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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癖), 매니아에 대하여 >
최근 영화 '자산어보'가 화제를 모았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친형으로 천주교신자였기에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되었던 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이 ‘자산어보’란 책을 지을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제로 조사 및 채집, 분류하여 각 종류별로 명칭과 분포, 형태, 습성과 그 이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입니다. 현대 어류학자들도 놀랄 정도로 수준 높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18, 19세기 조선시대 실학파를 중심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사로잡은 주제에 광기로 비칠만큼 몰두하는 매니아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죠.
바로 벽(癖)에 들린 사람들입니다. 벽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고치기 어렵게 굳어진 버릇, 또는 무엇을 너무 지나치게 즐기는 버릇으로 나옵니다.
18세기 전에는 선비가 어떤 벽(癖)에 바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18,19세기에는 '벽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라'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연암 박지원의 제자인 이서구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류에 대한 책을 쓴 인물로, 그가 쓴 앵무새 사육집인 '녹앵무경'은 박지원의 서문만 전해질 뿐 책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득공은 가난한 탓에 앵무새 대신 비둘기를 키웠는데, 비둘기 사육서인 '발합경'을 지었고, 조선 호랑이에 대한 전문도서인 '속백호통'도 저술했다고 합니다.
그외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던 석치 정철조, 담배가 좋아 담배에 대한 책까지 썼던 이옥, 매화에 미쳐 그림값으로 받은 3천냥으로 매화를 샀던 화가 김홍도 같은 이들이 바로 벽에 들렸던 매니아들이죠.
서화의 표구에 미쳤던 ‘장황벽’의 소유자 방효량의 글.
"벽이란 병이다. 어떤 물건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긴다(樂)'고 한다. 즐기는 사람이 즐김이 지나치면 이를 '벽'이라고 한다. 동중서나 두예는 학문에 벽이 있던 사람이고 왕발과 이하는 시에 벽이 있던 사람이다. 사령운은 유람에 벽이 있었고 미불은 돌에 벽이 있었으며 왕휘지는 대나무에 벽이 있었던 사람이다."
비슷한 시기, 청나라에서도 벽이 유행했나 봅니다.
장조는 '유몽영'에서...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된다. 돌에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은 벽(癖)이 없어서는 안된다."
21세기 들어와서 복고풍인가요? 벽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진짜 특장기 재주가 있어야 하죠.
그전이지만 즐거움이 병이 된 시벽도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당대 최고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의 '시벽(詩癖)'
[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고
지위 또한 삼공(三公)에 올랐네
이제는 시 짓는 일 벗을 만하건만
어찌해서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 귀뚜라미처럼 읊조리고
저녁엔 올빼미인 양 노래하네.
어찌할 수 없는 시마(詩魔)란 놈
아침저녁으로 몰래 따라다니며
한번 붙으면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
날이면 날마다 심간(心肝)을 깍아
몇 편의 시를 쥐어짜내니
기름기와 진액은 다 빠지고
살도 또한 남아있지 않다오.
뼈만 남아 괴롭게 읊조리니
이 모양 참으로 우습건만
깜짝 놀랄 만한 시를 지어서
천년 뒤에 남길 것도 없다네.
손바닥 부비며 혼자 크게 웃다가
웃음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본다.
살고 죽는 것이 여기에 달렸으니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려워라.]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려워라 ? 맞습니다. 최고의 명의라도 고치기 어렵죠. ㅋ
이규보의 명문 하나 더.
‘구시마문(驅詩魔文)’, 즉 시마를 몰아내는 글.
시에 빠진 뒤에 몸과 마음을 나쁘게 한 시마의 죄상을 다섯가지 지적했죠.
'요사한 생각과 괴이한 말', '천기 누설', '검소하지 못함', '상벌 원칙 없음', '심신의 화평 파괴'.
그러자 꿈에 시마가 찾아와 "어려서부터 그대와 함께 하고 출세를 시켜주었는데" 라며 비난했다고 합니다. 결국 잘못을 깨닫고는 허리를 굽혀 절하고 그를 맞아 스승으로 삼았다는 것.
황당한 내용이죠.
참고로, 이규보는 삼마(三魔)로 색(色)마, 주(酒)마, 시(詩)마를 들었죠.
시 전문입니다. 끝까지 다 읽으시면 좋은 일 생깁니다. ㅋ
구시마문효퇴지송궁문(驅詩魔文效退之送窮文) / 시마를 몰아내는 글, 한퇴지의 송궁문을 본받아서
[ 대저 흙이 쌓여서 된 높은 언덕이나 또는 나무ㆍ바위ㆍ집ㆍ담은다. 천지간의 무정(無情)한 물건이거니와 귀신이 여기에 붙어 괴상함과 요사스러움을 나타내면
사람들은 미워하고 꺼리며 저주하고 쫓아낸다. 심한 경우에는 언덕을 허물고 우물을 메우며,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부수며, 집을 헐고 담을 무너뜨리고야 만다. 사람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질박하고 문채가 없으며 순후하고 정직하던 사람이,
시(詩)에 빠지면 말을 괴상히 하여 사물을 환롱하고 사람을 현혹시키니 해괴하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귀 때문이다. 나는 이 까닭으로 그 죄를 들추어 쫓아내려고 하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사람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태고의 순박함이 있었으니, 꾸밈도 치레도 없음이 마치 꽃이 아직 피지 않은 듯하고, 총명함이 가려져 있음은 마치 구멍 즉 눈ㆍ귀 따위가 아직 뚫리지 않은 듯하였다. 누가 그 문을 허술하게 지켜 자물쇠를 끌러 놓았기에 마귀 네 놈이 느닷없이 들어와서 버젓이 이에 의탁하여 세상과 사람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고 요술을 부리고 괴상한 짓을 하여 비틀거리고 떼지어 다니며, 혹은 아양을 떨어 뼈마디가 녹게도 하고 혹은 진동하여 풍랑이 일게도 하는가? 세상이 너를 장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너는 어찌 날뛰며, 사람들이 너를 공이 있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데 너는 어찌 가혹하게 구느냐? 이것이 너의 첫째 죄이다.
땅은 고요하고 하늘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나 조화를 부리고 신명처럼 밝으며, 어둡고 막막하고 흐릿하여 어두워 오묘한 신비를 마치 자물쇠로 잠근 듯이 굳게 간직하고 있는데, 너는 이를 생각하지 않고 신비를 염탐하여 천기를 누설시키는 데에 당돌하기 그지없으며, 달[月]이 무색할 정도로 달의 이치를 밝혀내고, 하늘이 놀랄 정도로 하늘의 마음을 꿰뚫으므로 신명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하늘은 불평하게 여긴다. 너 때문에 사람의 생활은 각박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너의 둘째 죄이다.
구름과 놀(霞)의 피어남, 달과 이슬의 순수함, 벌레와 물고기의 기이함, 새와 짐승의 이상함, 그리고 새싹과 꽃받침,초목과 화훼(花卉) 등은 천태만상으로 천지에 번화하고 있는 것을 너는 거침없이 취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보는 대로 읊는다. 그 잡다한 것들을 한량없이 취하므로 너의 검소하지 못함을 하늘과 땅이 꺼린다. 이것이 너의 셋째 죄이다.
적을 만나면 즉시 공격할 것이지, 무슨 무기를 준비하고 무슨 보루(堡壘)를 설치하느냐? 어떤 사람을 좋아할 경우에는 곤룡포(袞龍袍)가 아니라도 훌륭하게 꾸며 주고, 어떤 사람을 미워할 경우에는 칼이 아니라도 찔러 죽이니, 너는 무슨 부월(鈇鉞)을 가졌기에 전벌(戰伐)을 함부로 하고, 너는 무슨 권세를 잡았기에 상벌(賞罰)을 멋대로 하는가? 너는 육식자(肉食者‘ 고관대작)도 아니면서 나라일에 관여하고, 너는 주유(侏儒)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조롱하는가? 시시덕거리며 허풍치고 유달리 잘난 척하니, 누가 너를 시기하지 않고 누가 너를 미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너의 넷째 죄이다.
네가 사람에게 붙으면 염병에 걸린 듯 몸은 더러워지고 머리는 헝클어지며, 수염은 빠지고 형용은 메말라지며 사람의 소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사람의 가슴을 여위게 하여, 환란을 매개하고 화평을 해롭게 한다. 이것이 너의 다섯째 죄이다.
이 다섯 가지의 죄를 짊어지고 어찌 사람에게 붙느냐? 진사에게 붙어서는 날렵한 재주로 그 형을 업신여기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하게 하였으며 이백에게 붙어서는 광증을 유발시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게 하였으며, 두보에게 붙어서는 모든 일에 낭패하여 쓸쓸한 타향살이를 하다가 뇌양에서 객사하게 하였으며 이하에게 붙어서는 허탄하고 미혹하여 괴기로워 재주 때문에 세상에 짝이 되지 못하여 일찍 죽게 하였으며 몽득에게 붙어서는 권세 있는 사람을 헐뜯으며 거드럭 거리다가 끝내는 쓰러져 재기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자후에게 붙어서는 재앙을 자초하여 유주로 귀양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다. 누가 그런 슬픈 일을 꾸몄던가? 아, 너 마귀야! 네 모양이 어떻게 생겼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차례로 그르쳤느냐? 또 나에게 붙었구나. 네가 온 뒤로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듣지 못하는 것이 귀머거리 같고 몸이 더워 자취가 구애된다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피부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며, 계집종이 게으름을 부려도 꾸중할 줄 모르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타이를 줄 모르며, 동산에 초목이 우거져도 깎아낼 줄 모르고 집이 쓰러져가도 바로잡을 줄 모른다. 궁한 귀신이 온 것도 역시 네가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귀인에게 오만하고 부자를 능멸하는 것, 방종하고 거만하는 것, 언성이 공순치 못하고 안색이 부드럽지 못하는 것, 여색을 대하면 쉽사리 고혹되는 것, 술을 마시면 더욱 거칠게 되는 것은 실로 네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어찌 나의 마음이 그렇겠느냐? 그 괴이함을 짖어대는 개들도 실로 많다. 그래서 나는 너를 미워하여 저주하고 쫓게 되니, 네가 빨리 도망하지 않으면 너를 찾아내어 베리라.”
이날 밤에 피곤해서 누웠는데 꿈에 베갯머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빛깔과 무늬가 찬란한 옷을 입은 자가 다가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심하다. 자네가 나를 나무라는 말과 나를 배척하는 말은너무 왜 나를 이처럼 미워하는가? 내 비록 미미한 마귀이지만 역시 상제에게 알아 줌을 받는 자다. 일찍이 자네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상제께서는 나를 보내어 자네를 따르게 하였네. 자네가 어릴 때에는 집에 숨어서 떠나지 않았고 자네가 총각이 되었을 때에는 슬며시 엿보고 있었으며, 자네가 장성하였을 때에는 뒤따라다녔네. 자네에게 기개가 웅장하게 하였고 자네에게 수사(修辭)의 법을 가르쳤네. 과거장에서 문예를 겨룰 때에는 해마다 합격하게 하여,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고 명성이 사방에 떨치게 하였으며, 고귀한 사람들이 모두 자네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하였네. 이것은 내가 자네를 적지 않게 도운 것이며 하늘이 자네를 한량없이 후하게 대우한 것이네. 말하는 것이며 몸가짐이며 여색을 좋아하는 것이며 술을 즐기는 것은 각각 시키는 이가 있으며, 내가 주관한 바 아니네. 자네는 어찌 신중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바보 같은가? 이는 실로 자네의 잘못이지 나의 허물이 아니네.”
거사(居士)는 이에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는 겸연쩍어하는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절하고 그를 맞아 스승으로 삼았다.]
이규보의 우상이었던 소동파의 시
"아름다운 시구가 끊임없이 솟아나네.
어찌 남의 호감을 사기 위해 일부러 꾸며 쓸 수 있으리요.
원숭이나 학도 본래 아무 생각없이 우는 것이니
언덕 아래로 사람이 지나가든지 않든지 상관치 않네. “
역시 멋집니다. 아름다운 시구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네요.
소동파 자신도 천성이 글쟁이였나 보더라구요.
“내 생애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다. 글 쓰는 가운데 뒤얽혔던 내 생각들을 전부 붓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
그당시 북송에서 소동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죠.
'당송8대가'의 한명인 구양수는 소동파의 신작을 받아볼 때마다 하루종일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고 말했다고 해요. 또 당시 신종 황제 시종의 말에 따르면 ”황제 폐하께서 식사 하시다가 멈추는 때는 바로 폐하께서 소동파의 수필 잡문을 읽으실 때“라고 했다네요.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동파가 쓰던 모자도 유행을 했다고 하고요. 소동파가 만든 ‘동파육’도 지금 못지않게 그 당시에도 인기를 끌었겠지요.
참고로, 동파육은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대표적인 요리로 오겹살 돼지 찜 요리인데 소동파가 이곳에서 벼슬을 할 때 처음 요리법이 개발되었다고 하여 동파육이라고 합니다.
소동파 시 때문에 여러 집구석이 망가졌다고 하네요. 어떤 부인은 밤새도록 소동파의 시를 탐독하다가 "나보다 동파가 더 좋으냐"며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고 해요. 가정파괴범인가요? ㅋ
어느날 소동파가 주변 사람에게 "내 뱃속에 뭐가 있나?" 라고 물었나 봅니다. '아름다운 글' 운운하며 아부를 했나 봐요. 동파는 "모두 틀렸다"고 했죠. 이에 어떤 분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 있을 듯합니다."라고 답하자 "맞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도 소동파 광팬들이 많았습니다. 고려중기 이규보, 김부식 등 대문장가들이 소동파의 시와 글에 열광했죠. 지금은 중국대륙에 한류열풍이 대단한데, 그 당시는 반대로 고려에 중국대륙 열풍이 대단했네요.
특히 김부식은 소동파의 광적 추앙자였죠. 소동파의 이름은 소식이고 동생은 소철이었는데, 자신의 이름도 소식의 식자를 따 김부식으로... 자신의 친동생도 소철 따라 부철로 개명했죠.
충격... 와! 심하십니다. 중국 사대사상이 너무 강해, 그가 쓴 ‘삼국사기’의 진실성도 의심해야 할 판이네요.
오늘 이야기의 결론. ”사람은 모름지기 벽(癖)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과 담 쌓는 벽(壁) 말고요.
백세인생이니 벽하나 키우시죠? '전국민의 1벽화'. 사치벽, 낭비벽은 안됩니다. ㅋ
저는 무슨 벽을 키울까요 ? 동해일출 해 사진 전문
그대는 무슨 벽을 키우고 싶습니까 ? 지금부터라도 좋아하는 거 있으면 시작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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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태 해양과학관
이사님께
^詩癖^ 답함
*조선조 명종때 문신 尹潔(1571~1548)은
젊어서부터 건강하여 병이 없었다.매번 시를 지을 때마다 病자를 작품에 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는 학질에 걸리고 말았다. 이불을 끌어 안고 오한에 떨면서 말했다."이제부터는 나도 시 속에 病자를 넣어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野史氏도 한 말씀 거들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백발은 화림(꽃숲,기생)에서 꺼리는 바이지만(白髮花林所忌)시 속에 쓰이면 신선하고(入詩卽新) 부귀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이나(富貴世情所貴) 시 속에 쓰이면 비루하다(入詩卽陋)"고 했으니, 두 말이
다 믿을 만하다.
^病^자가 시에 쓰인다고 무슨 새롭고 기이한 것이 있겠는가
두보의 시에 "학질 3년에 누군들 견디리오?"라고 했으니, 두보도 또한 괴로워 한 것이 병이었다.
윤결은 한 때 "病"字를
좋아하고(?) 병이 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니, 이는
詩癖이 지나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