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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입맛 훔친 '세계 속 한국음식'으로 탄생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힘에 전통음식 명인의 손맛이 어우러져 명품으로 재탄생한 '부각'. 파평 윤씨 가문 며느리가 오랜 내림비법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가공해 '세계 속의 한국음식' 반열에 올려놓았다. 식품명인 오희숙(61·하늘바이오 대표)씨가 지난 9월 미국 LA 한인축제장에 부각으로 3000만 달러 수출계약 체결 성과를 올렸다. 오염과는 거리가 먼 순수 국내산 해산물과 신선농산물을 재료로 부각을 만들었다. 수출상담 바이어들과 현지인들에게 다소 낯선 이국 음식이었을 텐데도 호기심에 한 번씩 맛을 보고는 그동안 그들이 찾고 있던 스낵 이상의 맛과 영양에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글 박효덕 편집위원 사진 하늘바이오 제공
지난 9월 LA서 3000만 달러 수출계약
오희숙 명인은 전남 곡성에서 나고 자라 경남 거창으로 시집왔다. "종갓집 며느리라고 해도 셋째여서 예사로 생각했죠. 남편이 결혼하면 어머니를 모시겠노라고 얘기했지만 귓등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결혼 이듬해 정말 거창으로 내려가자는 거예요. 서울에서 김천으로 가는 기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층층시하에 문중의 종갓집 며느리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손님들이 들이닥치니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아닌 동네 시집살이였다. "집에서 읍내까지 15리(6km)라서 항시 찬거리를 마련해 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땐 냉장고도 없었고 식재료를 손에 넣는 족족 손질해둬야 했어요"
집안에는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 10여 가지의 음식 재료들이 늘 갈무리 돼 있었다. 각종 채소로 장아찌를 담그고, 생선은 소금 항아리에 절여 뒀다가 헹궈서 찌거나 구워내는 식이었다. 그 음식 가운데 하나가 부각이었다. 재료를 말린 후 찹쌀풀을 발라 다시 말리면 오래도록 맛이 변하지 않았다.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소도 그대로 보존됐다. 음식마다 수십 번의 손이 가야하듯 깻잎부각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기는 매한가지여서 들기름을 발라 밥을 지은 아궁이의 잔불에 살짝 구워냈다.
종가집 며느리가 층층시하 문중 어른께 올린 반찬
오 명인이 시집오기 전 곡성에서는 곡우가 지나면 집집마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찹쌀풀을 머금은 김이 마르면서 풍기는 냄새였다. 김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찹쌀이 귀하다 보니 김을 두툼하게 겹쳐서 말리되, 찹쌀은 살짝만 발랐다. 반면 거창에서는 김이 귀한 대신 찹쌀이 흔했다. 그래서 얇은 김 한 장에 찹쌀 풀을 듬뿍 발랐다. 들깨송이, 깻잎, 감자 등의 밭작물을 부각재료로 활용했다.
예순이란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어릴 적부터 부각을 만들다보니 손 지문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직원들이 일손을 돕고 있지만 그의 손을 거쳐야 완제품이 되기에 부각을 만드는 작업은 예나 지금이나 고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때 시어머니께서 부각 사업을 극구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가문화를 허투루 대할 수 없는 노릇이라 대를 이어 끝내 성공을 거두리라는 집념으로 견뎠다. 이는 그가 지난 2004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한국전통식품명인(제25호)으로 지정받는 동력이 됐다.
전통적으로 반찬이나 술안주용으로 밥상에 오르던 부각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세계인의 스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14건의 발명특허도 출원했다. 쉽게 눅눅해지는 것을 예방하고, 기름 냄새를 없애고, 찹쌀풀이 원재료에 잘 스며들어 벗겨지지 않게 하는 해답을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냈다. '오희숙 전통부각'이 자랑하는 '고소하면서도 갓 구워낸 것처럼 바싹바싹한 식감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법'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인내의 소산이다.
다시마·고추·더덕 등 23가지 스낵식품 개발
오 명인의 손을 거쳐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스낵으로 재탄생한 부각 제품종류는 고추, 연근, 우엉, 감자, 고구마, 호박, 인삼, 더덕, 도라지, 김, 다시마, 미역 등 자그마치 23가지에 이른다.
오 명인은 지난 9월 미국 LA 한인축제장에서 보여준 부각에 대한 인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밀과 옥수수 전분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미국의 스낵류 와는 달리 천연 유기농산물에 찹쌀풀을 첨가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현지 바이어들과 주민들이 호기심을 갖고 몰려들더니, 한 번씩 시식을 하고서는 원재료의 신선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며 '영양 만점의 네츄럴 칩(Natural chips)'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1999년 중국 상해 식품박람회 이후 지금까지 일본과 대만, 러시아, 필리핀 등 50여 차례의 국제식품박람회에 참가해 보았지만 LA 한인축제장에서와 같은 현지인의 관심과 호평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희숙 전통부각'은 국내에서도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다. 현대와 롯데, 신세계 백화점을 비롯해 이마트와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와 학교급식, 홈쇼핑을 통해 이미 판로 기반을 확고히 다져 놓은 상태다. 그는 거창읍에 있는 지금의 완제품 생산공장과 별도로, 남상면에 위치한 거창일반산업단지에 9000㎡ 규모의 수출가공포장을 짓고 있다. 올 연말쯤 준공될 예정이다. 이번 LA에서의 3000만 달러 수출계약실적으로 '수출의 내수 추월' 꿈을 이뤘고, 수출가공포장이 가동되면 수출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진주-곡성-거창에 반제품 생산 공장 운영
오 명인은 1992년 3월 '하늘바이오'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설립해 부각사업에 뛰어든 이후 부각의 원료가 되는 미역과 다시마, 김 등의 해산물은 전남 곡성에서, 도라지 등 특용작물은 진주에서, 고추, 연근, 호박, 우엉, 감자 등의 밭작물은 거창에서 구입한다. 그리고 원료 생산지인 곡성과 진주, 거창(가조)에는 현지 주민 80여명을 고용해 재료의 선별과 세척·절단·풀칠과정의 반제품 작업을 그들에게 맡기고 있다.
원료 확보와 1차 가공 절차를 밟은 반제품은 오 명인과 직원 20여명이 근무하는 2차 가공공장에서 유탕작업과 시럽처리, 건조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탄생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전통음식에 현대인의 취향을 버무린 이 맛은 어떤 맛일까 싶어 부각 한 점을 들었다. 튀김 요리여서 너글너글한 맛이 받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달콤하고 짭조름한 뒷맛에 재료 본연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 있다. 식감은 과자를 닮았지만 과자에서 느끼기 어려운 순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지역민들은 '오희숙 전통부각'을 일러 거창이 자랑하는 '가공농산물의 신성장동력산업'이라고 표현했다.
오희숙 전통식품명인은
지난 2000년 12월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그가 만드는 부각은 2002년 11월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로 선정돼 금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5년 11월엔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세계특허기술대전 금상을, 2011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받았다. 전통부각 관련 14건의 발명특허도 출원했다. 2004년에는 한국전통식품명인(제25호)에 지정됐다. 그가 경영하는 '하늘바이오'는 수출유망중소기업, 핵심수출중소기업, 농업벤처기업, 전통식품제조기업, 굿디자인(Good Design) 기업에 지정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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