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 평가서
1. 2007년, 현장교사들의 임금에 대한 재능교육 자본의 공격에 함께한 이현숙 집행부
20년 가까이 초고속성장을 거듭하던 대교, 재능교육 등 학습지 자본은 출산율의 급감, 1998년 IMF 구제금융 위기(이로 인한 회원 감소, 대학교 졸업 학력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업사태로 인한 공부방・보습학원의 난립), 후발 경쟁업체(구몬학습, 웅진씽크빅)의 등장으로 인해 2000년대에 들어서며 성장에 급제동이 걸렸다. 동시에 이 무렵부터 학습지 자본이 해마다 회비를 인상해 손쉽게 막대한 이윤을 향유하던 관행도 막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학습지 업계 1위 업체 대교를 시작으로 학습지 자본들은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현장의 엄청난 반발 때문에 각 학습지 자본은 기존 교사들에게는 새 제도의 적용을 유예하고 신입 교사들에게만 우선 적용하는 등 일정 부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 무렵 재능교육은 학습지 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단체협약이 있었고, 타사보다 월등하게 많은 조합원이 있었다. 그 결과 재능교육 자본은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에 대해 쉽사리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재능교육지부장이었던 이현숙이 2006년 말에 학습지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 삭감에 앞장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07년 4월, 이현숙 집행부는 타사의 사례나 현장 교사들의 바람을 무시하고 현장 교사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는 제도에 전격 합의했다. 그 결과 학습지 업계 최악의 임금제도가 오히려 재능교육에 가장 먼저, 전면적으로 도입됐다.
더욱이 이현숙 집행부는 잠정합의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새 임금제도에 대한 세부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찬반투표를 강행했다. 또 이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찬성을 강요하고 나아가 대리투표까지 감행하며 현장의 반발을 짓밟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결국 노동조합이 재능교육 자본과 함께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을 공격하는데 앞장섬으로써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대신 자본의 이윤창출 도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자 투쟁이 퇴조하며 성장한 어용세력의 이해관계가 이제 더 이상 조합원들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또한 어용세력이 예전처럼 단순하게 자본의 꼭두각시 역할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조직적 이해관계를 조합원들의 권익보다 우선하게 된 데에 있다.
2. 거칠 것 없는 어용세력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농성투쟁이 시작된 2007년은 노동자 투쟁의 거듭된 패배와 노동운동의 심각한 퇴조가 한참 진행된 터라 곳곳에 어용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학습지노조에는 외부의 어용세력 혹은 종파적인 조직과 연결된 세력이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지는 못했다.(각주1-글 하단에 모든 각주를 일괄 첨부-) 하지만 이런 상황은 목적의식적으로 학습지노조에 들어와 위원장이 된 이현숙을 중심으로, 학습지노조를 점차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맞춰 장악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던 세력에 의해 달라지고 있었다. 이현숙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지침에 따라 학습지노조 내부에 공식기구가 아닌 별도의 비공개 사조직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체계를 구축했고, 그 사조직 회의에서 노동조합의 주요 결정사항을 사전에 결정했다. 결국 학습지노조의 공식 의사결정기구는 무력화됐고 회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게 변해갔다.
또 이현숙은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노조 관료질서 아래에서 일익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학습지노조는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과 민주노총을 장악한 어용관료집단과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습지노조는 조합원의 권익보다 어용관료집단의 이해관계와 정파적 계산을 우위에 두며 겉으로 보이는 “성과”를 만드는 데로 나아갔다.
그 단적인 결과가 바로 2007년 단체협약을 통해 학습지 업계 최악의 임금제도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현숙 일파는 이를 두고,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실정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학습지노조의 산하지부로 조직형태를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교섭단체의 지위를 유지하며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이름으로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했다.(각주2)
이러한 입장은 단체협약 체결 직후 첫 임금 지급일 이래 전체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심각한 임금삭감이 현실화한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황창훈 등과 손잡은 후에는 “현장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가 결코 아니었다.”라는 입장으로까지 나아갔다.(각주3)
결국 재능교육 투쟁 역시 그 시작부터, 이미 일반화된 운동의 후퇴, 이를 발판삼아 자라난 어용세력의 득세와 反노동자적인 행태라는 익히 보아온 광경이 그대로 펼쳐진 것이다.
3. 종탑 이전 : 재능교육 자본과 이현숙 어용 집행부에 맞선 투쟁
농성투쟁 초기에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재능교육 자본의 탄압, 잘못된 단체협약 체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할 때에는 악착같이 8개월을 버티더니(각주4) 농성투쟁에 돌입하자 1주일 만에 총사퇴하며 투쟁에 완전히 등을 돌린 이현숙 일파, 단체협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에서 수세적으로 임금제도 개정에 관한 보충협약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객관적 조건 등 모든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투쟁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단체협약 체결 직후 현장의 반발을 ‘대변’하며 투쟁에 돌입했지만 현격한 힘의 열세로 현장교사들에게 임금제도 개선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투쟁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조합원조차 자신이 속한 지국에서마저 현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본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을 벌여나갈 수 없었다. 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선제공격은커녕 방어에만 급급했다. 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임금삭감에 내몰리게 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불과 반 년 사이에 대거 재능교육을 그만둬버린 현장상황과 이현숙 집행부가 임금제도 개악에 합의를 해 준 것이 노동조합의 원죄로 작용하며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상당부분 제약된 것도 한몫했다.
그 결과 농성투쟁에 돌입하고 바로 이른바 ‘장기투쟁사업장’의 양상이 나타났다. 즉 형식은 노동조합투쟁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의 능동적인 참여도 없고, 현장에서 분리된 소수의 간부와 해고자들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전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이 점점 장기화되고 내부동력은 눈에 띄게 고갈되어가면서 분열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서비스연맹은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현숙 집행부의 2007년 단체협약 체결을 지지한 서비스연맹은 이현숙 집행부를 끌어내리고 새롭게 선출된 학습지노조 지도부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재능교육 투쟁 ‘지원대책위’나 ‘공대위’를 “임의단체” 운운하며 재능교육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았고, 학습지노조에 끊임없이 양보안을 강요하다 여의치 않으면 학습지노조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며 투쟁의 발목을 잡았다.
그 결과 재능교육 투쟁은 노동조합 체계 속에서 지원을 받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총 소속의 개별적인 조합원, 학생, 개인, 정치조직 성원 일부가 함께하는 형태로, 노동조합 조직질서와 ‘독자적’인 형태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한편 재능교육 자본의 공격과 이현숙 일파의 反노동자적인 단체협약 체결에 맞서 투쟁에 나선 두 세력은 노동조합과 그 투쟁에 대한 정치적・조직적 견해가 상당히 달랐다. 거칠게 표현하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오로지 反이현숙 집행부라는 공통분모 아래, 한시적으로 함께 투쟁에 돌입한 형국이었다.
그래서 투쟁 초기부터 투쟁전술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이견이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논쟁은 투쟁이 전진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인 지점에서 도저히 합치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커다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5)
그나마 투쟁 초기에는 재능교육 사측이 이현숙 일파를 위시한 어용세력의 투쟁 사보타주와 개악된 단체협약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하며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바람에 노동조합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올 여지가 별로 없었다.(각주6)
그러나 언제까지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는 없었다. 내부 분열이 수습 불가능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종탑‘농성’ 돌입 훨씬 이전인 2010년 말 이현숙 일파의 복귀와 때를 같이 했다. 이때부터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황창훈 등은 이현숙 일파에 조금씩 동조하며 서비스연맹까지 끌어들여 이른바 ‘종탑파’ 결성의 단초를 차곡차곡 마련하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요구안을 양보하지 않으면 절대 투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의식, 투쟁요구안의 쟁취 여부와 무관하게 빨리 투쟁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 투쟁기간 내내 양보안을 강요하며 정권과 자본의 ‘중개인’ 노릇을 했던 서비스연맹 등 어용세력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4. 종탑 이후 : 재능교육 자본과 이른바 종탑어용세력에 맞선 투쟁
이제 판 갈이가 필요했다. ‘종탑파’ 해고자들도 간절히 원했지만, 서비스연맹과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회주의 세력들은, 딴에는 ‘신의 한 수’로써 종탑‘농성’을 기획하고 이를 판 갈이의 시나리오로 삼아 실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종탑어용세력을 부추겼다.
결국 비정규직 최장기투쟁을 코앞에 두고 있던 2013년 2월, 투쟁요구안을 양보하지 않는 조합원과 연대동지들에 맞서기 위해 고공‘농성’을 선택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종탑어용세력 시나리오의 핵심은 겉으로는 강경한 투쟁을 배치하고 속으로는 다시 2007년과 마찬가지로 그럴 듯해 보이는 “성과”와 “명분”을 만들어 투쟁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데 있었다.(각주7)
하지만 환구단에 남아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완강한 저항과 정치적 반격으로 종탑‘농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용세력들의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이제 칼자루를 쥐게 된 재능교육 사측은 종탑어용세력에게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다.
수세에 몰린 종탑어용세력은 재능교육을 상대로 투쟁하는 대신 교묘하게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환구단파’를 고립시키는데 몰두했고, 동시에 서비스연맹 내의 어용관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재능교육 자본으로부터 ‘정당한’ 합의주체임을 인정받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자 종탑어용세력은 마침내 형사고발, 민사소송제기, 제명 등을 통해 투쟁을 압살하는 것과 동시에 재능교육 자본에게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재능교육 투쟁이 이러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말 두드러진 것은 민주노조운동과 정치조직들의 실상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태동은 곧 기존 ‘질서’ 그리고 어용세력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으로부터 비롯했다. 국가노조, 어용 집단인 대한노총, 한국노총을 넘어서지 않고는 ‘평범한’ 노동조합 결성조차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되게 등장한 것이 “자주성”, “노동조합 민주주의”였는데, 이는 단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 혹은 다수결만을 의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의 경제・사회・정치적 요구를 대변하며 자본과 어용세력에 맞서 싸우는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내용을 집약하여 표현한 것이었다. 권력과 자본, 어용세력으로부터의 자주성 쟁취, 노동자들의 권익을 거스르는 형식상의 의결 –그것이 설령 다수결일지라도-을 거부하고 실질적・내용적인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이를 억압하는 관련 법률과 규약・회의결정 따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 돌파해냈다.(각주8)
그런데 노동운동이 퇴조를 거듭하면서 어느새 본질적 내용은 저만치 밀려났다. 대신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오용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우선하는 어용세력이 민주노조운동 진영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대한노총, 한국노총의 망령이 부활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기본과 원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갖 양보와 타협, 후퇴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용세력은 조직적・체계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재능교육 투쟁의 또 한편에서는 정치조직들의 실상이 어떠한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리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거나 노동조합에 작은 기반이라도 있는 정치조직들 역시 계급투쟁의 기본과 원칙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 조직의 이해득실과 조직 성원들의 ‘여론’에 따라 움직이며 그 종파성을 가감 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입만 열면 혁명, 계급, 원칙을 들먹이던 조직들이 노골적으로 종탑어용세력 편에 서거나 암묵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거나 양비론을 펴거나 침묵하면서 결과적으로 종탑어용세력이 재능교육 투쟁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단지 재능교육 투쟁 같은 소규모・장기투쟁사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쌍용자동차지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정치조직들이 개입한 굵직한 투쟁사업장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났다는 데 있다.
재능교육 투쟁에서 또 하나 특기할만한 것은 노동자 투쟁의 주변부를 배회하며 술이나 얻어먹으며 분란을 일삼던 자들이 ‘세력화’해서 종탑어용세력을 앞장서서 비호하며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쇠락한 노동운동의 현실 그리고 SNS를 포함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동에 더해 정치조직들의 타락과 무능은 그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새롭게’ 전면에 등장한 이들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며 용역깡패만큼이나 추악한 짓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종탑어용세력은 배후에서 저급한 거짓정보를 제공하며 이들을 사주한 것과 동시에 ‘아니면 말고’ 식의 참주선동을 일삼았다.
정치조직이나 민주노조진영은 종탑어용세력의 이러한 반동적 행태를 제지하거나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자들에게조차 모욕을 당할 정도로 무능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더욱 적극적・공세적으로 나아갔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를 우롱하고 민주노총 회계감사직까지 악용하며 형사고발을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들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비스연맹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제명”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종탑어용세력의 이러한 반동적 행태와 사상 초유의 상황전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으며 끝까지 투쟁한 노동자들이 있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한 연대동지들의 힘으로 결국 작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종탑어용세력이 학습지노조의 ‘적자’ 행세를 하며 ‘8.26합의’를 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탑어용세력의 “제명” 조치와 서비스연맹을 필두로 한 어용 노조관료들의 온갖 방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박경선, 유명자 동지의 원직복직과 단체협약 내용의 진전을 이루어내는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각주9)
이 작은 승리를 통해 우리는 아직 민주노조운동이 완전하게 절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용세력에 대한 반격을 조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냈다. 또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아니 바로 그럴수록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을 지킬 때만이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관료화된 노동조합 체계와 질서에 짓눌려 대다수가 침묵하거나 ‘중립’을 취하거나 어용 편에 설 때에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하려고 했던 동지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5. 교훈과 전망 :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과 나아가야 할 방향
재능교육 투쟁의 발단, 전개과정과 그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에 비추어 바라보면 그렇게 복잡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따라서 이 투쟁에 대한 태도와 입장정리, 그에 따른 실천과 행동 역시 전혀 복잡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재능교육 투쟁(은 물론 근래 벌어진 대부분의 노동조합 투쟁)의 이면에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자양분 삼아 자라난 어용관료 집단의 이해관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용관료 집단은 노동자투쟁의 전진과 승리를 위해 투쟁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이들은 오히려 투쟁을 ‘관리’하면서 권력과 자본의 거간꾼 역할을 하고, 노동조합에서 자기 지분을 챙기는데 열중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이들은 노동자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대신 노동자투쟁을 자신들의 통제권 안에 가두어 두기 위한 술수에 민감하고, 요구사항 쟁취를 위해 투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노동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고 나아가 고립시키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재능교육 투쟁이 워낙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어용관료 집단의 민낯이 가감 없이 그리고 여러 차례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재능교육 투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노동조합 상층관료 집단에 대한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투쟁의 교훈이 도출된다. 투쟁사업장은 물론 노동자들 모두 이들과 철저히 단절할 때만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온전하게 지킬 가능성이 비로소 열린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재능교육 투쟁 돌입부터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오로지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을 견지하며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워 작은 승리를 쟁취한 것, 바로 이것이 현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웅변하는 단 하나의 교훈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또, 재능교육 투쟁 역시 근래에 진행된 모든 투쟁들이 예외 없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즉 그 시작부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 이를 공고하게 만드는 관료적 조직질서, 이러한 토양 위에 기생하는 어용관료 집단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정치조직의 타락과 무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투쟁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재능교육 투쟁에 연루된 정치조직들 또한 오래 이어진 투쟁기간 동안 확실하게 그 본질을 드러냈다. 특히 종탑‘농성’이 시작된 이후의 모습이 그러했다. 종탑어용세력의 용납할 수 없는 행태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가지고 개입한 정치조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오히려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조직이 더 많았고, 나아가 종탑어용세력과 함께한 정치조직까지 있었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 역시 노동자 투쟁이 쇠퇴한 결과이다. 계급적 원칙을 견지하며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앞장서 투쟁하는 정치조직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 자신들의 조직성원이 있는 사업장 ‘권력’의 향배에나 목을 매고, 정치적 동질성과 무관하게 몸집불리기에 연연하는 사이비들이 판을 친다. 계급적 대의,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이 아니라 어떤 입장과 선택이 자기 조직에 더 유리한가가 가장 중요한 행동기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단지 재능교육 투쟁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어용관료집단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힘’과 수단, 기회주의 세력보다 못한 전술운용, 게다가 ‘고립’을 불사하는 용기와 강단마저 없는 이름만 거창한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근래 벌어진 굵직한 투쟁에서 전위는커녕 언제나 꽁무니였다.
다음으로 노동조합 주변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기회주의 세력들의 영향력으로부터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분리해내야 한다. 기회주의 세력들은 그럴듯한 언변과 교묘한 외피로 ‘무장’한 채 투쟁하는 노동자들 주위에 포진해 있는데, 일견 노골적인 노사협조주의 세력이나 어용관료 집단과 달리 보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과 실천적 귀결점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회주의 세력은 결정적인 시기에 노사협조주의 세력, 투쟁회피 세력의 방패막이가 되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현혹함으로써 노동자투쟁의 전진을 가로막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해오고 있다.
재능교육 투쟁에서도 이들 기회주의 세력 가운데 일부는 종탑‘농성’을 기획하는데 한 몫 했고, 이들과 또 다른 자들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종탑어용세력을 엄호하며 함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회주의 세력에게 속지 않는 투쟁, 이들을 넘어서는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재능교육 투쟁은 자본가계급과 제대로 한 판 싸우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기생하고 있는 적들, 어용관료 집단, 사이비 정치조직, 기회주의 세력과 철저하게 단절해야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줬다. 이들에 대해 더 이상 미련과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분명하게 보여줬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찰과 상상, 과감한 실천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조직적 결집이다. 이를 바탕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대안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뒤따를 것이다. 그래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결연한 의지와 용기, 강단으로 지금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죽 쑤어 개한테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동지들!!
2016. 4. 11.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원회
(각주1)
1999년 말경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이 절반이 넘는 현장교사들을 조직하고 총파업 투쟁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 최초의 단체협약을 쟁취하자 거의 모든 정치조직의 성원들이 입사했다가 투쟁이 퇴조하는 것과 동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각주2)
2014년 7월,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했다고 주장한 종탑어용세력도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각주3)
서비스연맹 역시 시종일관 이와 같은 태도와 입장을 취했다. 이처럼 재능교육 투쟁은 시작부터 학습지노조 내부의 어용세력과 맞서는 투쟁이자 어용세력을 지지하는 서비스연맹 관료들과 "조직질서"를 거스르는 투쟁이었다. 또한 투쟁기간 내내 학습지노조의 투쟁요구와 충돌하는 재능교육 자본의 입장과 서비스연맹의 양보 요구나 ‘타협’안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자본으로부터는 탄압을, 서비스연맹으로부터는 외면과 방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각주4)
이현숙 집행부는 임금삭감제도에 합의한 잘못, 현장의 요구에 의해 시작된 임금제도 전면개정 투쟁 해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있었던 대리투표 발각 등으로 이미 불신임당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회의를 거쳐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며칠 만에 이를 번복하고 계속해서 투쟁의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재능교육을 상대로 임금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며 투쟁동력을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시급하게 현장을 조직해야 할 투쟁초기의 결정적인 국면에서, 이현숙 일파를 상대로 한 싸움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투쟁동력은 분산됐고 금쪽같은 시간마저 허비해야 했다.
(각주5)
일례로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에 중점을 두면서 ‘양보’를 상수로 두는 것과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비타협적인 투쟁’에 방점을 찍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주6)
당시에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않는 해고자가 다수였고, 투쟁에 결합하고 있어도 투쟁전술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실제 농성투쟁에도 아르바이트처럼 결합하는 해고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까닭도 있다.
(각주7)
그 결과는 익히 알고 있듯이 “단체협약 원상회복”이라는 “승리”의 팡파르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 최장기투쟁의 원인이었던 임금제도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단 하나의 단체협약 조항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합의서 문구에만 “원상회복” 된, 이름뿐인 “단체협약”이었다.
(각주8)
재능교육 투쟁 역시 이와 같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인 원칙과 정신에 입각해, 2007년 단체협약 체결 당시 규약과 규정에 따라 모든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친-당시 학습지노조 중앙위원회는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있었던 대리투표에 대해,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 다소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나 잠정합의안 결과까지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투표 결과를 거듭 인정했다.- 이현숙 집행부에 맞서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민주노조운동은 투쟁의 내용이 아니라 절차와 형식이 우위에 선 지 오래였던지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재능교육 투쟁은 서비스연맹 등 어용관료집단의 노골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
(각주9)
투쟁 자체가 사상 초유의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만큼 그 결말 역시 사상초유의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형식면에서는 재능교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교 소속의 강종숙이 합의 주체가 되었고, 내용면에서도 종탑어용세력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노동조합이 합의를 할 때에나 다루어지는 부분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