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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8일 주일 설교
본문 : 빌립보서 3장 17에서 21절,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18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제목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당시 헬라인들의 생각과, 또 이단 종파인 영지주의의 한 일파는 영은 중요하지만 육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육으로 무엇이든지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상이 교회로 들어와 반 율법주의로 영향을 미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미 영이 구원을 받았고 악한 육체는 제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반 율법주의 사상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고 이것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편하고 유혹적인 사상입니까? 날마다 영으로 육을 쳐 복종시키는 전쟁을 치르며 지친 자들에게 더 이상 영적인 전쟁이 필요 없고 육체는 원래 없어질 그런 존재니 중요하지 않으니 포기하고 마음놓고 육체가 원하는 데로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관의 표를 끊어 놓고 남은 시간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시간만 마쳐 그 극장 앞에 가면 되는 것처럼 이미 천국입장권을 받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참으로 큰 유혹의 가르침이 아닐수 없습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결코 동요되면 안된다고 안타까운 마음과 눈물로 타이르며 천국 시민권을 가진 백성답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늘 시민권을 갖은 우리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따라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경계하고 피합니다.
18절 입니다‘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자로 행하는 것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자로 행하는 것의 의미는 막 8:34에,‘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말씀처럼 자기의 영광과 이기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삶 가운데 만나는 어려운 상황이나 고통의 환경이나 원수 같은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과 상황과 사람들 가운데서도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영광을 추구하기에 주님의 명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부인하며 사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19절에 이러한 자들의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결국 이런 삶은 멸망으로 이끌게 된다는 강력한 경계의 말씀을 하며 특징을 열거한 것입니다.
1) ‘저희의 신은 배’라는 것은 원래 그들은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줄 알고 몸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그 대신 자신들의 육신의 욕망을 신처럼 숭배하는 자들, 탐욕대로 방종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배 즉 육체적인 욕망이 원하는데로 산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하고 속이고 착취하고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 가운데 쾌락을 추구하기위해 돈과 권력을 얻기를 원하는 등 그 삶의 원동력과 목표가 오로지 자신의 육체의 욕망과 무절제한 탐욕을 채우고 만족하기 위한 것에 두고 몸을 이렇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2)‘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라는 의미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할 일에 대하여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탐욕과 욕심을 따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하고 과시하는 것입니다. 흑을 백이라하고 백을 흑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태러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모든 사람에게 보여지도록 공개 처형시키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면서도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랑하고, 자신의 아내와 남편외에 얼마나 많은 애인과 쾌락을 즐겼는지가 자기 영광이라 생각하고 자랑하고 이제 간통죄까지 폐지하고 자유롭게 음행을 행하는 것, 동성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정당화하고 자랑하는 것, 지구의 많은 사람이 굶주리며 살고 있는이 때에 몇천불 옷과 몇 만불짜리 보석을 탐내다가 결국 사게되었다고 자랑하며 마치 이런 것을 가져야 세상에서 인정받을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정당화 시키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랑하는 것 또 얼마나 자신이 탈세를 했는지가 얼마나 자신이 영리한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 이것을 자랑하는 것등 이처럼 부끄러운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하는 자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자는 육체의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멸망당할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랑스럽게 행할 뿐 아니라. 로마서의 1:32절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는 말씀처럼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세속의 타락한 마음을 정상적인 것처럼 과시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18장부터 19장의 내용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곳의 범죄가 심하여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을 살피고자 그곳을 방문합니다. 그곳이 심판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롯과 그의 아내와 롯의 두 딸을 이 성 밖으로 구원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알이라는 작은 성으로 도망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절대로 소돔과 고모라성이 심판받는 모습을 돌아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창세기 19:26에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가 왜 뒤를 돌아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죄악의 도시가 심판 받는 것이 너무도 속 시원해서 돌아보았거나 멸망의 도성을 피하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해서 돌아 본 것이겠습니까? 아니지요. 아마도 저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왜 재앙을 당해야하는가? 이제 다시는 정말 이 도시로 돌아 갈수 없는 것인가 하는 그 도성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입니다. 소돔을 떠났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소돔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뒤돌아 보지않고 피신했다 해도 그곳이 너무 그리워 아마도 자신이 있는 그곳에서 제 2의 소돔을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빠져나오기에는 너무도 깊이 쾌락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그리고 육적인 정욕과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영적인 재앙을 몰고 오는 가장 강력한 세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혼탁한 세 상 가운데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행함의 삶인줄 깨닫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희의 신을 배로 삼고, 부끄러운 모습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에 유혹 받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경계하고 피할 뿐 아니라 온전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2.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삽니다.
17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바울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자신을 부인하지도 않고 십자가도 지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영광과 만족과 쾌락을 위해, 저희의 신을 배로 삼고, 부끄러운 모습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유혹받아 넘어가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자신을 삶을 보고 이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특권과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본받으라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남들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만하여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를 바로 본받기 어렵다면 빌립보 교인 그들보다 한 단계 정도 위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은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고린도 전서 4장10-13절을 보면‘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보니 세상의 상식에서는 마련한다는 취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잘남과 강함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에 약한 자가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거나 대항하기보다 용서하고 축복하다보니 약한자로 보여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비천해 져도 참고 수고하고 친히 일을 하고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고 비방을 당해도 오히려 권면하고 만물의 찌끼 같은 대우를 당하며 주의 일을 하는 삶을 바울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고린도 교회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미련한자 취급당하는 것을 피하고 세상과 타협해 적당히 세상의 지혜롭다는 평가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이용해 그들은 강해지고 존귀해 지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용해 자신들이 영광을 받고 높아지고자 한 것입니다. 세상의 구조와 동일한 구조를 만들어 감이 보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는데 교회 내에도 그리스도인해 주어진 지도자의 자리로 존귀를 얻고 다른 사람을 지배 하는 것으로 사용하려는 것이 보였던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보다는 이기심을 채우고 서로 정죄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같은 많은 유혹이 있는 세상에서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도를 따라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태도를 보고 또 자기처럼 살아가는 사도와 참된 제자들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이렇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어디에 귀 기울여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행하는 세상에서의 성공적인 자기만족의 삶의 태도를 따라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린도 성도들 처럼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자신이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인정 받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통치할 권력과 힘을 얻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존귀해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명령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바울의 삶의 모습을 처럼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본받아 살고 긍극적으로는 주님의 장성한 모습에 이르기 까지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닮고자 살아가는 바울이나 다른 신앙의 온전한 선배들을 본받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3.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삽니다.
20절입니다.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그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 땅에 제한되고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통치법을 뛰어넘어 완전하고 공평한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천국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천국 시민이라는 정체성이 우리를 죄에 빠지기 쉽고 세상의 방식대로 자신의 육체의 욕망과 만족을 위해 살고자하는 유혹 많은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를 지킬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잠자리나 나비등 많은 곤충의 날개는 물에 젖지 않아서 물에 빠져도 날개가 물에 붙어 나오지 못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꽃 잎은 참으로 신기하게 전혀 물에 젖지 않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물에 잠겨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싱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꽃잎과 곤충의 날개가 물에 젖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물 분자와 쉽게 결합되지 못하는 성질인 초 소수성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들이 물에 잠겨도 초 소수성 물질이 물을 밀어내기 때문에 물이 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유혹을 밀어내고 육신의 욕망과 만족을 따라 자신의 영광과 자랑을 하며 살려고 하는 우리의 죄된 마음을 밀어낼 수 있는 물에 대한 초 소수성 물질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주권자 되시며 통치자 되시는 주님께서 곧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오실 것을 믿고 그분이 오시길 기다리며 간절함과 거룩함으로 기다리는 성도이기 때문에 이미 구원으로 인한 하늘의 기쁨을 맛 본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육욕을 거부 하는 것입니다. 하늘 부터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정체성과 이 정체성을 유지 하고자 하는 성령의 도움으로 죄의 유혹과 쾌락의 통치를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들이 기다리는 오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입니까? 그리고 그분이 재림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1절입니다‘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완성 뿐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도 변화 시키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빌립보 교회가 유혹받고 있는 ‘영은 중요하지만 육은 무시하여 이제 영은 구원을 얻었으니 어차피 소망이 없는 육체를 포기하고 우리의 욕망대로 육체의 욕구대로 살아도 좋다는 유혹’을 깨뜨리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렇게 육체의 요구대로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살아도 되는 육체가 아닙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육체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죄의 영향을 받아 연약하고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당해야 하는 낮은 몸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재림 때에 이 수준 낮은 몸을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 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약해서 병든 몸, 시간에 지배를 받아 늙은 몸이나 죽어 썩은 몸이 그 때가 되면 시공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몸으로 변화 시키실 능력이 있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육체가 아닙니다. 함부로 죄를 지며 살아도 될 육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설 때 변화 받아 거룩하고 온전한 육체가 될 우리들이 성령의 전으로 지켜야할 귀중한 몸임을 믿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우리들이 소망하던 나라가 임하기에 그리고 로마서 8:19-25절에 나타난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태초의 온전한 상태로 회복 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것을 믿는 성도는 우리의 몸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정체성으로 가지고 세상의 육욕을 거부 하고 세상의 쾌락의 통치를 이겨내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흠없이 주님 앞에 서고자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경계하고 피합니다. 세상이 혼탁하기는 하지만 바라기는 저희의 신을 배로 삼고, 부끄러운 모습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에 유혹 받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경계하고 피할 뿐 아니라 온전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바울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아 삽니다. 고린도 성도들 처럼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자신이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인정 받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통치할 권력과 힘을 얻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존귀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하게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는 성도는 우리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몸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실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정체성으로 가지고 세상의 육욕을 거부 하고 세상의 쾌락의 통치를 이겨내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흠없이 주님 앞에 서고자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살아가므로 하늘의 시민권자다운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들에게 넘치길 바랍니다.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