는 사람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보면 ‘거기에 역청구덩이가 많아 사람들이 거기 빠진지라’ 하는 것 때문에, 봐라 거기 석유난다 해가지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그래가지고 찾은 사람이 있답니다.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이라고 하는 것은 향료의 일종인데 잘 모르는 향료입니다.
호마노도 있으며, 호마노는 마노는 보석인데, 홍마노 혹은 녹주석 혹은 오닉스라고 하죠. 오닉스.. 오닉스라는 어떤 보석종류인데 제가 원체 보석을 아는게 없습니다.
제가 겨우 아는 것은 인조 보석 몇 개, 진주라든지 그런 것 알고 전혀 잘 몰라요.
나는 수정을 갖다주면 이걸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잘 몰라요.
내가 볼 때는 비슷해요. 눈이 나빠서 그런지..
그런데 이런 보석들도 나고, 향료도 나고, 금도 나고 하는.. 그러니까 값진 것이 나는 그런 곳이 비손강이예요.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이게 이제 기가막히는 거예요.
구스 온 땅에 둘렸다고 하면, 구스가 어디예요? 이디오피아죠.
그러면 에덴 동산이 어디입니까?
정말 기가 막히는 거죠.
14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그러니까 이게 티그리스강이 아니냐? 하는 거죠.
..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이것은 확실해요. 유브라데강은 맞는 말이죠.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질서를 잡아나가는 거예요. 사람을 거기에 세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세워서 동산에 질서를 잡아나가는 거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줄을 그으세요.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들이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선악과를 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는데 저도 몰라요.
역사에 ‘만약’ 이라는 것은 없는 겁니다.
그건 질문이 잘못된 질문입니다. 따지 않았으면 네가 땄겠지. 결국은..
아담과 하와가 따지 않았으면 딴 사람이 따는 거지 ‘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는 없어요 사실은..
그럼 만약에 안 땄다고 할 때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먹는 날에 죽는다는 것은 육체라는 것은 선악과 안 따먹어도 육체라는 것은 죽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육체가 어떻게 영생 하겠느냐..
이런 것도 안 따지면 간단한데 따지면 어려워요.
육체라는 것은 물질이라는 것은 자연이 늙고 병들게 되어있는데 아무든지 간에..
물질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안 땄으면’ 이라는 말은 사실은 질문이 잘못된 겁니다.
‘안 땄으면’이 아니고 땄다니까..
그래서 처음에 지음받은 아담이라는 것은 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없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시험을 안 거쳤다 그말이죠.
여러분 흙을 가지고 우리가..
이런 그릇을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데 이렇게 단단하고 깨끗한 것은 쇠소리가 나는데요, 불 시험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불도가니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리가 안 나죠. 깨져버려요. 힘도 없이..
그래서 아담이라고 하는, 처음 범죄 이전의 아담이라는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죠.
시험을 안 거쳤단 말이예요. 아직은..
그래서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 있는 어떤 존재이지 어떤 결정된 사항으로 결정된 모습으로 태어난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직은 이쪽 저쪽을 선택해야 되는 선택을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니까.. 그래서 만약 이라는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 땄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는 것은 사실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예요.
그래서,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죽음이라는 게 단지 육체적인 죽음만이냐?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냐? 다시 말해 영적 죽음까지 해석이 나오는데,
이 죽음이라는 말이 쭈욱 나올 때 창세기 5장에 가서 죽는 얘기가 나오는데,
‘죽었더라, 죽었더라’ 하는데 똑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 이런 말 쓰지 않고 죽었다고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아담과 하와가 ‘정녕 죽으리라’ 하는 데까지만 했지, 선악과를 따는 날짜와 그 뒤에 죽는 날짜하고는 거의 9백 몇십년 간격이 있는 거예요.
그 간격 사이에 자녀를 낳는 유예기간이 있는 거죠.
이런 것은 전혀 극비에 붙혀진 거예요. 아무도 몰라요. 그때까지는..
아담과 하와도 모르고 귀신도 몰라. 하나님만 알고 있는 거예요.
따먹고 나서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뱀하고 있는 데서, ‘여자의 후손이 와서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전혀 뱀이 귀신이 상상도 못하던 거죠.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서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말 없어요. 전혀..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람’이라는 것은 아담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아담..
아담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 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물론 우리는 지금 언어가 바벨탑 사건이후에 언어가 혼잡되어서 전부 다 대충 1만가지 언어로 혼잡된 것 같애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방언이 6000-7000가지가 되거든요. 자꾸 언어가 통패합 되는 입장이니까 처음에는 만가지 언어쯤 안 되었겠나. 1만가지..
그렇기 때문에 이름들이 전부 이상합니다만, 여러분 가만 보세요.
지금도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물에 대해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여러분 꽃을 보세요. 진짜 꽃 같잖아요.
꽃을 보면 우리는 꽃이라 해야 꽃같죠. 그렇죠?
제비는 제비라고 해야 제비 같애. 소는 소라고 해야 소 같잖아.
개는 완전히 개 같죠. 고양이는 정말 고양이 같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름들이 말이죠, 어감 언어의 뉘앙스는 굉장히 섬세한건데,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 말이 그것 같다고 하겠는데, 그게 하나님의 솜씨라는 거죠.
여러분 그 사물과 이름이 우리에게 너무 맞지 않다 그런 것 있습니까?
나무는 꼭 나무같잖아. 돌은 진짜 돌 같고..
그러니까 그 언어라는 게 참 신묘한거야.
다른 걸 이름을 지어서 어떻게 맞춰질 것 같애요? 그게?
피는 진짜 피 같죠?
그래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데 아담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사물의 의미를 알아야..
그 이름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데, 그 존재 실체와 어떤 목적을 어느정도 알아야 그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거예요.
모든 동식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어떻게 짓는가 보려 하셨다는데 대단한 거죠?
정말 아담이 대단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편 8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히브리어를 보면 아닙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 ‘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거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그렇게 굉장한 존재로 지으신 거예요.
타락을 해서 마귀보다 동물보다 좀 나을지 이렇게 밖에 안돼. 사람이..
얼마나 타락을 했는지..
그런데 아담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야.
처음에 타락하기 전에는 굉장한 그런..
지구라는 별을 혼자서 다 다스리고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부여할 만큼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은 원상태의 인간이 있어요. 선악과 따기 전의 상태. 그 한 단계가 있고,
선악과를 따고나서도 홍수 이전 단계가 있어요.
선악과를 땄어도 홍수 이전 단계는 사람이 900세, 평균수명이 912세 이렇게 살았단 말이죠.
그리고 홍수 그 이후에 사람들은 갑자기 수명이 600세 400세 300세 200세 205세 180세 175세 120세 110세 다윗은 79세.. 이렇게 주루룩 내려오는 거죠. 수명이..
어떻든 아담이 생물들의 이름을 다 지었다 하는 것은 굉장한 사건이죠.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유대인 랍비들 책에 보면 그런 말이 나와요.
로마사람인가 누가 와가지고 ‘당신 하나님은 도둑질한 것 아니냐? 사람을 지어놓고 남의 뼈를 가져가고 말이야.’ 그런 식으로 시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인 랍비가 ‘이보시오. 그 뒤를 봐야지.. 갈빗대를 하나님이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니고 그것을 가지고 여자를 만들어서 그 남자에게 줬다는 것 아닙니까?’ 하니까 ‘그런 것 같으면 날마다 와서 도둑질 해가라고..’
그런 유대인들의 일화가 있어요.
여러분도 동의합니까? 그건 곤란하죠. 그러면 아내가 여럿 되어가지고..
사람이 갈빗대가 없어서 앞으로 엎어진다니까..
그런데 아담이 하와를 보고 딱 하는 말이 보자마자 자기 것을 알아보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어떤 분이 이것이 최초의 시이다..
인류 역사상 맨 처음으로 나온 시적 문학 작품이라는 거야.
우리 같으면 ‘이것 내꺼잖아..’ 경상도 사람 같으면 내꺼다 할텐데..
아담은 아주 시적으로 표현했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러분도 혹시 여기 총각들 나타나거든 ‘보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렇게 배운대로 해야지..
..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히브리어로 남자란 말이 ‘이쉬’예요. 이쉬.
여자는 이쉬에서 나왔으니까 ‘이솨’예요. 이솨.
이쉬라엘 이쉬는 남자에요. 이스라엘 이쉬라엘..
이쉬는 남자이고 이솨는 여자죠.
우리도 남자 여자 이렇게 이쉬 이솨 이렇게 되는 거죠.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자 여기 우리가 좀 눈여겨 볼 부분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돼요.
여자는 이미 떠나왔잖아..
여자는 부모를 떠나와서 남자에게 왔는데, 남자는 부모를 안 떠나고 계속 마마보이처럼 그러면 곤란해요.
그런 가정을 가끔 보거든요. 아내를 참 피곤하게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그 아내와 연합하여서 한을 몸을 이루도록..
그래서 너무 결혼한 사람이 자꾸 뭐든지 엄마한테 물어보면 안 돼.
부모를 떠나서 독립 정신을 가지고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그리고 나중에 부모를 모실 때 모시더라도 일단은 떠난다는 거예요. 그런 개념이 확실해야 돼요.
가능하면 아들 낳아가지고 너무 겨드랑이에 오래 끼고 있으면 안돼.
이만큼 낳아 길러서 멀리 보내야 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받으며 커야 되지만 다 큰 사람을 너무 끼고 있어가지고 정말 엄마 없으면 못사는 이렇게 만들면 안돼.
남자나 여자나 다 마찬가지죠.
그런 정성들이 그런 정신이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좀 부족하지 않나.
너무 지나치게 자녀들을 과잉보호해서 아들이나 딸이나 커도 독립심이 없는 그런 식으로 길러서는 안 돼요.
남자라도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르는 것.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이루어가는 맨 처음 가정을 이루어가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벌써 나오는 거죠.
그 때, 우리 자매들 잘 들어요.
자매들은 처음에 지음을 받을 때 남편을 돕는 베필로.. 그렇게 지어졌으니까 잘 도와야 될 텐데.. 선악과나 따고 속 썩이지 말고..
돕는게 아니라 오히려 훼방이나 하고 그러면 안 되죠.
잘 도와야 돼요.
반면에 남자들은, 여러분 여자 없이는 태어나지도 못하는 존재예요.
다 아담 할아버지 말고는 전부 여자로 말미암아 태어났잖아.
그래서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전부다 집을 마굿간으로 만듭니다. 그렇죠?
세상에 여자가 없으면 집도 아니고 인생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서 사실은 서로 돕는 거죠. 서로 돕는 것인데, 그래도 창조질서상 남자가 먼저라는 말을 여러 번 성경에 여러 번 나와요.
그리고 여성들이 좀더 겸손해야 될게 어떻든 선악과를 따는데 앞장을 섰다는 거예요. 이건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니고 바울이 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조금은 겸손해야 돼요. 물론 우리 한국사람들은 잘 합니다만..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이쪽으로 가면 어떻게 여자들이 설쳐대는지 남자들은 쪽을 쓰지 못해요.
신도 여신이 큰 소리쳐요. 그 쪽에는..
남신은 별 볼일 없습니다. 맨날 남신은 바다에 빠져죽고 그런 신들이고..
맨날 술먹는 박카스 이런 것..
전부 여신들이 큰소리쳐요. 그러니까 여신들이 큰소리 치면 여자가 큰소리 쳐요.
그런데 구라파도 보면, 알프스 피레네 산맥 위로 북구라파로 가면 달라요.
북구라파에는 남자가 큰 소리 칩니다.
거기는 사냥을 주로 하는 그런 곳인데 여자는 별볼일 없고 남자들이 큰소리쳐요.
제가 볼 때는 온 세계에서 여성들이 가장 인격적으로 대우를 잘 받는 나라가 당연히 한국입니다. 어떤 나라도 아니고 한국이예요.
한국이 가장 여성들이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우받는 나라이고, 이조시대에 어떤 되먹지 않는 사람들이 여자를 천시하는 사람이 혹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를 선호하는 것은 여자들이 더 심하잖아요. 오히려. 남자보다..
남자는 딸을 좋아한다니까. 여자들이 아들 좋아해서 그렇지..
그리고 모든 나라가 여성들은 결혼하면 자기 성을 포기하고 남편 성을 자기 성으로 합니다.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온 세계가 다 그래요.
그리고 한문 글자로 혼인(婚姻)이나 결혼(結婚)할 때 혼(婚)자를 보세요.
혼(婚)자가 여자라는 여(女)자 옆에다가 성씨(氏)를 하고 밑에 날일(日)자.
‘여자가 성을 바꾸는 날’이 결혼이라.
한문에서도 바꾼다고 하는데 한국사람은 끝까지 안 바꿔..
자기 성을 끝까지 고집하는 그런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잖아..
그것을 인정해줘. 요즘은 간뎅이가 커서 여자가 지 이름으로 호적하겠다고 하면서 법을 통과시키고 이런 나라가 없어요.
아무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여성들은 긍지를 가져도 좋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리가 대우받고 살았다. 전혀 손색이 없어요. 어떤 나라도 그런 나라가 없어요.
히브리인들은 여자는 사람 수에도 안쳐요. 셀 때 안 세어요. 그냥. 수에 안 들어간다고..
히브리인들이..
한국은 그렇지 않죠. 여성들이 항상 존중되고 그리고 이조시대만 해도 여성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정중하게 항상 ‘부인’으로 이렇게 하고..
그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괜히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성들이 여권이 신장되기를 바라서 하는 소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지금도 정통파 히브리들 유대 나라사람들은 여성들의 최고 영광은 역시 자녀를 많이 낳는 걸로 되어있어요.
전혀 사회진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똑똑하지만 여성들이 사회활동이나 사회진출은 거의 꿈도 꾸지 않고, 아이를 열명 열다섯명 낳는데 나갈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인들이 오늘날 여성들을 무시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 초창기에 여자 수상중에 ‘골다메이어’라는 여자 수상이 있었어요.
이스라엘 수상을 지냈다고..
여성들이 지금 세계에서 멸시당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권에서나 여자들이 멸시당하지 기독교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죠.
성경은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을 뿐 아니라, 남자는 여자로 말미암아 태어났으니까, 다 예수님안에서 생명을 가진,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자로 여겨 존중히 여기라.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능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여자아이라고 유산시키고 그러면 안돼.
큰 범죄예요.
천국에 가면 모르긴 해도 틀림없이 내가 볼 때 여자가 더 많을 것 같애요.
교회보면 알거든요.
우리 교회나 되니까 남자 여자 숫자가 비슷하지 대부분의 교회에 가면 여자가 배나 돼.
그래서 제가 보기로는 하나님께서 여성들을 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걸 ‘처녀 딸 내 백성’이라고 해요. 처녀 딸 내 백성.
교회라는 말도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여성명사예요.
하여튼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이런 것은 전부 여성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 한탄 할 필요 없어요.
남자들은 조금있다가 꼬물락 꼬물락 하다가 빨리 죽는 것이고, 봉급봉투 여자들이 다 통째로 차지하지 집도 여자가 다 주인이지..
남자는 그냥 겨우 돈이나 벌어오는 기계에 불과하고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남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때, 하나님 앞에 거룩한일 선한일 할 때, 여성들이 잘 돕는 베필이 되면 정말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 겁니다.
저는 볼 때 제가 우리 아버지가 고생도 하셨지만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우리 어머니 고생한 것에 절반이 안되는 것 같애.
우리 아버지는 정말 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우리 어머니 일 한 것의 절반이 안돼.
일곱명을 낳아서 기르는 것만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일이고, 길쌈 농사일 다 해가면서..
우리 아버지는 만주로 일본을 세 번씩이나 갔다오고 그러니까..
제가 7남매 중에 제가 다섯 번째 인데, 제가 태어날 때까지 우리 아버지는 집에 없었으니까..
4-5년 있다가 한번 다녀가면 또 하나 태어나고.. 저도 그 중에 하나거든요.
그러니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 했겠어요?
우리 어머니뿐 아니죠. 모든 세상 어머니들이 집에 오면 그냥 요리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애들은 울고..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다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천국 가면 여자가 더 많을게 분명하고, 상급이 여성들에게 더 많을 거야.
여러분 평가가 하나님의 채점에서 제일 높은 점수가 사랑이 제일 큰 점수거든요.
남자들은 사랑이 있기는 하지만 여자 사랑만 못하죠.
부성애라는게 있지만 모성애를 당하지 못해요.
최고의 점수는 사랑의 점수일 텐데, 그런 것을 보면 여성들은 땅에서 힘들어도 잘 참아야 돼요. 천국에서 상이 클테니까..
25절,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직까지 죄라는 개념이 없을 때죠.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범죄 이후에 일어나는 감정이었습니다.
3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에 그 대략을 우리가 읽어보고 특별히 오늘은 사람 창조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지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흙이요 티끌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호흡을 주시고 때를 따라 우리에게 양식을 주셨기 때문에 힘차게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 경배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로 사는 날이 얼마나 될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손에 일이 있을 때 힘써서 온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 앞에 당한 일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의 품에 쉴 때 칭찬과 상급이 있는 우리 삶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는 아직도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건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쫓아 정욕을 쫓아 마귀를 쫓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넓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여서 영생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