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를 대면(對面)하고...
요르단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먼저 길르앗산지의 북부 지역인 움까이스를 찾았다.
이스라엘의 ‘벤샨’국경에서 요르단으로 건너가면 가까운 지역이기도 했다.
왼편으로 야르묵강을 끼고 올라가는 산지는 울창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숲이다.
그 숲속에서 둘러 앉아 도시락을 풀고 맛보는 요르단의 인상은 풍요로움이었다.
움까이스는 성경의 가다라지방으로서 데가볼리(데카폴리스)의 한 유적지다.
그 경내의 높은 언덕에 올라보니 서북쪽으로 갈릴리호수가 내려다보인다.
그 호수 동쪽의 골란고원에는 손에 잡힐 듯 자동차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힘겹게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땅이다.
그리고 움까이스를 출발하여 이르비드를 거치고, 제라시(거라사)를 통과해서
암만에 들어올 때까지도 광야는 실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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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숨고르기와 시차적응을 마치고 요르단 남부를 둘러보게 되었다.
왕의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헤스본, 마다바, 디본을 지나 아르논 골짜기까지도
소나무 등 가로수를 잘 가꾸어 놓은 도로변은 대부분 목초지와 밀밭이었다.
우기(雨期)이고 봄철이어서 들은 각색 카페트를 깔아놓은 듯 아름다웠다.
아르논 골짜기를 떠나 동편으로 접어드니 점차 황무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편광야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남쪽으로 갈수록 광활한 광야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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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야는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을 이루며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模糊)해 졌다.
진짜 광야(廣野)였다. 나무가 없다. 풀도 보이질 않는다.
단지 흑갈색의 돌과 자갈 그리고 흙먼지로 뿌연 하늘이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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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전적 의미는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이다.
일반적으로 강수량이 적어 오아시스지역 외에는 식물이 거의 생육할 수 없다.
요르단의 광야는 전 국토의 80% 정도이고
나머지는 준(準)사막 혹은 스팁(steep)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야(廣野)나 사막(沙漠)을 영어로는 같은 단어(desert)를 쓰지만
현장에 와서 보니 분위기나 어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사막은 강수량이 적고 모래로 뒤덮여서 식물이 살기에는 매우 열악하며,
간혹 식물이 전혀 살 수 없는 모래밭도 있다.
사막에서의 취락이나 농, 목축은 주로 오아시스 근처에서 발달한다.
사막에서는 건조한 기후에 잘 견디는 낙타를 운송수단으로도 이용하거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유(乳)제품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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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요르단의 광야는 달랐다. 대부분 모래밭이 아니었다.
거의 석회질의 암석과 거친 흙으로 이루어진 땅이었고, 어떤 곳은 비옥해 보였다.
그래서 우기에는 농작물이나 식물군이 자라서 목초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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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물과 양식이 없어 고통당하던 땅이었다.
- 시내산까지의 2년 반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을 이스라엘 남부와
요르단 남부에서 광야생활(廣野生活)을 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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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많이 닮았다.
작가 Ken Gire(켄가이어)는 ‘광야의 창’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배우는 곳이 ‘광야(曠野)’이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 영혼의 가장 합당한 음식일 뿐 아니라
가장 절박한 음식임을 배우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광야는 고통과 굴욕과 불확실함과 고독과 절망의 장소이다.
모두가 나에게 필요한 광야의 교육은 신학교처럼 표준화 교육이 아니다.
광야는 내게 신학을 가르쳐 주었다. 법도 없고 체계도 없다.
강의 요강도 없고 교재도 없다. 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그 과정을 마치기 전에 치러야 할 수업료가 얼마나 될지 몰랐다.
나는 교사의 말에 불복했다. 때로는 대들었다.
너무 어렵고 숙제가 많다고 불평했다.
과목을 도중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알고보니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었다.
나는 질문이 있어 손을 들었다. 줄기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교사는 질문에 대답해 주기는커녕
내 손을 전혀 봐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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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때로는 건강, 경제문제, 남편, 아내, 자녀, 사업, 인간관계 혹은 의식주 문제가
인생살이의 광야가 되어 앞을 가로 막아 숨을 몰아쉬게도 한다.
- 우리는 이러한 광야를 어떻게 극복할까?
불평하고 낙심할까? 아니면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할까?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참고 견딜까?
물과 양식이 없더라도, 그 광야의 끝이 언제인지 알지 못할 지라도...
인생의 광야에 직면할 때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증진시키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요르단의 광야를 보면서 지난날 내 인생의 광야 길을 회상해 보게 되었다. -觀-
첫댓글 목사님 슈크란! 건강하시지요?
아멘... 너무 동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