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uddhod?na:淨飯王)와 마야부인(M?y?:摩耶)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기원전 623년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uddhod?na:淨飯王)와 마야부인(M?y?:摩耶) 사이에서 왕자로태어났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석가모니는 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석가 족의 성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본래 태자로 태어났으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나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고 이를 극복하고자 29세에 출가하게 된다. 그는 고행에 들어가 6년간 수행하였으며, 35세에 보리수 밑에서 크게 깨달아 부처가 되니 이것이 불교의 시작이다.
석가모니는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는 숱한 전설과 관련이 깊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도솔천에서 수행하는 보살이었다. 지상의 많은 세월 중 사람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은 때가 되자 도솔천의 여러 신들이 그에게 인간세계로 내려가 부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보살은 자기가 태어날 시간과 땅, 가문, 어머니까지 결정한다. 그리고 기원전 623년, 마침내 인도 북부에 있는 카필라바스투의 석가 족 태자로 태어난 것이다.
왕과 왕비는 금욕생활을 해오던 터라 왕비의 회임은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인 마야 왕비는 하얀 코끼리가 자신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에 대해 점술가들은 아이가 장차 전륜성왕이나 부처가 될 거라고 해몽한다. 열 달 후 왕비는 아이를 낳기 위하여 친정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인도와 네팔의 국경 지역)에서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다. 이때 인드라와 브라흐마라는 신이 아이를 씻어주었으며, 아이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내디디며 “두려움과 공포를 완전히 벗어난 사자처럼 질병과 죽음을 정복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왕이 될 수업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29세에 출가를 한다. 그가 출가하게 된 것은 윤회에 따르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성문 밖으로 나간 그는 첫 번째 동문에서 늙고 병들어 천대받는 노인을 본다. 두 번째로 남문에서는 병들어 죽음에 이른 병자를 만나며, 세 번째 서문에서는 화장터로 가는 장례 행렬을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북문에서는 탁발승을 만난다. 그 탁발승은 비록 밥을 얻어먹는 처지지만 아무런 집착도 증오도 없는, 마음의 평정을 간직한 수도자였다. 늙음과 질병, 죽음을 직접 본 왕자는 마침내 탁발승처럼 출가를 하니 그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그는 여러 스승들을 찾아갔지만 원하는 스승을 찾지 못하였고 할 수 없이 스스로 구도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에는 요가와 같은 극도의 수련법이 유행하여, 석가모니도 6년간의 고행 뒤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부처의 특징인 32상과 80종호가 거의 사라질 정도였다.
이때 나타나 깨달음에 이르게 한 것은 인드라 신이다. 인드라 신은 석가모니 앞에서 비파를 연주하여, 비파가 좋은 소리를 내려면 줄이 적당히 당겨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극단적인 고행이 결코 바른길이 아님을 암시한 것이다.
이리하여 석가모니는 고행을 끝내고, 건강과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바라나시 근처의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을 계속하다가 깨달음을 이루어 마침내 부처가 된 것이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기까지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가 되었으므로 석가모니는 화신불에 해당하며, 불교의 창시자이기에 불상으로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