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엇을 때 30대 초반에 불광동에서 99평 짜리 대지에 방 한칸 부엌 한칸에서 살은 적이 있다.
마당은 넓지만 건물은 작았지만 아이들을 대리고 전세 월세로 전전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전기도 수도"도 없었지만 전기는 달면 되고 수도 "도 놓으면 되니까 그 땅을 사가지고 이사를 갔다.
내 꿈은 말 할 수 없이 부풀었다. 돈을 벌면 근사한 양옥을 지어서 아이들 방 한칸씩 따로따로 주고
마당에는 화단도 만들어서 꽃도 키우고 내 꿈은 하늘 높이 날아다녔다.
우선 전기는 놓았다. 그런데 수도는 놓기가 어려웠다. 부근에 사는 모든 집들이 수도를 놓지않아서 수도선을 단독으로
1 K로 이상 끌어다 놓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많은 돈이들어서 나 혼자 할 수가 없었다.
공동수도를 길어다 먹고 공동우물 물을 길어다가 허드레 물을 썼다.
빨래는 독박골 개울에서 해다 입고 살았다.
식구는 아이들 다섯 명 시모님 시누이 아홉 명인데 우선 한 칸 방에서 다 같이 살았다.
왠 아이들이 다섯 명씩이나 되느냐고요? 설명하자면 복잡하니까 그저 그렇게 살은 것만을 말한다.
너무 살기가 힘이들었다. 고지대라 공동 수도물도 저지대에서 다 쓰고 밤에 잠자는 시간에만 나오니까
새벽 1시나 넘어야 나오니까 잠 자다가 말고 물을 길어다 먹고 살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내가 견델수가 있었던 것은 마당이 넓으니까 각가지 채소와 당년생 꽃들을 심어서 키우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자고 나면 쑥쑥 크는 채소와 화초들이 나를 너무 기쁘게 했다.
화초래야 분꽃 봉선화 채송화 환련화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울타리에다가는 과꽃과 코스모스 해바라기를 심었다.
집은 토담집 에 지붕은 기름종이 루핑이라는 것을 덮었지만 아이들 다섯 명이 마음대로 뛰어놀아도 그 누가 씨끄럽다고
제지하며 야단 치는 일도 없고 아이들이 기가 펄펄 살아서 온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가 노니 내 마음은 기브고 행복했다.
친정 오빠가 와서 보더니 사랑하는 동생이 이 고생을 하고 사는 것이 안 스러워서 눈에 이슬 고인 것을 내게 들키자 아이유 눈에 뭐가 들어갔다 야" 하면서 눙청을 부렸다.
오빠는 고향에서 농고를 나와서 농촌 지도 요원으로 일을 하고 마을의 이장도 겸하여 하고 사시는 분이다.
딸같이 사랑하며 예뻐해 주던 막내동생이 이 고생을 하며 채소와 화초를 잘 키우고 사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기특하고 안스러워하시던 우리 오빠 살아 계시면 구십 육세인데, 넋이라도 있고 없고한지가 40 년이 되었다.
오빠가 다녀가신지 일 년후 봄에 화초 복숭아 묘목을 가지고 오셔서 마당 에 꽃밭 앞에다가 심어 놓고 나더러 이애가 꽃 복숭아인데 오빠가 너를 주려고 접을 부쳐서 가지고 았다. 그런데 요것이 그 화초 복숭아고 다른 것은 그냥 복숭아나무거든 그러니까
요 싹만 키우고 다른 것은 다 잘라내야 하니까 요 싹만 잘 키우면 삼 년 후에는 빨간 복숭아꽃이 필 것이다.
그러니 요 싹이 퍼지거든 자른 것은 다 잘라내야 한다. 라고 가르쳐 주고 가셨다.
그런데 오빠는 당신이 접을 부친 것이니까 표도 안하고 그냥 가셨다.
이나무가 쑥쑥 커서 나는 어느것이 어느 것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그냥 두었다. 삼 년이 지난 후 봄에 한 나무에서 두 가지 꽃이 피는데 한 쪽에서는 빨간 겹 꼿이 피고 한 쪽에서는
분홍 홋 꽃이 폈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신기해하였고 마을 사람들도 신기해 했다.
그런데 빨간 꽃은 낙화가 되고 분홍 꽃에서는 열매가 맺었다.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열매가 거의 다 떨어지고 세개가 익었다.
식구는 아홉 식구인데 복숭아는 세개뿐이다. 아이들은 복숭아가 떨어 질때마다 아우성을 친다.
서로 날마다 자기가 먹을 것이라고들 자기 것을 찍어 놓는데 덜어지니 아우성을 칠 수박에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첫 열매는 다 떨어지고 그 다음해에는 많이 열리니까 이번에는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셨어도 아이들은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떨어질 때마다 울고 야단들이였었다.
그런데 세개가 불그래 하게 익어가니까 서로 자기가 먹을 것이라고들 싸음을 한다.
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을 했다. 너희들 엄마 말 잘 들어야 된다.
이 나무는 꽃 만 보게 되어 있는 것인데 엄마의 실수로 이렇게 과일도 열리게 되었고 또 첫 열매는 다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머니 말씀을 듣고도 왜들 서로 먹겠다고들 싸우는 거야"
며칠있다가 빨갛게 익으면 엄마가 따다가 씼어서 식구들 모두 한 쪽씩 놔너 먹고 내년에 많이 열리면 그 때는 모두 먹고싶은대로 도라가는대로 먹는 거야" 알았어" 서로 싸운다든가 먼저 몰래 따 먹는 놈은 우리 식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열외를 시키고
밥도 아무 것도 안 줄 것이니까 그런 줄 알란 말이야"하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들은 알았다고 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않고 복숭아 나무 근처에도 안 갔다.그 후 삼일이 되어서 복숭아는 아주 농익었다.
나는 따다가 씻어놓았다가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깎아서 한 쪽씩 맛을 보았다. 너무 달고 수분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실수로 두 가지 꽃을 보게 되고 복숭아도 그 다음해 부터는 식구들이 한 두개씩 먹게 되었다. 점차로
열매가 많이 열리고 꽃도 많이 피워서 나를 기쁘게 했고 오빠가 와서 보고는 너는 재주도 좋다 야" 한 나무에서 두 가지
소득을 보니 참 기특하구나"하시면서 집 둘레의 과꽃과 고스모스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루어서 독박골 개울에 서울사람들이
놀러 왔다가 갈 때는 우리집을 보고는 들어와서 보고 천국 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칭찬들을 했다.
남편 친구들도 여름이면 각 사람들이 한 두 번씩은 놀러왔다가 가곤 했었다. 육 년동안
그 집에서 사는 동안 고생이라는 것은 말도 할 수 없이 많은 고생을 했지만 채소와 화초를 키우는 재미가 없었더라면 나는
못 견디고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채소와 꽃을 키우는 재미로 버텨나갔다.
그런데 그 집을 양옥으로 지어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시어머니 병 수발로 팔아서 다 써 버렸다.
25.000환으로 산 집을 전기끌어다 놓고 살다가 650.000을 받고 팔았다. 그 후 나는 그 곳을 한 번도 안 가보았다.
그 집을 팔아 없엔 것이 너무도 아깝고 내 꿈을 이루지 못해보고 팔아 없엔 것에 대해서 아픈 마음을 달래보느라고 그 집에
대한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 싸이트에 들어와서 그 생각이 새삼스럽게 나서 글로 써 본다.
50대 후반에 광주 전원 주택 단지로 이사를 가려고 했지만 남편이 아파트 생활이 편하다고
안 가겠다고 해서 아주 내 꿈을 접어버렸다.
이제는 더더군다나 일반 주택에서는 살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으니 이 작은 아파트에서 작은 꽃이나 키우고 살까 하는데 그 것 또한 마음대로 될지도 문제다.
몸이 마음대로 안 따라준다. 이 늙은이가 꿈이 없어야 하는데 마음은 청춘이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이 모든 것이 탐욕이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늙으면 안되는 것을 절제하는 것도 잘 안 되는 것인가? 하고싶은 용망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꽃 키우는 공부도 좀 해보고싶고 글 쓰는 공부도 해 보고싶다. 이 늙은이의 주책인가도 싶다.
그집을 팔고 난 후에도 그와 같은 두가지 역활을 하는 나무는 못 봤다.
아~~~옛날이여~~~
첫댓글 방한칸에서 아홉식구가 복닥거리며 살면서도 이쁜꽃들을 키우면서 삶의 희망을 꿈꾸셨던 왕초님의 옛얘기가 눈에 선 하네요.
다녀가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는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일만 남았답니다.
왕초님 ! ! 슬프고 재미있는 긴 얘기 잘 들었습니다 ~ ~
열심히 사신 왕초님 존경합니다 ~ ~ ^ ^
다녀가심 감사합니다.
인생길 苦海라 하지요. 우리세대에는 다 그롷게 사는 줄 알고 살았답니다.
그것 만이 能事는 아니었었을 텐데요,
나는 그 것이 능사라고 믿고 살았답니다.
구구절절한 왕초님 얘기 읽다보니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그립네요~
아이쿠! 그렇지요,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영원히 나와 함께 계셔주기를 원하지만
인생이 有限하니까 나보다 먼저가시는 것이지요.
내 나이가 82세인대도 돌아가신지가73 년이나 된 어머니가
이리도 그리운데 왜 안 그러시겠어요,
그렇지만 꽃을 키우다 보면 꽃사랑때문에 다 잊을 때도 있쟎습니까요.
용기를 내십시요. 감사합니다.
@왕초 네 감사합니다. 평균수명이상은 사시겠지 했는데 68세에 암말기로 3개월 놀래서 별거다했지만 딱3개월 사시고 차마 암말기라고 못해서 모르고 돌아가셔서 3년은 심한 가슴앓이 ~
아이유!! 얼마나 애통하시겠어요.
하지만 어짜피 완치 못하실 것이면 오래도록 고생 하시지않고 가신 것으로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 가득하소서. 감사합니다.
왕초님! 존경합니다.
정말 멋진 삶을 사셨네요. 글 재미있게 읽었구요.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란 말이 이 글을 읽으며 되내어 집니다. 그래도 꿈을 갖으세요. 응원합니다.
하늘바라기님 안녕하세요 다 잊고 살았는데 이 카페에 들어와서 메뉴판에 전설같은 꽃이야기라는 것을 보고,
불현듯 옛날 젊었을 때 일이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서 섰답니다.
문장력도 분법도 모르지만 내가 살아온 일이니까 생각 나는데로 썼어요.
이렇게 과찬의 말씀을 듣고보니 넘 부끄럽군요.
나도 이제는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데 하늘바라기님은
어찌타 이 젊은 나이에 하늘바라기로 넥네임을 하셨으니 정말로 부럽습니다요.
감사합니다.
아르신에 작문을 본듯 합니다
누구나 젊은시절엔 애환과 서글픔이 한꺼번에
밀려올때가 있드라구요
지금도 그옜날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곤 하지만요
살아오신 인생길 지금은 고운 추억으로 가슴깊이 아로새겨질것 같아요
감사 합니다
장시간 써내려 오신글 잘보고 갑니다^^
예나님 통영에 사시나봐요 ,우리 내외와 2012 년 봄에 후배 내외분하고 통영가서 회먹고
하루밤 자고 관광 하고 해저 터널로 부산 기장까지 다니며 건어물과 미역 사가지고 왔어요.
통영 넘 좋더라고요,
신선한 회 넘 좋았어요 .
이렇게 눍은이 글 잘 읽으셨다니 넘 감사드립니다.
가슴이 미어지네요
다녀가심 감사드리고
죄송 한 마음도 있습니다. 늙은이 글로 가슴이 미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 지금 꽃을 사랑하고 꽃 나눠주면서 노후를 보낸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