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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주해 - 더러운 손으로 생명의 떡을 만지지 말라!]
성물 (Kodshim, קָדָשִׁים): 하나님께 바쳐져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거룩한 양식입니다. 아무리 목사요, 장로요,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죄악(시체, 유출병)에 오염된 부정한 상태로 회개 없이 이 성물(말씀, 성찬, 사역)에 손을 대면 하나님 앞에서 즉각 영적으로 사형(끊어짐) 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에서 이 규례를 십자가 복음으로 벼락같이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내 영혼의 부패함을 십자가의 피로 씻어내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강단에 서고 직분을 감당하는 뻔뻔한 종교적 외식을 당장 박살 내십시오! 익숙함이 곧 영적 죽음입니다!
II. 위대한 복음의 폭발: 대제사장이 '돈으로 산 종' (22:10-13)
10절부터는 과연 누가 이 거룩한 성물을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자격이 주어집니다. 일반인은 절대 못 먹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약 성경 전체를 뒤집어엎는 기가 막힌 은혜의 복음이 폭발합니다!
(레 22:10-11, 개역개정)
"일반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도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샀으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것이며"
[원어 깊이 읽기: 미크낫 케세프(돈으로 산 사람)]
돈으로 산 사람 (Miknat kesef, מִקְנַת כֶּסֶף): 목사님! 이 기가 막힌 십자가의 신비를 보십시오! 거룩한 이스라엘의 평민조차 먹을 수 없는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고기를, 가장 비천하고 자격 없는 **'이방인 노예(종)'**가 제사장과 한 상에 둘러앉아 뜯어 먹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가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서가 아닙니다. 훌륭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대제사장이 자기의 값(돈)을 지불하고 그를 샀기 때문"**입니다!
[신학적 절정 -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된 우리!]
이 비천한 노예가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떡을 도저히 먹을 자격이 없는 부정한 이방인이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거룩한 붉은 피'라는 우주적인 값(속전)**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친히 사셔서(Redemption), 당신의 거룩한 집(교회)의 식구로 삼아주셨습니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십자가의 피로 대제사장의 소유가 된 종은, 이제 당당하게 하늘의 거룩한 성물을 양식으로 먹으며 영생을 누립니다! 이것이 속량(Redemption)의 위대한 밥상입니다!
III. 탕자의 귀향: 무일푼으로 돌아온 제사장의 딸 (22:12-13)
은혜의 폭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시집가면 성물을 먹을 권리를 상실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절망적이고도 역설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레 22:13, 개역개정)
"만일 그가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여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주해적 통찰 - 세상에서 철저히 파산한 자가 누리는 은혜]
남편이 살아있거나, 위자료를 받거나, 의지할 자식이라도 한 명 있다면 그녀는 아버지의 상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오직 세상의 남편(세상의 쾌락과 우상)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돈도 잃고, 의지할 자식조차 하나 없는 **'완전한 100%의 절대 파산 상태(무일푼)'**가 되어 눈물 흘리며 아버지의 집 문을 두드릴 때! 대제사장 아버지는 그 찢어진 딸을 끌어안고 가장 거룩하고 풍성한 성물의 밥상을 다시 내어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쥐엄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성물)를 잡아 잔치를 벌인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십자가의 긍휼입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망하고 내 의지가 꺾일 때가 곧 하늘의 밥상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IV. 흠 없는 제물(Without Blemish): 찌꺼기 헌신을 박살 내라! (22:17-25)
이제 하나님은 백성들이 제단에 끌고 오는 '제물(동물)'의 상태를 맹렬하게 점검하십니다.
(레 22:19-20, 개역개정)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원어 깊이 읽기: 타밈(흠 없는)과 뭄(흠 있는)]
흠 없는 (Tamim, תָּמִים): 눈이 멀거나, 병들거나, 피부병이 있거나, 상처 난 짐승(뭄)은 제단에 올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기가 고파서 제물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학적 대폭발 - 십자가의 완전성과 말라기의 분노]
목사님! 구약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내다 팔기도 아까운 병든 것, 눈먼 것, 저는 것을 여호와의 제단에 던져놓고 "이만하면 됐지 않습니까?"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말 1:8, 10)**라고 벼락같이 진노하십니다!
쓰다 남은 시간, 찌꺼기 헌신, 병든 열정을 하나님께 던져놓고 헌신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영원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9)"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100% 완전한 생명(가장 귀한 것)을 나를 위해 흠 없이 내어주셨는데, 어찌 우리는 세상에 다 쏟아붓고 남은 찌꺼기(흠 있는 것)만 제단에 올리려 합니까! 흠 없는 제물(십자가의 완전한 헌신)만이 하나님을 만족시킵니다!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대제사장의 피로 산 종이 되어 흠 없이 헌신하라!"]
목사님,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로 이 피 끓는 성물의 밥상과 십자가의 복음을 강해하실 때 **<대제사장의 피로 산 종과 흠 없는 십자가>**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안합니다.
서론: 익숙함의 교만을 찢고, 거룩한 생명의 떡 앞에 두렵게 서라! (1-9절)
아무리 직분이 높아도 영혼이 세상의 죄에 오염되어 있다면 생명의 성물에 함부로 손대지 마십시오! 예배와 사역이 습관이 되어버린 타락한 익숙함을 당장 박살 내고, 강단에 오르기 전, 사역에 임하기 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손과 영혼을 철저히 씻어내는 두렵고 떨리는 거룩을 맹렬히 회복합시다!
본론 1: 나는 '예수의 피(값)'로 사신 바 된 대제사장의 영광스러운 종이다! (10-13절)
이방인 노예에 불과했던 내가 어떻게 하늘의 거룩한 양식(구원)을 먹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붉은 피라는 우주적인 값을 지불하고 나를 친히 노예(종)로 사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100% 파산하고 찢긴 채로 돌아온 나를 먹이시는 이 압도적인 대속의 밥상을 불을 토하듯 선포하십시오!
본론 2: 당신의 제단에는 '흠 없는 수컷'이 올려져 있는가?! (17-25절)
일주일 내내 세상을 위해 가장 좋은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고, 피곤에 절어 남은 찌꺼기 시간을 제단에 던지는 악한 제사를 당장 집어치우십시오!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하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두렵지 않습니까? 나를 위해 점 없고 흠 없는 100%의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나의 가장 빛나는 최선의 헌신으로 응답합시다!
결론: 내 안의 부패함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영원한 밥상에 앉으라!
내 의지와 노력으로는 결코 흠 없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철저히 덮어 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의 보혈이 내 영혼을 덮을 때, 비로소 우리는 부정을 씻고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성물을 영원히 먹고 마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완성될 것을 맹렬히 선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