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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고수를 찾아서 <10> 대한검도회 김민조 8단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149 13.08.31 11: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상대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8세때 입문 이후 50여년 세월 무도 한길 걸어
"일정 경지 이르면 웬만한 공격 수 한눈에 보여"
전광석화처럼 적수 제압하는 받아치기 달인


부산 해운대구 신시가지.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검도장 하나. 대한검도회 해운대검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젊은 검사(劒士) 몇몇이 분주한 몸놀림을 하고 있다. 그 뒤편에서 방문객을 맞는 노신사. 크지 않은 키에 선한 표정, 호리호리한 몸매.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뭘 나같은 사람을 다 찾아왔느냐"며 던지는 겸손의 말에는 겸연쩍음도 묻어 있다. 그러나 무도인이란 선입관 때문일까. 입고 있는 도복 너머로 꼭 꼬집어 낼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탄탄한 내공이 없다면 결코 낼 수 없는 기운.

올해 예순 두 살의 김민조 검도 8단. 대한검도회 심의위원이며 부산시검도회 수석사범. 검도에서 9단은 추대로 수여되는 일종의 명예단수. 따라서 8단은 검도인이 자신의 실력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김 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검도계의 최고수 가운데 한 사람. 50년 이상 무도인의 길을 걸어 온 검도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검도는 끝이 없습니다." 그 정도의 연륜이면 검도가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정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 말 그대로 우문에 현답이다. 질문을 던진 기자가 머쓱해졌다.


  #받아치기의 명수

김 관장이 검도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여덟 살이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약한 체력을 보강하라는 부친의 권고에 따라서다. 하지만 검도를 시작한 이후 김 관장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괄목상대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던 김 관장이 만개한 것은 부산대 검도부 시절. 전국 무대를 휩쓸었다.

"전국체전에 부산대표로 나가 단체전에서 4년 연속 우승을 했지요. 각 단별로 열린 개인전에서도 세번이나 1위를 했습니다. 체격이 왜소해도 검도를 잘 하게 된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입니다. 고향은 경북 영천이지만 전주에서 입문을 했는데, 스승님이 기본을 아주 잘 가르쳐줬지요. 기본기를 잘 배우면 완숙기에 들어서 쉽게 검도를 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검도인의 길을 걸어 온 대한검도회 김민조 8단(사진 위). 제자와 일합을 겨루고 있는 모습(왼쪽이 김 8단).
김 관장은 대학 4학년때는 일본의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도쿄대에서 열린 한·일대학선발교류전의 주장전에서 상대방을 꺾고 나서다. 이전까지 주장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검도실력이 알려졌던 때문인지 김 관장은 부산대 총학생회 체육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김 관장은 35살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그러나 세계대회 참가는 포기했다.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중요보직을 맡고 있어 대회를 이유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니, 나이 서른 다섯에 국가대표라니. 통상 30대라면 운동선수로서 쇠퇴기, 근력 등이 하향세를 보이는 시기 아니던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럽다. 김 관장은 이런 의문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검도는 체력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30대가 완숙기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검도거든요. 얼마 전 5단 심사 때는 79세의 노인이 참가한 적도 있습니다."

김 관장의 특기는 받아치기. 검도에 입문했을 때 스승으로부터 체구가 작으니 받아치기에 주력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상대방이 공격해 들어올 때는 자연 허점도 많이 생기게 마련. 이 틈을 노려 역습을 가하라는 것. 그래서 이 기술의 습득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김 관장도 받아치기 말이 나오자 "여기에 관한 한 최고라고 자부한다"라고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부산에서 다섯 명뿐이라는 검도 8단은 얼마나 노력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일까. 김 관장은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아주 까다로운 대한검도회의 승단 심사에서 비롯된다. 8단이 되려면 7단으로 올라선 뒤 최소 10년이 넘어야 한다. 나이도 만 48세가 돼야 자격이 주어진다. 합격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20, 30대의 새파란(?) 나이에 검도 고단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검도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맨발과 맨손으로 수련을 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습니다. 반면 검도는 상당히 어려운 무도죠. 가볍게 생각하고 배우러 오면 포기하기 쉽습니다. 검도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뒤 입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 마음을 먼저 읽으라

김 관장이 호구를 착용하고 검을 들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무릎을 꿇은 채 기다린다. 엄숙한 분위기다.

하수가 고수에게 한 수 배우겠다고 청할 때 하는 의식인 '영격'이 시작됐다. 존경의 표시로 제자들은 스승의 호면 쓴 머리를 죽도로 수차례 가격한다. 영격을 통해 고수는 하수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윽고 다섯 명의 제자들과 1대 1 대련. 제자들은 20대 2명, 30대 2명, 40대 1명. 이 가운데 20대 2명은 '검도에 목숨 건다'는 대학특기생. 제 아무리 8단이라지만 '펄펄 날아다니는' 젊은이와의 겨룸은 무리가 아닐까. 근데 그렇지가 않다. 김 관장은 힘을 앞세운 제자들의 공격을 죄다 흘러 보낸 뒤 머리 허리 손목을 잇달아 가격한다. 가볍게 치는 것 같은데도 여지없이 상대의 급소에 죽도가 내리꽂힌다. 그 기세에 눌려 제대로 반격을 하는 제자들을 보기 힘들 정도다.

한 사람과 3~4분 대련을 한다해도 김 관장이 움직이는 시간은 최소 15분 이상. 6~7㎏ 무게는 족히 될만한 호구 등도 입은 상태. 그런데도 지치는 쪽은 젊은 제자들이다. 스승은 자신의 공격을 피하느라 힘겨워 하는 제자들을 쉬지 않고 몰아붙인다. 몸을 피하려 하자 "한번 더"라며 모질게 제자를 독려한다. 대련 전 힘들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한번 보면 알게 됩니다"라던 김 관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검도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근데 고수가 되면 웬만한 수는 다 보입니다. 상대가 어디를 공격할 지 안다는 것이죠. 검도계에서 고수가 존경을 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격투기 같은 종목은 힘있는 젊은 사람이 나이든 고수를 얼마든지 이길 수 있죠. 하지만 검도에서는 웬만해서 하수가 고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말이야 그렇다지만 혈기왕성한 20, 30대가 60대를 이기지 못하다니. 혹시 속된 말로 '짜고 친 화투'는 아닐까. 2단이라는 건장한 체격의 30대 제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리 해도 당할 수가 없네요"라며. 20대 대학생들도 그 말에 동감을 표시한다.

젊은이들을 무색하게 만든 김 관장의 기술과 체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비결은 끊임없는 연습. 김 관장은 요즘에도 하루 두 차례씩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범도 없이 관원을 직접 지도한다. 20여년 전 위암수술을 받고도 건재한 것은 검도 때문이라 굳게 믿고 있다. 게다가 좋아하는 검도인지라 마음마저 평안하다.

"은퇴 후 노는 사람도 많은데 도장을 가지고 있는 저는 행복한 것 아닙니까. 직장생활할 때는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때도 많았지요. 그렇지만 검도가 생활의 전부니 아주 좋습니다."

내침 김에 검도인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하던 질문을 던졌다. 검도 고수는 '젓가락이나 볼펜 하나로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소문에 대해. 이에 김 관장은 검도를 하면 눈이 빨라진다는 말로 받아 넘겼다. 알쏭달쏭. 눈이 빠르면 상대방의 공격을 다 볼 수 있다는 뜻일 터.

검도만을 고집한 지난했던 길. 아쉬움은 없었을까. 담백한 대답이 돌아 왔다.

"평생 검도를 했습니다. 검도 인생 반세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검도로서 생을 마치려고 합니다."

■ 검도란
고대 '칼싸움'이 경기용으로 발전

거슬러 올라 가자면 검도의 원형은 이른바 '칼싸움'. 칼은 수만 년 동안 사냥이나 전쟁에서의 살상용, 또는 개인 호신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격검이 신라시대 화랑도의 필수 과목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근거는 '본국검법'이다. 중국의 병법 집대성 문헌인 '무비지'에는 '조선세법'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모두 고대검법의 정수로 현대검도의 모태가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경기로서의 검도는 정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검도계에서는 100여 년 안팎으로 보고 있다. 검도계에서는 현대 검도가 일본에서 태동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 일본에 전해진 우리 조상들의 검법이 그 바탕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도 용구로는 도복과 몸을 보호하는 호구, 죽도, 목검 등이 있다. 또 호구는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호면과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 가슴과 몸통을 보호하는 갑, 허리 아래를 두르는 갑상 등으로 나뉜다. 죽도는 나이와 성별에 따라 길이와 무게가 다르다.

검도경기는 단체전(5인조, 7인조)과 개인전으로 구분된다. 죽도로 상대의 유효격자부위(머리 손목 허리 목)를 정확하게 치면 득점으로 인정된다. 제한시간(5분 원칙) 내에 두판을 먼저 딴 사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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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流人生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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