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학 출판기념회
심영희
강원문인협회(회장 남진원)에서 발행하는 강원문학 제56집 출판기념회와 문학상 시상식이 춘천시 서면에 위치한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 오디토리움"에서 개최되었다.
(제56집에 실린 수필입니다)
횡단보도에 그려진 화살표의 의미
심영희
이세상에 길이 없다면 사람은 물론 자동차, 비행기, 배, 심지어 짐승과 하찮은 벌레까지도 제대로 이동을 할 수 없다. 그 옛날 선조들이 한복에 짚신을 신고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 여러 차례 고쳐지면서 신작로가 생기고 하늘길이 열리고 뱃길도 열려서 현시대에 이렇게 편안하고 자유롭게 길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동차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자동차는 찻길이 아니면 갈 수 없다. 인도로 차가 가면 교통 위반이 되고, 사고가 나서 인도로 올라가면 인도로 돌진했다고 하지 인도로 갔다고 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도로라는 명백한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동차가 다녀야 하는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사람들이 다녀야 하는 길은 아직도 잘 모르는지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자가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잘 지키지 않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자기가 운전을 하고 갈 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모두 깜짝 놀란다. 거의 사고에 직면한 상태라면 자동차 창문을 열고 큰소리를 치거나 심하면 욕설까지 펴 붓는다.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나도 거의 운전자 책임이라고 하니 운전자들이 날을 세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횡단보도는 왜 있는 것일까, 횡단보도가 왜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횡단보도는 즉 자동차와 사람들이 적당한 시간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자동차가 가고 다음에는 사람들이 건너고 질서를 지키자는 의미다. 그런데 이 짧은 몇 초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무단횡단을 하거나 신호가 미처 바뀌기도 전에 도로로 진입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교통 위반이고 사고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나는 늘 불쾌감을 느낀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길 바닥에 그려 놓은 화살표를 지켜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화살표는 도로를 예뻐 보이라고 그려 놓은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보고 다니라고 그려 놓은 것도 아니다. 화살표는 횡단보도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서로 우측통행을 해서 질서를 지키고 안전하게 길을 건너라고 그려놓았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건너는데, 더 웃기는 것은 어쩌면 지키는 사람보다 안 지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반드시 화살표를 따라 건너며 다른 보행자는 얼마나 질서를 지키고 안 지키는지 비교해 본다. 그 결과는 앞에 말한 대로 안 지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결론이다. 모두 오른쪽으로 다니면 부딪히지 않을 것을 남의 길로 들어서서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손에 물건을 들었을 때는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는 손에 들었던 물건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다.
반대쪽 사람이 내가 가는 쪽으로 오면 나는 절대로 비켜주지 않는다. 가끔 다른 사람과 몸이나 물건이 부딪히면 화살표 대로 다니라고 꼭 한마디 한다. 이 오른쪽 통행은 짧은 거리지만 화살표에는 큰 의미가 있다. 횡단보도 왼쪽 앞에는 달리던 차가 모두 정차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제동거리가 길어져 횡단보도에 닿았을 떼 오른쪽으로 건너는 사람은 그만큼의 여유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들도 자동차 멈춤을 보고 조심해서 길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는 거의 두 개로 그어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 입구에는 모두 화살표가 두 개씩 그려져 있는데, 이 화살표를 잘 지켜 횡단보도를 건너 다니는 것은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다. 심지어는 요즈음 노인들이 교통갬페인을 한다고 교육을 받고 오면서 대여섯 명이 우르르 왼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것을 보니 괜히 화가 난다. 횡단보도 건너는 교육은 받지 않았나 보다.
얼마전에는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오른쪽에서 서 있는데 반대쪽에서 신호 바뀔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새를 빠져나와 횡단보도에 켜진 빨간 불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오는 사람이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빨간 불인데 왜 건너오세요” 하고 소리를 쳤더니 “예, 그냥 건너는 거요" 하는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 할아버지 모자와 가슴에는 무슨 훈장인지 단체 표시인지 주렁주렁 달고 행사에 참석했다 오는 모양인데 횡단보도는 빨간 불일 때 건너라고 누구도 교육시키지 않았을 텐데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신호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그 할아버지를 막지 못하고 무심히 보고만 있다가 내가 빨간 불인데 왜 건너시냐고 소리치자 오히려 내가 신기한 듯 수근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그런 사람은 누군가가 자꾸 그런 행동을 지적해 주어야 그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에 그려진 화살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측통행으로 안전하게 건너 다녀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
횡단보도에 그려진 화살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노인들 뿐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화살표에 대한 개념이 없다. 몇 년 전에는 공지천 공원 부근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에티오피아 방향으로 건너는 사람은 나 혼자이고 반대편에서는 젊은 남녀가 조그만 손수레를 밀고 화살표 반대편에서 건너온다. 자기네 생각에는 자기네는 수레를 밀고 가니 내가 비켜 주리라 생각했는데 당연히 나는 비키지 않고 내 길을 고수해 건너니 서로 어깨가 부딪쳤다.
알아들을만한 젊은이들이라 “화살표 대로 다닙시다” 했더니 깜짝 놀라 얼른 반대편으로 간다. 화살표 대로 건너 자는 내 말에 즉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공지천에 꽃 심는 것을 보러 나온 공무원인 것 같았다. 조그만 빈 수레를 둘이 잡고 밀면서 얘기를 주고받던 그 사람들은 횡단보도에 그려진 화살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습관이 되어 생각없이 아무 쪽이나 다니는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고쳐질 것인데.
약 력(심영희)
l 1995년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
l 제20회 동포문학상
l 수필집 「아직은 마흔아홉」
l 한국수필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