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하이는 푸둥지구 개발로 중국 현대화의 상징이 됐다. 휴일이 되면 관광객은 물론 중국인들도 푸둥지구를 바라보며 변모하는 중국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곤 한다. |
스촨성(四川省)의 중심 도시 청두(成都)는 우리에게는 ‘삼국지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삼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촉(蜀·정식 명칭은 漢)나라가 이곳을 도읍지로 삼은 데다 유비의 무덤, 즉 한소열릉(漢昭列陵)과 명재상 제갈량의 사당인 우후스(武侯祠)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청두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왕푸징(王府井)백화점, 타이핑양(太平洋)백화점, 바이성(百盛)백화점 등 대형 쇼핑센터와 높고 화려한 빌딩들이 끝도 없이 늘어선 쭝푸루(總府路) 거리다. 청두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인 데다 관광객들도 몰린다.
쭝푸루에 포진한 백화점 진열대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단 상품들로 가득했다. 왕푸징백화점에 내걸린 블라우스 하나가 1500위안(약 24만원)을 호가한다. 중국인의 평균 소득이 연 1000달러(미화) 정도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여자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릭셔(삼륜차)가 쭝푸루와 맞닿아 있는 보행자 거리 춘시루(春熙路)의 입구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현지 신문은 “미녀가 릭셔를 타고 달리는(美女坐三輪)’ 모습을 일러 청두 거리에 떠오르는 새로운 풍물의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서부 대개발로 돈·물자 몰려들어
▲ 청두 최대의 번화가인 쭝푸루는 쇼핑거리라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여자 손님을 태우려는 릭셔가 늘 대기하고 있다. |
대형 쇼핑센터는 쭝푸루뿐만 아니라 인구 1000만명을 자랑하는 광역시 청두 곳곳에 들어서 있다. 외국계 백화점도 여럿 된다. 쇼핑 타임은 회사 일이 끝난 뒤인 오후 6시에서 10시 사이. 이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이다. 춘시루에 자리잡은 일본계 백화점 이토요카도(伊藤洋華堂)는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급 레스토랑도 사람들로 붐비긴 매한가지. 중국식 샤브샤브 요리인 ‘훠궈(火鍋)’집은 값이 무척 비싼 데도 3400개나 되는 좌석은 늘 만원을 이루었고, 금년 봄에 문을 열었다는 한국 식당 ‘서라벌(薩拉伯爾)’도 빈 자리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청두 사람들의 이러한 왕성한 소비 행태에 대해 KOTRA 청두무역관의 곽복선 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청두는 원래부터 먹을 것이 풍족해 씀씀이가 크기로 유명한데, 최근 ‘서부 대개발’이 본격 추진되면서 돈과 물자가 몰려들어 그 도가 심화되고 있다. 더구나 중국 정부가 소비 진작을 통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기에 전국적인 현상이 돼버렸다. 거대한 중국의 소비시장을 외국 거대 기업이 외면할 수 없도록 한 외자유치 정책이 주효해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미 100여 개가 서부 대개발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을 맺고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잘 나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은행은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대부분이 국가 소유지만 그 특성에 따라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광다(光大)은행, 화샤(華夏)은행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소비가 미덕’이 되는 지금 이들 은행의 주된 기능은 현금 보관. 이는 1년에 1.98%에 불과한 예금이자율로도 뒷받침된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열심히 저축을 하는지 중국공상은행에선 총 수신 예금고가 30조 위안을 넘어섰다며 그 사실을 은행 입구에다 붙여놓고는 자랑하고 있었다.
●“돈이 최고” 절약 풍습 남아
▲ 중국 정부가 '소비가 미덕'이라 부추기지만 미래를 대비하려는 사람들은 이자율이 지극히 낮은 데도 은행에 돈을 맡긴다. 그러다 보니 예금고가 천문학적 수치를 기록하기도 한다. |
중국인들은 무엇을 위해 저축하는가에 대해 우한(武漢) 통지(同濟)의과대학에 다닌다는 부영옥(付英玉)은 “장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풀이했다. ‘그 장래’란 어떤 것이냐란 질문에는 집을 사고 자녀를 공부시키고,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저축은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유보하는 행동인데, 중국인들도 이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민족이 어디 있을까만 중국인들처럼 돈을 내놓고 좋아하는 민족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데서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는 그들이지만 어디서나 돈을 벌게 해달라고 신이나 조상에게 빌 뿐만 아니라 대문 앞에다 으레 ‘차이푸(財福)’란 글씨를 써 붙여놓고 있으니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돈이야말로 복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고 또 남이 자기 일에 참견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들이 믿었던 것은 황제도, 관리도, 법도, 이웃도 아니었다. 그것들이 결코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로 선택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낯선 미국 땅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한 것도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돈에 대한 그들의 지독한 집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미국에 대륙 횡단 철도가 놓이던 시절, 미국으로 팔려간 (청나라 관리들이 돈을 받고 팔았다) 건설노동자, 즉 ‘꾸리(苦力)’들은 돈을 모아야 한다며 콩죽에 마늘을 반찬 삼아 끼니를 때웠다. 그들이 받은 급료를 한 푼 쓰지 않고 침대 밑에 감춰두게 되자 공사장 인근 마을에는 돈이 돌지 않는 사태가 계속됐다. 건설회사가 인건비나 재료비 등으로 돈을 풀면 그 상당액이 쇼핑센터나 은행 등을 통해 회수돼야 금융을 일으킬 수 있고, 그로 인해 먹고 사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꾸리들은 구두쇠 노릇만 계속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노골적으로 중국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사고라도 나면 원인을 따져보기도 전에 꾸리에게 누명을 씌워 벌을 주었고, 정의를 지켜준다는 미국의 법정도 그들 편이 돼주지 않았다. 그러자 꾸리들은 자연스럽게 힘을 합치게 됐고, 시청 앞에 모여 살게 되면 그래도 좀 낫겠지 하는 생각에 도심에다 자신들의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차이나타운이다.
이런 전통(?)을 지닌 중국인들에게 중국 정부는 지금은 개방개혁만이 살길이라며 번 돈은 그때그때 써야만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소비를 한껏 부추기고 있다. 중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이 일이 제대로 먹혀든다면 중국인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중국은 틀림없이 변하게 될 것이다. 아니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과연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비를 진작시키기로 작정한 터라 그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지 중국 대륙엔 광고가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실제로 거리와 TV, 신문·잡지 등에 넘쳐나는 광고를 보면 ‘여기가 중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국영 CCTV도 광고에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광고 대열에 ‘가든’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고깃집을 가든이라 부르지만 그곳에선 고급아파트, 즉 빌라를 가든이라 했다. 그들 말로 가원(家園), 화원(花園)을 그렇게 번역한 탓이다. 이런 가든이 최근 몇년 사이에 중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운하의 도시이자 ‘중국 4대 명원’의 하나인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을 두고 있어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수저우(蘇州)였다. 낡은 건물들을 대거 헐고는 그 자리에 길을 내고 가든을 짓고 있었는데, 수저우대학 주위에 들어선 가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박람회·패션쇼·모터쇼 급증
가든의 대대적인 신축은 ‘팡찬(房産·부동산 및 건설)산업’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거공간에 맞는 주방용품과 가전제품, 에어컨, 그리고 자동차의 구입을 촉진시키는 효과까지 낳고 있었다. 수저우 시내의 그런 상점들이 활기에 넘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재개발사업을 통해 인민의 삶의 질 향상과 내수시장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걸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 중국에 불고 있는 또 하나의 유행은 박람회의 성행이다. 신기술·신제품을 소개하는 기술박람회와 패션쇼는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선 수시로 열린다. 이 또한 소비 촉진과 무관하지 않다. 청두시는 지난 5월 모터쇼를 개최한 데 이어 서부 대개발 박람회도 열었다. 물론 성과는 만족스러웠다. 베이징시는 6월 초 제7회 모터쇼를 개최했다. 8일 간에 걸쳐 열린 베이징 모터쇼는 45만명을 끌어들였다. 쇼에 참여한 자동차 메이커들은 관람자들을 향해 ‘자전거의 시대는 가고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제는 인(人)·차(車) 시대’라고 외쳐댔다.
부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30대 회사원 위둥은 “중국의 젊은 남자들에게는 세 가지의 꿈이 있다. 첫째는 집이고, 둘째는 아내이며, 셋째는 자동차다. 아직 집은 없으나 아내가 있으니 여유가 생기면 자동차부터 장만해 볼까 해서 이곳에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몇백 위안으로 생계 해결하는 사람도
“여기 와서 보니 5만위안 정도면 차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에는 신이 났다. 큰 부담이 되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차를 사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당초 생각대로 집문제부터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내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둘러볼 생각이다.”
베이징은 역사가 오랜 도시라 좁은 골목과 다세대주택이 많아 주차 공간 확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터쇼 현장에 상주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직원도 같은 말을 했다.
“구매력을 갖춘 잠재 고객이 중국에는 250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들이 실제로 구매 행동을 보이기 위해서는 주차장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 다행히 정부 주도로 재개발 공사와 아파트 신축이 활발하다.”
중국에는 성장하는 산업과 지역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20여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지역도 허다했다. 월 소득이 우리 돈으로 억대를 넘는 사람도 있지만 단 돈 몇백 위안으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현대 중국은 이런 사회적 불균형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의 화폐는 위안(元)이다. 청나라 말기부터 써오고 있는 이 위안을 본떠서 우리와 일본은 ‘원’과 ‘엔(圓)’을 화폐 단위로 삼고 있다. 중국 돈 1위안을 지금 환율로 따지면 우리 돈 160원 정도가 된다. 160원이라면 그걸 갖고 무얼 하겠는가 싶겠지만 중국에선 1위안으로도 할 게 너무 많다. 그 돈으로 우선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그 돈(한 달이면 50위안 정도)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은 매일 30분 이상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출·퇴근한다.
맨 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해발 1500m의 높이의 타이산(泰山)이나 황산(黃山)이지만 가마에다 사람을 싣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뚜벅뚜벅 오르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너 시간 그렇게 올라간다 해도 받는 돈은 100위안 내외. 그렇다고 그걸 두 사람이 나누어 가지는 것도 아니다. 영업을 하도록 허가해준 누군가에게 또 얼마를 쥐어주어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도 먹고 살라는 듯이 시장골목의 식당에선 만두 한 접시를 1위안에 팔고 있었고, 3위안으로는 밥(그들 말로 米飯)에다 다섯 가지 반찬을 담은 중국식 정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맥주가 1.5위안이니 5위안이면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1위안으로 대학 구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을 수 있고, 아이들은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각기 다른 신문 2부를 사서는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차오스(超市·슈퍼마켓)’에서 낱개들이 커피믹스 한 봉지를 사서 맛있게 먹을 수도 있다. 1위안은 생각한 것보다 구매력이 컸다.
●남을 배려하는 정신 부족해
개방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중국이 사회적 불균형 문제 외에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로는 서비스 정신의 함양을 꼽을 수 있다. 물건을 파는 가게가 분명한데도 손님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전통 때문에서인지 아니면 경쟁이 부재한 사회주의체제를 오랫동안 경험한 탓인지는 몰라도 중국인들은 남을 배려하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했다. 이 비슷한 일을 한 달 동안 중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번 당한 바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중국이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나 경쟁이 치열한 21세기를 버텨내기 위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 정신을 키워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중국인 스스로에게도 좋은 일일 테니까. (권삼윤 역사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