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라는 제목은 종교적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우리말로 제목을 붙이는데 적당한 표현이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드리는 말을 통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The martyred」라는 제목의 번역 문제입니다. 영어에서는 동사의 과거형에 「The」라는 정관사를 붙이면 좀 특이한 뜻의 표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묘미를 살려서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을 'The Martyred'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말로는 그 묘미를 살린 번역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이 작품의 한글 제목은 '순교자'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종교적’인 제목이 되어버린 아쉬움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순교자라는 제목을 생각하실 때 '순교'에서 '교(敎)'를 너무 강하게 인식하지 마시고, 그보다는 순(殉)이라는 말이 지닌 진솔한 뜻을 더 크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란? 종교를 따라 살다가 죽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 집니다. 순교자의 영어 제목
The Martyred에는 동사의 과거형에 정관사 The를 더한 것으로
The+형용사라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되면 형용사가 명사화 되어서 The Martyred 는 결과적인 의미로 순교자가 됩니다. 그러나 궂이 Martyr라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The Martyred라는
표현에는 Martyr라는 명사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뜻이 있음을 저자는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순교자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지만, Martyr라는 동사의 과거형에
The라는 정관사를 붙이면 The가 Martyr의 주어 역할을 하면서
수동의 개념이 되어 죽임 당한 자라는 뜻이됩니다. The Martyred는 The man who was martyred의 준말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The Martyred는 자신이 자청해서 어떤 이념이나 주의, 혹은 종교적인 진리를 위해서 죽었다기보다는, 자기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주변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교자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런 저자의 의도를 모르고 단순히 순교자라는 의미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전혀 엉뚱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기에 미리 밝혀 두고 있습니다.
주요 등장 인물을 공산군에게 끌려간14명중 살아남은 신 목사와 정신 이상이 된 한 목사,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대위라는 사람으로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인물,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출세와 체계의 안정을 위하여 사건을 날조하여 미화 시키려는 장 대령, 그리고 신목사의 친구 고 군목, 12명 순교자 가운데 박목사의
아들인 박 대위 등입니다.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6.25 당시 평양시내 14명의 목사가 공산당에게 잡혀가서
12명은 처형 당하고 2명은 살아왔는데 그 중 한명이 진실을 말 할 수 있는 신 목사이며,
다른 한사람인 한 목사는 정신 이상으로 인하여
사건을 진술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장 대령은 이 사건을 통하여 공산당의 잔인함을 선전하여, 민심을 반공으로 몰아가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공산당을 신앙의 적으로 몰아 반공세력을 강화 하는데 중심을 둡니다.
물론 장대령도 실제 사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알지만 사건을 그대로 나타내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대위는 장 대령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따르면서 개인적으로 진실을 밝혀 내고자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추적합니다.
과연 순국자나 순교자로 죽어간 사람들의 실제 사건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순교자이며 순국자인가!
살아 남은자들은 체계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서 사건 자체의 진실보다
날조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가! 작가는 이런 왜곡될 수 밖에 없는 진실들을 보면서 복선으로 깔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목사도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합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을 그대로 말하면 교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됩니다. 목사의 말을 믿고 따르던 교인들을 산산히 흩어져 버릴것이 뻔하고 교회는 존립 기반마저 무너진다는 사실을 신목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공산당에게 유리하도록하는 자료를 주게 되는 일이 되기도합니다.
사실12명의 순교자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앙을 따라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통앞에서 침묵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고 개처럼 죽어갔습니다. 살아나온 신목사와 한 목사가 사나이 답게 담대했습니다. 그런데 신 목사와 한 목사는 살아왔고, 나머지는 죽임 당했으니 이 사건을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신목사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배도자였고 죽은 목사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간 순교자로 미화 시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자신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는 생각을 고민 끝에 하게 되며, 교인들로 하여금 순교자들의 신앙을 따르도록 합니다. 또 주위로부터 그렇게 증언해 주도록 압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목사 자신은 전에 믿고 설교했던 그 하나님은 죽었으며, 자신과 상관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아직도 그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없으면 자신의 남은 생애가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속이고 속고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순국자니, 순교자니, 하는 말들은 누가 만든 말입니까? 살아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자 지도자라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왜곡된 사실들임을 알게될 때 어디까지 믿어야하고 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빛을 어두움이라 하고, 어두움을 빛이라고 해야 하는 종교인들의 세상,
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세상이라는 바울의 말씀이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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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e martyred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the martyrs도 또한 있었겠지요. 순교에 대한 바른 이해에 대해서 촉구하는 책이면서도, 또한 김은국씨 자신의 신앙을 묘사하는 것이 아닐 런 지...자신의 주변에 너무나 존경받고 있는 "순교자"레벨의 어떤 사람이 있는데...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는 식의 고발문학?....하지만, 그런
실망은, 순교라는 것 자체를 지나치게 로만틱하게 간주해 오다가 가지게 되는 실망일 수도...있쟎을까 하는 생각을 그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더랬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쟎을까 하고도 생각했구요. 일독을 저도 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 책이 번역된 모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