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학교 호두산의 후예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개령 초등학교 총동창회” 한마당 화합 대 잔치 개최
지난9월30일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실로 오랜만에 개최하는 개령초등학교 총 동창회 한마당 화합 대잔치 행사에 살며시 다녀 왔었다.
새벽에 작은 비가 내리는 터라 내심 큰 걱정을 했었는데 동녘에 해가 밝아오자 언제 그랫듯이 찬란한 태양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수년간 행사를 치루지 못한 아쉬움에 모두들 동문들의 소식과 개령 초등학교 모교의 소식이 무척 궁금 했었는데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동문중 서부동에 거주하는 56회 졸업생인 전대환 동문이 팔을 걷어 부치고 그동안 학교측과 동문들간의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사리 개령초등학교 총동문회 화합 한마당 잔치를 100여명의 동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 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 우여곡절 총동문회 회장을 맡은 전대환 동문은 개령면 서부동 출신으로서 학창시절에도 누구보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서부동에서는 유일하게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최고의 직책을 맡아 임원으로서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고향땅에 홀로히 내려와 부모님이 남겨주신 소중한 재산을 벗삼아 소일을 하고 있든중 개령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행사중 최고의 이밴트는 그동안 전국을 빛내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빛내농악 전수자들이 손수 흥을 돋구웠으며 선후배 모두가 너무나 개령 초등학교 동창임이 자랑스러워 순식간에 100만원 가량 모금을 하여 일부 주최측에 전달 하였다고 한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이동식 뷔폐와 운동장 가득 메운 천막과 훌륭한 밴드와 연예인 출연등이 얼마나 준비를 꼼꼼하게 했는지 잘 말해 주고 있었으며 연신 음식이 모자랄까봐 둘러보면서 선 후배를 챙기는 주최 기수인 56회 동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우리 기수는 저 혼자라서 어디에 자리할까 망설였는데 멀리서 “어이 정교장” 하면서 불러주신 1년 선배이신 임창곤 선배님 그리고 나병구 선배님 등이 함께 자리를 권해 주었으며 자신들 기수 몫인 수건과 선물을 기꺼이 나눠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개령 초등학교는 지금은 작은 농촌마을인 개령면에 20세기 초반 김천지역에서 두 번째로 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빗내(광천) 들판을 중심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개령 주민들의 노력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농업이 기반산업이었던 20세기 초 개령은 감천의 풍부한 수량과 넓은 빗내들에서 생산되는 쌀로 인해 경제력이 커지자 많은 인구가 모여들어 당시 개령군(현 김천시 개령면)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개령향교를 통해 한학을 배우고 있었지만 신식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개령주민들은 충분한 재력을 바탕으로 신식 학교의 설립에 나섰다.
김천시 개령초등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학교 설립과 관련된 명확한 문건이 존재한다. 개교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학교의 역사를 기록한 '개령공립보통학교 연혁사'에는 1908년 1월 김천시 개령면 유지들이 모여 사립 개진학교(開進學校) 창설을 기획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듬해인 1909년 4월 9일 인가를 받아 옛 향약소(鄕約所·향교)에 개교했다. 사립 개진학교 졸업생은 1회 10명, 2회 5명, 3회 16명 등 모두 31명이다.
개령면 주민들이 세운 사립 개진학교는 3회 졸업생을 끝으로 일제에 의해 1912년 4월 1일부터 개령보통학교로 변경돼 2학급을 편성, 4년제로 다시 개교했다.
이후 1937년 '개령공립심상소학교'로 개명했다가 다시 1941년 '개령공립국민학교, 1996년 '개령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2월 제109회 졸업식까지 모두 6천355명이 졸업했다.
개령초등학교는 1944년 학생수가 714명에 달하는 큰 학교였다. 1946년에는 '개령서부국민학교'가 신설돼 학구가 분리됐다. 지금은 2022년 재학생 수가 54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로 규모가 크게 줄었다. 재학생 중 상당수는 인근 김천혁신도시에서 전입해 온 학생들이다.
개령초등학교는 외형적으로 농촌의 작은 학교지만 '빗내농악'을 전승해오며 학교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삼한시대 감문국이 위치했던 개령면에는 감문국의 '나랏제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가 혼합된 '빗내농악'이 전승돼 왔다. '싸움굿, 진굿으로도 불리는 '빗내농악'은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2019년엔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됐다.
개령초는 지난 2000년부터 지역에 전승되고 있던 '빗내농악'을 교육프로그램에 활용키로 결정하고 7대 한기식(개령초 4회 졸업) 상쇠를 통해 박정철 강사를 소개받아 2001년 '개령초등풍물단'을 창단했다.
개령초등풍물단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최근에만 해도 2019년 구미전국농악경영대회 대상 수상, 2021년 벼고을 국악제 전국전통국악경연대회 최우수상 등 전국 단위 풍물경연대회 수상 경력만 수십 회에 달한다.
최근 개령초등학교는 '빗내농악'을 통해 일본 교포들이 건립한 '건국학교'와 우리나라의 전통인 농악을 매개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오사카시에 위치한 일본 백두학원 건국학교와 국제교류 활동은 코로나19로 인해 단절 위기를 맞았으나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서로 농악 공연을 주고받았고, 올해는 직접 일본을 방문해 다시 교류의 물꼬를 이었다.
장준호 개령초교 교장은 "옛 삼한시대 감문국에서 전해온 빗내농악을 전승하고 있는 개령초등학교 학생들이 일본 백두학원 건국학교와 함께하는 국제교류 활동은 세계 시민 역량 함양 및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한번 개령초등학교 총동창회 행사를 맡아주신 전대환 회장님과 수고해주신 동문 여러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싶다.
(필자)
-정태하 김천시 개령면 서부동 출신 개령초등학교 55회졸업
-현)구미거주 비영리민간단체 구미상록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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