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복암(龜福庵)은 "형제봉" 입구에서 "북악산" 갈림길(형제봉 가는길)로 올라가는 길옆에 있다.
둘레길에서 왼쪽으로 큰 바위사이로 들어가는 묘한 입구다.
들어가서 되돌아보면 완쪽의 바위에는 "낙구"(洛龜)라는 각자(刻字)가 있고
오른쪽 바위에는 "하마"(河馬)라는 "각자"(刻字)가 있는데 이 두 글자는 "구복암"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마부도"(河馬負圖), "낙귀부서"(落龜負書)라는 중국의 고사(古史)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하마부도"(河馬負圖)는 옛날 중국(中國)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왔다는 쉰 다섯 점의 그림을 말하며,
"낙귀부서"(落龜負書)는 중국 낙수(洛水)의 신령한 거북(神龜)이 지고 나온 낙서(洛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초입 오른쪽에는 "부도"(浮屠)가 둘 있는데 왼쪽의 "부도"(浮屠)가 "법상종"(法相宗) 제2대 종정(宗正)이며
이곳 "구복암"을 만든 "홍해당 남궁규"의 부도(浮屠)다.
"법상종"(法相宗)은 불교 종파의 하나로 "진표율사"(眞表律师)를 종조(宗祖)로 삼는 불교 종단의 일종으로
1963년 제1대 종정(宗正)"전영동"(全英東)이 전북 금산사(金山寺)에서 창립하였다고 한다.
성모전(聖母殿) 아래에 있는 구복암을 세우게 된 내력이 있다.
홍해 "남궁 규" 대사(大師)는 삼각산에서 거북형상의 바위와 석벽위에 있는 공기돌바위를 찾으라는 神의 계시를 받고
경자년(1960년) 7월 삼각산에 올라 거북바위를 찾으니 보이지 않는데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 내려오다
큰 바위밑에서 비를 피하며 주위를 살피니 앞 절벽위의 족두리바위를 보게 되고
따라서 지금 비를 피하고 있는 곳이 찾고있는 바위인 것을 알고는 神의 인도에 감사하고
밤이슬을 피할 갈라진 바위틈을 찾아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니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지켜주며
같이 밤을 새우고 돌아가기를 매일 하드라.
주변을 정리하고 이곳에 성모님의 전당을 마련하고 석벽에 칠성각을 세워 "구복암"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성모전(聖母殿)
좌우에 있는 "주련"(柱聯)오래 된데다 일부 글자는 어려워 읽을 수가 없었다.
성모전(聖母殿)은 어떤 곳일지 공굼한데 사람이 없고 문이 닫혀있어 안은 볼 수가 없었다.
이 사진은 다른 분이 찍은 사진인데 언듯 보기로는 "불교"보다는 무속(巫俗)의 냄새가 난다.
다른 분이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써주셨는데 "후토지신'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겟다.
좌로부터 "산신할아버지" "후토지신할머니" "천황할머니"
"성모전"에서 좌측으로 마당같은 곳으로 나오면 이곳 "구복암"의 전경을 볼수있다.
저 바위를 "칠성각"(七星閣)바위라고 한다는데 "칠성각" 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6가지 사람 얼굴이 보인다고 한다.
암벽 제일 위에 각자(刻字)된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星君).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星君)은 글자 그대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기 위해 올라가는데 바위를 파서 만든 계단폭이 너무 좁아 조금 위험하다.
주변의 옛날 이름을 새겼을 법한 글자들은 모두 지웠다.
올라가는 도중 바위틈에 만들어 놓은 진열장안에 산신(山神)인듯한 상(像)이 있다.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星君)이란 각자(刻字)아래 태극문양이 있고 그아래에는 글자 그대로 "북두칠성"을 만들어 놨다.
그 옆에는 단기 四二九九 병오년 가을에 세움. 이라고 "각자"해 놓았다.
"단기" 4299년이면 "서기" 1966년이다.
맞은편에는 큰 바위가 이곳을 마주 보고 있다
내려와서 탑이 잇는 곳으로 가는데 돌담아래 한뼘 정도의 아주 작은 불상(佛像)이 있다.
특이하게 자연석을 올려놓아 지붕을 만들었다.
오층탑 옆에 있는 거북.
돌을 조각한 것은 아닌데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층석탑인데 별로 안정감은 없다.
내려오는데 나이드신 할머니께서 다른쪽에서 아주 천천히 올라오시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신다.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주련"에 대해 물어보니 잘 모르신단다.
나중에 다시 오면 찾아 놓겠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