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곡 지역의 문화유적을 찾아
◇ 보구녀관(普救女館) 박물관 :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808-1(이화여대 서울병원 내)
-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인 ‘여성을 널리 구하는 곳’이라는 뜻의 ‘보구녀관(普救女館)’
‘보구녀관(普救女館)’은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과 그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 의사 메타 하워드가 진료를 받지 못하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현재 이화여고와 정동교회 사이에 1887년 10월에 설립한 조선 최초의 근대식 여성 전용 병원이다. 이 병원은 1912년 동대문 부인병원으로 이전하기 진료를 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다.
애초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의 아들이자 의료 선교사였던 윌리엄 스크랜튼은 이화학당 옆에 시병원(施病院)을 설립하고,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러나 남성 의사에게 여성 환자가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 환자들이 의료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생기게 되자 스크랜튼은 미국 감리교에 여성 의사를 파견 요청했다.
이에 메타 하워드가 파견되어 서울에 도착 3일 만에(1887년 10월 31일) 진료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남성 환자들의 치료가 우선시되어 여성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은 시병원 별채를 개조해 여성 전용 병원을 설립했고, 고종 황제는 ‘여성을 널리 구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보구녀관’이란 이름을 지었다. 영어로는 ‘많은 아픈 여성을 위한 집’으로 불렸다. 당시 보구녀관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과 소아 환자에게 무료로 의료 혜택을 제공하여 10개월 만에 1,423 명을 진료했으며, 1년간의 환자 수는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또 여성전문병원이자 최초의 여성의학 교육기관으로서 국내 최초 여성 의사인 박에스더를 비롯한 여성 의료진을 양성해내기도 했다.
1902년에 내한하여 보구녀관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에드먼드(Edmunds, M. J.)는 정동에 있는 보구녀관에 1903년 간호원양성소를 설립하여 한국인 간호사 양성에 힘썼다. 이 양성소는 1912년 동대문병원으로 이전하여 간호교육을 이행하였다. 그때까지 보구녀관 안에 있는 간호사양성소에서 60명의 간호사를 배출하여 우리나라 근대 초기의 의료인 양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는 동안 정동에 있는 이화학당이 커지고 보구녀관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야 했으므로 1908년에 동대문(현재 한양도성 박물관)에 현대식 최대 규모의 부인병원(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건물을 착공하여 1912년에 준공, 그 웅장한 모습은 일약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이후 정동에 있던 보구녀관이 동대문으로 이전되어 이 병원에 통합되면서 1930년부터는 ‘동대문부인병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에 행림원(杏林院) 의학부가 창설됨에 따라 이 동대문부인병원은 김활란(金活蘭) 총장의 노력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화의료원은 2016년 보구녀관 복원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후 133년 만인 2020년 5월, 보구녀관의 외관을 그대로 복원한 지상 1층 한옥인 보구녀관 박물관을 이대 서울병원 앞뜰에 세웠다.
이 박물관은 개원 당시의 보구녀관과 마찬가지로 대기실, 진료실, 수술실, 약국 등 7칸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한국 여성 의료사에 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지하 1층 역사 라운지에 당시 구조대로 복원된 보구녀관은 대기실과 진료실, 수술실, 약제실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다목적실에는 보구녀관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연표가 있고, 옛 진료실과 약국,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한국명 김점동)의 생애, 역대 보구녀관장, 간호사 양성학교 등의 역사를 말해 주는 사진과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야외 마당에는 이화의료원 135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이화 의료인의 시작에서부터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녀관, 간호사 양성학교,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 동대문부인병원, 독립운동가 의사 현덕신 등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고, 뒤편에는 옛 보구녀관에 서 있던 특별한 나무를 심어놓았다.
◇ 서울식물원 : 강서구 마곡동로 161
-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보타닉(botanic) 공원’
서울식물원은 세계 12개 도시 식물과 식물 문화를 소개하고, 도시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에 남은 마지막 개발지인 마곡지역에 조성되었다.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이른바 ‘보타닉 공원’으로서 면적은 여의도공원의 2.2배인 축구장 70개 크기[50만 4,000㎡(15만2460평)]이다. 한강과 이웃하는 유수지, 식물원에서 바라보는 호수공원까지, 그야말로 새롭게 탄생한 강서구 마곡동의 숨골이자 서울의 상징건물이다. 영국 에덴 프로젝트, 싱가포르의 보타닉 가든을 벤치마킹한 서울식물원은 총 6개월의 임시 개방 기간 동안 약 200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았을 정도로 친환경 삶이라는 요즘 흐름에 가장 적합한 도심 속 오아시스를 지향한다.
온실이 식물원을 대표할만한 공간이긴 하지만, 넓은 호수공원이나 잔디마당, 한옥 건물이 있어 한가로이 쉬기에 좋다. 전체 면적에 비하면 실내시설은 극히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식물원이라기보다는 서울숲, 북서울 꿈의 숲과 같은 시민공원으로 봐도 큰 위화감이 없다.
2008년 6월 당시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수변 레저 복합시설을 설치하는 ‘마곡 워터프론트 사업’ 부지였다. 하지만 경제적 타당성과 한강 수질오염 논란 등으로 2011년 5월, 마곡 중앙공원 조성 사업으로 변경됐다.
2013년 당시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곡지구의 공원 용지를 단순히 시민공원으로 만들기보다 도시형 식물원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 조성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마곡 등 서남권의 부족한 녹지공간을 채우고, 서울을 대표하는 보타닉 공원으로 계획되어 2015년 11월 14일 공사를 시작했다. 총 2,156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이 식물원은 2018년 10월 11일~2019년 4월 30일까지 6개월간 임시 개장을 하고, 2019년 3월에는 지중해, 2019년 4월에는 열대 온실을 개방했다. 그 후 2019년 5월 1일에 전면 개원했다.
이 식물원은 멸종 위기 야생식물 서식지를 확대하고, 번식이 어려운 종의 증식 연구, 품종 개발 등 식물의 육성이라는 식물연구보전기관 본연의 역할은 물론, 도시 정원문화 확산의 교두보이자 평생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서울식물원은 열린 숲과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등 4가지 공간으로 나뉘며, 그중 하이라이트는 식물문화센터와 야외 주제 정원, 마곡문화관이 포함된 주제원이다.
* 이용 가능 시설 : 열린 숲, 주제원(주제 정원, 온실, 마곡문화관), 호수원, 습지원, 식물전문도서관, 식물문화센터, 편의시설, 씨앗도서관, 정원지원실
◇ 마곡문화관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 펌프장) : 강서구 양천로 282 (등록문화재 제 363호)
- 일본 강점기에 건립한 김포지역의 배수펌프장을 전시하는 문화관으로 개조
서울식물원 내에 있는 마곡문화관은 2007년에 ‘서울 구 양천 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란 이름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7~28년에 건립된 이 배수펌프장(마곡문화관)’은 현존하는 한국 근대산업문화유산 중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건축물로 그 보존 가치가 크다.
이 배수펌프장은 안정적인 논농사를 위해 이곳 마곡 일대 평야의 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대홍수에도 펌프장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4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목구조로 지어진 이 배수펌프장은, 1980년대 도시화로 인해 용도 폐지가 되었고, 2017년부터 보강 및 보수 작업을 진행해 옛 형태와 구조로 복원되었다.
복원 후의 마곡문화관은 1층의 기획전시실(327.94㎡)과 2층의 상설전시실(57.16㎡), 배수펌프 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구 양천 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하 배수펌프장)’은 콘크리트 구조 위에 지어진 목조 건축이다. 1923년 설립된 양천수리조합이 1925년 대홍수를 겪은 후, 배수펌프장 건립을 추진하여 1928년에 준공되었다.
배수펌프장이 자리한 이 지역은 옛 김포평야 지대로 한강 하류에 있는 관계로 홍수 피해가 잦았다. 홍수 시에는 물을 퍼내고, 갈수기에는 주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설치된 이 건물은 내부에 펌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4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체는 내부의 펌프가 홍수 시에 물에 잠겨 작동이 멈추는 일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현재 펌프는 없어졌지만, 펌프가 위치한 흔적과 지하 배수관 그리고 지하 구조체의 흔적은 배수펌프장이 어떻게 작동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리조합은 토지나 가옥 소유자가 모여 농지에 대한 관개용 저수지·제방 등의 축조·관리 및 수해 예방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한 법인으로, 일본 강점기 때인 1920년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결성이 장려되었다. 양천 수리조합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김포군 양동면, 마곡리, 가양리, 등촌리, 염창리, 양서면 내발산리 등 총 595정보(1정보는 약9,914㎡)를 관할하였다. ‘
서울 구 양천 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마곡지역이 서울의 마지막 농경지였음을 보여주는 근대문화유산이므로, 서울식물원 조성과 함께 ‘마곡문화관’으로 선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