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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아보가드로 (Amedeo Avogadro;1776~1856) 아보가드로는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하고 교회법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따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1800년경부터 그는 수학과 물리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1803년에는 전기에 관한 논문을 토리노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 사이의 1811년에 '물질의 기초 입자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화합비율을 결정하는 한 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곧 뒤에서 설명하게 될 '아보가드로의 가설' 또는'아보가드로의 법칙'을 주장한 논문인데, 기체가 원자가 아닌 분자로 되어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분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분명히 나타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1787년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샤를이 발견한 기체에 대한 '샤를의 법칙'에 주목하였다. 아보가드로가 1811년에 발표한 논문을 처음에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것을 '아보가드로의 가설'이라 불렀다. 그러나 게이 뤼삭이 발견한 '기체반응의 법칙'에 의해 이 가설이 옳다는 것이 확이됨으로서 가설은 법칙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논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을 깨닭은 사람이 없었다. 1820년에 아보가드로가 교수가 된 토리노대학의 수리물리학 강좌는 1822년말에 정치적인 이유로 폐쇄되었다. 정치와는 관계가 없는 온건한 인품의 아보가드로는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고 퇴직한 후 변호사일을 계속하면서 과학의 연구를 하였다. 약 10년후에 정치적 사정이 다시 바뀌어 토리노대학의 수리물리학 강좌가 재개되자 그는 교수직에 복귀되었다. 그 이후 1850년에 퇴직할 때까지 그는 이곳에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편으로는 기상 관측, 도량형의 제정이나 통계처리 등의 공무까지도 하였다. 카니차로 덕택으로 마침내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게 되는 1860년 보다 4년이나 앞선 1856년에 그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아보가드로(Avogadro, Amedeo, Conte di Quaregna di Ceretto) 이탈리아의 물리학자(1776-1856). 대학에서는 철학과 법학을 배우고 법률가로도 활약하였으나, 1800년 경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 1803년 전기학에 관한 최초의 과학 논문을 발표하였고, 1809년 베르첼리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원자설로는 기체 반응의 법칙이 나타내는 사실 등을 설명할 수가 없었으나, 1811년 발표한 아보가드로의 가설에 의해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설은 근대 화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아보가드로의 사고 방식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 가설은 그 후 기체 분자 운동의 입장으로부터 증명이 이루어졌고, 실험적으로 아보가드로수가 결정됨으로써 아보가드로의 법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보가드로는 그리스, 라틴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겸허한 성격의 교양인이었다. 아보가드로의 과학 논문 내용은 전기, 액체의 열팽창, 모세관 현상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아보가드로 의 법칙 돌턴의 원자 모형은 한 원소의 원자 1개와 다른 원소의 원자 1개가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 1개가 생기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2부피의 수소와 1부피의 산소가 결합하여 2부피의 수증기로 되는 반응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1811년 아보가드로 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즉 '기체의 경우, 온도와 압력이 같으면 모든 기체는 같은 부피 속에 같은 수의 분자를 포함한다.' 수소 기체 2부피와 산소 기체 1부피가 반응하여 수증기 2부피를 생성하는 반응을 아보가드로 가설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수소와 산소 및 수증기의 부피비가 2 : 1 : 2이고, 같은 부피 속에 같은 수의 입자가 들어 있어야 하므로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가 결합하여 수증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 즉, 같은 부피 속의 원자의 수를 같도록 하기 위하여 산소 원자를 반으로 쪼개야 한다. 이와 같은 모형으로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가 반응하여 수증기가 생성된다는 설명을 하더라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일정 성분비의 법칙에는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 모형에 대한 돌턴 의 주장은 원자는 더 작게 뽀개질 수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아보가드로는 쪼개진 원자를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입자 모형을 생각해 내었다. 즉 수소나 산소는 각각 2개의 원자가 1개의 새로운 입자를 이루며, 물은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하여 1개의 새로운 입자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돌턴 의 원자 모형에 어긋남이 없이 다음에 나타낸 모형에 따라 기체 반응의 법칙이 잘 설명된다. 아보가드로는 이와 같이 몇 개의 원자가 결합하여 생성된 새로운 기본 입자를 분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분자는 그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가장 작은 입자라고 정의되었으며, 물질의 중요한 구성 단위로 인정되었다.
아보가드로 가설 돌턴의 원자설, 즉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설과 게이 뤼삭의 기체 반응 법칙을 동시에 모두 성립시키는데는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필요하다. 1811년 아보가드로는 "같은 부피 속에 들어있는 기체의 분자 수는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같다"는 분자설을 발표했다. 게이 뤼삭이 기체 반응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한 산화 질소 반응을 돌턴의 원자설과 결합시켜 합리적으로 이 두 가설을 성립시키려면 필연적으로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이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곧 학계에서 채택이 되었던들, 그 후에 원자량의 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은 1858년에 그의 제자인 칸니자로에 의해 인정될 때까지 약 50여 년을 암흑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파묻혀 있었고, 자신의 학설이 세상에서 인정되어 빛을 보기 몇 해 전에 아보가드로는 80세의 긴 일생의 막을 내렸다. 당시에 이 법칙은 아보가드로의 가설이라고 불렸다. 이 가설은 현대 화학의 이론 체계를 세우는 근본을 확고히 하였다고 할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돌턴의 원자설의 결함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1860년 칼스루에에서 열린 만국 화학 회의에서 화학 기호의 통일 문제를 협의하였을 때, 아보가드로의 제자인 칸니자로가 그의 업적을 소개하여 비로소 아보가드로의 위대함이 인정받았다. 그의 가설은 오늘날 아보가드로의 '법칙'이라 바꾸어 일컬어지고 있다.
아보가드로의 수가 나오기까지 1. Louis Joseph Proust:1754 - 1826 - 연구한 결과, 철이나 니켈, 코발트 등과 황의 조성 비율이 다른 화합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두가지 정도였다. 그 중간 조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분석해 보면 혼합물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화합물은 일정한 조성비를 갖는다고 주장.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말함. - 각 화학 화합물은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무게 조성을 가지며 따라서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조성, 즉 분자식을 가진다. - 베르톨레의 반박 - 화합물은 일정한 조성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각 물질은 폭넓은 범위 안에서 변화할 수 있는 대상의 분자식을 가진다고 주장함. 그의 이러한 주장은 화학적 가역성과 평형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가 분석한 연구 대상물들은 항상 불순물을 포함하였는데, 그는 이 물질을 순물질로 가정하였기 때문에 조성비가 늘 약간씩 다르게 계산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정한 조성비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그는 선입견을 가지고(프루스트에 대해) 반박할 근거를 찾는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10년동안 논쟁이 계속됨. - 돌턴은 두 물질이 결합하여 화합물을 구성할 때 반응하는 물질간에는 배수비례의 법칙이 성립함을 증명함. - AB 물질과 AB2 인 물질의 경우 A 1g과 결합하는 B의 질량은 AB보다 AB2 가 2배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함. 실제 그가 아는 질소 산화물이 세종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질소와 결합한 산소수가 가장 작은 화합물을 NO라고 가정하고 질소 1g당 산소 무게의 비를 계산해 보니, 1:2:4가 나옴. 그래서 나머지를 NO2, NO4로 정함 - 분자식이 완성됨. 한 개의 질소에 산소가 4개 붙는 것이 너무 무리일 것 같아, N2O, NO, NO2로 수정함. - 그 당시 가장 가벼운 것으로 알려진 수소의 무게를 1로 잡고, 상대적인 입자 무게표를 작성함. 이 결과로 프루스트의 일정성분비의 법칙도 증명되었다. - 돌턴의 원자설 설명. 그 당시는 기체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함. - 게이-뤼삭과 돌턴은 각각 산소와 수소 원자를 물로 결합시키는 실험을 발표함. 1리터의 수증기를 만드는데 2리터의 수소 기체원자와 1리터의 산소기체 원자가 사용된다고 주장함. 물은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로 만들어졌다고 주장.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원자의 종류에 관계없이 기체 1리터에는 같은 수의 입자가 있음이 가정되었음. - 아보가드로는 이에 의문을 제기함. 1리터와 2리터의 기체 원자를 합하면 3리터의 기체 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2리터가 되었기 때문. 따라서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가 결합하여 어떤 입자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함. 이 입자를 분자라고 부름. 그리고 돌턴이나 게이-뤼삭의 주장과 달리, 같은 기체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분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함. 그리고 산소와 수소 분자 속에는 2개의 원자들이 들어 있다고 가정함. 물 분자는 산소 1개와 수소 2개의 원자가 결합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물이 2리터 생성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음. 그는 다음과 같이 표기함 2H2 + O2 = 2H2O N2 + O2 = 2NO 3H2 + N2 = 2NH3 - 그러나 돌턴은 H + O = OH N + O = NO H + N = NH 로 표기함. 이는 사실적인 관찰결과와 맞지 않음. 그래도 돌턴은 원소는 이원자 분자로 존재할 수 없다고 굳게 믿음. 왜냐하면 분자는 친화력에 의해 결합하는데 두 같은 원자는 서로 친화력이 있을 수 없기 때문(공유 결합의 개념이 필요함). 만약 같은 원소끼리 친화력을 갖는다면 2개뿐 아니라 3, 4, 5, 등 한없이 결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함. - 아보가드로에 의해 기체들이 원자가 아니라 분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됨. 원소와 원자로부터 분자의 개념이 분화되는 과정임. - 뒤마는 모든 기체를 2원자 분자라고 가정하여 원자량과 분자량을 계산하였으나 실패함. 그는 화학에서 원자라는 단어를 없애려고 시도한 것임. - 그 당시 입자의 개념은 너무도 혼란스러워 화학자의 수만큼 서로 다른 원자량표와 이를 기초로 한 수십가지 다른 분자식들이 혼존함. 원자량에 대한 과학자의 생각이 모두 다름. 리비히와 뒤마는 탄소 원자량을 6으로 사용. 그들의 분자식은 다른 화학자들의 분자식보다 탄소원자가 2배씩 많음. 어떤 사람은 산소를 16대신에 8로 써서 역시 같은 문제들이 야기됨. - 1860년에 원자량의 문제를 위한 국제 화학자 회의가 개최됨. 카니짜로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안하였다. 1. 논의를 기체에 국한시키자. 2. 아보가드로의 가설, 즉 같은 온도와 압력 하에서는 같은 부피의 기체는 같은 수의 분자를 가진다고 가정한다. 3. 어떤 순수한 원소 기체의 분자량을 임의로 결정하자. 그래서 그는 가장 가벼운 수소 기체를 기준으로 잡았는데, 아보가드로에 의하면 수소 분자는 두 개의 수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수소 분자의 분자량을 2로 잡고, 수소 원자의 상대 원자량은 1로 잡았다. 이 때의 단위는 없다. 기체의 상대 분자량을 결정하기 위해 수소 1리터의 무게와 산소 1리터의 무게 비를 구하면 산소는 분자량이 16이 된다. 따라서 산소 원자량은 8이 된다. 그는 탄화수소에서 탄소와 수소의 상대적인 질량을 계산하였다. 이 때 12의 배수로 화합물의 탄소 상대 질량이 나타나므로 탄소의 원자량은 12가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원자량을 계산하였다. 즉, 그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지지하며, 똑같은 부피에는 같은 수의 분자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기체 화합물의 질량을 상대적으로 분석하면(최대의 공통 인수)상대적 원자량 값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 이로부터 정확한 화학식이 계산됨. 그러나 영국에서는 보수적이어서 물의 분자식을 끝까지 HO로 표기함. - 상대 원자량과 실제 질량 사이의 관계를 짓기 위해 아보가드로수가 등장하였음. 오늘날에는 12C 12g에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를 아보가드로수라고 명명하여 아보가드로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현재 인정된 아보가드로 수는 6.022137 * 1023이다. 즉 탄소 12g을 아보가드로 수로 나눈 값인 1.99*10-23g 이 탄소 원자 1개의 실제 질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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