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연합일보 칼럼
봄을 타전하다
우수雨水 지나 바야흐로 봄이다. 눈이 녹아 비와 물이 된다는 목왕木旺의 계절, 산천초목 우주만물이 기력의 섭생을 꿈꾸며 깨어난다.
겨울을 뚫고 생명을 피워내니 누구나 가장 환영하는 계절임에는 틀림없겠다.
세설世說이 묻어나던 바람의 발톱이 우듬지에 숨었는지 이맘때면 영춘화 꽃망울도 빼꼼히 눈인사를 건넨다.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꽃의 외양만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밀어내고 마침내 꽃을 피워내는 불굴의 인내, 그 향기 때문이겠다.
“Spring is the time of plans and projects"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계절의 변화는 단순히 자연의 이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일부분인 인간에게 그 순리를 따르도록 무언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하고 있다.
세밀한 몸짓과 내면의 가르침에 귀 기우릴 수 있다면 그는 지혜로운 인간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길을 가고 또 누군가는 곁길을 걷기도 하며 순간순간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흘깃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아주 먼 곳을 돌아 헤매다가 그 길의 존재 자체도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감성적이고 이성적인 감개에 우리는 무심하거나 혹은 놓치고 살아간다. 세속적3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운 까닭이다.
엄청난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취업난에 결혼까지 포기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현실을 간과하는 안이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현실과 유리된 이상의 세계, 동전의 양면을 뒤집어보며 나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아직도 속에서 일렁이는 충동의 물결이 남아 있다면 방황의 순간조차 돌이켜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계절이 아닐까?
가장 가혹한 겨울과 가장 활기찬 봄의 경계에서 생각한다. 시련과 성공적인 삶의 상관성에 대해 생각한다.
겨울의 혹독함은 내면에 숨겨진 거대한 열망,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성에 매몰되어 온전히 자신일 수만은 없는 고뇌를 표상하는 것이며 봄의 생명성은 이러한 삶의 비애를 극복하는 희망의 표상이 아닐까 리비도와 타나토스가 대척 관계가 아닌 마치 동전의 양면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이미 내 것인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나의 것일 수밖에 없는 시원의 어떤 물음에 대한 천착들이 스믈거리는 계절이다.
그러니 자연의 순리 변화, 봄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과 순한 의지를 배워야 하겠다.
영화 <주토피아>의 ost 'try everything' 에 이런 가사가 있다. 좌절하지 않을 거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끝을 보고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다시 일어서서 앞을 바라봐 아무도 실패 없이 배울 수는 없는 걸 새들은 저절로 날지 않아 떨어졌다 다시 오르는 거야 아무도 실패 없이 배울 수는 없는걸.
그렇다. 혹한을 이겨내고 희망을 피워내는 나무들에게 배워야 한다.
떨어진 낙엽이 새로운 새싹의 거름이 된다. 즉 현생의 궤적이 후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Carpe Diem, Memento mori' 현재를 즐기되 곧 죽음이 다가옴을 기억해야 한다. 라는 라틴어 시 한구절도 같은 맥락의 깨달음을 던져주는 것이다.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극복의 의지를 일으켜 새로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고난이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밀고 가는 봄의 세밀한 가르침에 마음을 열고 경청해야 한다.
이령 웹진시인광장 편집장
경북연합일보 http://www.kbyn.co.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229&idx=57858
첫댓글 봄을 타전하다.
읽으면서 내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을 갖게됐습니다. 물론 매년 그랬습니다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것 말이지요.
회장님!
고맙습니다 ㆍ
이제 정말 봄이군요. 봄맞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프랑카님!
고맙습니다 ㆍ
봄은기다리는재미
안부를 묻고나니 어데가고 없더군요
전인식ㆍ선생님~*
고맙습니다 ㆍ
봄은 마음에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