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대 매표소 어차 타는 곳
황금용머리의 자동차가 끌고 가던 수원화성열차가 어차로 변신을 했다. 어차(御車)는 임금님의 차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임금님이 탔던 모양의 자동차로 그 분위기쇄신을 꾀한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값이면 ‘화성열차’보다는 ‘어차’가 더 화성관광의 기분을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화성열차가 성곽을 따라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기회가 없었다고 할까! 수원에 살아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타봐야겠다며, 마음먹고 있었다.
10일 오전10시 30분쯤 되었을 때다. 팔달문앞 버스정류장, 한눈에 보아도 어차다.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어차는 벌써 팔달문을 돌아와 지동교 쪽으로 들어가고, 관리자가 자동차 출입을 막기 위해 입구의 문을 닫고 있다. 예감한 대로 어차가 오늘부터 이 길을 다니게 되어 첫 운행을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시험운행을 거쳐 오늘부터 손님들을 태운다며, 10월까지는 아마 무료운행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다.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쨌거나 오늘은 무료인 것이 틀림없다. 수원화성의 어차운행 첫날, 팔달문과 함께 왕이 만든 시장으로 정조대왕의 시장경제활성화 의지가 담긴 이곳 코스가 생긴 첫날, 생각하면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타고 내릴 수 없으니 팔달산이나 연무대의 매표소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오전 일을 마치고 산책도 할 겸, 지동교를 건너 수원천을 따라 매향교에서 창룡대로를 걸어 연무대로 갔다. 마침 매표소 앞길에 어차가 손님들을 태우고 서있다. 무료일지라도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차는 매진이라며 앞으로 1시간30분 뒤에 있을 차를 타라고 한다. 운행간격은 25분내지 35분이지만 그만큼 대기자가 많이 밀려있다는 것이다. 한 차에 탑승인원은 40명, 코스는 종전의 팔달산에서 신설, 팔달문을 내려와 지동교를 돌아, 매향교에서 창룡대로를 거쳐 연무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1시간 30분을 더 기다리라니! 한자리쯤 끼어가도 되지 않을까싶었다. 매표소에 얘기하니 1석이 남았다며 표를 준다. 맨 뒤 칸 한쪽, 그래도 기분은 싫지 않았다. 승하차 할 때는 출입문을 기사님이 완전 열고 닫는다. 좌석 줄마다 출입문이 있으며, 그 문에 새겨진 둥글한 황금빛 용무늬가 용포에 새겨진 바로 그런 왕의 표시다.
용포무늬 어차를 탔으니 왕이 된 기분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차의 빛깔도 밤색의 용포를 떠올리게 하며, 차에 앉아 천장을 보면 황금색 바탕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왕의 금침 같다. 이런 용포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님들을 맞는 것은 왕으로 모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어차 자체가 왕의 차이므로 이 차를 탄 사람이라면 그 순간 왕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싶었다.
시간이 되자 출입문이 닫히며 출발을 알리는 가운데 팔달산과 팔달문을 돌아올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시작된다. 그리고 좌우측으로 보이는 명소들을 소개하며 흔들흔들 흔들리는 그 맛이 황홀지경이다. 나름대로 왕이 된 기분이 그럴 것이다. 연무대를 출발하여 방화수류정과 용지, 광교산 창성사지에서 옮겨온 진각국사탑비각과 수원천 버들의 유래, 그곳 다리를 건너 다시 유턴하여 화홍문을 지난다. 그때 아쉬운 것은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있는 그곳에서 잠시 정차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정지된 상태에서 2-3분만이라도 준다면 수원의 알짜배기 명소를 담아갈 수 있지 않을까싶었다.
방화수류정을 지나며,
어차는 화홍문을 지나 용지교에서 좌측으로 돌아 장안문로터리를 건너 장안공원이다. 그리고 화서문 언덕, 서북각루 아래 하얗게 핀 억새밭이 장관이다. 그때 앞자리에서 흐느끼듯 감탄사가 나오고, 그런 학부모에게 어디서 왔는가 묻자 안산에서 왔단다. 초등학생 11명과 학부모 6명이, 역사탐방 동아리로 매주 월요일이면 학교에 얘기하고 자율학습을 한단다. 재수 좋게 무료 어차를 타게 되었다며 아주 흐뭇해한다. 그렇게 팔달산을 올라 성신사 앞을 지나 어차는 유턴해와 매표소 앞에 정차한다.
여기서 다시 팔달문으로 내려가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출발 전에 표 검사를 하더니 왕복표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고 한다. 별수 없이 쫓겨 내리고 보니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팔달문 가는 것만 목적이라면 그냥 걸어도 좋겠지만 어차의 시승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4시차를 기다렸다 타고 내려온다. 그런데 산을 내려가는 찻길이 갈지자다. 꼬불꼬불 어떻게 돌아서 내려갈까 했지만 어차는 객차 3칸을 달고도 무사히 내려와 행궁주차장을 지난다. 나중에 확인해보았지만 급커브 길에도 긴 열차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은 트레일러의 앞바퀴 간격이 특수 제작되어 좁았기 때문이다.
차 안은 왕의 금침 같다.
그리고 곧 팔달문을 돌아 지동교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어차는 멈춰서고, 지동교에서 좌회전을 못하고 있다.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해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야 차를 빼고 돌 수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남수문 옆길에 주차된 승용차,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서있어야 했다. 그리고 남수교를 건너려니 이번에는 또 오토바이 한 대가 서있다. 어쨌거나 첫 운행길이다보니 청색 전용차선이 그려져 있지만 미개척지 그것이었다.
매향교를 지나 연무대까지 가는 동안 옆에 앉은 청년과 얘기했다. 의자 앞에 그려진 한,미,중,일 국기를 바라보면서도 그게 뭔가 했는데 이어폰을 꽂아 각국언어로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왔는가 물으니 호남 광주에서 왔다며, 친구 하나가 수원에 산단다. 그래서 그 친구와 광주에서 올라온 3명의 친구, 모두 4명이 화성문화제에 병졸로 깃발 들고 참여했단다. 시민참여체험단으로 교육도 받았다며,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이런 역사적이고 큰 행사에 일원이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고 각별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행사 때 왕의 여동생 역을 했던 여배우 이안과 사진도 같이 찍었다는 등, 동원된 말의 숫자며, 인원, 어떤 친구는 안양서부터 수원까지 왔다는 것 등, 서로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