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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어차피 삶이라는 것은 부단히 나아지는 과정입니다. 부단히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인생을 배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삼귀의라고 해서 돌아가 의지하는 과정, 본래의 근원자리, 근원에 있는 불법승 삼보로 되돌아가서 의지하는 과정이다. 그 말은 본래의 완전했던 어떤 존재로 다시 되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런데 이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주로 많이 써먹었던 깨달음의 어떤 주제 방식이 뭐였냐 하면, 지금까지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고통을 통해서 성숙해가고, 괴로움을 통해서 깨달아가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곤 했습니다. 인류역사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죠.
다시 말해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었을 때,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세요.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것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고, 지금보다 많은 것을 삶에서 배우고 깨달아갈 수 있었습니다. 뭔가 괴로움이 전혀 없었던 사람 같으면, 역경이 하나도 없고 괴로움이 없이 살았던 사람 같으면, 뭔가를 새롭게 얻고 깨닫기가 어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지금까지의 방식을 보면 고통 속에서 삶을 배우는 과정 이었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때로는 극단으로 흘러서 부처님 당시에는 고행주의라고 해서 일부러 몸을 혹사시키고, 일부러 몸을 고행시키고, 이렇게 까지 할 정도로 극단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아주 고행주의가 많았습니다.
우리 불교의 방식도 보면 예전에 같으면 옛날에 여러분들이 불교교리도 잘 모르고, 또 부처님 가르침도 공부를 잘 못하고 했었을 때, 절에 가면 스님이 하라는 얘기가 주로 뭐였어요? 절하면 된다. 절하면 해결된다. 그런 얘기가 많았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생각해보면, 그냥 절에 가서 하는 게 절하는 것, 이것이 최고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삼천배도 하고, 천배도 하고, 저의 고3때는 친구들 시험 끝나고 나면 시험 뒤풀이로 모여가지고 불교 학생회 친구들이 모여서 절에 가서 밤새 철야정진을 하면서 3천배를 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자발적으로. 그런데 그때 3천배를 하면서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고 그러면서도 뭔가 참~ 그~ 성취감도 느끼고 행복감도 느끼고 그랬었던 때가 있었는데요.
불교의 수행도 지금까지를 가만히 살펴보면, 절 수행을 힘들게 하거나, 아니면 피나는 장좌불와를 눕지 않고 앉아서 좌선만 끊임없이 강조를 하거나, 철야정진을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아주 고행 위주의 어떤 방식들이 많이 보편적이었어요. 물론 지금에 와서 그것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 방식들이 우리들의 근기에 가장 맞았었던 겁니다. 많은 인류역사가 지금까지 깨달아오면서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지금까지, 불과 10년 2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까지의 삶은 우리가 그렇게 고행을 통해서 삶을 배워가는 과정, 그리고 그런 고통이 있고, 고행이 있었을 때, 그걸 통해서 깨닫기가 훨씬 수월한 어떤 근기를 가진 존재들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불과 10년 20년 30년 사이에 세상은 아주 놀랍게 바뀌고 있습니다. 놀랍게 바뀌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20년 전만해도 뭐~ 한 20년 30년 전만해도 인터넷 이런 게 어디 있었어요? 요즘에 ‘응답하라1994’ 나오는 거 보니까, 그때만 해도 인터넷 무슨무슨 이런 게 잘 없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많은 어떤 정보들이 오픈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런 정보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안도 많이 뚜렷하지 못했고, 불교 안에만 보더라도 명상 수행, 이런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잘 없었죠.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 세상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놀라운 어떤 지혜의 가르침이 있어도 그것이 전파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 어떤 시대적인 발전이 있지 않습니까? 과학이 발전하고 인터넷이 발전하고, 그러면서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가 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과학이 발전하니까 지금의 시기에 이렇게 이런 발전이 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깊은 어떤 차원에서 본다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어떤 그, 이렇게 아구가 딱딱 들어맞는 것처럼, 이 시대에 아주 정확히 필요하던 일들, 정확히 아주 필요했던 일들이 지금에 이렇게 착착 들어맞아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는 것이 놀라운 어떤 정신문명의 확대 같은 것들이 놀랍게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동서고금을 동양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명상 수행 웰빙, 뭐 이런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이런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이 세상이 물질세계가 놀랍게 변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상징하고 있어요. 무엇을 암시하고 있느냐하면, 물질세계가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동시에 정신세계가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과 물질은 항상 함께 가지 따로따로 떨어져서 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이 시대에 무슨 웰빙이니 무슨 온갖 명상수행이니, 뭐 이런 것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세계가 놀랍게 바뀌고 편해지고 하면 할수록 정신세계도 함께 확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은 곧 이 세상이 불과 10년 20년 사이에 몰라보게 바뀐 것처럼 사실은 이 전 인류의 어떤 정신적인 깨달음? 각성? 이런 것 또한 몰라보게 놀랍도록 빠르게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의 시대는 과거의 시대와는 달라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는데 옛날 방식대로만 남아 있을 수만 없는 것이죠. 옛날의 방식은 거울을 통해서만 성공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생각했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 했던 것이 성공을 하려면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뼈가 빠지는 아주 고통스러운 노력의 결실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당연한 진리로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시대는 그것이 맞았었고. 돈을 벌려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만 돈을 벌수 있는지 모른다. 성공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어떤 사고방식이 전체적으로 피해 입다 보니까 성공을 해도 아주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주목을 받았죠.
수능 시험을 보고 나도, 대학입시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항상 연례행사처럼, 아주 가난하고 때로는 부모도 없고, 학원 한번 다녀보지 않은 저 시골에, 교과서 밖에 공부 안한, 그런 어떤 자수성가한 학생이 1등 2등 한 것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아주 주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시대에는 고통을 통해서 성공하고, 어렵게 어렵게 성공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 시대적인 어떤 흐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요즘에 쉽게 말해서 뜨는 것도 옛날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자수성가해서 뜨는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요즘에는 이 언론이 확 발달을 하고, 정보가 공유가 되다보니까 모든 공유는 일시에 오픈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옛날처럼 이렇게 천천히, 차근차근 깨달아가는 이런 것들이 옛날에는 주된 방식이었더라면 이제는 몰로 깨닫는 방식. 한방에 깨닫는 상식이. 실제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깨달음에 대한 어떤 환상을 심어드리려고 하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시대가 함께 정신이 깨어나다 보니까, 이런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에너지의 공명이 그 어느 시기보다 빨라진 시기라는 겁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부해가기 때문에, 이건 깨어나기가 훨씬 쉬워지고 수월해진 시기인 것입니다. 이런 깨어남, 깨달음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옛날에는 공부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열심히 끈덕지게 앉는 것 밖에 없다. 옛날에는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시간이 성적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굳게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미련하게 의자에만 앉아 있는 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죠.
예를 들면 옛날에는, 그냥 예를 들어 영어 공부하는 방식이 옛날에는 그저 문법을 암기하고, 문법이라는 것도 사실 진짜 문법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옛날 처음 미국 영어가 우리나라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영어 쓰는 걸 이렇게 보니까, 특정한 어떤 법칙이 있는 거 같아서 하나하나 문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만들어내기 시작하다보니까 여러분 지금 한글 쓰는데 문법 맞추어 씁니까? 문법 공부하고 한글 쓰나요? 애기들 1살 2살 3살 애들 한글 문법 가르쳐주고서 가르치지 않는데도 저절로 한들을 깨치지 않습니까? 사실은 글이라는 것은 말이라는 것은 문법이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거기 그 사람들의 말 같은 거를 들어보고 그걸 하나하나 문법으로 맞추다보니까 큰 틀에 문법을 맞추는데 어긋나는 게 많거든요. 말이라는 건 어긋나는 게 많지 않습니까?
똑같은 말인데도 억양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도 되고 부정적인 의미도 되고, 온갖 다른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문법으로만 정해 놓으니까. 이런 문법이 있는데, 단 이럴 땐 이래야 되고, 저럴 땐 저래야 되고 하면서, 그 밑에 그 밑에 있는 온갖 문법들이 늘어나고, 그것들을 다 공부해야 되는 시대였어요.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려면 그 모든 어마어마한 문법을 다 공부해야지만 되는 시대.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걸 대게 어렵게 어렵게 밖에 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에는 어떻습니까? 지금 아이들 공부하는 거 보면, 그냥 무식하게 그렇게만 해서 되는 게 아니죠. 요즘에 제가 아이들 공부하는 이런 걸 보면 옛날에는 우리가 정말 어렵게 공부했던 것들은 지금은 어떻게 핵심을 정말 “왜 이런 것들을 우리는 몰랐었지?” 하는 것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 이렇게도 할 수 있었구나. 이렇게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구나.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어해 왔을까?” 그런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의 시대는 놀랍게도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이러는 어떤 시대입니다. 이것은 곧 뭐를 의미하느냐하면요, 우리가 지금까지 가졌던 어떤 시대적인 어떤 사고방식에서 굳게 우리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던 토대의 생각들, 이게 뭐였냐 하면요, 아까 말씀드린 겁니다. 힘들여서 성공할 수 있다. 힘들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들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손가락질 당하기 쉬웠고요, 고통을 통해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어디 나와서 한마디 할 때는 항상 “내가 옛날에 이러이러한 고통이 있었다. 그래서 딛고 일어나서 지금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항상 주 이슈가 되곤 했었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지금 제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그것 또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너무나도 아름다운 어떤 삶을 배워가는 중요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그것만을 요청하지 않는 시대다. 이제는요, 본질에 조금도 충실해야 되는 시대입니다. 본질은 삶의 근원적 본질은 뭐냐 하면요, 우리 인생은 본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삶은 본래가 행복한 것이고, 행복하게 해 나갈 수가 있고, 즐겁게 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역경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거나, 고통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깨달아가고 있는 시대에 놓여있습니다.
한 생각 바꿈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시대. 그런 것들을 깨달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라는 것이죠. 아까 말씀드린 고통을 통해서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그것은요, 사실은 그것이 법칙이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이 진리였던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우리가 그 생각들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 시대의 진리였던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때는 통용되었던 것이죠. 다시 말해서, 생각을 그렇게 하니까 그런 현실이 벌어졌던 겁니다. 좀 쉽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돈 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정말 힘들게 힘들게 벌수밖에 없는 거야.” 라는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쉽게 돈은 벌려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기초토대 자체가 내 마음 내면에서 일단 “힘든 거야”라고 규정지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힘들게 벌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언제나 이 세상은요, 생각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즉 생각이나 마음이나 감정을 어디에 집중적으로 오래도록 집중하고 투여 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현실이 됩니다. “내가 어디에 더 많이 집중해 있느냐?” 하는 것이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규정짓습니다. 내 마음 밑바탕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성공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내가 충분하다고 싶은, 스스로 타당하게 “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느끼기 전까지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법칙이 그래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내 생각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과거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어? 나는 잘못에 대한 과보를 받아도 싸.” 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과보를 끝까지 움켜쥘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우리는 죄의식에서 언제든 지금 이 자리에서 놓여날 수가 있고, 과거에 그 어떤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있는 존재들인데, 그 가능성에 대해서 우리는 닫고 살았었던 것이죠. “죄를 지은 사람은 인과응보를 받아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어.” 우리는 그렇게 비좁은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한 가지 틀에 갇혀서, 어떤 죄의식 하나에 갇혀서, 끝까지 그 단죄를 받아야지만, 지옥에 가서 몇 백 년에 지옥고를 받아야지만, 그것이 소멸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 마음은 그렇게 비좁지 않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라는 것이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고, 오픈이 되고 있는 시대란 말이죠.
그래서요, 내 마음 속에서 나에게 성공은 먼 미래의 일이야. 내가 성공하려면 아직 멀었어. 라는 그 생각, 굳게 믿어왔던 그 생각을 내려놔야 되는 겁니다. 완전.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긍정적인 삶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삶의 스토리가 내 인생에 쓰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만들어졌던 것이지, 실제 삶이 그래서 그런 것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라는 것이 어떤 그, 숙명론적인 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번 업을 지으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아야지만 없어지는, 그런 어떤 기계론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업이라는 것은 유연한 것이고, 업이라는 것은 소금물의 법칙을 말씀드린 것처럼, 매일 순간순간,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의식,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매 순간순간 닦여가는 것이 업입니다.
끊임없이 제행무상으로 변해가는 것이 업의 실체이지, 업이라는 것이 딱 사로잡혀 있어서 “그 업에 꼼짝달싹 못하는 존재가 되어라.” 이런 의미로 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일단은 우리 불자들은 업의 굴레에 사로잡혀서,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인생을 살아야 됩니까? 그러나 불교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한 생각, 아주 천년만념을 어둠속에 사로잡혀 있던 동굴이 그 동굴을 밝히는 데는 100년 천년이 필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냥 성냥 한번 탁! 키면 만년 천년 어두웠던 동굴도 일순간에 밝아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또한 마찬가지다. 단, 한 가지 경우를 빼고. 내 스스로 “그렇게 난 단 순간에 밝아질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내 스스로 “난 한순간 행복해질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내 스스로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어.” “나는 풍요로워질 수 없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이렇게 스스로 규정짓는 경우를 빼고라면 우리의 본질은 무한한 풍요로움, 무한한 행복감, 무한한 기쁨과 긍정과 아주 아름다움 속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토대생각들,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왔던, 힘들고 고된 역경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 삶의 부정성을 통해서만 긍정을 깨달을 수 있다고 굳게 여겨 왔던, 그것은 어느 정도의 근기까지의 필요한 것이지, 이제 지금의 시대에서는 그것을 내려놓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새롭게 나아가느냐? 이 고통을 통해서 삶을 깨달아갔었다면, 이제는 이 삶이라는 파장 속에서 골의 파장을 겪었다면 이제는 마루의 파장을 겪어야 할 시대입니다. 파장이 뒤바뀌는 시대라는 것이죠. 즉 부정성을 통해서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는 긍정성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긍정도 부정과 긍정을 나눠놓는 그런 양 극단의 부정이 아니고, 대긍정, 완전 무한 긍정으로서.
그것은 무엇을 얘기 하냐 하면요, 이와 같습니다. 이를테면.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을 통해서도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도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주 힘들여서, 젊었을 때 10대 30대 때 하기 싫은 일이지만 힘들여서 열심히 하다보면 나중에 가서 행복이 오겠지. 참고 일을 했다면 지금의 시대는 어때요? 지금의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까지 벌면서, 행복한 삶을 살면서, 경제력을 충분이 가지면서도 일을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시대 자체가 농업, 아니면 무슨 공업, 공장에서 일하는 거 아니면, 농사짓는 거 아니면 몇 가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았죠. 그러니까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자기답게 살라 라는 어떤 이야기가 별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시대였는데, 지금은 시대가 다양해졌지 않습니까?
다양성이 만발한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화엄경의 화엄세계처럼, 무한한 어떤 꽃들이 만발하는 세계처럼, 지금은 수백 수천만가지의 어마어마한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고, 동일한 직업이라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공하는 같은 직업에 성공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런 시대입니다. 지금 이를테면 본인이 좋아하는 여행을 떠나면서도 여행가라는 여행자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뭐 글을 써서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요즘에는 블로그 같은 거를 운영해가지고, 무슨 블로그 하나만 운영했는데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도 얻고 이럴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무엇이 되었든 자기다운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에 어떤 마음을 쏟았을 때,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시대가 열려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랬을 때는요, 그 일을 하는 것이 고행이 아닙니다. 즐거움이고 기쁨이고 열정이죠. 가장 행복한 경우는 뭐겠습니까? 가장 행복한 경우라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아주 열정과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을 가지고 그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 가장 행복한 경우겠죠. 그런데 사실은 더 근원적인 행복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 지금 하고 있는 이 삶을 통해서도, 이 직장에서도 충분히 그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즐거워하는 방식대로, 내가 행복해하는 방식대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대라는 겁니다. 지금은 옛날 사람들, 옛날 같으면 리더십이 일괄적이었잖아요. “이거 해.” 그러면 무조건 그냥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니까, 시키는 거 잘하면 진급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의 시대는 어떻습니까?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잘한다고 진급하는 시대가 아니죠. 성과금을 주고 이러는 것들이 뭐겠어요? 자기다운 방식으로 개성 있게 뭔가를 새롭게 하나씩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더 성과금을 주고 더 성장시키게 만들고 진급도 시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의 시대는 뭔가 스스로의 어떤 방식으로 자기다운 방식으로 어떤 해나갈 수 있는 어떤 그런 토대가 점점점 열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점점 열리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렇게 즐겁게 일을 하면 어떻습니까? 기쁘고 즐겁게 열정 넘치게 일을 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고 지치지가 않죠. 밤을 새워도, 원래 그러지 않습니까? 사장님이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직원들 하고 밤을 새웠는데 그 다음날 끄떡없이 왔다 갔다 해요. 돈이 들어오니까. 당장. 이 돈이 내게 되고 하니까. 또 주인 의식이 있으니까 그 다음날도 피곤함 없이 열심히 하는데도 눈이 땡끌땡끌 하단 말이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사람은 하룻밤만 새도 그 다음 날 지쳐서 죽을 거 같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제가 좋아서 산에 갈 때는 아무리 피곤하도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하고 지침이 없이 끊임없이 에너지가 넘치는데, 이게 수동적으로 뭔가를 시키고 한다면, 하기 싫은 걸 한다면, 거기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생기고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괴로움밖에 없겠죠. 그런데 한 50킬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걷는다는 그 현실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어떤 에너지 넘치고 열정 넘치는 일 될 수도 있고, 정말 고행인 죽지 못해 하는 이런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 스스로 이 시대에 이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이 열려야 됩니다.
지금의 이 다양성의 시대에서 그야말로 요즘에 블루오션 그래서 남들이 안하는 이런 것들을 찾으라고 하는데, 요즘엔 또 1인 블루오션 이래가지고 1인 기업도 있고요, 1인 출판 같은 것도 요즘에 성행하고 있고, 1인 사업가, 뭐 1인 쇼핑몰, 이런 것들도 많이 있죠. 개인 혼자서도 뭔가 어떤 한 가지에 일을 찾아서 자신의 어떤 열정을 꽃피울 수 있는 이런 시대라는 것이죠. 이런 어떤 시대적인 흐름에서 내가 그렇다면 나다운 방식으로, 에너지와 열정을,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꽃피우면서도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때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라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유행을 했었죠. ‘나를 정말 가슴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그 일을 했을 때 정말 마음 따듯해지고 행복해 지는 그 일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하나의 시대적인 화두였단 말이죠.
이러한 어떤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의 일환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책을 우연찮게 봤더니 이런 제목이 있데요. ‘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 100달러 미만의 돈으로 혼자서 성공한 사람들의 수없이 많은 경우를 저자가 모았고, 그중에 아주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 같은 것들을 50여 가지로 추려놨던. 저도 다 읽어본 건 아닌데 대충 보니까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런 시대,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런 시대에 이제 돌입을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이 시대적인 어떤 흐름과 발맞추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되느냐? 첫째 그동안에 우리의 토대 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과거에 내가 잘못했던 것에 대해서 “아, 한 생각에 진정한 참회를 통해서 내려놓을 수 있구나. 용서할 수 있구나. 과거의 잘못이 지금까지 질질질질 끌고 와서 나를 발목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첫째 먼저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과거가 나를 발목 잡는 일이 없어지니까. 결코 우리는 과거에 발목 잡혀서, 사로잡혀서,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꼼짝달싹 못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그런 얘기를 하는 과거의 어떤 방식은 그야말로 지금에 와서는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 증명이 된 시대입니다. 이젠 그렇게 두려움을 조장시키는 방식으로는 이 시대의 이 깨어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종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과거가 나를 발목잡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완전히 용서해주고, 나 자신이 과거가 있다면 무엇이든 다 참회를 하고, 나 자신을 완전히 존중해주고, 그 어떤 죄의식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완전히 허용하고,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주는 시대입니다.
옛날의 시대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별로 안 좋게 생각했어요. “그래, 너 잘났다.” 지 잘난 것처럼 여겼다는 거죠. 지금의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어떤 방편이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지 않으면, 이 세상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존중해주고, 지금 이대로, 남들과 다른, 남들보다 못하지만, 그러더라도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을 완전히 존중하고 허용해 줘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존중해주고 허용해주는 것이 바로 자기사랑입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분별없는 사랑이고 자비심입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비롭게 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흐름에 흐름을 탈 수가 없고, 깨어나기도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해주는 것이 첫 번째고요, 용서해주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과거의 토대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힘든, 어려움을 통해서만 성공한다? 이것은 꼭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우린 그 과정을 우리 인생에서 겪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구나.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아직도 우리에게 그런 어떤 아픔의 과정들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조건 우리 마음속에서 일부러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부러 내 마음속에서 고통을 겪어야지만 성숙할 수가 있어. 그 토대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된다. 그 부정성, 고통, 괴로움을 통해서 성장해야지만 된다는 그런 생각들을 내려놔 본다면, 온다면 받아들이고, 그러나 내가 먼저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그럼으로써 내 안에 있던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이 지금까지 제한되어 왔거든요. 내 생각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순간, 한 생각에 성공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 마음속에는 한방에 성공할 수는 없어. 그거는 윤리적으로도 안 맞아. 라고 굳게 믿어왔었단 말이죠. 쉽게 성공하는 거는 있을 수 없어. 나 같은 사람 이렇게 쉽게 성공해? 말도 안 되지.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죠.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됩니까? 여기서 제가 부자로 가는 것은 물론 물질적인 부자도 마찬가지지만, 한마음 돌이킴으로서, 마음 하나를 바꿈으로서, 그 자라에서 경제력하나 바꾸지 않고서도 무한한 부자로, 마음의 부자로, 한순간에 뒤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세계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렇게 내가 지금까지 나는 이러이러한 것들 때문에 안 된다고 스스로 제한하던 자기 한정의 관념들, 그런 것들을 내려놔야 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이런 것들을 거쳐야만 되고, 이런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면, 무한한 가능성이 내 앞에 시작될 수가 있습니다. 원래 여러분 깨달음이라는 것은요, 스님들이나 부처님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앉아계시다가, 새벽에 새벽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 그냥, 물론 그전에 닦아간 과정이 있었지만, 한 생각 탁! 깨쳤지 않습니까? 옛날 큰스님들 보면 무슨 벽돌을 뭐뭐하다가도 깨치고, 무슨 청소를 하다가도 깨치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 소식에 끝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우리 인생이 지금까지 그렇게 점차적으로 닦아 와서 이제 깨어나기 아주 수월한 시대에 돌입했다는 겁니다. 시대적으로도. 이 시대에 놀라운 발전이 그것을 암시해주고 있어요. 상징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마음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철저하게 장좌불와를 하는 스님들만 깨달을 수 있다. 큰스님들도 깨닫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우리 같은 중생들이 출가도 안한 우리들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나?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버려야 된단 말입니다. 그걸 내려놓는 것이 선행되어야지만, 그 토대위에서 이제는 터지는 그런 것이 우리 삶에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어떤 그전에 우리가 과거에 가져왔던 이런 낡은 생각들을 내려놓고 “나는 새롭게, 지금 이 순간에 뭔가 새롭게 변화될 수가 있는 존재구나.” 이런 생각이 있으면 이제 한 생각의 마음 바꾸는 것이 쉬워집니다. 먼저 마음에서 바뀌고 나면 현실세계는 놀랍게 빠른 속도로 바뀌어요. 그런데 우리가 현실이 늦게 바뀌는 이유는 뭐냐 하면 마음이 안 바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죽어도 안 바뀌기 때문에 물질이 현실이 안 바뀌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은 사실은 바꾸려면 한 생각에 바꿀 수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이 내 아들은 요러요러요러한 조건의 여자하고 결혼을 해야 된다. 이러이러이러한 여자하곤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고 마음속에 집착이 심했어요. 아니면 이정도 대학은 가야된다고 집착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 한 각을 내려놓기가, 어려운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어렵겠죠. 죽을 때까지도 못 내려놓을 겁니다. 내가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너는 절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거 사실은 놓으려면 한 생각 탁 놓으려면 금방 놓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어떤 사람은 100일 기도를 하고, 100기도를 3번 4번 하면서 매일 같이 천배를 100일 동안 하고, 한 3년 기도를 하고, 그러고 나야 겨우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서 이제 내가 마음을 둬야지. 이렇게 하단 말이죠. 옛날에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필요는 없단 말입니다. 한 생각, “그래, 자식의 인생은 그 자식의 인생이고, 그 아이의 인생에서 필요한 인생일 텐데, 그래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좋다.” “그래 나는 좋은 대학을 원했지만, 네가 굳이 좋은 대학 아니더라도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대학 안가도 좋고, 네가 원하는 과를 가도 좋다.” 그래 한 생각 탁 돌이키는 것은 사실 한생각의 문제거든요. 이것처럼, 이젠 기존의 관념에 틀어박혀 있던 이런 것들을 탁 내려놓게 되면, 우리 인생도 새롭게 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고,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변화 어떤 의식의 확장,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어떤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지, 이 관념에 사로잡혔던 것들만 내려놓게 되면 이제 쉽게 깨어나기가 쉬운 시대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과거를 내려놓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과거의 토대생각들,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그런 것들이 있어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토대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가 뭐냐 하면 내가 삶에서 정말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 일을 했을 때 내가 정말 행복했던 일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단순하게도, 힘든 사람, 밥 사 줄 때, 그 사람들이 내가 사준 밥을 맛있게 먹을 때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힘든 사람 고민 들어주면서 그 사람이 행복하게 되돌아 갈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드시 거창해야 될 필요만은 없는 것이죠. 내가 정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야 되요. 그럼 그 일을 하게 될 때는 에너지 낭비가 없습니다. 열정이 넘쳐요. 이게 바로 무위에서 오는 힘입니다.
유위적인 이것을 하면 이렇게 되겠지. 돈을 벌겠지. 뭘 하겠지. 이렇게 하면 거기서 성공하기 힘들죠. 무위로서 하면 열정을 가지고 하면, 열정이 넘칠 땐 어때요? 밤새도록 일을 해도 그 다음날 오히려 쌩쌩합니다. 에너지 고갈이 안 된다는 말이죠. 해도 한바가 없어서 그래요. 무위라서. 바라는 게 없고, 집착하는 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것 자체로 행복한 거예요. 그걸 하는 자체로. 그러니까 힘이 붙는 겁니다. 개인의 힘만 붙는 게 아니라, 무위에서는 우주 법계의 힘이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한 게 아니에요. 우주 법계의 힘으로서 흐름을 타고, 우주법계에 나는 단지 쓰이어지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너지 낭비가 없죠. 힘든 것이 없죠. 자연스럽게 하지만, 열정이 넘치면서도 에너지 고갈이 없고, 힘은 강력하게 붙습니다. 남들 한 달 해야 될 거, 이 사람은 하루 이틀만 해도 그 일을 끝낼 수 있단 말이죠.
내가 즐거워하고, 열정을 가지고 하니까. 중요한 것은요, 열정을 가지고 할 때, 거기에 나도 모르는 우주적인 어떤 놀라운 영감, 직관 같은 이런 힘이 붙습니다. 그 에머슨이라는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3일∼1882년 4월 27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이라는 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데요. ‘열정, 그것은 비록 다스리기는 어려운 존재이나, 가장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다.’ 우리가 어떤 내가 정말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에 푸욱 빠져서 열정을 느낄 때, 그러한 방식으로 어떤 삶을 저어나갈 때, 그때는 영감이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이죠. 뭔가 거기 하나가 되어서 푸욱 빠져있을 때는요,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영감들이 막 새롭게 샘솟습니다. 그냥 이제 비유를 든다면 제가 이렇게 썼던 글 들 중에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글들도 더러더러 있죠.
그럼 제가 머리로 쓴 글들, “이 글을 어느 주제로 이 글을 언제까지 써주세요.” 했을 때 그거를 별루 내가 큰 영감도 없는데 쓰게 됐을 때는 그 글은 두고두고 읽어도 좋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하나의 영감을 느끼고, 깨달음이 있고, 어떤 하나의 영감 같은 것들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쓰게 되었을 때, 제가 한 20분 집중한 거 같은데 한 2~3시간 시간이 확 지나갔는데, 나중에 그 글을 읽어보면 “아, 이거는 내가 쓴 글이 아니구나.” 라는 게 분명하구나. “내가 썼지만 나를 빌어서 쓰여진 것이구나.” “이것은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또 다른 내 에고가 쓴 것이 아니구나. 나의 아상이라는 이 겉 표면의 의식이 쓴 것이 아니구나.”
“나를 빌어서 어떤 영감, 직관 같은 것이 이 우주법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창의적인 작가라든가 이런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어떤 한 가지 깊이 몰입됐을 때, 나도 모르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이걸 할까? 말까? 고민 고민하다가 투자를 확대 할까 말까 고민 고민 하다가, 어느 순간 깊은 어떤 삼매에 빠져있거나, 집중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꿈속에서라든가, 아니면 잠깐 졸 때도 될 수 있고, 어떤 순간 갑자기 마음이 생각이 멎었을 때, 명상을 하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탁! 아이디어가 탁!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놀랍게 탁! 떠오르는 것들을 실천해 옮기면 대부분 성공을 한단 말이죠.
음악가들이 그런다 그럽니다. 정말 쉽게 말해서 대박을 친 음악들은 한 3분 만에 작곡했다 그러고, 5분 만에 작곡했다 그러고, 영감을 받아서, 그런 것들은 그야말로 시쳇말로 대박이 나는 것처럼, 인류의 위대한 발명가들 있지 않습니까? 발견한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한 그 순간에는 머리고 고민고민 하다가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신기하게도요, 놀라운 발견의 반 이상이 꿈속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럽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무의식에서, 더 깊은 의식에서, 겉에 드러난 표면 의식이, 생각에서 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무위로서 어떤 하나의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삼매에 빠졌을 때, 그 속에서 놀라운 지혜와 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지혜뿐 아니라, 이 시대를 밝히는 지혜가 그곳에서는 샘솟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라는 에고와 아상을 내려놓고, 흐름을 타고 가라. 이 우주적인 우주법계 흐름을 타고 가라고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다? 있는 그대로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찰하면서, ‘우주법계 흐름에 나를 내 맡기고 흘러가라.’ 라고 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첫 번째 깨달음이 흐름에 드는 자, 그 우주법계 흐름에 탁 들게 되면 힘들이지 않고, 흘러갈 수 있는 것이죠. 우주법계라는 흐름에. 그냥 내맡기고 흐르니까 얼마나 힘이 들 일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거슬러 가려고 하고, 이쪽으로 가려고만 애쓰고, 막 그러니까 노를 저어서 거슬러 가려고 하니까 얼마나 삶이 힘이 들겠습니까? 이제는 힘들여서만 고통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힘을 빼고, 흘러감으로서도, 내가 좋아하는 즐거워하는 일을 함으로서도, 긍정적인 어떤 밝고 긍정적인 무한한 긍정인 에너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충분히 깨어날 수 있고, 그런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그게 바로 어찌 보면 무분별 시대입니다. 좋고 나쁜 것을 뛰어넘는 무분별을 통해서. 긍정과 부정을 뛰어넘는 대긍정을 통해서 완전히 깨어날 수 있는 이런 시대라는 것을 아시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인생이 지금부터라고 뭔가 힘들고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 행복하고, 즐겁고, 박진감 넘치고, 설레고, 열정 넘치는 이런 또 무한 에너지를 가지고,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_()_
훌륭하신 분, 따뜻한 분,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_()_
인본 법우님... 그 노고와 열정과 따뜻한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많은 이들에게 많은 공부가 되고, 회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많은 공부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_()_
지금까지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고통을 통해서 성숙해가고, 괴로움을 통해서 깨달아가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그것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 방식들이 우리들의 근기에 가장 맞았었던 겁니다.
불교 안에만 보더라도 명상 수행, 이런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잘 없었죠.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놀라운 어떤 지혜의 가르침이 있어도 그것이 전파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했었죠.
반드시 어떤 역경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거나, 고통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생각 바꿈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것
그래서 첫째는 과거가 나를 발목잡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해주는 것이 첫 번째고요, 용서해주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과거의 토대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힘든, 어려움을 통해서만 성공한다? 이것은 꼭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무위에서는 우주 법계의 힘이 도와주게 됩니다.
좋고 나쁜 것을 뛰어넘는 무분별을 통해서. 긍정과 부정을 뛰어넘는 대긍정을 통해서 완전히 깨어날 수 있는 이런 시대라는 것을 아시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인생이 지금부터라고 뭔가 힘들고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 행복하고, 즐겁고, 박진감 넘치고, 설레고, 열정 넘치는 _()()()_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_()_
좋은글.감사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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