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과 음식
캠핑과 음식은 일심동체, 불가분, 오성과 한음, 스타스키와 허치의 관계다. 여기에 약간의 음주는 돈키호테의 산초처럼
늘 졸졸 따라다닌다. 캠핑장에서 음식은 캠핑의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놀이(?) 중 하나다. 흔치 않은 아빠의 어설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며,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이 동참할 수 있는
그래서 가족의 화목이 더욱 돈독해지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집만의 손맛을 캠퍼들에게 뽐낼 수 있는 그래서 우쭐해 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한 만 못하다는 옛말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도 종종 본다. 여유로워야 할 캠핑에서 요리의
노예가 되고 하루 종일 주방장이, 식모가 되는 사태도 벌어진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요리가 즐겁다.
하지만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라고... 쌓이다보면 캠핑이 지겨워지고 고생스러워진다. 이에 여기서는 캠핑을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요리와 캠핑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술술 풀어본다.
1. 네가 박정희냐?
첫 출정하시는 분들을 보면 과히 그 음식이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 저의 첫 출정을 잠시 꺼내보면
삼겹살 2근, 닭 1마리, 47센티 웨버(바베큐 장비), 라면, 쌀, 누룽지, 소주, 맥주... 이 식단이 1박 2일 동안 일정으로 아들과
내가 먹어치워야 할 음식이었다.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옆집에게 다 퍼주고 돌아왔다. 그 당시는 마치 엄마가 자식에게 뭔가
해먹였다는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목록을 보고 남들은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워낙에 입이 짧은 집이라 2근이
2킬로처럼, 닭 한마리가 소 한 마리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불 피우는 것은 땀이 많은 나로서는 고역 중에도 상고역이다.
근데 왜? 나도 모르겠다. 나오면 그냥 불을 피워야 할 거 같고 이사람, 저사람 나눠먹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2년 넘게 캠핑을 다니면서 요령도 많이 생겼다. 1박 2일 일정일 경우는 함께 한 캠퍼들과 나눌 수 있는 간단한 안주를
동네 음식점에서 준비한다. 저녁에 도착할 경우는 저녁밥까지 캠핑장으로 가는 도중 식당에서 해결한다. 다음 날 아침으로는
동료캠퍼들에게 기식을 하거나 라면 또는 집에서 준비한 누룽지에 야채를 좀 넣고 멀건 죽처럼 만들어 가볍게 해결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말 그대로 게으른 소걸음걸이로 여유를 부리며 논다.
2박 이상일 경우는 좀 다르다. 장기투숙이다 보니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남을 위해 준비하지는 않는다. 묶음포장으로
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내가 먹을 것만 준비한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것도 재미인데 너무 야박한 게 아닌가
싶지만 십시일반이라고 자기 것만 가지고 모여도 진수성찬이 된다. 박정희 식의 ‘나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음식 준비는 필요치
않다. 지금껏 그래봤고 그런 사람도 봤지만 대부분의 음식들이 불행히도 잔밥통 행이다.
2. 그 놈 참 계획적인데...
계획은 대출받을 때만 세우는 것이 아니다. 캠핑도 지극히 계획적이어야 한다. 특히, 계획적인 식단은 캠핑의 여유로움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짐까지 덜어주는 1석 2조의 효과가 있다. 캠핑 전날 아이들과 함께 뭘 먹을까 고민도 해보고 함께 카트를
밀며 쇼핑을 하는 것도 캠핑을 떠나기 전 즐거움을 준다.
식단을 정했다면 가급적이면 모든 것을 집에서 준비해 오는 것이 좋다. 인스턴트처럼 털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그래도 난 깎고 썰고 해야 된다는 분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메인 요리 하나만이라도 집에서 준비해서 오는 것이 좋다.
시간절약은 물론 독수리 오형제처럼 지구를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간혹, 함께 먹을 메인
요리 준비로 장시간 보내다보면 앞 사람이 준비한 삼겹살 취급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부른 사람에게 궁중 산해진미를
먹여본들 다 부질없는 짓이고 속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캠핑은 가족문화라고 하지만 조금 더 그 속을 파고들면 저 개인적인 생각은 남자문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고가의
캠핑장비 대부분을 남자가 지르며, 불장난, 가스장난 심지어 가재도구까지(머지않아 마트에서 천냥 코너나 그릇코너 앞에서
그릇이며 숟가락, 젓가락 등을 쪼물락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남자들이 즐긴다. 이 말을 부정한다
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캠핑을 가기 싫다고 하면 가족 누구도 캠핑에 나설 수 없다. 이런 논리로 주최는 남자,
당신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남자들은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이 말은 부르면 튀어나오는 마당쇠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라는 말이다. 계획적인 식단과 깔끔한 준비로 아내에게도 바람에 이는 잎새를 감상할
한가로움을, 모닥불의 화려한 불꽃쇼에 동참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야 한다.
또 아이들에게는 놀이동산의 기계적인 즐거움이 아닌 부모의 사랑 속에서 흙을 밟고 뛰어노는 자연 안에서의 재미를 선물
해야할 것이다.
3. 인스턴트, 누구냐 넌?
인스턴트 음식을 부정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난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지난해인가? 캠핑장에서 아는 분을 만났는데
준비한 음식들이 거의 슈퍼마켓 수준이었다. 즉석 해물찌게, 즉석 사골곰탕, 햇반, 라면, 과자, 스티로폼 용기에 랩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각종 야채들... 물론 남자 혼자 오셨기에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적인 여유를 보상받을
수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지금도 생각하면 그 분의 엉뚱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요즘 햇반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미안해 하지마세요”라는 광고카피로 TV광고가 연일
노출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햇반을 먹여야 하는 부모에게 실낱같은 서광을 비춰주는 광고가 아닐 수 없다.
캠핑장에서도 인스턴트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봤음직한 문제다. 좋은 것만 골라 먹이고 싶은 엄마의
욕심과 시간적 여유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대치하면서 생기는 필요악의 문제일 것이다. 매 끼니마다 인스턴트를
먹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한두 끼니를 위한 약간의 인스턴트 음식 섭취는 캠핑의 즐거움을 더해 줄 것으로 믿는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반드시 매번 음식을 요리해서 먹는다는 고정관념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도 좋을 듯하다. 그 대신 가족들
과 함께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초록 숲을 호흡하고, 황토 흙을 밟을 수 있는 시간을 번다면 인스턴트는 말할 것이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여러분께 건강한 시간을 드리잖아요!” 라고...
출처: 캠핑길라잡이 하우투캠프 글쓴이: 道來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