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라이락 향기 같은
효원 박숙희
그 사람을 다시 만난 때는 대학을 졸업한지 사십여년이 지난 후었다
그 무렵 나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많이 허둥대며 살아갈 희망 조차 잃고 있었다
많은 분들의 진정어린 위로도 듣기 싫었고 모든 일이 조심스러워 차라리 나와 내 남편을 모르는
먼 나라로 이민까지 생각할 정도로 마음은 상처 투성이였고 그런 상태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는 이민간 친구들도 여러명 있고 친정 언니도 계셔서 여러번 가본 곳이기에 갑작스런 이민을
생각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열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이었지만 오직 나의 슬픔으로
가득 차서 잠 들었다가 깨면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뉴욕에 도착했다
언니 집에 머물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을 무렵 동창들과도 연락이 되어 만남을 가졌다
여고 친구들 대학 친구들 교회 친구들 중에는 뉴욕으로 이민간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눈물과 웃음으로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 할 때면 우리의 이야기 중심에는 늘 학창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 삶의 애환을 말할 때는 눈물 짓다가도 학창시절 이야기를 할때는 저마다
이십대로 돌아가 즐겁기만 했다 친구들 중에서도 대학 시절 절친 이었던 K 와의 만남은 나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연애 시절부터 남편을 잘 아는 친구였기에 자기의 슬픔처럼 슬퍼했다
둘이서 허드슨 강가를 거닐기도 하고 맨허턴을 찾으며 그녀의 애환어린 이민 생활을 듣기도 하고
남편의 병상이야기 또 내가 이민 오고 싶다는 의논도 하며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전화벨이 울리고 언니는 나에게 전화기를 넘겨준다
유선 너머로 들려오는 남성의 음성을 들으며 자기가 누구라고 말했을 때 너무도 놀래서 할 말을 잊었다
그는 대학 시절 주말이면 함께 등산을 다니던 팀원중 한 사람 Y 였고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신부님으로
계신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나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내 친구 K로 부터 그간의 내 소식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산 위에 오르면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산 위 정상에 올라 쉬면서 남학생들이 해주던 버너의 밥을 공주처럼 받아 먹으며 즐거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식 후에 그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던 팝송이나 우리 가곡을 여자
친구들은 많이 좋아했지만 누구와도 개인적인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산 할 때는 미끄러운 곳에서 가끔씩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지만 숲 속의 바람과 땀 흘림에 도취되어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사람에 대한 별다른 호기심은 없었다
그렇게 끝났던 인연을 슬픔 중에 떠났던 먼 나라에서 만나니 많이 놀랍고 반가웠다
더구나 미국에서 백인은 물론 이민자들의 삶 속에 신부님이 되어 목회를 한다는 사실은 존경스러웠다
마침 뉴욕으로 출장을 올 기회가 있다면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만나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조금은 멋적고 부끄러움도 생겼지만 옛 친구들이 모인다니 모처럼 밝은 의상과 몸짓으로 만남을 가졌다
우리들은 대학시절 이야기와 등산 다니던 이야기를 했고 그는 신앙심 마저 흔들린 나와 친구들에게 인생과
신의 섭리등 우리를 위로하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와의 대화는 평안을 주었고 추억에 잠기며 즐거웠다
옛 사람과의 만남은 추억을 공유한 탓 인지 빠르게 편한 사이가 되었고 때로 산책을 하면서도 소년처럼 순수한
몸짓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으로 깊은 슬픔의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민 생활에 외롭던 친구들과 합류하며 우리 모두는 즐거워했고 여행을 떠나자는 공감으로
아프리카 여행까지 함께 떠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복한 시간으로 이어졌다
그의 친구 한명과 내 친구 세명 모두 여섯명이 합류해서 떠났던 아프리카 여행의 낭만과 즐거웠던 시간들은
잊을 수 없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그는 우리들의 리더였고 이미 아프리카 자유여행을 두번이나 해본 경험이
있기에 모든 절차를 상상 이상으로 편하게 이끌어 주었다 여행 중에도 우리들은 동요에서 팝송까지 많은
노래를 부르며 감동으로 울먹이기도 했다 우리들이 잊어버린 노래의 가사조차 모두 다 기억하며 선창하며
아이들 마냥 웃고 또 웃으며 아프리카의 가난도 보고 저녁 노을도 보며 흥분으로 낭만에 빠져들었다
남아공의 유럽같은 높은 건물도 보고 흑인보다 많은 백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슬픈 전설을 들을 때 또한 그들의 가난과 에이즈 굶주림을 보며 부끄러워 회개의 기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울었다 아프리카 현지의 작은 한국 교회도 방문하고 성당도 방문하며 현지인들과
기도와 예배로 경건의 시간도 함께 하며 점차 그에게서 사랑의 향기가 느껴졌다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을 모두 품은듯한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친구들의 만류로 이민을 꿈 꾸며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미국 이민은 접기로 결정을 했다
서울에 다시온 후로도 그는 국제 전화를 통해서 내 마음을 따듯하게 위로해 주었고 감사를 알게 해 주었다
하루의 일과를 보고 하기도 하고 가끔은 믿음에 대한 나의 교만함을 일깨워 주는 대화도 하며 한동안
잊혀졌던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사람 Y에게 나는 상처후에 피어나는 꽃이 되고 있었다
따듯한 봄날에 보랏빛으로 작은 꽃잎들이 모여 피어서 멀리까지 은은한 향기를 전해주는 라이락 꽃
어느날 꽃 잎이 떨어져 허무해 질지언정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미래의 꿈을 말할때는 행복했다
가까운 곳에서 얼굴 마주하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 보다는 태평양 너머로 멀리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사랑의 만족을 느끼는 아이로니가 그와 내 안에 있었기에 편안하고 감미로웠다
불꽃 처럼 타서 재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원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다
그는 옛 친구지만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었고 나 또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슬픔이 여전히 가득 했기에
그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영육이 불 타는 인간적인 사랑은 불가능 했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따듯한 봄 날 멀리서 풍겨 오는 보랏빛 라이락 향기 같은 사랑을 꿈 꾸었나 보다 .
그는 그렇게 따사로운 향기로 오래도록 지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고 나는 사랑에 빠져서 큰 슬픔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수 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남은 날들의 꿈을 이야기하며
전화카드가 끝나는 시간 까지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그 시간은 철 없는 소년 소녀가 되기도 한다
지난 한 해는 봄 부터 겨울까지 코로나19로 온 세계를 암울하게 만들었지만 변함없이 봄은 오고 있다
춘 삼월 봄 날이다 . 아지랭이가 손 짓하는 강가를 걷다가도 문득 나즈막하게 노래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해서 돌아보기도 한다 소년처럼 웃으며 인생의 황혼 길에 사랑의 향기로 다가온 사람 ........
머지않아 대지에는 봄 꽃들이 만개해서 우리에게 새 희망을 주고 기쁨도 줄것을 생각하니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며 만남과 이별의 연속선 상에서 끝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져 나가는것 같다
그리움이 수채화처럼 가슴 속에서 피어 오르는 아름다운 봄 날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라이락 향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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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담 재미 있습니다
선생님 함께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추억의 장면들을 떠올려 봅니다.
누구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먼 남의 나라에서 목회 활동 하시는 추억의 그 분을 만나신것은 큰 행운이십니다
가슴 떨리는 수화기 속 목소리로 슬픔을 달래게 되어 다행입니다.
부이사장님 잘 읽고 갑니다.
박 선생님 댓글로 화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