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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로부터 온 편지', 최종태, 2021. (포스터 제공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인물을 단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김대건 신부님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을 것이다.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1846년 9월 15일 사망하기까지 김대건 신부님는 25년 25일을 이승에서 살았다. 올해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인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2021년 유네스코는 그를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올해를 희년으로 선포했다. 이처럼 뜻깊은 해이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오프라인 미사는 막혀 있어 마땅히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기뻐해야 일이 조용히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천주교인은 각자 조용히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찾아보며 그의 인생과 죽음을 되새겨 볼 텐데, 반가운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 (고)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극화한 ‘저 산 너머’(2020)을 연출했던 최종태 감독은 김대건 신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그의 탄생 200주년에 맞추어 극장가에 내놓았다.
아쉽게도 이 작은 독립 다큐멘터리는 멀티플렉스나 도심의 극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한적으로 몇 개 극장에서만 상영하고 있어 아마도 많은 독자는 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기회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극장 개봉이 종료되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VOD로 다시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므로, 곧 다가올 그때를 위해 마음속에 이 영화를 저장해 놓고 기다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제로부터 온 편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가톨릭 신자라면 김대건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응당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세세한 그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의 관람평에서도 밝히듯이, 16살 소년에서 25살 청년까지 조선, 중국, 마카오, 필리핀을 10여 년간 오간 그의 여정은 ‘반지의 제왕’의 영웅의 여정 같은 광대함과 숭고함, 그리고 지독한 고난과 영광의 여정이다.
수녀, 신부, 역사학자, 후손으로 이루어진 인터뷰 대상자들은 모두 김대건 신부 전문가로 한 명씩 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25년에 걸친 여정을 이야기로 전해준다. 당시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에 3대째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의 탄생 배경부터가 남다른데다가, 짧지만 굵직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 여정은 극적인 사건으로 가득해서, 배우의 재연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함과 긴장감이 가득하다.
'사제로부터 온 편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세계가 교류하자 자발적으로 학문으로서 서학을 받아들이게 된 조선 후기 실학자들, 정조 사후 혼탁한 조선 후기의 정세, 프랑스외방전교회가 단 세 명의 소년을 발탁하여 신부로 육성하는 과정,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가장 신부가 되기에 좋은 자질을 갖추어서 프랑스 신부들의 총애를 받았던 신학생 최방제가 위열병으로 일찍 사망한 사건, 뒤늦게 합류하여 공부가 뒤처지고 병약해서 프랑스 신부들을 실망하게 했던 신학생 김대건이 중국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풍랑에 기지를 발휘하자 프랑스인 주교로부터 조선 천주교를 책임질 최고 기대주로 떠오르게 된 일, 신부란 것이 밝혀지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하는 그의 재능이 아까워 배교만 하면 후한 보상을 하겠다는 조선 조정의 제안을 강력하게 거부한 엘리트 신부의 진심,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전한 마지막 편지. 이 모든 것이 감동과 재미로 다가온다.
흑백으로 이어지던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는 현재 시점으로 넘어오면서 컬러로 전환된다. 신학생과 이제 막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들은 김대건 신부 나이대의 청년이며, MZ 세대의 삶에 청년 김대건의 삶이 어떤 영감을 주는지 고백한다. 누구에게는 영웅의 여정으로, 누구에게는 청년의 삶의 지표로, 누구에게는 가톨릭 신앙의 기준으로 우뚝 설 김대건 신부의 삶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명상할 귀중한 90분이다. ‘사제로부터 온 편지’는 역사 속에 박제되어 동상처럼 서 있는 김대건 신부가 아니라, 치열하게 살았고, 소신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였으며,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고자 했던 위대한 한 사람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이 다큐멘터리 제목을 잊지 말고, 언젠가는 꺼내 보길 바란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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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