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부경(府境) 중의 태산(泰山)' 부경중태산이라 일렀고, 지금은 '영남(嶺南) 알프스'라고도 불리 우는 재약산(載藥山)(주봉의 높이 1189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북쪽, 그리고 남쪽 세 방향으로 1000m 내외(內外)의 산봉우리가 병풍(屛風)처럼 둘러 서 있는 산중(山中)의 별구(別區)이다.
다만 서남쪽이 잘 열리어 단장천(丹長川)이 흘러가는데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릉천(武陵川), 고사천(姑射川), 범도천(泛棹川), 구천(九川)이 차례대로 합류(合流)하면서 재약산 아래에 이르러 옥류동천(玉流東川)과 금강서천(金剛西川)의 맑은 계곡과 맞닥뜨린다. 이러한 시냇물은 또한 면내(面內)의 중심을 관류(貫流)하면서 그 주변에 펼쳐진 크고 작은 들판에 젖줄의 구실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수미봉(須彌峯)과 향취봉(香炊峯)의 높은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울주군(蔚州郡) 상북면(上北面)과 양산군(梁山郡) 원동면(院洞面)과의 군계(郡界)를 이루었고, 서쪽에는 정각산(正覺山), 승학산(乘鶴山)을 분수령으로 하여 산내(山內), 산외(山外) 두 면(面)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자씨산(慈氏山), 만어산(萬魚山), 구천산(九天山), 금오산(金烏山), 신불산(神佛山) 등이 부채살처럼 이어 지면서 삼랑진읍과 양산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면(面)은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엽에 행정 구역을 정비할 때 밀양부(密陽府) 중동면(中東面)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중동면(中東面)은 지금의 산내(山內), 산외(山外), 단장(丹場)의 세 면(面)을 포괄한 행정구역으로 그 가운데 단장면(丹場面)에 해당하는 방리(坊里)로는 고예리(庫藝里)(일명 고사(姑射) 또는 고예(姑曳)), 영정사(靈井寺), 사촌리(沙村里), 단장리(丹場里) 등 4개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이 면으로 가경지(可耕地)를 찾아 이주한 농민들이 2, 3호(戶)씩 민호(民戶)가 경전(耕田)을 장만하여 정착함에 따라 점차 인구가 늘고 자연 촌락의 수도 늘어났다. 그러다가 1800년경에는 중동면(中東面)에서 단장면(丹場面)이 별도로 분할되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인구의 분포와 면세(面勢)가 확장되었는데 당시 단장면(丹場面)의 방리(坊里)로는 고예리(姑曳里), 평리(坪里), 재악사(載岳寺)(영정사(靈井寺)), 삼거리(三巨里), 구천리(九川里), 사연리(沙淵里), 범도연리(泛棹淵里), 소태동리(小太洞里), 진주동리(晉舟洞里), 무릉동리(武陵洞里), 노곡리(蘆谷里), 국화전리(菊花田里), 구동창리(舊東倉里)(元 丹場里), 회동리(會洞里), 덕성리(德城里), 구며리, 사촌리(沙村里), 법귀리(法貴里), 안포동리(安圃洞里), 사지리(沙旨里), 감물예리(甘勿禮里) 등 21개의 자연 촌락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원래의 4개 방리(坊里)는 그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약150년 동안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신규 촌락임을 알 수 있다.
1860년 경에는 군내 면방(面坊) 구역의 개편이 있었는데 천화면(穿火面)과 단장면(丹場面)으로 나눈 종래의 중동면(中東面)을 중초동(中初同), 중이동(中二同), 중삼동(中三同) 등 세 면(面)으로 다시 분리하여 단장면(丹場面)은 일시 중삼동면(中三同面)으로 명칭(名稱)이 바뀌기도 했다.
1880년 경에 중삼동면(中三同面)은 도로 단장면(丹場面)으로 환원되었고, 1906년(광무 10) 9월에 시행한 지방 행정) 구역 개편시(改編時)에는 관내 21개 방리(坊里)를 다시 통폐합하여 12개의 법정리(法定里)를 구성했는데 이 때 단장면 사무소를 단장리(丹場里)에다 신설하였다. 당시의 법정 행정 단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단장리(丹場里)--구동창리(舊東倉里), 단전리(丹田里)를 합하였다.
태룡리(台龍里)--소태동리(小台洞里), 연경(淵鏡), 회동리(會洞里)를 합하였다.
사연리(泗淵里)--동화전(桐花田), 사연(沙淵), 말방을 합하였다.
범도리(泛棹里)--범도연리(泛棹淵里), 아불(阿弗)을 합하였다.
구천리(九川里)--삼거리(三巨里), 구천리(仇川里), 재악사(載岳寺), 정승동(政丞洞)을 합하였다.
고례리(古禮里)--소월리(所月里), 평리(坪里), 고예리(姑曳里)를 합하였다.
국전리(菊田里)--진주동(晉舟洞), 국화전(菊花田)을 합하였다.
무릉리(武陵里)--지사동(智士洞), 노곡(蘆谷), 무릉동(武陵洞)을 합하였다.
감물리(甘勿里)--구감물니리(舊甘勿泥里)로 구기(舊基), 용소(龍沼)를 합하였다.
법흥리(法興里)--사지(沙旨), 상봉(上峯), 법산(法山)을 합하였다.
안법리(安法里)--안포동리(安圃洞里), 법귀리(法貴里)를 합하였다.
미촌리(美村里)--구며리(仇며里), 사촌리(沙村里)를 합하였다.
이 때에 덕성리(德城里:구서원리-舊書院里)는 밀양읍으로 이속(移屬)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시에는 양산군 하서면(下西面) 중선리의 일부가 구천리(九川里)에 편입되었으며, 그 후 단장면 사무소를 태룡리(台龍里)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한편 단장면이 빠져나온 중동면(中東面)은 천화면(穿火面)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일시 중초동면(中初同面), 중이동면(中二同面)으로 분리되었으며, 다시 천화면으로 폐합,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穿火山內와 穿火山外로 재차 분리되었고, 1918년에 행정 구역 명칭 개편에 따라 지금과 같이 산내면, 산외면이 되었다. 또 단장면은 신라 시대 이후 영정사(靈井寺)를 중심으로 상운암(上雲庵), 사자암(獅子庵), 안영암(安影庵), 금강암(金剛庵), 탁영당(濯纓堂), 반야암(般若庵) 등의 불교 유적이 산재했던 곳이며, 산수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고사농암대(古射籠岩臺), 범도연(泛棹淵), 승학동(丞鶴洞), 반계(盤溪)등 명승지에는 역대 명류들의 시문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면내에는 12개의 법정리(法定里)와 24개의 행정 부락이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