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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냅스터(Napster)'가 있었다. '그누텔라(Gnutella)'와 '카자(KaZaA)' 등도 이들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국내에선 '소리바다'와 '당나귀'가 많이 쓰였다. 이후 '×× 디스크' 식의 웹하드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과 자료를 공유하는 기술을 뜻하는 'P2P(Peer to Peer)' 얘기다. P2P 기술은 사용자와 사용자가 서로 자료를 주고받는다는 데서 유래했다. ‘피어’라는 말은 단순히 '사용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접속, 혹은 전송과 같은 연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역할이 구분돼야 하는데, P2P 서비스는 누구나 서버가 될 수 있고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자료를 받기 위해 다른 사용자의 컴퓨터에 연결하면 클라이언트가 되고, 누군가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가져갈 때는 서버 역할을 하는 식이다. '동등한 관계'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피어'가 기술의 이름이 된 까닭이다. 냅스터와 소리바다, 당나귀 등 많은 P2P 서비스가 탄생하고 사라졌다. 유료 웹하드 서비스 시대를 거쳐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P2P 서비스는 무엇일까. 바로 '비트토렌트(BitTorrent)'다. 비트토렌트는 미국의 천재 소프트웨어 개발자 브램 코헨 만들었다. 2001년 여름 최초로 토렌트 기술이 시연됐고, 이후 브램 코헨이 창립한 업체 '비트토렌트'가 운영해오고 있다. 비트토렌트라는 업체가 있긴 하지만, 사용에 제약이 있는 기술은 아니다. 비트토렌트 기술은 오픈소스로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뮤토렌트(μTorrent, uTorrent, 유토렌트)' 등 다양한 비트토렌트 클라이언트가 개발된 것은 바로 이 덕분이다. 비트토렌트 기술은 파일 전체를 공유하는 기존 P2P와 다르다. 2GB짜리 동영상 자료를 통째로 주고받는 기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똑같은 자료를 갖고 있는 전세계 비트토렌트 사용자의 컴퓨터를 통해 파일을 수많은 조각으로 나눠받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비트토렌트 기술이 기존 P2P 서비스와 뚜렷이 구별되는 대목이다. 비트토렌트를 이용하려면, 비트토렌트 동작 방식을 구현할 수 있는 설치형 비트토렌트 클라이언트를 이용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뮤토렌트'라는 응용프로그램이 많이 쓰인다. '비트토렌트' 응용프로그램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비트토렌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료의 정보를 담고 있는 토렌트 파일을 비트토렌트 클라이언트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이 파일을 '씨앗(Seed) 파일'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수십 킬로바이트(KB)에 불과할 정도로 용량이 작다. 파일 확장자는 '.torrent'다. 용량을 보면 알겠지만, 씨앗 파일은 최종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2GB짜리 동영상이 아니다. 다만, 그 자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씨앗 파일 속에는 공유하고자 하는 파일의 메타정보가 들어 있다. 자료의 이름이나 크기, 자료가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지도 씨앗 파일 속에 담긴 정보다. 씨앗 파일을 비트토렌트 클라이언트에서 실행하면, 씨앗 파일은 갖고 있는 정보를 통해 현재 그 자료를 갖고 있는 전세계 비트토렌트 사용자를 찾아준다. 누가 공유하고 있고, 누가 받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료를 공유하는 사용자가 많을수록, 자료를 내려받는 속도는 빨라진다. 비트토렌트에서 자료를 주는 쪽을 '시더(Seeder)', 받는 쪽을 '피어(Peer)' 라고 부른다. 피어는 시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파일을 내려받아 전체 파일의 일부분을 갖게 되면, 그 일부분이 필요한 다른 피어가 자료를 받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비트토렌트 사용자로부터 자료를 받아오는 과정은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자료는 4MB 정도의 조각으로 나뉜다. 자료를 내려받는 사용자는 전세계에서 똑같은 자료를 갖고 있는 다른 사용자로부터 조각 단위의 자료를 받아온다. 인기가 많은 자료라면, 전세계 수천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자료를 공유할 수도 있다. 수천 명으로부터 동시에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담이지만, 만화 [드래곤볼]에서 주인공 '손오공'이 지구인들로부터 기를 모아 '원기옥'을 쏘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비트토렌트의 장점은 기존 P2P 서비스와 비교해 극도로 높은 효율성을 갖도록 해주는 데 있다. 기존 P2P 서비스는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가져가기 위해 누군가 컴퓨터에 접속하면, 속도가 떨어진다. 접속하는 사용자가 많을수록 속도는 더 느려진다. 하지만 비트토렌트는 자료를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서로 자료의 조각을 동시에 공유하는 방식이므로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비트토렌트 세계에서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고, 그 어디에나 있다.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저장하는 중앙집중식 서버는 존재하지 않지만, 전세계 사용자가 모두 자료를 주고받는 서버인 동시에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비트토렌트라는 한 천재의 발명품은 인터넷에서 공유의 참맛과 효율적인 공유를 경험하도록 도와준 서비스다. 하지만 그늘은 있다. 바로 전세계 불법자료가 비트토렌트를 통해 떠돈다는 오명이다. 물론, 불법자료 공유 문제는 비단 비트토렌트만이 가진 문제가 아니라 모든 P2P 서비스가 해결해야 할 숙제지만. 2012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영화는 뭘까. [프로젝트 X]라는 이름의 틴에이저 영화다. 무려 872만건이나 비트토렌트를 통해 공유됐다. 2위는 톰 크루즈가 과격한 액션을 선보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 차지했다. 지난 1년 동안 850만여건이나 공유됐다고 한다. 어디 영화뿐일까. 비트토렌트를 통해 공유되는 자료는 영화와 음악, 게임, 윈도우즈 등 운영체제는 물론, 성인자료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비트토렌트 서비스가 불법 자료 공유의 온상이라고 비판받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비트토렌트 씨앗 파일 없이 바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기술도 널리 쓰이고 있다. 바로 '마그넷(Magnet)'이다. 마그넷은 일종의 인터넷 URL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트토렌트 클라이언트에 마그넷 주소를 입력하기만 하면, 씨앗 파일을 이용할 때와 똑같이 자료를 받을 수 있다. 마그넷은 문자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메신저 서비스나 평범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공유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계 미디어업계가 비트토렌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2005년 미국영화협회(MPAA)가 미국 전 지역의 P2P 서비스 사용자 300여명을 고소하는 등 강공을 펼치기도 했다. 2010년 스톡홀롬에서는 비트토렌트 씨앗 파일 공유 사이트 ‘더파이어릿베이’의 운영자가 1년 징역형을 받는 일도 있었다. '더파이어릿베이'에서 이뤄지는 불법 공유 행태를 보다못한 영화사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영화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1년에는 미국영화협회가 네덜란드의 반불법다운로드 단체 '브레인(BREIN)'과 손잡고 미국 안팎의 50여개 토렌트 공유 사이트를 폐쇄하는 일도 있었다. 비트토렌트를 둘러싼 '그늘'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밝은 면도 이야기해 보자. 비트토렌트는 공유를 이용해 합법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 중이다. 비트토렌트 위에서 꽃피는 '공유경제'에 관한 이야기다. 공유경제 이론은 미국에서 2008년 로런스 레식 하버드대학교 교수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동소비가 기본이 되는 경제방식을 뜻한다. 물품이나 서비스 등을 개인이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식으로 동작한다. 경기침체와 환경문제 등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자주 쓰이는 이 용어는 현재 비트토렌트 세계의 인터넷 공유경제를 통한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사례는 지난 2011년 등장한 영화 [터널 The Tunnel]이다. [터널]은 비트토렌트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배포된 호주 영화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터널]을 배급한 업체가 바로 초대형 영화업체 파라마운트픽처스라는 점이다.파라마운트픽처스는 [터널]을 비트토렌트를 통해 공개하며, 영화 프레임을 잘라 파는 시도를 했다. 영화 프레임은 정지된 영상의 한 장면을 뜻한다. [터널]의 상영 시간은 총 90여분. [터널]을 이루고 있는 전체 프레임은 13만5천개다. 13만5천개의 영화 프레임을 잘라 판다는 뜻으로 '135K 프로젝트'라는 이름도 붙였다. 영화 팬들이 [터널]의 프레임을 구입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종의 자발적인 기부다. 파라마운트픽처스는 영화를 비트토렌트를 통해 무료로 배포하고, 영화를 본 이들은 영화의 프레임을 돈을 주고 구입한다. 1프레임을 구입하려면 1달러를 내면 되고, 1500개 프레임(1분 분량)을 구입하려면 1천500달러를 내는 식이다. 영화를 만들어 극장을 통해 개봉하고, 극장의 수익으로 투자금액을 뽑아내는 기존의 영화 배급 사업과 동떨어진 사업 모델이다. 물론, [터널] 영화를 무료로 본 이들이 프레임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자발적인 기부로 영화업체의 수익을 충당하는 구조다. 파라마운트픽처스가 이 같은 시도를 한 까닭은 뭘까. 비트토렌트를 기술적으로 근절할 수 없다면, 이를 수익 모델로 바꿔보자는 시도였다. 인터넷 공유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영화 [터널]을 통해 실험한 셈이다. 게임 [마인크레프트]를 아는가. [마인크래프트]를 개발한 마르쿠스 노치 페르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인크래프트: 더 스토리 오브 모장]이 비트토렌트를 통해 무료로 배포되기도 했다. [마인크래프트: 더 스토리 오브 모장] 제작사는 영화를 무료로 배포하는 대신, DVD를 판매하는 등 사실상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수익을 내길 원했다. 영화를 보고 싶지만, 돈이 없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개했다는 것이 영화 제작사의 설명이다. [마인크래프트: 더 스토리 오브 모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개봉한 영화가 또 있다. 전세계에서 비트토렌트 씨앗 파일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웹사이트 '더파이어릿베이' 운영자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TPB AFK]다. 뜻을 풀어보면 이렇다. '더파이어릿베이는 부재중(The Pirate Bay Away From Keyboard)'. [TPB AFK]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통해 공유경제가 주는 이익을 실험했다. 더파이어릿베이 운영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답다. [TPB AFK]는 2013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초연되기도 했다. 비트토렌트를 불법 자료의 온상이라고 해서 단속하고 비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는데 모르는 척,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유료 콘텐츠가 비트토렌트를 떠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단속할 기술적인 한계는 분명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듯, 막을 수 없다면 활용하면 된다. MP3 공유가 불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음원 제공 사이트를 통해 돈을 내고 음악을 구입하는 방법이 자리잡았다. 비트토렌트라고 해서 이 같은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날이 일찍 찾아오기를 기대해보자. 발행2013.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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