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지리산행 프롤로그..
통영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사량도 행을 감행하기로 했다. 이 섬에 있는 지리산이 아름답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 꼭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벼뤄오던 터였다.
사량대교가 상도와 하도를 이어주는 사량도(蛇梁島), 뱀이 많이 서식해서, 섬이 뱀처럼 길어서, 또는 두 섬 사이를 흐르는 해협을 이르던 말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량도 금평 항으로 들어가는 카페리호가 출발하는 여객선터미널은 통영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가오치 항에 자리한다. 삼천포에서는 사량도 내지 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운행한다.
3시에 출발할 '사량호'가 사량도에서 가오치 항으로 막 들어오고 있다. 섬에서 뭍으로 나오는 승객은 고작 스무 명 남짓이다. 개찰구 앞에서 승선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내리는 승객들과 서로 아는 사이인듯 가벼운 인삿말을 건넨다.
입항한 지 20여분 만에 승객을 태운 배가 금평항으로 출발했다. 1층 여객실 너른 평상 위에 열 댓 명 학생 장년 노인 등 승객들이 끼리끼리 모여 자리를 잡았다. 하나같이 익숙한 듯 겉옷을 벗어 덮고 내집처럼 편하게 눕는다. 2층 객실도 비슷한 모습이지만 승객들이 여성들인 점만 다를 뿐이다.
나처럼 객지에서 온 등산객이나 낚시꾼 몇몇만 갑판에 서서 좌우 전방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펼치는 장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출발한 지 40여분 만에 섬에 도착한 배는 겨울 한낮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선착장에 승객들을 토해놓았다.
객실 옆에 않아 있던 한 분이 '외지서 오시나 보네요' 라며 말을 건넨다. 몇마디 나누다 보니 그저께 전화로 예약 문의를 했던 선착장 옆 ㄷ여관 주인의 막내 아들이란다. 은퇴 후 부산에 거주하며 주말에는 섬에 혼자 계시는 팔순 노모를 찾는단다. 한때 6천이던 인구가 지금은 천 여명 정도로 줄었단다.
사량도 지리산은 날씨가 맑으면 경남과 전라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이 보인다고 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고도 불린단다. 그렇다고 이 산에서 지리산을 보았다는 산행후기를 본 적이 없는데, '날씨가 맑으면'이라는 전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직선 거리로 백 팔십 여 리나 떨어진 지리산이 정말로 보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지만, 이곳 토박이인 ㄷ여관 아드님은 실제로 지리산이 보인다고 하니 믿을 수 밖에.
그를 따라 ㄷ여관으로 가서 짐을 풀고 자투리 시간에 고동산 둘레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량대교 북단에서 해안과 고동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나뉜다.
마른 풀섶에서 작은 새들이 인기척에 우루루 솔숲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고동산 정상에 서니 건너편에 우뚝 솟은 옥녀봉, 금평항, 하도의 칠현산과 사량대교, 대항 등이 눈에 들어온다.
슬픈 전설을 가진 높이 281m 옥녀봉은 봉곳한 산봉우리가 여인 가슴을 닮았고 산세가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고 한다. 고동산에서 칠현산 일곱 봉우리에 거문고 줄을 각각 하나씩 이어 옥녀가 거문고를 탔다는 옥녀탄금형 지형에 꼭 들어맞는다.
고동산과 옥녀봉 사이 대항고개로 내려서기까지 산길은 온전히 나 혼자다. 입도하는 여행객이 거의 없는 여행 비수기라 섬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고동산과 옥녀봉 사이 윗섬 일주도로 2차선 아스팔트로 내려섰다. 고갯길은 간간이 승용차가 지나갈뿐 인적이라고는 없다.
도로 옆에 동백이 활짝 꽃잎을 폈고 지나온 고동산 능선 위로 내일이 보름이라고 소곤대듯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둠이 내리는 사량면사무소 앞엔 진촌마을 우물에서 발견된 비석 3기 등 조선 만호들의 선정비 다섯 기가 지키고 섰고 광장같이 넓은 도로는 텅 비었다. 고동산 아래 자리한 진촌 마을을 돌며 최영장군 사당, 옛 우물, 소담한 공소성당과 교회 등울 둘러봤다.
금평마을 맨 뒤 고동산 기슭에 자리한 진촌마을 경로당 난간에 서니 불 밝힌 사량대교, 칠현산 능선, 상 하도 사이로 열린 바다, 붉은 저녁 노을을 머리에 인 지리산 능선과 그 끝에 뾰쪽한 옥녀봉 봉우리가 좌에서 우로 파노라마를 눈앞에 펼쳐놓았다. 마지막 화객선이 금평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스스로 들어와서 온전히 섬에 갇힌 셈이다.
좁은 여관방으로 돌아오니 켜놓았던 보일러가 방바닥을 뜨끈하게 데워놓았다. 산에 미쳤나, 남해 작은 섬에 든 까닭을 곰곰 생각해 봐도 쉬이 답이 찾아지지 않는다. 명치에 뭉쳐있는 무언가가 가슴을 누르고 기를 막아 답답하다. 섬은 고요하고 창 밖 바다는 잠잠한데 전전반측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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