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315) 무인도 (하)
집사 창준이가 심 대인의 눈을 찌를 듯이 검지로 삿대질하며
“우리가 이곳에서 백골이 될지도 모르는 판에도 네놈 머릿속에는 돈밖에 없지!”
“어어~~ 저, 저, 저놈이…!” 심 대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모래밭에 넘어져 기절했다.
그렇게 얌전하던 어린 집사가….
어둠살이 내려앉는 시커먼 숲속으로 창준이는 사라지고 심 대인과 홍매는 샘가에 남았다.
춥고 배고팠던 창준이는 야자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 돌로 깨 속살을 긁어 먹고 배를 채운 후
넝쿨과 나뭇잎으로 움막을 지어 잠을 잤다.
무인도에 아침 해가 떠올랐다.
창준이는 어슬렁어슬렁 우물가로 와서
죽은 듯이 껴안고 있는 심 대인과 그의 첩을 본체만체 물을 마시고 숲속 움막집으로 돌아갔다.
창준이 움막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홍매였다.
홍매는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심 대인이 자기를 살려주면 돌아가서 논 열 마지기를 주겠대요.”
홍매가 모깃소리만 하게 심 대인의 제안을 전하자 창준이 껄껄 웃었다.
홍매가 심 대인과 창준이 사이를 몇번이나 오갔지만 창준이는 심 대인의 모든 제안을 받는 족족 단칼에 거절했다.
심대인이 창준에게 도대체 원하는 게 무어냐고 물어왔다.
창준이 홍매 귀에 속삭였다.
홍매가 온몸을 달달 떨면서 심 대인에게 창준의 제안을 말하자 심 대인은 또다시 기절했다.
한참 만에 깨어난 심 대인이 곰곰이 생각했다.
배불뚝이 심 대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힘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었다.
야자나무에는 한자도 오를 수 없고, 움막집도 제 손으로는 지을 수 없었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인도에서는 창준이 주인이 되고 심 대인은 집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창준이 움막은 높은 곳에 앉았고 심 대인의 움막은 아래에 지어졌다.
심 대인의 좁고 허술한 움막에 비하면 창준의 움막은 고대광실이다.
“야, 이놈아! 빈 야자열매를 들고 샘에 가서 물 떠와.”
창준이 소리치자 심 대인이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나 등을 보이고 걸어가니 창준이
“네놈이 벙어리야?”
꿱! 하고 소리치자
“다녀오겠습니다, 나리.” 심 대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창준이는 바다로 나가 물개처럼 헤엄쳐 다니며 대왕조개·문어·소라를 잡아 올렸다.
홍매가 졸졸 따라다니며 그것들을 챙겼다.
창준이는 움막으로 돌아와 불을 만들었다.
홍매가 탄성을 터뜨렸다.
그날 저녁 불에 익힌 해산물을 먹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심 대인의 첩 홍매가 창준이 움막으로 올라온 것이다.
심 대인은 눈 뜨고 마누라를 뺏겼다.
아래쪽 거지 움막에서는 쪽박 찬 늙은 심 대인이 머리를 박고 울고 있는데
위쪽 널찍한 움막에서는 젊은 원앙 한쌍이 감창도 요란하게 폭풍이 몰아쳤다.
이곳이 창준이에게는 극락이다.
서너달이 지난 어느 날
창준이와 홍매가 멱을 감다가 깜짝 놀랐다.
멀리서 배 한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라 우수영 깃발이 펄럭였다.
류큐왕국에서 돌아가던 배 한척이 무인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전라 우수영에 알려준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창준이 벌벌 떨고 있는데 홍매가 침착하게 창준이 귀에 뭔가 속삭였다.
창준이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나리,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창준이 뛰어 올라오며 소리치고 그 뒤에 전라 우수영 수군들이 뒤따라왔다.
심 대인이 사태를 파악하고선 나무창을 들고
“네놈은 이제 내 손에 죽었다!” 창준이는 도망가고 심 대인은 뒤뚱거리며 따라갔다.
“좀 말려주세요~. 심 대인 나리께서 배가 난파돼 이 무인도에 표류해오자 실성해버렸어요.”
홍매가 애걸했다.
심 대인이 창준이와 홍매만 보면 죽이겠다고 난리 치자, 수군들이 포박해 승선시켰다.
홍매와 창준이는 심 대인 옆에서
“나리, 우리는 살아서 목포로 돌아갑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세요, 제발.”
홍매는 눈물을 훔쳤다.
심 대인은 포박당한 채 섬에서 당했던 일을 얘기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목포 객주로 돌아온 심 대인은 사랑방에 눕혀지고 의원이 쫓아오고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탕약
허해진 몸을 보하는 탕약 달이는 냄새가 객주를 채웠다.
“홍매야, 바른대로 말해다오. 섬에서 있었던 일을….”
홍매는 눈물을 쏟으며 심 대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악몽을 꾸신 거예요.”
심 대인은 진짜로 기가 빠져서 멍해졌다.
무인도에서도 그렇게 심 대인의 수족(?)이었던 창준이는 여전히 객주의 집사로 돌아왔고
홍매는 누워 지내는 심 대인 대신 객주의 주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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