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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통을 현대의 美로
2024.11.0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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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현 작가의 개인전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서울 성동구 성수스텔라에서 9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전통 기와지붕, 떡의 문양을 찍는 떡살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떡살 무늬를 모아 원형 조각보처럼 연결한 작품, 한옥 지붕을 축소한 세라믹 조각들을 도열한 작품 등을 선보인다.
김유현 작품 /성수스텔라
사회학자 정수복은 “김유현의 작품은 기와와 떡살이 사각형과 원형으로 형태는 단순화되면서 색감은 다채로워지고 있다”며 “원형 떡살은 전통적인 오방색에서 시작해 점차 섬세한 현대적 색감으로 변화되고, 기와지붕은 전통 수묵화처럼 농담이 어울리면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평을 썼다. 관람 무료.
서양화가 김유현"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김유현 서양화가 작가
[잠시만요] 서양화가 김유현"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오늘의 주인공, 서양화가 김유현 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김 작가님.
◆ 김유현 서양화가 작가(이하 김유현)>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네, 반갑습니다.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 직접 인사도 좀 하시고, 자기소개도 해 주시죠.
◆ 김유현> 네. 이번 12월 29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초대 기획전을 갖게 된 김유현입니다.
◇ 이성규> 연말에 이런 예술 작품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고 복지죠. 근데 원래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셨더라고요. 이력을 보니까. 그런데 미술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아제가 학부를 영문학을 한 것이 저의 약점이자 또 강점이 될 수가 있는데요. 학부는 이제 영문과를 나오고 미술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서 1986년부터 벌써 거의 한 35년 동안 했네요.
◇ 이성규> 30년 넘게, 미국에서 시작하셨어요. 결혼을 하셔서 미국 가셨나요.
◆ 김유현> 네, 그렇습니다. 유학생 와이프로, 아내로 고달픈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그다음에 이제 다시 돌아오셔서 국내에서 전시를 시작한 게 2004년경부터라고 적혀 있던데. 그동안에 어떤 작업을 주로 해오셨나요.
◆ 김유현> 저는 이제 맨 처음에 미국 가서 공부를 한 거는 모든 것이 페인팅이라고 해서 유화를 했고요. 그리고 주로 1학년, 파운데이션 리어라고 그래서 미술 쪽에 도예, 조각 할 수 있는 예술 분야는 다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서양 도구인 캔버스에 유화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동안에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그렸고, 그리고 도예도 하고. 또 여러 가지 평면 설치 작업도 하고 많은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 이성규> 그동안에 전시를 여러 번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전시 중에 그래도 좀 기억에 남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들 입장에서. 어떤 전시 때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 김유현> 여러 가지가 많이 다 기억이 남는데 제일 기억 남는 거는요. 2004년에 파리 파슨스,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거기 4학년 때. 그때 뒤늦게 본격적으로 젊은 아들 뻘 되는 나이 또래 학생들하고 같이 학부 생활을 열심히 했었죠. 근데 그때 이제 교수님께서 저한테 파리 시내에 있는 갤러리에서 개인 솔로 전시회를 한번 열어보라고 추천을 해주셔가지고, 연결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먼저 시작을 했었죠. 근데 그때만 해도 우리 케이팝 아트나 이런 거가 퍼지지 않아서 제가 한국적인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많은 파리 시민들이 와서 굉장히 흥미로워 했고 찬사를 해주고 격려를 해줘서 그때 기억이 참 새롭게 남습니다.
◇ 이성규> 그때 어떤 작품이었어요.
◆ 김유현> 그때 이제 한국 소재가, 한국 설화나 민화에서 나오는 것들인데요. 굉장히 큰, 한 가로 세로 한 4m 정도 되는 큰 민화를 주로 그렸었는데. 그걸 이제 유화로 그리고 하니까 굉장히 무슨 스토리가 있는 거냐고 많이들 물어봐서,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까 굉장히 흥미로워 했죠. 그리고 이제 제가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으로 베르니사주 오프닝 파티를 열었는데 모든 한국적인 거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보여줬고, 좋아들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이성규> 지금 이제 파리에서 공부하실 때도 한국적인 미를 담아내는 작업을 많이 해 오신 것 같은데요. 여러 주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작가들 입장에서 선택하는 기준도 다를 거고. 그런데 한국인의 미를 모티브로 잡게 된 이유는 무슨 다른 동기나 이런 부분들이 있으세요.
◆ 김유현> 네. 주로 수업을 파리 파슨스 학교에서 했을 때 특이하게도 야외 수업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는 조그마한 한국 여성이니까 거기 학생들하고 다니면서 이제 뭐 불란서의 건축물을 그리고 그런 것들이 많이 있는 수업이었는데. 어느 날 제가 굉장히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그때 다시 미술도구를 챙겨서, 학교 스튜디오에 가서. 무언가가 저만이 가질 수 있는 제가 지금 가장 그리워하는. 그런 걸 막 그려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게 바로 한국 정자 누각을 하나 그렸어요. 그래서 막 정신없이 몇 시간을 그리고는 유화 물감이 안 말라서 집에 가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수업을 들어가니까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렇게 모여서 웅성웅성 대면서 굉장히 특이하고 굉장히 멋있다. 좋다. 그러면서 막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무슨 일이냐, 그러고 갔더니 아, 이게 바로 너다. It’s you. 그림 굉장히 좋다고. 그런 반응을 보고 제가 이게 바로 내 아이덴티티구나, 그리고 나는 이렇게 특별한, 어떠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거가 항상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고 그립구나. 그런 걸 제가 제 옷을 입은 듯한 그런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리고 교수님도 그렇고. 이제부터 너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걸 그리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그때부터, 제가 이제. 외국에서 보통 나오면 애국자가 되잖아요. 저는 굉장히 서양식 교육을 받았고, 한국에서. 그 당시에 70년대 80년대는 이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느라고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서양 문물, 문명에 대해서의 열망도 있었고 굉장히 흠모를 하는 그런 시절이었는데. 저는 뭐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외국을 가보니까 너무나 우리나라의 좋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모든 의식주, 한국적인 옷이며 음식이며 건축물이며 한옥이며 모든 것들이 다 그립고, 너무 좋은 거였다는 거. 소중하다는 거. 그걸 알게 되면서 제가 다시 외국에서 아이덴티티를 찾고서 이제 한국적인 것을 나타내려고 했었죠.
◇ 이성규> 그 외국 생활이 좀 길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영문학하시면서 언어가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외국 생활은 어떠셨어요.
◆ 김유현> 친정 아버님이 무조건 그냥 이대 영문학과를 가라고 아예 정해놓고 그러셔 가지고. 미술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학교를 그렇게 다닌 거에 대해서 참 속상함도 있었고 그랬는데. 오히려 나중에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게 되니까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인문학적인 것도 제가 그림으로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서 도움이 됐고요. 그리고 외국에서 미술사랑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수업을 듣고 하는 데서 영문학을 했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갈증이 더 있었고, 그리고 더 열심히 했던 그런 동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아까 한국과 비교해서 외국 생활 하면서 보니까 한국 게 참 좋고 멋진 게 많더라.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어떤 부분이 그게 있었을까요.
◆ 김유현> 저는 이제 대학 때까지 한국에서 한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식이라 그래도 그 서양식 교육이겠죠. 그 서양식 교육과 문물을 이제 흠모하는 아주 열렬히 서양화된 여자였는데, 외국에 가니까는 너무나 사고방식도 차이가 나고, 모든 가치관과 그들의 인종 차별도 있었고요. 이기적인, 어떤 합리적인 것만 따지는 실용주의. 그런 거가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모든 것이. 조그마한 사건도 소송으로 가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뭐든지 타협과 관용과, 그리고 서로 보듬어주는 어떤 그런 거가 없고.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굉장히 개인 대 개인으로 서로가 부르고, 상대를 하고. 그런 것들이 저는 너무 이질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었는데. 그때 이제 생각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그런 아키타입이라는 게 정말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아키타입이라는 거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 수업을 들어가서 첫 단원에 나왔던 신시의 아침이라는, 이효영 선생님의 글로 배웠던 용어였는데요. 그때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제가 지금 한국 사람만이 가지는 집단 무의식적인 원형이 있다. 하는 거를 이제 단군 신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서 찾아봤던. 건국신화였던 단군 신화에서 웅녀의 모습이 그 당시에는 전혀 수수께끼 같은 얘기였고 모호해서 전혀 이해가 안 갔던 얘기인데. 제가 나중에 미국 생활을 하면서 아, 이런 특성이 있다. 분명히. 그런 걸 깨닫기 시작했었습니다.
◇ 이성규> 그러니까 이제 아키타입을 발견하시는 과정에 웅녀부터 시작을 해서, 거기에 기와집도 나오고. 누각도 나오고.
◆ 김유현> 제가 조금 더 덧붙여서 설명을 드리자면요.
◇ 이성규> 선생님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청취자 여러분들이 좀 도움이 되게, 좀 더 설명을 해 주시죠.
◆ 김유현>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화 같은 단군 신화는 건국 설화인데, 이게 다른 그리스 신화나 이런 걸 보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얘기거든요. 다른 나라의 건국신화라는 거는 뭐 어떠한 걸 투쟁을 하고, 정복을 하고, 피를 흘리고. 뭐,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막, 이런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로 이제 일갈이 되는데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는 참 특이해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곰과 호랑이가 동굴 속에 들어가서 쑥과 마늘을 10일 동안 먹고 견디는 자가 네 인간이 된다 하니까, 호랑이는 그걸 못 견디고 이제 뛰쳐나가고. 곰은 그걸 견뎌서 결국 이제 100일 만에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고. 곰이 이제 첫 동굴에서 나오면서 맞이하는 그 아침이 신시의 아침이라고 그렇게 되는 얘기인데요. 거기에서의 그 웅녀가 우리나라 집단적인, 무의식적인 어떤 원형이 된다는 그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게 제가 이제 보면 그 곰이, 다른 누구하고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그 쑥과 맵고 쓴 거를 먹으면서 혼자서의 자기 싸움을 하는 거거든요. 끈기와 인내로서 결국은 이제 사람이 되는 그러한 건데. 그런 내적인 힘이 우리나라의, 한국인에게 있다는 얘깁니다. 근데 저는 이제 그걸 외국에서 살면서 느꼈어요. 정말 거기에 많은 한국 사람들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평화롭고. 하지만은 굉장히 모든 거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그리고 뭐 누구를 경쟁해서 투쟁하고 거기에서 꼭 밟아서 이기려고 그러고 그러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서 불공평과 불평등을 이겨내면서. 그런 평화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은근과 끈기의 저력이 분명히 한국 사람한테 있거든요.
◇ 이성규> 그걸 나가서 더 또렷하게 느끼셨다는 거죠.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양화가, 김유현 작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님. 이쯤에서 우리가 좀 쉬기도 하고 그러면서 노래 하나를 듣거든요. 어떤 노래 소개하시겠습니까.
◆ 김유현> 저는 이하이 씨의 ‘손 잡아줘요’ 하는 노래를 청취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손을 잡아줘요. 여기 의미가 있나요.
◆ 김유현> 제가 어느 날 이제 우연히 듣게 됐는데요. 너무 경쾌하고요.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여가수가 아주 큐트한데 흑인들 특유의 소울 있는 목소리로 굉장히 경쾌하게 부르는 게 굉장히 즐거웠고요. 그리고 이제 지금 외국사람, 그 뮤직비디오에 한옥이 나와요. 한옥이 문이 열리면서 이 하이 씨가 이렇게 손을 잡아달라고 하는 그 제스처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 표현도 하고 하는. 그런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럼 그 곡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하이의 손 잡아줘요. 듣고 오겠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한국의 미를 그림에 담아내는 서양화가, 김유현 작가입니다. 그리고 김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이하이의 손 잡아줘요. 듣고 오셨습니다. 이 손 잡아줘요. 그러니까 꼭 무슨 Empathy(공감)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곧 전시하실 테마가 Empathy(공감)죠. 연말에 이 Empathy(공감) 준비하시면서 공감 얘기를 좀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 김유현> 네, 전 세계적으로 유사 이래 가장 혹독한 시련인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앓고 있잖아요. 지금 이게 점점 길어지면서 굉장히 삶이 피폐해지고 굉장히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럴 때 제일 필요한 것이 서로 서로가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런 거가 꼭 필요한 것 같아서. 제가 이번 전시를 하면서 좀 더 빨리 위드 코로나 시대에서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까지 가는데. 그걸 좀 서로가 공감하면서 잘 극복해서 빨리 평화로운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잡았습니다.
◇ 이성규> 어떤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미리 좀 설명해 주시면 인사동 갈 분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 김유현> 제 작품은요. 이번에 기와집이라는 거, 우리나라의 모든 의식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인 것에서 참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많은데요. 의복에서도 그렇고, 그 한복의 그 선이 너무 아름답고. 색감이랑 그런 것들이 참 아름답고. 여인의 몸을 이렇게 감싸주는 그런 기품 있는 옷 옷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의 모습을 그린 유화도 있고요. 그리고 창덕궁에서 이렇게 눈 오는 날 바라봤던, 기와에 덮인 눈이 쌓인 기와지붕의 모습도 작품으로 녹여낸 작품도 있는데. 그거는 2와 2분의 1, 평면 설치한 작품이거든요. 그런 작품도 있고. 그리고 떡살무늬를 이용해서, 약간 반입체적으로 해서. 그 조각조각 하나하나에 우리나라 한국 엄마들이 여인들이 자식과 그리고 모든 가족과 굉장히 집 안에 경사가 있었을 때는 떡을 많이 빚었잖아요. 근데 그 떡살, 떡을 찍는 그 문양에도 기하학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문양도 많고요. 그 안에 이렇게 장수와 복을 비는 그런 길상문자를 집어넣은 것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그 전통 떡살을 제가 수집을 하고, 거기에서 한 번 그걸 마음의 떡으로 빚어내듯이. 그 어머니들이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고 장수를 바라는, 정성스럽게 찍었던 그거를 미술적으로, 시각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거를 수만 개를 찍어서 색을 입히고, 입히고, 입혀서 이렇게 캔버스에 붙여서 만든 그러한 작품도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방송으로, 말로 작품을 설명하려니까 좀 안타깝기도 하고 표현이 모자랐는데요. 하여튼 일단 이번 연말연시에 그 인사동의 라메르 갤러리에 오셔서 작품을 보시면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김유현 작가님하고 얘기를 나눠 보니까 아까 아키타입을 말씀하시면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작가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도 이 전시 이후에도 이런 쪽 작업을 계속하실 건가요.
◆ 김유현> 네, 그렇죠. 저는 이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도 그렇고, 그리고 BTS나 블랙핑크나 이러한 케이팝도 그렇고. 뭐 여러 가지 아트 분야나 문화예술에서 최고로 찬사를 받고 있고 모든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좋은 시대를 만난 거죠. 그리고 이제는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전 세계인들이 굉장히 많이 있고. 참,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반도체도 그렇고, 모든 브랜드가 세계적인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때 저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적인 전통과 굉장히 깊은 전통과 문화의 예술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거. 그런 것들을 좀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좀 보편적이지만. 그렇지만 그들이 아, 이게 참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거가 이런 거구나. 하는 거를 좀 느낄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예나, 그림이나 그리고 평면 설치나. 여러 가지를 통해서 소재를 한국적인 소재로 하고, 방식은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해서, 재창작을 해서 한 번 저만이 할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을 살려서 만들어내고 싶고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서양 사람들이나 우리나라가 잊혀져갔던, 잘 모르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굉장히 현대적인 것으로. 저희 시대에는 이것이 또 어떠한 한국화가, 이런 거가 있었다는 거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그게 이제 앞으로 또 새롭게 가고자 하는 방향성도 되겠네요.
◆ 김유현> 그렇죠. 정말 이제는 한국적인 게 제일 세계적인 것이 되고요. 세계적인 것이 정말 한국적인 것이 된다는 강한 신념이 생겼습니다.
◇ 이성규> 말씀하신 개인전 성황리에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
◆ 김유현> 네, 지금 팬데믹인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들 영혼도 피곤하시고. 그리고 기운도 지금 많이 떨어지셨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희 참 살기가 고달프죠. 근데 그렇지만은 저희 모든 우리나라 선조가, 얼마나 많은 외국의 침략도 받고 힘든 시기가 많았겠어요. 근데 그 당시에 제일 제가 기억나는 배운 역사적인 사실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그 몽골 침입 때 팔만대장경을 파서 그걸 이겨낸, 정신적인 승리를 한 우리나라 선조의 그 위대한 문화적인 자산을 저희 DNA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모든 거를, 문화 예술적인 힘이 내적인 힘이 강한 우리 선조들을 떠올리면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혹독한 시련에서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여러 가지 거리 두기라든지, 비대면이라든지, 마스크 수칙 쓰는 거 철저히 잘 지켜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굉장히 지금 심적으로 지친 상황일 텐데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어떤 힘이 강하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작품에서 그러한 밝은 에너지와 그러한 자부심을 갖고 같이 함께 이겨내는, 공감을 하는 그러한 연말연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양학과 김유현 작가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유현> 네.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유현 작가의 개인전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서울 성동구 성수스텔라에서 9일부터 22일까지 열립니다. 성수역 4번출구로 나가면 가까이 있어 접근성도 좋습니다 . 가을날 성수동 팝업거리와 미술관 산책도 좋을듯 합니다 . 인근의 비사벌 전주 콩나물국밥 / 밀도 식빵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