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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다윗
사무엘상 26:1-25(구p.453) 찬송 435장 / 찬송 357장 20150412
오늘도 사무엘상 26장, 27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지 난주 오후 시간에 다윗의 정약결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윗이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의 정약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이 되었을 때 6명의 아내를 가지게 됩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많은 아내를 거느리게 되었나?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렇게 많은 아내를 거느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다윗이 믿음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이는 600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윗이 전쟁을 해서 전리품을 가지고 양식을 사오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이 많은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윗을 멸시하고 무시하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게 될 때 그들의 아내를 책임져 주는 대신에 그 집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정약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결혼한 아비가일이나 아비노암 같은 사람들은 다 중년의 여성들이었습니다. 다윗은 30살도 되지 않는 청년이었습니다. 다윗이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 명의 아내들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을 통해 다윗은 많은 정치적인 기반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두 번째로 사울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 다윗이 사울을 만났을 때는 굴 속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야에서 사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30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적어도 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면 어떤 명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살펴 볼 때 아마 사울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했다는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반역의 죄를 물어서 죽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사울이 일전에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2:13절에 보면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라고 말을 합니다.
왕을 죽이려고 반역을 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역죄가 됩니다.
예전에 왕들은 반역의 죄를 물을 때 3대를 멸했습니다.
얼마 전에 통진 당과 이석기의원이 내란 음모 죄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통진당도 해산이 되고 이석기 의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통수권자를 위협하는 것은 반역의 죄가 되기 때문에 엄벌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사울도 다윗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고 있으니까! 왕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려고 했다! 고 오해를 했다면 당연히 군사를 동원해서라도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사울을 죽일 마음도 없고, 나라를 빼앗을 마음도 없었습니다.
기존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밀려나서 오갈 대가 없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답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사울을 만나서 내가 반역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26:1절에 보면 십 사람들이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사울에게 알려주게 되고, 사울은 군사 3000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아 수색을 하러 광야로 내려가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때 다윗이 잠을 자고 있는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사울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혼자 가지 않고, 부하 중에 아비새라는 사람을 데리고 가게 되는데 이 아비새는 다윗의 군장인 요압의 동생입니다. 이 아비새는 다윗의 부하 중에서 3위 안에 들어가는 장군입니다.
사무엘하 23:18절에 보면 아비새는 창을 들고 300명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 창을 잘 다루는 장군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저에게 명령만 내리시면 잠자고 있는 사울을 한 창에 죽일 수 있습니다. 사울을 죽입시다. 라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것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아니라 나의 정당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게 다윗의 믿음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생각할 것이냐?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하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생각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신호등 빨간불에 지나갈 수 있습니다. 급한데 내 할 일을 위해 법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공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짓말로 생각해보면 내가 어려움 일이 생겼을 때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정직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간은 걸리지만 반드시 내 정직함을 나타내시고 복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공의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9절에 보면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라고 말을 합니다.
사울을 죽이는 것은 절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울의 심판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10절에 보면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당장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고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게 되면 똑 같은 정죄와 심판을 내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악한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혜로운 선택을 했고, 믿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 왕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멀리 도망을 나와서 사울의 군장이 아브넬을 책망합니다.
15절에 보면, 왕을 보호하고 왕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군대장관이 왕을 지키지 못했다고 책망을 합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내가 왕을 죽일 마음이 없고 반역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18절에 보면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라고 호소 합니다.
19절에 다윗이 지혜롭게 말을 합니다.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줄을 알지만 사울에게 죄를 묻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를 합니다.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사실 바른 말인데 무서운 말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으시겠지만, 만약 사람들의 뜻이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는 왕을 죽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사울은 감히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다윗을 죽이겠다고 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다윗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 한 것이 되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사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을 합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다윗이 승리할 것을 인정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26장에서 다윗의 믿음과 다윗의 지혜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도자로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왕으로서 준비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조급하지 않고, 개인의 감정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다윗이 대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인은 힘으로 자기를 드러내지만, 대인은 덕으로 자기를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믿음도 있어야 하지만 지혜도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새처럼 힘 있다고 조급하게 일하지도 마시고, 사울처럼 자기 생각에 갇혀서 자기 욕심대로 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26:12절 끝에 보면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고 지혜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도 도와 주시고, 은혜 베푸심으로 내게 주신 기업 안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7장 에는 다윗이 망명생활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망명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는 사람이 목숨을 위해 다른 나라로 피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입장에서는 반역을 꿈꾸고 왕을 죽이라고 하는 대역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나름대로 설명을 하고 사울을 죽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여러 번 알렸지만 사울은 정신이 오락 가락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 옆에는 정치적인 욕심 때문에 사울에게 충성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27:4절에도 보면 다윗이 이동이 했을 때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군사들만 600명이고 또 그 식솔들까지 치면 10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다윗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27:1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을 했다”라고 말씀합니다.
27:1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은 머리가 좋고 상황 판단력이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조금만 방심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기 머리를 더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다윗의 영적인 훈련과정입니다.
지난 번에 나발 때문에 감정적으로 칼을 들고 나가다가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은 적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화를 내고 말하다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데 감정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미리 예배해 놓으신 은혜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나의 지식이나 나의 계산보다도 하나님의 생각이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사건입니다.
다윗의 생각에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이스라엘 땅에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블레셋 땅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 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다윗이 아기스 왕을 찾아가 거주할 지역을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윗이 아기스를 만났을 때는 혹시나 죽일까봐 미친체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다윗이 600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에서 유력한 사람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기스도 이제 다윗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스가 6절에 보면 “시글락”이라는 지역을 다윗에게 허락을 하고 그 곳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아기스가 다윗의 능력을 인정해 준 것입니다.
다윗은 세상 적으로 보면 힘 대 힘으로 아기스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세상에서 성도들도 큰 소리를 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을 하는 목적은 자기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리품을 얻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아기스에게 내가 당신들의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다윗이 전쟁을 하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가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다윗은 가나안 땅 사람들을 치고 그 전리품들을 가지고 와서 아기스를 찾아 갔다는 이야기는 아기스에게 세금을 받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자기 백성들의 양식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기스에게 보고할 때 아기스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절에 보면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라고 보고를 합니다.
다윗은 유다 지역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땅과 블레셋 밖에 있는 지역을 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스에게 세금을 줌으로 아기스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스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다윗이 아기스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처리해주고 세금까지 바치니까 아기스의 입장에서는 능력있는 부하가 하나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아기스가 굉장히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윗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땅에 거주하면서 아기스에게 잘못 보일까봐 거짓말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 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에 보여 주던 믿음의 사람 다윗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다윗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다윗이 이렇게 행동할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까?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갈까?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사람들의 것을 빼앗으려고 속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다윗의 모습을 보면 27:1절에 있는 것처럼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라는 말과 22절에 “그의 생각에”라는 말을 보면, 하나님께서 묻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던 다윗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기스 왕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일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되어 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윗은 또 한번 성숙하게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인생을 놓고 볼 때 이렇게 자기 머리를 믿고, 자기 지식을 의지해서 낭패를 경험경험 될 때 또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순종하게 될 때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 누리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편 3:6절에 보면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리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옆에서 적들이 나를 치러와도 “나는 눠서 잠을 자가 깨었느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라”나중에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시편 131편에 보면 다윗이 누리를 평안을 노래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런 다윗의 믿음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감당하지 못할 일을 내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