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타임스>
<김진수의 들꽃에세이 91>
약나무에서 정자나무까지 - 참느릅나무
학명: Ulmus parvifolia Jacq.
목련강 쐐기풀목 느릅나무과 느릅나무속의 낙엽교목
『참느릅나무』는 같은 속의 당느릅나무, 혹느릅나무나 왕느릅나무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그중에서 잎이 가장 작은 나무이다. 종소명 팔비폴리아(parvifolia)도 잎이 아주 작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보통 ‘느릅나무’라 부르는 나무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명(唐楡)을 그대로 한글로 읽은‘당느릅나무’를 말한다. 느릅나무 최초의 한글 기재는 1489년에 간행한 의학서《구급간이방》의 ‘느릅나모’이다. ‘느릅’은 느름 또는 느림, 늦음 등과 동원어이다. 그런데 이 걸고 늘어지는 기분이 겉만 보아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잔가지를 휘면 낭창낭창 부드럽고, 껍질을 돌려 벗기면 고무질처럼 유연한데 내친걸음에 껍질을 물에 담가보면 금세 투명한 겔 타입의 점액이 흘러나와 맺힌다. 필자는 바로 이 미끈둥하고 흐물흐물하고 투명한 감촉이 과연 ‘느름’이라는 음소(音素)에 계합한다고 보았다. 이 점액은 뿌리에 더욱 많은데 느릅나무가 주로 강변이나 습기가 많은 기슭을 좋아하는 이유와 상관성이 있다.
느릅나무는 생장속도도 빠르고(速成樹) 생명력이 왕성하여 사람들이 약재로 쓰기 위해 굵은 뿌리를 거의 다 잘라내어도 이듬해 파란 싹을 맹렬히 틔워낸다. 그 수성(水性)의 힘으로 뿌리를 옆으로 길게 뻗어 공해나 추위, 해풍에도 잘 견딘다. 다만 수분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충실시과 보다 쭉정이시과가 더 많아진다. 시과(翅果)란 껍질이 날개처럼 되어서 바람을 타고 멀리 나는 열매를 말한다. 느릅나무의 열매가 동전처럼 생겨서 유전(楡錢) 또는 유협전(楡莢錢)이라고도 하였다.
느릅나무는 무엇보다 물속에서 잘 썩지 않는 특성이 있다. 물위에 건설된 수상 도시 베니스의 건물들은 모두 수많은 나무말뚝을 물속에 박아 불안정한 석호 바닥에 기초를 다진 다음 그 위에 건설된 것이다. 1,000년 이상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게 한 주인공은 바로 내수성이 강한 느릅나무, 오리나무, 소나무, 낙엽송들이었던 것! 한자 느릅나무 유(楡)의 ‘유(兪, 말 그러할)’는 흔히 오해하듯 인(人) + 월(月) + 도(刀) 가 아니라, 入(들 입) + 舟(배 주) + 川(내 천) 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감에 물을 먹어도 가볍게 미끄러져 배에 적격인 나무라는 뜻. 성질이 미끄럽고 섬유질이 많고 가벼우며 단단하여 ‘유(楡)’는 느릅나무의 속성을 아주 잘 드러낸 한자이름으로 보인다.
참느릅나무는 근친교배를 줄이기 위한 기작으로, 웅예선숙과 자예선숙을 하여 느릅나무속의 다른 수종과 달리 철저히 타가수분을 한다. 웅예선숙은 한 꽃에서 수꽃이 암꽃에 비해 먼저 성숙하는 현상을 말한다. 암술머리 조직이 미성숙한 상태 때 수꽃가루가 떨어지니 수분을 할 수 없다. 또 모든 수분은 방금 열린 어린 꽃가루주머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암술머리가 성숙할 무렵의 수꽃가루는 이미 때를 잃어 역시 수분이 안 된다. 이를 자예선숙이라 한다.
참느릅나무의 생약명은 「유백피(楡白皮)」이다. 벗기면 내피가 백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백피를 채취하여 볕에 폭건하여 쓴다. 성미는 평하며 독이 없다. 맛은 달고 맵다. 특히 미끄러운 성질로 대소변의 불통을 해소하고 방광염, 부종, 불면을 치료한다. 소염효과가 뛰어나 각종 염증과 피부만성궤양, 욕창에도 쓴다.
느릅나무의 ‘느림’을 참느릅나무의 생태에서 찾아보는 것도 즐겁다. 느릅나무들이 대개 봄에 꽃이 피는데 참느릅나무를 비롯하여 참’자가 붙는 둥근참느릅나무, 졸참느릅나무는 9월에 꽃이 피고 늦가을에 들어서야 열매를 맺는 ‘만성(晩成)’을 자랑한다. 여타 느릅나무들 보다 잎만 작은 것이 아니라 겨울눈도 훨씬 작은데 마침내 거목으로 성장하여 ‘위엄(꽃말)’을 보이는 것도 그렇다. 참느릅나무는 약나무에서 정자나무까지 아주 오래 우리 조선인과 함께해온 토종이다.[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