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자는 가장 많은데… 가르치는 고교 한곳도 없어
"수능 아랍어, 제대로 풀려면 간단치 않은 문제들"
아랍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응시하지만 올해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한 학교는 없었다.
(연합뉴스 4월 7일 보도)
2009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응시자 9만9693명 가운데 2만9278명(29.4%)이 아랍어에 응시했다. 그런데 전국 2100개 고교 중 아랍어가 정식 교과목인 곳은 한 곳도 없다. 한때 아랍어를 가르쳤던 충남 계룡시 엄사중도 강사를 못 구해 2007년부터 수업을 접었다.
그런데도 아랍어 응시자는 일본어(2만7465명) 한문(1만6908명) 중국어(1만3445명) 프랑스어(4296명) 독일어(3853명)를 제치고 1위다. 쉽게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퍼져 올 수능에선 3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아랍어를 공부할까.
아랍어 기초를 다져주는 대표적인 코스가 EBS 인터넷 수능 강좌다. 한국외대 이인섭 통번역대학원장의 '인터넷 수능 아랍어'로 자음·모음과 표기법, 발음 부호와 격(格)에 대한 1강부터 시작해 60분 안팎의 강의 17개로 이뤄져 있다. 교재는 pdf 파일 형식의 강의 자료를 내려받아 쓴다.
그는 "아랍어는 다른 외국어와 달리 자모를 익히고 읽는 과정부터 어려움에 부딪치지만 100시간 정도 투자하면 천천히 읽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며 "동사의 변화가 심하지만 다른 언어에 비해 적은 시간을 들여도 수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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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구 한남동의 이슬람교 중앙성원. 최근 수능시험에서 아랍어의 표준점수가 다른 언어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오면서 이곳의 강좌를 찾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 조선일보 DB
2009학년도 수능시험에서 아랍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00점으로 69점인 프랑스어와 무려 31점의 차이가 났다.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 중 표준점수 만점자는 162명이나 됐다. 그러자 일부 재수학원에서 이같은 수요에 맞춰 특별반을 편성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강남 대성학원은 목·금요일 모두 4차례의 아랍어 강좌를 진행한다. 매주 한 번씩 100분의 강의에 학생 300여명이 몰린다. 심연식 상담과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따로 강좌를 만들지 않았는데, 올초 수험생과 학부모의 강의 개설 요청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마이맥 강남대성학원의 아랍어 수강생은 111명으로 일본어(100명)와 한문(99명)을 제쳤다. 메가스터디는 이달 초 아랍어 강좌를 개설했다. 수강생은 100명 정도로 명지대 아랍어과 출신 강사가 지도한다. 손은진 전무는 "온라인 강좌 개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과 직장인 대상 학원도 덩달아 뛰고 있다. 교대역 인근 송교수 외국어학원은 수능 대비 아랍어반을 운영한다. 종로구 관철동 신중성어학원의 신현규 교육사업부 실장은 "아랍어는 2개월 정도만 집중적으로 공부해도 고득점이 가능해 다른 과목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현재 아랍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한국외대·부산외대·명지대·조선대 등 4곳이다. 아랍어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개인 교습도 쏠쏠히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는 "16시간 과외와 한 달 정도 암기로 당당히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도 나온다.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성원을 찾는 학생도 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사무총장은 "매주 화·목요일 진행되는 초급·중급 아랍어 강좌에 30여명이 참석한다"면서 "아랍어 전공자와 취업 준비생, 중동 파견을 앞둔 직장인이 대부분이지만 대입 수험생도 몇 명 있다"고 말했다.
'아랍어 로또'를 바라는 학생도 꽤 있다. 아예 공부를 하지 않고 '찍기'로 승부하겠다는 하위권 학생들이다. '수만휘(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 '오르비스 옵티무스' 같은 수험 사이트나 아랍어 관련 사이트에서는 '(아랍어는) 찍어도 등급 잘 나온다'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아랍어는 학생들의 평균점이 매우 낮고 표준편차가 커 몇 문제를 더 맞추면 표준점수가 껑충 뛴다.
3년치 수능 기출문제를 본 이주화 사무총장은 "제대로 해석하고 풀려면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라고 했다. 잘 하는 학생이 적은 탓에 점수를 조금만 잘 받아도 표준점수가 확 올라가는 것이다.
이인섭 교수는 "3만명이 응시하면 1200여명이 표준점수 1등급을 받는다는 얘기인데 이들이 과연 체계적인 학습을 했을까 의문이 든다"면서 "시·도별로 아랍어 시범학교를 세우고 순환제 교사를 배치해 제대로 가르쳐야 아랍어 과목이 '수능 로또'로 여겨지는 파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