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우 바이오그라피 21)
[에피소드53]
나는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분명히 소명(召命)하셨다는 믿음이 굳게 일어났다. 그래서 연말까지만 신용회복위원회를 다니고 2005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목회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9월부터는 직장 일을 하는 틈틈이 성경과 신학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이런 결심을 하기 전까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날만큼 술을 많이 마셨다. 특히 2002년 대선 캠프에 있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하루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항상 머리에 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술을 먹는 장면만 상상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나 술 먹을 건수가 없는가? 연구하고 스폰서나 주머니가 넉넉한 술 상대를 찾아 다녔다.
마치 야인시절의 대원군처럼 “상갓집 개”가 아닌 “술집의 개”가 되었다. 어쩌다 푸짐한 공짜 술자리에 가게 되면 천하가 내 것이 된 것처럼 좋아했다.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Black Out)도 수없이 경험했다. 새벽에도 술을 찾을 만큼 알코올 의존이 심화되었다. 미래의 아무 계획도 희망도 없이 밤낮으로 술에 취해 살아가다보니 나는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정신과 몸이 말할 수 없이 피폐(疲弊)해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 주심으로 술을 끊게 해 주시고 꿈과 새 소망을 갖게 하셨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에피소드54]
어느 날 아침 나는 L이라는 20대 여성과 전화 상담 도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로 어머니와 남동생과 같이 어렵게 생활해 왔다. 고교를 졸업한 후 L은 백화점에서 3년 동안 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직장도 잃게 되었다. 퇴원한 후 생계를 위하여 직장을 구해 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식당 주방보조로 일하며 무거운 것을 들다가 인대가 늘어나 집에서 쉬게 되었다. L의 남동생은 대학생이었는데 레슬링 선수라고 하였다. 남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던 L은 취직이 여의치 않고, 생활에 압박이 오자 마침내 술집에 호스티스로 나가기 시작했다.
L은 나에게 술집에는 정말 나가기 싫지만 생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꿈과 희망이 창창한 젊은이인 L이 생활고 때문에 술집에까지 나가게 된 참담하고 슬픈 현실에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L을 위해 잠시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다음은 신용회복위원회에 근무할 때 상담한 대화 내용 중에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간추린 것이다. 채무자의 이름은 영문 이니셜로 표시했다.
S채무자: S씨는 슬하에 20세인 큰 딸과 고2인 둘째 딸을 두고 있으며 부인과 같이 개를 사육하며 생활을 꾸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딸이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밤 10시 쯤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인과 S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방송국도 찾아가고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딸을 찾을 수는 없었고, 이로 인해서 빚만 늘어갔다. 부인과 S씨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술을 먹게 되었고 나중에는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술에 중독이 되었다. 그러다가 부인은 우울증에 걸렸다. 그녀는 어느 날 돌아오지 않는 딸을 그리워하는 유서를 남긴 채 농약을 먹고 한 많은 목숨을 끊었다. 그동안 S씨의 큰 딸은 시집을 갔고, 개 사육두수는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 이제 5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남은 S씨는 아직도 딸을 포기하지 않고 가혹한 삶이지만 겨우겨우 버티면서 살아나가고 있다.
J채무자: 48년생인 J씨는 소년병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8년간 군 생활 후 중사로 제대했다. 군 생활 중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하여 딸 둘을 둠. 그러나 부인이 노름에 빠져 이혼을 함. 이혼 후 중동건설 현장에 갔다가 돌아와서 재혼함. 재혼 후 다시 중동에 감. 그러는 동안 첫째 아들이 심장 판막증에 걸려 많은 돈을 들여 치료하였으나 끝내 사망함. 둘째 아들도 심장판막증이 있으나 다행히 수술경과가 좋아 현재는 정상적으로 중학교에 다니고 있음. 고3인 딸이 하나 있음. 재혼한 부인은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채무를 짐. 현재 평촌에 있는 32평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고 살길이 막막해 짐. 마지막 남은 재산인 부동산 사무실 임대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해 합의 이혼함.
그 후 J씨는 충남 공주 마곡사 계곡에서 텐트생활도 하고 농가 빈집에서 자기도 함. 인근 공사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면서 식사를 해결하였음. 지금은 서울에서 작은 공사현장의 공사자재를 지키는 경비 일을 하면서 여인숙 생활을 함. 밤이면 그는 어린 두 자식 생각에 신경이 예민해져 불면증을 겪고 있음. 오랜 노동일로 인해 디스크 및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으며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 함.
Y채무자: 현재 X고속버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음. 직장암, 대장암에 걸려 직장을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하였음. 직장이 없는 관계로 소변을 하루에 12번을 보아야 함. 부인은 폐결핵을 앓고 있으며, 아들은 턱뼈가 자꾸 커지는 병에 걸려 있음. 현재는 수술이 불가능하고 더 나이가 들어야 가능하다고 함. 얼마 전에 대형교통사고가 나서 금전적인 큰 손실을 봄. 간호사인 딸은 혼사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보류하고 있음. 그것 때문에 간혹 울기도 하는 등 많이 상심해 있다고 함.
K채무자: 79년생인 채무자는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자인데 안동 인근 농촌에 살고 있음. 부친은 70세가 넘었는데 반신불수로 밭일을 겨우 하고 있음. 어머니는 딸 둘 아들 둘을 낳고 40대 초반에 사망함. 누나 둘도 집을 떠난 후로 소식이 끊어 짐. 90세인 할머니가 집에 계시는데 전신불수로 밥도 떠 먹여 드려야 함. 할머니는 집 떠난 손자 손녀들이 보고 싶어서 매일 운다고 한다. 부친은 면사무소에서 지급하는 극빈자 생활보조비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함. 죽으려고 해도 전신불수인 어머니를 남기고 죽기도 힘들다 함. 밖에서 일하다 돌아온 70세 부친과 할머니의 대화: 부친 “물은 먹은능교?” 할머니, “물도 묵었고 밥도 묵었다.” 부친 “밥이 어데 있었능교?....., 어메(어머니) 내가 죄가 많습니더!”
K채무자: 채무자의 부친은 경북XX읍에서 옷 수선 전문점을 하고 있음. 어머니도 낮에는 공공근로와 밤에는 소주방에서 술안주를 만들며 생활비를 벌고 있음. 아들 세 명이 있는데 채무자인 맏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카드사용을 남발하여 빚을 많이 지게 됨. 채무자는 착실한 부모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방만한 생활을 하면서 부모의 속을 썩임. 전기세 체납으로 한전에서 맏아들 집의 전기를 단전한다고 통보함. 부친은 아들의 인간개조를 위하여 한전에 차라리 전기를 끊으라고 함. 그러면서도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해 주려고 하는데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를 말리고 있음.
C채무자: 52년생으로서 현재 지방에서 전자대리점내 잡일을 하고 있음. 남편이 재무부 공무원이었는데 조기 퇴직하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음. 남편과 20년 전에 별거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음. 다리를 다쳐 걸음이 불편함. 자식들은 의사인 채무자의 부친이 도와주어 학업을 마치게 함. 본인은 혼자 외롭게 고향인 지방 모 읍에서 살아가고 있음. 처음에는 음악대학을 졸업한 전공을 살려 피아노 학원을 하였으나 경영이 안 되어 부채를 많이 지게 됨.
K채무자: 63년생임 카드사기로 10개월 감옥에 생활함. 감옥 있을 때 사형수와 한 방을 사용함. 사형수는 XX시청 공무원으로 부인이 “XXX의 증인” 신도인 것에 격분하여 집회 장소에 방화, 신자들 8명이 불에 타 죽고 부인은 수혈을 거부하여 사망함.
S채무자: 67년생인 채무자는 10여 년 전 집에 화재가 났을 때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가 발생함. 그 후로 약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관절염이 있는 부인이 파출부를 하여 겨우 살아가고 있음.
K채무자: 64년생 여성. 남편은 사업을 하다 빚을 지게 되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함. 그러나 부모가 거절하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에 충격을 받아 목을 매어 자살함. 현재 채무자는 초등 6학년, 4학년 남매가 있는 데 생활이 막연하다 함. 친정의 오빠가 도와주어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함.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