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金亨俊) 작사 홍난파 (洪蘭坡)작곡 (1920)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참고>
현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님이1920년 애수에 붙힌 곡에
1925년 님과 친분이 있던 김형준님이 봉선화 가사를 써서 만든
가곡 "봉선화"가 세상에 널리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1942년 일본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 4학년때
김천애가 히비야공회당의 ‘전일본신인음악회’에서 《봉선화》를 불러 큰 반향을 일으 키면서 부터였습니다.
이날 공연에 특별히 한복을 입고 출연한 김천애는 연속되는 앵콜곡을 부르다가 네번째의 앵콜곡으로
봉선화를 부르면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사시노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천애가
국내에 돌아와 음악활동을 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또 그러든 중에 레코로도 취입 보급되면서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애창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일제는 마침네 이 노래의 가사를 문제삼아
이 노래를 금지시켰지만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된나라의 방송에서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던 가곡이 봉선화였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노래는 그때 그 노래로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대로 올렸습니다.
1919년 6월 11일 평안도 강서에서 출생한 김천애님은
평양정의 여자고등학교를 나와 일본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후
국내에 돌아와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창설에 힘을 기울여 1948년 성악과장으로 재직했고
그 후 숙명여대 음대 교수, 음대학장등을 역임하다가 1972년 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 회관 터)에서
갖은 독창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했지만 반체제인사라는 이유로
국내에는 오지 못하다가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 후 1990년 국내에 잠시 돌아와 KBS-TV 특집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얘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독신으로 살던 님은 1995년 3월 30일 미국에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봉선화 - 홍난파, 노래: 김천애 (1940 년대 녹음)
여성 합창(모란봉)
첫댓글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