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6)
2023년 2월 2일(목)
새벽, 숙소 풀 빌라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 파도는 잔잔한 편이다. 우산 형태로 만든 햇볕 가리개(파라솔)를 백사장 위쪽에 일렬로 설치해 놓았고, 그 밑에는 누워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나무 깔개(선베드)도 있다. 햇볕 가리개 지붕은 야자나무 이파리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파도 지나간 고운 모래 위로 발자국을 찍으며 걸었다. 파도는 다시 밀려와 발자국을 흔적 없이 지웠다. 모든 것은 지나고, 지난 것은 시간의 파도에 부식된다. 발자국을 모래에 남기는 일, 지우는 일. 그 짓을 몇 번 하니 그것도 싫증이 났다.
호텔과 바다 사이 1층 풀빌라가 있는 모벤픽(Movenpick Cam Ranh Resort) 숙소엔 100여 채 이상 되는 빌라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사이로 뚫린 길을 밟았다. 리조트 풀 빌라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형태로 응접실을 가운데 두고 침대가 놓인 방이 두 개, 거기에 딸린 드레스 룸과 화장실이 있고, 별도로 세탁실이 있다. 야외에 길이 5미터, 폭 3미터, 깊이 1.2미터 정도 되는 수영장도 빌라마다 딸려 있다. 방마다 침대는 두 개다. 9시쯤 가족들과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1층 식당으로 갔다. 호텔 이용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참 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으로 여행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같았다. 6몀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다보니 실외 테이블이 비어 그곳에 앉았다. 용과, 수박, 오렌지 등 과일이 풍성했다. 골고루 먹을 것을 챙겨 먹은 후 손주들과 물놀이를 하러 수영장으로 갔다. 풀 빌라에 있는 풀장보다 호텔 앞에 있는 넓은 어린이 수영장을 아이들은 선호했다. 그곳에는 모형으로 만든 문어, 아기공룡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놀이시설도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물을 끌어 올려 바닥으로 쏟아지게 하여 물세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신나는 일이다. 가져간 튜브에 공기를 주입했다. 아이들을 위해 며느리가 한국에서부터 준비한 튜브다. 미끄럼틀을 타며 한참 물놀이를 한 아이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아래쪽으로 이동하자고 한다. 그곳 물 미끄럼틀(워터 슬라이드) 길이가 지금까지 놀던 시설보다 길고 신나기 때문이다. 다시 그곳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손주 자매는 오리배 튜브를 타기도 하고, 물싸움도 하다 티격대격도 했다. 나는 발 하나 물에 담그지 않고 물에서 노는 가족을 사진으로 담으며 동시 한 편을 메모했다.
순남이 엄마 고향
한 아름, 그것도 파아란
수영장에 잠긴 하늘에
야자나무들이 거꾸로도 자랐다
하얀 눈 쌓이고
삐뚤빼뚤 눈, 코, 입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도 하는
한국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여기는 베트남 나트랑
인천에서 네 시간 타고 온 비행기로
눈싸움 대신
신나게 물놀이를 하면서
겨울이 여름으로 옷 갈아입은 곳
딱딱한 얼음이 졸졸졸 흐르며
계곡마다 물들이 노래 부르는
한국의 여름까지 가려면 한참 먼
여기는 우리 반 순남이
순남이 엄마 태어난 나라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동시를 메모해본다. 동시로도 등단했으면서, 더욱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로서도 쓰지 않았던 동시다. 핑계 댈 이유야 몇 가지 있지만 은퇴 후 손 놓았던 동시를 이따금 쓰면서 나는 동심을 갖고 있을까? 동심과 무관한 동시를 쓰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러면서 한국 남자들과 결혼해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엄마들을,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직 미완으로 손볼 것이 있지만 그래도 물놀이 풍경에서 시상을 얻은 것은 여행에서 얻은 부수적 결과물이라 보람이다.
12시쯤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들이 많았다. 지난 저녁 딸이 배달시킨 튀김 종류 음식과 과일이 남아 냉장고에 보관했는데 그것으로 점심을 때웠다. 한국처럼 이곳도 배달음식이 많다.. 시내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달요금이 조금 딸리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식사 후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며느리와 딸은 나트랑 시내로 나갔고, 손주들과 아내는 숙소에서 낮잠을 즐기며 쉬었다. 나 역시 응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 4시쯤이었다. 저녁 6시에 예약한 바비큐 세팅을 한다며 식당 종업원 두 사람이 왔다. 어느 곳에 세팅하느냐고 묻는다. 풀장 옆이 좋을 것 같았다. 몇 명이 참가하는지 묻는다. 일행이 6명이라고 하자 응접실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폴장 옆으로 옮기고 의자를 여섯 걔 놓는다. 테이블 위에 화병과 접시, 스픈 세트를 놓았다. 방에서 잠에 떨어진 아내와 손주들은 폴장 옆에 테이블을 세팅할 때 나는 소리에도 깨지 않았다. 폴장 옆에 세팅된 테이블이 그럴싸했다.
6시쯤 시내에 갔던 며느리와 딸이 귀가했다. 낮잠을 즐긴 아내와 손주들도 기분 좋은 모습으로 바비큐 세팅된 폴장으로 나왔다. 바비큐는 1인 8만원으로 호텔을 예약할 때 이미 2인분을 주문했다고 했다. 서빙하는 두 명이 정성을 다해 음식을 굽고 맛깔스럽게 식탁에 올린다. 소고기, 새우, 홍합, 갑오징어, 꼬치 등 2인분을 6명이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준다. 여섯 명이라고 해야 손주들은 생각이 없는지 입에 대지 않는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도 꺼냈다. 맥주 네 병과 파스타를 주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6시부터 시작된 파티는 8시쯤 끝났다. 바비큐 파티는 이국의 밤을 이국적이며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