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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변호사는 대우그룹의 불법 행위가 오랫동안 자행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오너인 김우중씨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대우는 특히 오너의 영향력이 기업 운영에 굉장히 강하게 작용했던 기업”이라며 “한 명의 리더(김우중)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고, 이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면서 계속 확대돼, 결국엔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대우그룹·대우전자 등의 천문학적 분식회계 주도 혐의로 김우중 회장은 2006년 징역 8년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8년 1월 특별사면 됐다. 이후 추징금은 연대책임이 있는 대우그룹 임원들의 것을 합쳐 23조원으로 증액됐지만 사실상 내지 않고 있다. 사실 그는 잃은 게 별로 없다. 김우중씨의 재산 대부분은 추징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특별사면으로 신체 구속도 불가능하다. 그가 잃은 거라곤 사실 대우그룹 회장 직함 정도다.
김주영 변호사는 “김우중씨는 ‘굉장히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생각의 한계가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김우중씨는 ‘정부가 (대우를) 살려줄 수 있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 대출 등을 해 줬으면 내가 더해서 대우가 괜찮았을 거다’ 같은 거지요. 자기는 책임도 다했고 옳았는데, 정부가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재판 과정에서 보니) 책임·원칙·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피해자에게조차 오너나 경영자로서의 책임의식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사법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그에게 “한국의 기업·재벌들이 왜 불법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인지”라는 기업범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그는 “결국 ‘차입’(대출과 투자유치 등 자금 확보)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고도성장을 원합니다. 성장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차입으로 해결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 시장과 경제 상황에서) 차입을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빽’입니다. 그런데 ‘빽’이 있어도 최소한의 차입요건·기준은 맞춰야겠지요. 외부에 보여줄 실적(성과) 말이지요. 그래서 실적 자료, 즉 재무제표를 차입에 유리하게끔 허위로 만드는 일을 벌이는 겁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일이 지속되면서 오너와 기업이 죄의식 같은 게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기업과 오너는 ‘내가 확장을 하면 다 잘된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해 왔습니다. 결국 ‘성장을 위해’라는 걸 내세워 ‘선한 목적으로 그렇게(분식 등 회계 부정을) 한 거다’란 식으로 생각해 온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그게 왜 비난받을 일이야’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지요.”
1997년 이후 김주영 변호사는 현대, LG, 삼성. 대우, 코오롱 등 굴지의 재벌과 그 오너, 경영진은 물론 김앤장 등 대형 로펌들과 안진회계법인 같은 대형 회계법인을 상대로 기업범죄 소송을 해왔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거인들이 그의 상대였다.
이들을 상대로 두렵진 않았을까. 그가 대우전자 분식회계 소송 당시 이야기를 해줬다. “대우전자 외부감사를 한 안진회계법인 변호인이 고위법관을 지낸 당시 잘나가던 전관 출신의 ○○○로펌 선배 변호사였습니다. 그와 법정 밖에서 마주치자, ‘그러게 왜 우리를 건드렸냐’고 하더군요. 이게 막 흥분한 상태에서 기분을 못 이겨 소리친 게 아니라 아주 차분하게 (내리깔 듯) 한 말이었지요. 그때 두려웠어요. 당시 그 두려움에 사실 저도 다른 전관 출신 변호사를 찾아 대우전자 소송뿐 아니라 맡고 있던 다른 소송까지 함께 맡기려고까지 했었죠. 만약 두려움 때문에 정말 그렇게 했다면 10건의 (기업범죄) 소송은 없었을 것이고, 이 책(개미들의 변호사) 역시 나오지 못했겠죠.”
“두려움은 결국 욕심 때문입니다. 변호사로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세상에 이름도 알리고 싶고, 또 돈에 대한 욕심까지 있다면 소송 때마다 두려움을 지고 갈 수밖에 없지요. 이 욕심을 버릴 수 있으면 그때부터, 저보다 더 크고 힘센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더군요.”
김 변호사는 ‘지더라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 즉 재판의 승패를 내려놓을 줄 알게 되면서 막강한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두려움이란 문제를 떨쳐 내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판사까지도 제가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 상태가 되면 오히려 “재벌 기업과 오너,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대형 로펌 등 상대방이 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개미들의 변호사’, 이 책은 10건의 소송을 통해 세상에 보탬이 되어 가는 한 변호사의 ‘성장 스토리’ 정도일 듯싶다”고 했다.
김주영 변호사는 대법관을 지낸 아버지(김상원·81)와 역시 변호사인 형(김주현·52) 등 뼈대 있는 삼부자 법조인 집안을 배경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변호사를 시작했다. 2003년 세계적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아시아의 스타 25인’으로 뽑았고, 2006년에는 다보스포럼이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했다. 소위 말하는 법조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스펙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사실 그도 처음부터 경제적 약자 편에 섰던 것은 아니다. 김앤장 출신임이 보여주듯 그 역시 잘나가는 여느 엘리트 변호사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런 그가 김앤장에 몸담은 지 햇수로 6년째이던 1997년 9월 김앤장을 나와 가시밭길 같은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에 합류했다. 그리고 만 17년, 대우와 현대, LG와 삼성, 코오롱 등 굴지의 재벌들과 김앤장 등 거대 로펌들을 상대로, 이들이 벌이고 눈감았던 기업범죄로 피해받고 아파하던 이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 줬다.
그는 또 17년이란 시간 동안 경제 법치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경제계와 법조계에 ‘경제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보탰다. ‘기업이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또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인터뷰 말미 그가 웃으며 말했다. “변호사는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받는 사람, 억울한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해 법률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해결해 주는 직업이잖아요. 누군가의 아픔을 씻어 줄 수 있는 변호사이기에 지금이 참 행복합니다.”
/ 조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