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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말씀] 각산스님 명상의 말씀
집중수행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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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생멸해도
마음은 생멸하지 않는다.
앎과 봄만 있을 뿐이다.
참불선원의 제10차 집중수행에서는 이전의 강의나 명상법문 형식보다는 수행의 점검을 위해 의문사항이나 장애요인들에 대한 즉문즉설의 형태로 선원장스님께서 명쾌한 답변으로 명상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 10차 집중수행에서는 새로운 얼굴들도 많이 보여 각각의 경지에 따른 다양한 질문들을 해주셔서 우리 모두가 수행에서 가질 수 있는 궁금증에 대해 스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좋은 명상법문을 들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항아리가 엎어져 있어 아예 담을 수 없는 사람, 두번째는 주머니에 잘 넣었으나 일어서면서 다 흘려버리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잘받아서 틈만나면 사유하여 온전히 가져가는 사람입니다. 다들 세번째 사람이 되길 빌어 봅니다.
즉문즉설 명상의 말씀에 들어가기 앞서 중간 중간 이해를 돕기위해 핵심을 찔러주신 법문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원장 스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선법문을 잘 사유하여 수행의 지침으로 삼고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 살펴 내 공부를 점검해 가시기 바랍니다.
수행법문
1. 배에 탄 바가 없다.
정이천이라는 유학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배를 탔는데 중간에 큰 풍랑을 만나 배안이 삽시간에 공포,불안, 두려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찾으며 애절한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데 걸망을 베고 드러누운 한 스님만 세상 근심없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다행히 바람은 잦아 들어 배는 무사히 육지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제자들에게 체면을 지키느라 속으로만 겁에 질려있던 정이천이 그 스님은 어찌 그리 태평할 수 있는지 살짝 묻자,
"내가 배에 탄 바가 없는데 왜 배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쓰겠소?"라 하며 걸망을 도로 지고 가 버렸다.
이는 고요한 마음(靜心)은 편안한 마음(安心)보다 못하고 편안한 마음은 무심(無心)보다 못함을 일깨워 주는 명상의 말씀이다. 우리는 모두 내 방식의 할려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업식이 정해진 방향대로 이끌려 가지만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받아들이고 사띠로 마음을 비워버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아잔 간하께서도
"내마음이 괴로울 때 어찌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사띠하고 지혜로 관찰하여 이 공포, 두려움, 불행이 내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미 없는 것인데 왜 그것에 내마음을 넣겠는가?"라고 하셨다.
2. 닦을 것이 없다.
백장스님께서 도닦아서 부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셨다(격외도리,불립문자). 부처님은 구원하러 온 자가 아니고 너희는 이미 구원되어 있음을 말하는 자다.
불교는 들어오면 해탈이라 닦을 바도 증득할 바도 없다. 순수한 영혼일 때 오히려 있는 그대로 다가오는 것이라 앞서 간 자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조주스님이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남전스님께서 평상심이 도라고 하셨다. 다시 그 도를 어떻게 구하느냐고 묻자 헤아리면 어그러진다고 하셨다.
조주스님께서 헤아리지 않을 때 도는 어디에 있냐고 묻자 스승이 답하길
"도라는 것은 아는 것에도 모르는 것에도 있지 않다. 본래 부처의 자리이다."
라고 하셨다.
안되면 어떡하나 마음을 막는 것이 문제이니 열망은 가질지언정 이미 다 가지고 있어 구하려 하지 않으면 된다. 도는 아는 것에 있지않아서 알았다고 하는 순간 망녕된 깨침이고 모른다고 하면 멍청이가 된다.
이미 확연히 드러나 옳고 그름도 성스러울 것도 없다고 선사들께서 입모아 말씀하셨으니 이는 배에 탄 바가 없다란 말과도 잘 통한다.
3.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이다.
한 스승과 제자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행사를 하고 있는 수백년된 상수리 나무옆을 지나가는데 제자가 무슨 일로 사람들이 모였는지 보고싶어하자 스승이 화를 내며 물러서 가구로도 못 쓰고, 벌레가 잘 먹어 관으로도 못쓰고, 진액이 나와 문짝으로도 못쓰는 쓸모 없는 상수리 나무를 뭐하러 볼려 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밤에 스승의 꿈에 상수리 나무의 목신이 나타나서 자신이 가지가 부러지도록 울창하게 잎을 늘어뜨려 모든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아래서 행복하게 지내는데 나를 쓸모없다고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누구나 그 있는 자리에서 합당한 삶을 살기에 그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아름다움을 준다고 말해 스승은 크게 깨치고 사죄하였다.
즉문즉설 명상의말씀
Q1: 잠을 잔것 같지는 않은것 같은데 끄덕하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머릿속은 맑은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일까요
수행이 나아가는 단계중에서 끄덕할 수있는 것은 세 단계정도 올라간 상태입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생각에 끄달려 못살고 호흡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기혈이 돌고 있어 몸과 마음에 끄달려 다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명의 인식체인 바왕가가 일어났다 사라지졌다 하는 순간에 끄덕하고 들어간것같습니다. 몸은 개운해집니다. 잘하고 있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다시호흡이나 화두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Q2 : 지난 2월에 고엔카 명상센터를 다녀왔습니다.
아직 화두수행엔 들어가지 못하고 호흡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과 거친숨과 고요한 숨을
알아차림을 하다보면 호흡을 놓치게 되니 두가지 수행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부터 고엔카에서 배운 생각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고엔카의 수행법은 사마타.위빠사나를 미얀마식 아비달마에 근거를 두고 닦습니다. 그보다 전문적 스님을 가르치는 곳이 파욱센터인데 여기도 아비달마식에 쉐우민 명상하는법이 조금 가미되었습니다.
숨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지 긴숨, 짧은 숨, 고요한 숨, 따뜻한 숨을 구별해서 보지 않습니다. 고엔카는 인도의 거부인데 극심한 두통을 위빠사나 명상하는 법으로 치료하게 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아마추어단계입니다.
수념처는 대념처경의 수념처와 안반수의경의 수념처의 두종류가 있는데 대념처경의 수념처는 호흡을 보면서 그호흡을 아비달마식으로 찬숨, 뜨거운숨,먹먹한 숨등 지수화풍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수념처는 좋다, 싫다, 생각없다, 지각활동을 못한다만 간단하게 알아차릴 뿐 호흡을 보며 구별하면 느낌 감별이지 아나빠나사띠가 아닙니다.
거사님은 생각을 너무 하지 마시고 단순화 시키십시오. 무조건 분석하지 말고 생각을 증폭시킬 소지가 있기때문에 '호흡을 보면 숨만 본다 그리고 느낌이 있으면 느낌만 알뿐이다.'
이렇게 해 들어 가시고 수행이 밋밋하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싶으면 집중력, 삼매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흡의 전체를 보는 명상하는법으로 정진해 나가시면 됩니다.
호흡명상을 한 자체로 이미 밝아지고 심신의 정화가 되기 때문에 굳이 화두를 들 필요가 없지만 여러분들이 깨침의 세계로 빨리 들어가게 하기위해 또하나의 대안으로 스님이 드리는 것입니다.
3~4년 다니신 분들이 있기때문에 화두가 무엇이라는 것을 펼쳐보여드리는 것이니 나한테 맞으면 들고 안맞으면 본인이 좋은 것만 하시면 됩니다.
Q3 : 스님말씀대로 입술앞에 마음을 두면서 호흡을 보는 것과
드론을 띄워 몸전체를 보는 것 두가지를 신경 쓰면서 호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앉아서 숨을 보고 있는데 호흡중 다른 것이 보이는 경우,
잠시 놓쳤다가 다시 입술앞을 보는 것으로 돌아와야 하나 궁금한데 사실 드론을 띄워
몸전체를 보는 것과 아직 확연한 구별은 못하겠습니다.
입술앞이라 하는 것은 저의 해석이고 사실 무유정법이라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어느 것의 기본 위에서 나에게 맞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 거사님은 젊은 분으로서 수행을 다른데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고 입술앞에 마음을 두면서 호흡을 보는 것과 드론을 띄워 몸전체를 보는 것이 결국 같네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수행이 진전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호흡은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호흡의 전체보기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드론을 띄워 온몸을 살펴보란 말이 아니고 호흡의 전체보기는 어디에 있든 호흡을 놓치지 않고 보는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술 앞이란 의미는 호흡만 알면 된다는 것이지만 안되는 사람은 그렇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호흡을 보다 형상이나 니밋따나 니밋따 전조현상이 일어났을 때 돌아오는 것이 잘안되는 사람은 다시 입술앞으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아직 명상의 힘이 약해서 형상이 일어나도 빨리 없어지기 때문에 생각에 끄달려 가지 않게 하기위해 입술앞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호흡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심해진다는 것입니다. 무심해 질 수있는 공덕은 대단 합니다. 사랑,명예, 재물에 끄달리지 않게되어 왠만한 것에는 집착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어 그것이 훈련이 되면 멈출 수 있게 됩니다.
입술 또는 입술앞이란 의미는 코끝이나 인중의 특정부위에 의식을 고정시키지 않고 편안하고 두루뭉실하게 호흡을 편안히 알기만 하라는 뜻이 됩니다. 이 변화 무쌍한 세계에서 특정한 부위에 고정하는 것이 어떻게 지켜지겠습니까?
또한 그것은 불교의 논리와도 맞지 않습니다. 호흡을 아는 자유로운 마음이라는 뜻에서 언어를 쓰면 front, face, mouth의 세가지를 묶어 입술앞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이 어느 경지에 올라가기 전에는 잠이 오는 것도 과하고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늘 되돌려 입술앞에서 숨을쉰다는 말로 중심을 잡고 돌아오면 됩니다. 능숙한 사람은 바로 되돌릴 수 있으니 상관없는 말입니다. 한순간에 확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수행의 세계라 실제로 낮은 단계라는 것도 없습니다.
한번이라도 경험한 것은 DNA에 각인되어 잠재적으로 들어 있기때문에 어느날 조건이 되면 다시 드러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야소다라라는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두었고 수만의 궁녀를 거느린 지극히 세속적인 삶이었지만 어느날 조건이 되니 모든것을 버리고 출가해서 도를 깨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빛이 한번 일어난 것은 돌아 오고 돌아와서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황홀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삼매를 얻으리라, 고요하리라 마음먹으면 만들어낸 수행이 되기 때문에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명상의 말씀을 놓치지만 않고 가면 나도 모르게 하늘을 나는 기류에 저절로 오르게 될 것입니다.
Q4 : 선정을 얻기위해 저는 부정관을 했습니다. 몸은 사라지고 누군가가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
하얀뼈가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환희로웠습니다.
또 하나는 호흡을 보면서 화두를 들고 있을때 그 의식만 남아있고
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안거기간내내 호흡을 보고 있으면
이삼십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때론 졸기도 하고 무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아직 내면의 속삭임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고엔카 수행이나 마하시의 위빠사나등은 아주 기본을 이야기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서양의 명상 힐링으로는 근본 치료를 못하고 불교 참선으로 들어와야 만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 거사님정도의 단계는 높은 단계로 근본치료가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수행을 한 후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때는 화두기법을 적용하면 매우 훌륭합니다. 이것은 호흡명상 16단계의 마지막 법념처의 아누빠사나 4단계를 화두와 응용하면 됩니다.
부정관이나 백골관을 닦아도 아라한에 이르지 않으면 색욕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만 애착의 마음이 나에게어떻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 정신무장이 되기때문에 효과는 있습니다.
하얀뼈가 빛이 났다는 것은 니미따가 뜬 것입니다. 황홀경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완전한 니밋따인지 근접삼매의 니밋따인지 구별됩니다. 남방의 비구스님 수행처에서는 교통사고가 난 여인의 사진, 창자가 튀어나온 사진등을 보며 수행을 하게 되는데 발우안에 창자가 가득들어있는 환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영상은 내인식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차리면 텅비어 없어지기도 하고 빛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좋은 명상하는법의 방편입니다. 나 스스로 원해서 애욕에서 벗어날 수 있고 뼈가 빛날 때 아름답다 라고 생각하면 선정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Q5 : 전도몽상이 아상이 있어서 그렇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상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아상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나라고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하고 들어가 봤더니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알아졌습니다. 오온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론으로 아는 것과는 다르게 체험으로 알아졌는데 이것이 사유인지 통찰인지 궁금합니다.
이정도되니 참불선원이 얼마나 뛰어난 도량입니까? 첫째 화두를 들면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그것만 하라고 말하는데 아닙니다. 신해에게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지혜의 종장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지만 알음알이는 이해력이 강화된 철학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괴로울땐 물어 볼 수가 없습니다. 바늘 구멍보다 더 좁아져서 건드리면 터져버립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넓어지면 무엇을 물어도 답이 나옵니다. 사람한테도 관대하고...
호흡명상하는법이나 염불등으로 내몸이 고요해져서 묻고 묻고 물어서 남이 머리가 아파 묻지 못할 것까지 다물어져서 오온이구나 하는 것까지 나왔습니다. 이것은 사유로 일어난 지혜라 '사유지'라고 합니다. 통찰은 묻는 것이 아니라 그냥 툭 튀어올라와 저절로 전개되어 갑니다,
저는 사제의 뒷통수를 보고 탁 터져서 팔만대장경이 확 펼쳐져 버렸습니다. 스크린으로 펼쳐질 때가 있고 생각이 저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물어본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요근래에는 불사의 일, 방송의 일 때문에 물어들어 갑니다. 일어난 일을 툭 던지면 스크린 펼치듯 좌악 펼쳐지고 저는 물어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유는 묻고물어서 아는 것이고 대해종고 께서 종진각이라는 사대부에게
"항상 늘 살펴서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게하고 분별심이 일어날 때는 분별심이 어뗳게 일어나는지를 보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로써 번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를 사유해 보십시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공부하면 알음알이라고 들고 치는데 진여궁보살님은 대해종고가 말씀하신 명상의 말씀 그 방식대로 잘사유하셨고 생각이 일어난 그 너머가 나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끝없이 알음알이로 만들기보다 아그런 것이네 하고 한템포쉬다가 호흡을 보든 화두를 들든 아무거나 해도 됩니다.
호흡을 삼매로 만들든지 안귀찮으면 화두를 툭툭 던져보면서 고요히 한두시간 하고나면 툭튀어 나오게 됩니다.
시중거사님처럼 뼈니밋따를 보고난 뒤 마지막을 다시 사유로 던지듯이 통찰의 힘을 발휘하는 사유가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하고 차원높은 질의응답이 많았지만
대표적인 즉문즉설 명상의 말씀만 올렸습니다.
다른 수행자의 의문처에 대해 집중해 봄으로써
각자가 견지하는 명상하는법의 견처가 넓어지리라
기대합니다. 모두 근념하셨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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