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89) 전교의 달? 전교하는 교회! / 윌리엄 그림 신부
10월은 전교의 달이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교의 달은 10월 24일 전교 주일 2차 헌금 외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전교의 달을 특별히 기념하는 교구나 본당은 드물다. 그나마 전교 주일 2차 헌금을 모으는 것이 전교의 달 활동의 전부일 것이다.
이것은 일 년에 한 번 주일에 어머니들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날(미국에서는 5월 두 번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낸다)은 멋진 날. 적어도 꽃가게 주인들에게는 대목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날 하루만 어머니를 기억하고 감사를 전한다면, 더 이상 가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전교와 교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 년에 하루 혹은 한 달만 전교에 대한 우리의 다짐을 재확인한다면 더 이상 교회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교회는 그저 특정한 풍습을 가진 조직에 불과하게 된다. 교회에게 전교가 그저 풍습이 돼서는 안 된다. 전교는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종교에는 의식과 교의, 법, 특정 기념일, 지도자들이 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에는 하나가 더 있다. 교회에는 전교라고 불리는 복음화의 사명이 있다.
하지만 전교라는 독특한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전교가 교회의 본질이라고 의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어떤 중요한 답을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서는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하느님과 아들의 관계는 보내심, 바로 전교다. 성령 또한 이 보내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느님과 세상의 삼위일체적 관계는 바로 보내심, 전교라고 풀이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강생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사실, 예수님의 강생은 하느님의 끝없는 전교 활동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오늘날 이 강생을 지속시킨다. 바오로 사도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전교와 묶여 있다. 성령을 받은 이들은 삼위일체의 삶인 전교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흥미를 끌기도 하며 도전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이 설명이 신학적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보낸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달리 행동한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린 소명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느님 전교 사명의 육화가 오늘날 이 땅의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개종시키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치유하고 죄인을 용서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감사라는 새로운 감각으로 삶을 계속하라고 당부하셨다. 개종시키고, 사람들을 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모으는 일은 교회에 집착한 내부지향적인 행동이다. 예수님은 복음화시키셨다. 이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일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지만, 복음화 활동에 동참할 사람들만 부르셨다.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우리의 소명은 이것과 같다. 나와 여러분, 우리의 소명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받은 것과 같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현존이며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이는 특정 계층이나 부류, 직업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선교사나 사제, 수도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
복음화는 하느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피조물이 대상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 봉사, 전례를 통해 하느님 나라는 진실하며 사랑과 정의, 평화, 용서, 기쁨, 영원한 삶이 진실로 가능하다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잘 해오지 못했다. 짐작건대 여러분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과 말을 잊기로 마음먹은 초창기 제자들과 같다. 예수님께서 고통과 체포, 재판, 십자가 처형, 묻히심을 겪고 심지어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들은 절망하며 겁을 먹었고, 예수님을 배신했다.
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외면했던 제자들보다 더 나쁘다고 믿고 싶지 않다. 우리가 실패하면 하느님도 실패한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실패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월은 전교의 달이다. 3월, 5월, 6월 아니 다른 모든 달도 전교의 달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