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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죄수 (A Prisoner)
인디애나 주 제퍼슨빌
1963년 7월 17일
*소 개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이 자리에 와서, 주님이 이전에 행하셨던 그 위대하고 강력한 역사들에 대해서 듣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우리는 큰 기대를 가지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올리고 우리에게 기름
부으셔서, 오늘밤 구한 것들을 다 받으리라고 믿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요청한 모든 기도 요청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 우리는 특별히 임종이 가까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 혼에 평안이 없다면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옵소서. 그들의 몸에 병고침을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시옵소서.
우리의 모임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수요일 밤 기도 모임에서, 우리가 모였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주님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음을 압니다. 주님, 우리에게 오늘밤 주의 말씀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으로 데워 주셔서,
우리가 앞에 놓인 그 위대한 때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알게 하소서,
주의 재림이 가까워 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사람들이 믿음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믿음의 의미를 알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뭔가 일을 하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앞으로 있을 예배들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 창문들을 올리시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약속하신 약속들을 퍼부어 주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제 주님, 우리 모든, 전 세계에서, 어디나, 우리가 오늘 들었듯이, 필요함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함께 하시옵소서. 그들의 기도 요청들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 하나님의 크신 손이 이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의 영과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어, 우리가 우리 자신을
훈련시키고, 순종하는 종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마음속에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일들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났었던 그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그들의 얼굴은 분명히 믿음과 기쁨으로 환히 빛날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닐 때, 그들의 삶은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쓰여진 편지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것을 다시 한 번 허락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주님께 드려져서,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사시고,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마음속에, 거리에서 걸어 다니고 세상과 접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들과 닮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소서. 우리는 한 쪽으로 비켜서서 그들에게 그 자리를 내줍니다, 주님, 그들이 이 땅에서
가지는 합당한 위치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온 대표들임을 알기 때문에 뒷자리를 잡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권세 잡을 왕국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서 곧 도착하시고 그분의 통치
영역인 모든 왕국들을 취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통치하며 다스리실 것이고,
우리는 여기 땅에서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는 우리 기도의 응답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고백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주님의 크신 뜻에 상반된 일을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주소서. 주님, 저 자매님께서 오늘 밤 남편과 함께 시카고로 가는 길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 하나님, 그들을 주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그들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있고, 우리 주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빛줄기가 되게 하소서.
이제 우리는 이 예배를 주님께 맡기고, 이 위대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예비할지를 알게 하는, 바로잡아 주는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저는 여기 올 것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것이, 저는 제가 비상사태로 어디로 가야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집에 있으면서 기도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면 마음이 영 안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들렀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저도 그렇고, 제 가족들에게도 그렇고요.
저는 방금 돌아왔고 바로 집을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기도 모임에 가봐야겠어.”
아내는 교회에 올 준비를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돌아올 것을 모르고 있던 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매님의 간증과 형제님의 간증을 들으니 기쁘군요.
사우쓰 캐롤라이나 아니면 노오쓰 캐롤라이나에서 나타난 그 빛에 관한 간증. 그린빌이었나요?
[어떤 자매가, “아뇨. 서던 파인즈에서입니다.”하고 말한다.] 서던 파인즈요. 네.
리 베일 형제님이 오늘 여기에 오셨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 침례 예배에서 그 형제님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리 베일 형제님과 저기 계시는 목사님들, 파커 토마스 형제님. 거기서...
저는 한 자매가 그림자에 쌓여 있던 때를 기억합니다. 자매님, 그것은 굉장한 확증이었습니다. 무엇...
성령께서는 때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합니다, 일을 지켜보고,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여러분이 어떤 일을 직접 쳐다보고, 뭔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고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들은 그것이 거기에 없다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 바울 위에 그 빛이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빛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빛 가운데서, 그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 위에 머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둘기 형태로, 요한 말고는요. 하지만 그 비둘기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제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이 빛이 불기둥 같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이 그것을 증명했고, 그것이 어떻게 오는지도 포착했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어둡습니다. 그건 우리의 삶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그림자들입니다. 우리는...
만일 우리가 빛이라면, 우리의 삶이 이 시대의 빛을 다루고 있다면, 우리는 빛 가운데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여러분이 밖을 내다보고, 낮에, “나는 해를 봐요.”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여러분은 해의 그림자를 볼뿐입니다. 그것은 해의 반영일 뿐입니다. 그건 해 자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그건 해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저는 거기 앉아서 부채를 부치면서 말하고 있는 여러분을 볼 때, 그건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걸 의미하죠,
하지만 그건 생명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에 어둠이 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그림자를 만들려면, 그림자는 일정량의 어둠과 일정량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림자는 완전히 어둠일 수도 없고, 완전히 빛일 수도 없습니다.
그게 어둡다면, 그건 굉장히 어둡습니다. 그게 빛이라면, 거기엔 그림자가 전혀 없습니다, 그림자를 드리울 게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어둠과 빛이 섞여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빛의 그림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딘가로 부터 어떤 생명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반영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이고, 이것이 그림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만 여러분이 죽을 수 없는 어떤
생명이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생명에는 사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건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은 살고, 움직이고, 보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하는 능력을 가진, 몸의 오감을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들은, 그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엔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아시죠? 그것은 다만...그것은 반영일 뿐입니다, 네, 생명과 사망이 한데 섞여 있다는 반영.
육체는 죽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의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하늘의 빛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여러분은 그 빛으로 가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게 여러분이 반영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그것을 반영하고, 여러분은 어둠으로 밖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는 반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압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성령께서 빛과 생명을 반영하는 게 확실하듯이, 사망도 어둠을 반영합니다.
여기에 그 두 사진이 있습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어쩌면 일요일까지는, 우리는 그 작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게시판에 붙일 수 있게 하겠습니다.
자매님의 사진이 거기 게시판에 붙어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그것을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쯤에, 자메이카에서, 저는 전에 그곳에 선교사로 갔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로 설교 테이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메이카의 여러 섬으로까지 일곱 인이 들어갔고, 오지에까지. 그곳은 블루 마운튼 뒤쪽에
있는, 꽤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때로는, 그들은 우리가 사다 준 녹음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낡은 축음기처럼, 크랭크를 돌려서 그렇게 재생을 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분 뒤에, 누군가가 그
크랭크를 또 돌려줘야 합니다.
이 무리는 조그마한 건전지로, 6 볼트짜리 건전지 같은 걸로 녹음기를 틀었습니다. 그들은 다 함께 앉아서,
여기 오늘밤에 하는 것처럼, 그 인들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이 보니까, 방안으로 그 동일한 불기둥이 들어와서 그 녹음기 위로 가더니
거기 위에 한참을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사진기를 가져와 그 불기둥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저기에 있는 저 불기둥과 똑같은 불기둥이, 그 녹음기 위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진을 확대해서,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저기 게시판에 붙여놓을 겁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분의 임재 안으로 우리를 들어오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여기를 들여다보고, 제가 전했던 것 말고 다른 뭔가가 있는지 보려고 합니다.
아니면, 우리에게 어떤 일종의...저는 이 공책에다 항상 어떤 본문을 적어둡니다.
제가 한 가지를 찾을 수 있다면, 기도할 동안에, 어쩌면 주님께서 제게 뭔가 말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요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메시지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 저는 여러분을 오래 붙잡아 두었습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백성들에게 말하고 전진해 가라.”
자, 일요일에는 아픈 분들이 기도 받을 병고침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아픈 분들에게 가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들이 낫지 않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일요일 오전에 짧은 설교로
그것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고침 예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자
합니다. 빌리폴이나 누군가가 일요일 오전 여덟시쯤, 교회 문을 열 때,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올 때 사람들에게
기도카드를 나눠 드릴 겁니다, 언제 들어오시든지 시간은 모르겠지만요. 저는 왜 어떤 사람은 병이 낫지 않는지
이유를 조금 알 수 있도록 주님은 제게 통찰력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저-저는, 어쩌면, 일요일 오전에,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수요일 밤 기도 모임은 그저 우리가 함께 모여서 기도드리고, 늘 하듯이 서로 교제를 나누는 짧은 모임입니다.
때로는, 오늘날 제가 발견하는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진지한 태도의 결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만일 하나님께서, 요한 웨슬리 시대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행하신 일들을 행하셨더라면,
어땠을까요; 마틴 루터의 시대에 하셨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행하심을 본 대로, 교회와 성령에 의해서
둘 다 증명되고; 과학에 의해서, 온갖 움직이심에 의해서도, 그 감광유제(感光乳劑)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선포하고 그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움직이시고, 예언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신 일을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그 일은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완벽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아해 하고 있다는 듯이, 여전히 뭐랄까 나태한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어, 그 일이 내게 뭘 의미할지 모르겠네요. 그 일은 교회 전체를 의미하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정말로 이것에 포함되어 있는 건가요?” 일요일 오전에, 저는 우리에게 약간 빛을 던져줄 그런 원리 몇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제, 오늘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폈습니다. 저는, “네빌 형제님이, 내가 갔을 때,
형제님이 ‘일어나서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런데 앉아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성경 구절을 몇 개 적어 가는 게 좋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는데,
형제님은, 형제님은 너무나도 좋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우리는 형제님에 대해 감사합니다.
말씀을 두고 기도하기 전에, 저는 한 형제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습니다,
두 사람입니다. 그들은 제가 아는 사람들이고 여기로 왔습니다. 그...그들은 목사들이고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사역을 하고 있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 테이프에서 이 메시지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교파 교회에서 나온, 두 명의 젊은이들입니다. 최근에, 한 젊은이는 너무나,
그는 어떤 집회를 끝내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투산으로 날아올 정도로 너무나도 관심이 있어 합니다.
저는 제가 실업인회 조찬 모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훌륭한 청년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그들은 캔자스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하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그걸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들을 그토록 신뢰하여,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젊은이들이 이렇게 인생을 시작하면.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와서 제 주례를 받고자 하는데,
어제, 인디애나 주의 법은 그들이 혈액 검사를 했다 해도, 이곳에서 삼일 간 체류하며 기다려야만 결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요일 아침까지는 결혼하지 못합니다.
저 쪽 끝에 앉아 있는 우리 형제님,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해 주시고,
거기 있는 그 아름다운 여자분과 그 옆에 앉아 있는 형제님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그 형제가 말한다, “감사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곳에 올 수 있어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라저 형제와 저는 캔자스에 살고 있고, 여행하면서 복음전도자로 사역하고 있고, ‘예수께서 구원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예수를 믿음으로...?...’를 전하고 다닙니다. 저는 항상 짐을 싸서...?... 이 사람은 저의 약혼녀,
패트리샤 브라운입니다. 우리는 금요일에 결혼할 겁니다. 저의 동역자이며 복음전도자인,
라니 형제는 저 끝에서...?... 피트리 씨도 역시...?...”-주]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 예수의 일을 위한 이 젊은 대사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제가 주의 재림을 궁금해 하며 기다리면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젊은이들과
젊은 여성들을 보면, 저는 너무나도 기쁩니다, 이렇게 그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주께서 나의 형제님, 자매님을 풍성하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가 지금까지 한 번도 설교할 때 읽지 않았던 짧은 책을 보기로 합시다.
그건 아주... 한 장밖에 안 되는, 빌레몬서 입니다. 그 책은...
저는 아일랜드 혈통이 조금 섞여 있는 데다, 제 아랫니 두 개를 지탱시키려고 철사를 하나 묶어 놓고 있습니다.
때로는 저는 이 이름들을 제대로 발음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발음을 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해서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 뒤에서 어떤 분이, “빌레몬”이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게 정확한 발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1절, 거기에서 한 두 단어만 보고 싶습니다.
빌레몬서1:1.예수 그리스도의 죄수 된(갇힌 자 된 ) 바울...
자 오늘밤 주의 뜻이라면, 그것이 제가 본문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죄수(A Prisoner, 갇힌 자).” 여러분 바울이 자신을 죄수로 여겼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으시죠?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성령 충만한 사람인데, 자신을 “죄수”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편지 쓸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말했음을 봅니다. 다른 델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바울은,”이라고 디모데나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칭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여기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 된 바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된 바울,” 저는 언젠가 그것에 대해서 설교하고 싶군요. “종 된 바울,” 그것도 설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죄수 된 바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에는, 그런 주제 중 하나를 충분하게 알아보려면
몇 시간이나 걸릴 테니까, 저는 오늘 밤, “죄수 된 바울”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주제를 정하겠습니다: 한 죄수.
잠시만 고개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육신의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성경을 넘길 수 있을 테지만, 성령만이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해석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이제 오셔서 이것이 뭔지 이해하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위대하고 강한 선지자 바울이 편지한, 그러면서 자신을 “죄수”라고 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는 이 편지를 빌레몬에게 썼을 당시, 바울이 이 도시의 지하 감옥에서, 죄수로 감옥에 앉아 있는 걸 상상해
봅니다. 바울은 그 단어의 의미를 자기의 처지로 말미암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쇠창살에 갇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유롭게 해 주어야 자유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수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말한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육신이 이 감옥 안에 앉아 있는 죄수인 상황. 그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존재,
그의-그의-그의 영이, 그의 의지가 예수 그리스도께 죄수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자, 우리는 다 우리가 원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게 그렇게 행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조건에 두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을...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사람을 잘못된 조건에 놓으셨던 겁니다,
자유 의지를 넣어주셨던 첫 번째 사람. 아시겠죠? 우리는 오늘 밤, 아담과 이브와 똑같습니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각 사람 앞에는 옳고 그름이 놓여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이,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아시겠죠?
아담과 이브가 그렇게 행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전 인류를, 인간들을 사망 하에, 사망의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태로 내려오셔서 그 사망을 취하시고 사망이라는 형벌에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건...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그의 백성들이 자유롭게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행하신 것과 똑같은 식이 아니고, 그냥 우리를 어떤 것에서 끌어당기면서,
“네가 구원받기 원하든 말든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잘못된
조건에서 다루셨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우리 각자는 오늘 사망과 생명 중(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표현했던 대로, 만일 여러분의 빛이 증명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어느 쪽인지를 정확하게 증명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느 쪽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습니다. 매일, 여러분의 행동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속담을 들으셨을 겁니다, “당신의 삶은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당신이 하는 간증을 들을 수가 없다.” 아시겠죠? 여러분-여러분의 행동들은 소리가 엄청 큽니다.
저는 늘 예배드릴 때 소리를 지르고 뛰고 하는 것을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수준 이상은 뛰지 마세요, 세상이 여러분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니까요.”라고. 아시겠죠?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는 수준만큼만 뛰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엘 가지 않습니다. 오지 않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아주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너무나 많은 부패함을 봤기 때문에 그런 것에 속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된 겁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비난하지만, 사실 그들을 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있는 가장 큰 거침돌
입니다,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면서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죠? 정말입니다.
자, 심판 때에는 여러 실망함이 있게 될 겁니다. 자, 죄인, 밀주업자, 도박꾼, 간음한 자들, 그들은 자기 판결이,
“영구한 불 못으로 떠나라”고 읽혀질 때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어떤 교회의 고백 뒤에 숨기려고 하던 사람, 그 사람이 심판 날에 실망하게 될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시작을
(올바르게) 해놓고는 다른 삶을 사느니 처음에 어떤 고백도 하지 않았던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거침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로 여러분의 삶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우리 자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항상, 여러분의 삶을 뒤돌아보고 현재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이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고 있는 지를
(겸허하게)검토해 보고 여러분을 평가하십시오. 아시겠죠?
제가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실업인회의 집회에서 얼마 전에 설교한, 예수의 반영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반영해 봤었습니다. 저는 제가 여기 켄터키에서 태어났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특히 더욱 원시적인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꼬마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집이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많은 예쁜 여성들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집안 구석구석에 놓은 거울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등등 그러죠. 하지만 그 꼬마는 작은 거울이 하나 있었고, 조그마한 거울 조각을
세면용 벤치가 있던 마당에 있는 나무 위에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거기서 씻고, 머리도 빗고,
그랬습니다, 나무에 고정시켜 놓은 조그마한 거울 조각을 보고.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는 그런 집에 살았습니다.
누구나 거울을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는 상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는 그 세면용 벤치 위에
올라가서 그 조그마한 거울 조각을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쓰레기장에서 주어온 그 거울로. 켄터키주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여기 인디애나 주, 유티카 파이크에 있는 쓰레기장에서요.
이 어린 꼬마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정확하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꼬마는 할머니 집에 가려고
도시로 왔습니다. 그 할머니 집에는...이 방 저 방을 구경하다가, 문짝 하나에 큼직한 거울을 달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꼬마는 그 방으로 달려 들어가다가, 다른 꼬마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꼬마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잠시 멈추고 거울 속 꼬마가 하는 행동을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멈추자, 그 꼬마도 멈췄습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거울 속 꼬마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자,
그 꼬마도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마침내, 가까이 걸어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할머니와 함께 놀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엄마, 저 앤 나예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뭔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의 삶은 반영되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노아의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그가 살았던 그 위대한날에 우리는 어떤 편을
들었을까요? 모세의 시대에 우리는 어느 편이었을까요? 엘리야의 시대에는, 온 세상이 현대적인 이세벨처럼,
현대주의의 큰 도가니 속에 삼켜졌을 때, 주의 모든 종들을 죽이고 세속적이 되었던 시대에 우리는 어느 편을
들었을까요? 교회와 제사장들은 모두 다 이세벨에게 절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인기에 편승했겠습니까?
선지자 엘리야와 함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서셨겠습니까?
자, 주 예수의 시대에, 여러분은 이 인기가 없으신 분, 세상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신 분, 그분이 어디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찾지 못합니다, 어떤 신학교에 다닌 경력도 없으신 분을 생각할 때. 그리고 “사생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나와서, 그들이 기존에 배웠던 것과는 상반되는 복음을 설교하셨습니다.
당대의 성직자들과 그들의 조직들과 그런 것들을 크게 정죄하면서. 그런데 조직들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의 설교를 들으러 간다면, 회당에서 출회 당하리라,”
그것은 죽을 죄였습니다. 그렇게 간주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경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어린 양의
피 아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희생제물에게 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추방당한다면,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것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완전하게 성경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을 알고 있는 식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편을 택하셨겠습니까? 아시겠죠?
자,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여러분이 그 때 어떻게 했을 지를 지금 반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지금도 그 동일한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지금 그들과 함께 그 편을 드신다면, 여러분은 그 때에도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그 이유는,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동일한 영은 그 당시 사람들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마귀는 절대로 자기의 영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옮길 뿐입니다.
하나님도 절대로 자신의 영을 가져가지 않으십니다;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길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엘리야에게 임했던 바로 그 성령은 엘리사에게도 임했고, 침례자 요한에게도 동일한 성령이 임했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에게 임했고) 그리스도에게 임했던 그 성령은 (오순절날에) 그 제자들에게 다 임했습니다.
계속해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영을 가져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바울이 어떤 일을 후회하거나 자기가 죄수임을 한탄하는 말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가리켜... 저는 바울이, 그 펜을 가지고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성령께서 그것을 쓰게 했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오늘밤까지도, 우리는 왜 바울이 이렇게 했을까? 를 보이기 위해서, 우리 본문의 맥락을 이끌어 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적이고, 성경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어둠침침한
감옥에 앉아서 바울은 여기서 그의 동료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형제에게,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 됨을
썼다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봄으로써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 있었고,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고, 그와 함께 일꾼 된 이에게 그걸 얘기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죄수 된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당대에 위대한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에게, 당시 그가 갈 수 있던 가장 좋은 학교들 중 하나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위 말하는, 위튼이나 밥 존스나 그런 훌륭한 정통 학교죠?
그는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려고 배웠습니다. 그는 교육을 잘 받았고 머리가 명석했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그 사람들에게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이 되리라는 큰 포부를 가진 명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훈련을 받았던, 평생을 쏟아 부은 이 위대한 포부는, 어쩌면 여덟 살이나
열 살 때부터 서른이나 서른다섯 살까지, 대학을 마치고 졸업했을 때까지; 모든 졸업장이란 졸업장은 다 받고
성직자들 모두와,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까지 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서 명령을, 개인적인
명령을 받았습니다, 쓰여진 문서, 이 위대한 사울에게 위탁된 명령, “다마스커스로 내려가서 그가 말한 것과
상반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고, 포박하고 감옥에 처넣어라. 필요하다면,
그가 원한다면, 그는 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훈련받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그것 모두를 바울에게서 빼내셨습니다. 아시겠죠?
그의 목적이었던 것, 바울의 아버지가 그에게 쓴 돈, 그의 부모의 희생들, 모든 것을 바울에게서 빼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포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인생에 가지고 있었던 그(계시) 목적에
죄수가 되고, 말씀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 죄수가 되었습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던 그 길에서 바울은 변화되었습니다. 내려가는데, 낮 열 한 시경쯤에,
뭔가가 바울을 내리쳤습니다. 바울은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하는 음성을.
그래서 바울은 위를 쳐다봤습니다. 유대인인 바울은 올려다보고는, 그 불기둥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주)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불기둥이 정확히 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 히브리인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만족한 상태가 아니면, 어떤 것을 “주,”라고...
대문자(L-o-r-d), 엘로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훈련을 받은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올려다보았을 때, 그는 이것을, 빛을, 광야에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여,” (엘로힘, 대문자 L-o-r-.d)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시니이까?”
이 신학자가 “나는 예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가 그렇게 반대하고 나섰던 그분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오! 오! 갑자기, 자기의 모든 포부가,
자기가 박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 사람은 얼마나 끔찍한 기분이었을까요. 그의 포부들은
그가 주력해 하고자 했던 그 일로부터 더욱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나는 예수라,”고 하셨을 때,
자기가 박해하고 있던 바로 그분, 그 일은 이 사도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
여기 또 다른 인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교회를 조롱할 때, 그들은 사실 교회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 예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 지성을 갖춘 바울이 어떻게, 그가, 박해하고
있는 이 무리가 그가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 생각엔 그건,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다 훈련을 잘 받아서 제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일한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비록 명석하고 영리했지만, 그가 박해하고 있던 그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인들보다 훨씬 더 똑똑했지만, 그들은 이미 겸손함 가운데 이 분을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가 받은 많은 가르침과 지성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길에서(다메섹)
그 일은 바울에게 얼마나 엄청난 반전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눈이 멀게 되었고, 그가 맡은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곧은 길이라고 하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어떤 사람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아나니아라고 하는 선지자가 내려옵니다, 그는 환상을 보았는데, 바울이 내려오고, 그가 있는 곳을
보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울 형제, 주께서 내려오는 길에 형제에게
나타나셨고;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나로 형제에게 안수하고, 형제로 보게 하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아시겠죠. 바울에게 그 일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행하려고 훈련받아온 모든 일과는 완전히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가 받은 모든 교육은, 그건-그건 다 그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한 가지 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좋은 또 하나의 교훈이 있는데,
체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체험은 주의 말씀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보고 나서, 그것이 위대한 뭔가라는 것을 알고, 다른 누군가가 자기 이전에도 그것을
받았었다는 것을 알고, 삼 년 반을 아라비아에 있는 사막으로 내려가; 성경을 가지고 말이죠, 그 당시에는
구약이었겠죠? 그가 한 이 체험을 비교하기 위해서, 그것이 성경적인지 보기 위해서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자 (그런데) 바울이, “내 생각에는 그것은 별 일이 아니었을 거야.”하고 말하며 간과했다면 어땠을까요?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따라 가야지”하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자, 바울은 어떤 것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요. 그래서 그것을 비교하고, 이해한 후에, 바울이 모형으로
히브리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삼 년 반 동안 거기에 내려가, 말씀 안에 거하며
그를 부르신 그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그의 모든 지적인 것들을 바꾸시고, 그가 전에 생각했던 모든 것을
바꾸시고, 그가 훈련받았던 모든 것을 바꾸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포부는, 그에게서 말끔히
씻겨 없어졌고, 그는 (계시의) 죄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엄청나고, 너무나 큰 계시여서,
바울은 그것으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만나는 모든 진짜 신자의 참된 체험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큰 뭔가와 접하게 되어 기타, 다른 것에는 죄수가 됩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여러분은 이것에 여러분을 가두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표현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천국은 진주를 사는 상인과 같으니라.
그가 그 좋은 진주를 발견하면, 그 진주를 사기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팔리라.”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여러분은 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고, 신학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그 진짜 것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되면, 여러분은 다른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리고,
이것에 몰입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게 어떤지 알았습니다. 자기가 뭔가에 마구(馬具)에 채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말을 마구로 채우듯이, 마구란 뭔가를 끌어당기기 위해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알았습니다.
이 체험을 한 후에, 삼 년 반 동안 자기가 한 체험의 모형을 성경으로 세운 후에,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택하시고 성령으로 그에게 마구를 채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했던 그 체험으로, 이방인들 앞에서
복음을 끌어당기기 위해서죠. 성령께서, 친히, 바울에게 마구를 채웠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우리도 마구에 채워졌습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연결되어 있고, 말씀에 마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다 해도, 여러분은 말씀에
마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말씀에는 특별한 게 있어서, 여러분은 말씀을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에 의하여 그것으로 멍에를 지게 되었고, 여러분을 말씀에다 멍에를 지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항상 말씀과 마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말씀에 멍에로 씌워져 있습니다. 말씀에, 성령으로, 바울은 마구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 그 아라비아
사막 뒤편에서 배웠습니다. 과거의 모든 일들과 체험들과 포부,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벗겨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도 먼저 다 벗겨져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벗겨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감리교 형제님은 자기 감리교 가르침을 조금이라고 붙들고 싶어합니다. 네. 침례교 형제는 자기 침례교 가르침을
조금 붙들고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죠? 하지만 여러분은 모든 것이 다 벗겨지고, 그냥 새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기부터 시작하고, 성령께서 인도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저의 아빠는 말씀하길, 아빠가 들어오실 때, 교회에
들어가시면, 아빠는 목사님과 악수를 하셨어요. 아빠는, 아빠는 충성스런 교인이세요.”하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아빠의 경주에는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다른 경주를 뛰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한 성경 시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제사장들도 마구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들은 다른 경륜으로 들어갔었는데,
자기들의 낡은 마구를 벗고 새 마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교파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교회 시대를 통해, 성경과 그런 것들로 증명을 했었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자유로운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내려오시고 자신을 입증하시며 자신을
알리시고, 전에 하신 약속을 다 이루어지게 하시는 시대 말입니다. 오, 세상에! 얼마나 엄청난 시대입니까!
또 한 가지,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건, 이것에 마구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구가 채워져 있었지만, 바울은 가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포부가 자기를 오라고 초청하는 그곳 형제들에게로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영 안에서 매임을 받아 다른 일을 하도록 인도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사울 형제, 바울 형제, 이곳으로 와 주세요, 우리는 가장 큰 교회거든요. 우리는 회중이 제일
많아요. 헌금도 많이 걷힐 것이고, 등등등.” 하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영 안에서 매임을 받아, 바울은,
“거기에 한 형제가 살지. 거기로 가서 이 형제를 구원하고, 그를 주께로 인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를 다른 곳으로 가도록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죄수였습니다. 정확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그렇게 죄수로 삼아 주소서,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포부, 우리 자신의 판단들, 우리 자신의
생각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로 삼아 주시옵소서. 저는 그것이 굉장한
진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이다.”
명심하세요.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아시죠?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말씀에 죄수라고 한다면, 어떤 교파가 말씀에서 벗어나게 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은 말씀에 죄수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말씀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자,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는데, (왜죠?) 성령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여러 번, 바울은 어떤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거기서 내가 큰 집회를 열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금지시켰습니다. 그걸 보면 바울이 죄수였음을 명확하게 진술하고 증명합니까?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 죄수 되었고, 성령으로, 말씀에 마구로 채워졌습니다! 오! 저는 그게 좋습니다. 네.
그는 매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기 위해서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랑의 족쇄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는 죄수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족쇄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멍에를 메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에는 멍에를 멜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에게 멍에를 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가는 곳으로, 바울도 따라가야 했습니다. 여기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초장이 아무리 푸르게 보인다고 해도, 그는 인도자와 그 멍에가 가는 길로 가야만 했습니다.
오, 오늘밤, 브래넘 성막인 우리가 죄수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존재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포부에 대해서 죄수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항복하고 주님께 멍에를 멘다면, 나머지 세상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나머지 세상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말이죠. 우리는 사랑의 족쇄로 멍에가 메워졌습니다.
우리는 죄수들입니다. “제 두 발은 그리스도께 단단히 멍에가 메워져 있어, 춤을 추지 않을 겁니다. 제 두 눈은
그리스도께로 단단히 멍에가 메워져 있어, 제가 길거리에서 현대적인 반쯤 벌거벗은 여자들을 보면, 그 멍에는
제 고개를 돌립니다. 제 마음은 주님께 사랑 안에서 단단히 멍에가 메워져 있어서, 더 이상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 의지도 주님께 멍에가 메워져 있어서 제 포부들이 뭔지도 모를 정도가 될 겁니다.
그저,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저는 따르겠습니다, 주님.’하고 말할 겁니다. 저는 죄수가 되겠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정확하게 죄수였습니다. 바울은 말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에 의해서 말씀을 기다리는 법을,
다시 훈련받았습니다. 자, 바울은 전에 훈련을 받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혀 다른 식으로 훈련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에 의해서, 그의 포부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훈련받았습니다.
자 저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여러분에게 뭘 좀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아시겠죠? 이제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어느 날, 바울과 실라는, 부흥회를 열고 있는 어느 도성의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마귀에게
사로잡힌 여자 아이가 바울을 계속 따라다니고, 그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겁니다. 분명히 바울은 사도로서 그
여자에게서 그 악한 영이 나오도록 책망할 권세가 자기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보셨습니까? 바울은 매일매일 기다렸습니다, 성령은 갑자기 바울에게, “지금 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그때 바울은, “너 영아,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고 명했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주님을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오늘날 그 부분에서 말씀에 누를 끼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포부를 품고 나갑니다.
그런 일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부흥성회가 성과가 없이 끝납니다, 그 이유는 그 복음전도자가 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뭔지 기다려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여기로 오세요,”하면, 그들은 협회에서, “가세요.” 했기
때문에 곧바로 갑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주 장로가 되거나 어떤
직책, 장로나 집사가 되고 싶어하는 포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뭔가가 그를 끌어당깁니다, “너는 가야 한다.”
그런데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여기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으니까. 아시겠죠?
그는 자기 조직에 멍에가 메워져 있습니다. 그는 그 조직에게 죄수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께 멍에를 메고 있다면, 그는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는...?... 아시겠죠?
그는, 그는 멍에를 멘, 죄수입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것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소리내는 놋과 시끄러운 꽹과리이니까요.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그것이 나올 때만 말을 합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오, 오, 존스 형제!”하고 말합니다. 로버츠 형제나 뭐 다른 사람,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이 위대한 분들, 타미 힉스나 오럴 로버츠나 타미 오스본, 그런 위대한 복음전도자들
말이죠. 만일 누군가가, “타미, 여기로 오세요. 당신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아니면 오럴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제 삼촌이 여기에 아파서 누워 있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삼촌이 아프십니다.
여기로 와 주세요. 저는 형제님이 제 삼촌을 낫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죠?
아마 성령께서는 그에게, “지금은 가지 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정을 생각해서, 그는 그에게 가야만 합니다.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 사람은, “아니, 그는 아무개에게는 가서, 그 어린 아이 아니면 남자아이를 고쳐주었어요. 나는 그가 갔던 걸
알고 있어요. 나는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인데, 그는 내 집에는 오지 않았어요.”하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가 성령에 의해 가지 말라는 만류를 받았다면, 그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가 하나님께 멍에를
메었다면 말입니다. 그의 친구, 그가 사랑하는. 하지만 그는 성령에 인도함을 받아 거기에 가는 게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가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저는 그런 일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께서 그에게 할 일을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성령을 기다려라.” 말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밤 서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한 절름발이 남자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성령께서 바울에게 말했고, 바울은, “내가 알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들이 섬에서
파선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과 똑같은 방법이죠? 아시겠죠? “당신이 고침을 받을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겠소.
일어나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치셨소.”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는 멍에를 메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주일 부흥집회를 열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성령께서 말씀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그 호소에 멍에를 메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브래넘 형제, 일요일에 전하셨던 말씀에 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계시네요,
형제님이 지금까지 늘 기다리기만 했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저기 저 위 도로에서 제게 말씀하신 분은 성령이었습니다.
“내가 아픈 사람들과 고통 받는 자들에게 너를 다시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건 성령에게 순종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받을 때까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그건 다릅니다. 아시겠죠? 그건, 그것은 차이가 납니다. 네.
바울은 주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행하려고, 영 안에서 매여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가 됩니다. 친구들이여, 우리가 죄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가 덥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몇 인물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여섯 내지 여덟 명을 적어왔습니다. 하지만 한두 인물 정도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는 구원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가 구원자로 태어난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세에 관해서 말하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하나님은 항상 진실로 하나님을 섬길 사람을 그분의 죄수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포부를 포기하고, 자기의 전부, 모든-모든 것, 자기 생명, 혼, 몸, 의지,
포부들, 기타 모든 것을 내어놓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죄수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이 낫다고 여기며 상반되게 행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어떤 조직 내에서,
여러분은 그들이 여러분을 들어 올리고 여러분이 이름을 낼 수 있도록 위대한 뭔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자신을 보게 됩니까? 여러분은 잠시 후에는 패배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주님께 죄수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얻으실 때까지는.
하나님은 죄수들을 찾고 계십니다. 항상 그러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그것을 찾으실 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죄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말고는 다른 모든 것과는
끊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남자형제, 여자형제, 남편, 아내, 누구든지.(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여러분은 오직 그리스도와만 접속이 되어야 하고, 그분과만,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사용될 수 없습니다.
저는 때로는 사람들에게 거칠게 말씀을 전합니다. 아시죠? 저는 여러분을 끊어내 풀어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은 시작점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런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일도 얘기합니다. “그건 사소한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어, 여러분은 어딘가
에서는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에이비이씨이(ABC)에서. 아시겠죠?
(Always Belief Christ)=항상(언제나) 그리스도(말씀)를 믿어라.
세상적인 모습들을 끊어내고, 그리스도께 죄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계속해서, 모든 것을 끊어 냅니다,
마침내 마지막 줄이 끊어져 풀어질 때까지. 그러면 여러분은-여러분은... 여러분은 그때 죄수가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신의)수중에 넣으신 것입니다.
자, 모세는 자기가 구원자로 태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모세가 가졌던 그 포부로, 어머니가 그의 유모였으므로, 어머니가 거기에서 그에게 알려주었다는 걸 아니까?
어린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얘, 모세야,...너의 아버지 암람과 내가 계속 기도했단다.
우린 말씀에서 구원자가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보았단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했지, ‘주 하나님, 우리는
그 구원자를 보기 원합니다.’하고. 어느 날 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네가 태어나고, 그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단다. 우리는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단다. 우리는 왕이 한 말은 개의치 않았어. 그때,
우리는 네가 구원자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모세야, 우리는 우리가 너를 바로 양육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단다.” 자 명심하십시오, 그들은 사백 년 간 이집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네가 바른 일, 바른 교육, 바른 훈련을 받기를 원했단다. 그래서 내가 너를 조그마한 궤 안에다
넣고, 나일 강에 띄어놓았단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물이 그 조그마한 궤를 갈대와 골풀들 사이로 흐르면서
그것을 저 아래 있는 파라오의 궁 안쪽으로 데리고 가서,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는 곳에다 밀어 넣었단다.
나는 그녀가 너를 양육할 여인을 필요로 하리라는 걸 알았단다.”
그 당시에는,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먹이는 이런 우유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모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미리암, 나는 미리암을 보냈단다. 미리암이 거기에 서 있다가, ‘나는 유모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알아요.’하고
말했고, 와서 나를 데려갔단다. 모세야, 문들은 다 닫혀 있다. 얘야, 너는 이제 열여섯 살이니,(내말을 기억해라.)
너는 파라오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는 네가 여기서 그 백성들을 데리고 나갈 구원자가 될 것이다.”
모세의 포부는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저 공부할게요. 저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공부할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할지 아세요? 저는 군인이 되는 걸 배워서, 이 백성을 여기서 데리고 나갈 방법을 알아볼 거예요.
저는 위대한 장군이 되어, 또 주교가 되어, 그 일을 해낼 방법을 찾을 거예요.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겠어요.
유명한 여러 전문가 박사들에게 두루 배워서 박사학위나 법학박사 학위를 받겠어요. 그렇게 하겠어요.”
그가 쓴 책들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시면, “치니키 신부” 처럼요. 좋습니다. 그는, “모든 개신교교인들을 인도해
낼” 겁니다, 아시죠? 그는 자기가 개신교인이 됩니다. 여러 해 전에, 이 훌륭한 신부님은, “치니키 신부(Father
Chiniquy)” 여러분은 그가 쓴 책을 읽어보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신부(Father)’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그는 사실 치니키 형제일뿐입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아버지(Father)”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면-그는 성경을 읽고, 나와서 개신교를 반증하면서 모두 카톨릭 신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가 가서 성경을 읽었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고, 그는 성령을 받아, 자기도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십시오, 모세는 훈련이란 훈련은 다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영리하고, 많은 교육을 받았고, 너무나 지적이었습니다! 급기야는 이집트인들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심리학자들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군인들에게 군사력에 대해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위대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모세를 두려워했습니다. 오, 학식은 얼마나 높고요!
세상에! 그는 주교였습니다, 어쩌면 교황 같은 사람. 그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이 일을 하려고 태어났고,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그 일을 하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요.
오늘날과 똑같습니다. 이런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모두 다)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그들은 서부에서 일억 오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신학교를 건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오순절 교회, 일억 오천만 달러가 드는 신학교. 제가 볼 때, 그런 돈이라면 선교지에 선교사들을 보내는 데 쓸
비용입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아시겠죠? 하지만, 어떻든지, 그들이 거기를 나오면 뭘 합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리키 무리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그들이 나오게 됩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나머지 학교들도, 다 동일한 노선에 있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모세는, 모든 훈련을 다 받았고, 오늘날, 온갖 훈련을 다 받고 유명한 주교들을 양성하고 그럽니다.
위대하고, 높은 포부를,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되죠? 우리의 포부들은 모세의 포부처럼 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수중에 들어오는 사람을 얻으시기 전에, 그에게서 (그의) 포부를 제거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받은 모든 (세상적인) 훈련도 제거하셔야 했습니다.
모세는 정말로 나갔고, 구원해 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인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을 죽였을 때,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로 데리고 나오셔야 했습니다, 사막으로, 사막 지역으로요.
보세요, 좀 이상하죠? 어떻게 이 인물들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메시지를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도 사막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훈련을 시키려고, 바울에게 이 모든 위대한 환상들을 설명해 주시려고, 사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어느 사막으로 가거라.”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을 완전히 알려 주실 때까지 거기 머물렀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막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거기서 사십 년 동안을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그가 가진 모든 신학과 모든 포부를 다 제거하셨습니다. 오,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을까요,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실패를 생각하면서 보내던 그 시간이. 우리의 포부를 볼 때에, 오늘밤 우리는 똑같이 행해야 합니다.
그 병고침 전도대회를 보세요, 주께서 몇 년전에, 병자들에게서 치유를 회복하기 시작하고 그러셨는지 보십시오.
모두 모든 조직이 그것은 그들의 조직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안에서 병 고치는 사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죠? 잠시 그것을 봅시다. 우리는 모세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어떤 기적 같은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나는 병 냄새를 맡았어요. 제-제-제 손에 피가 나와요,” 기적을 억지로 만들어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뭘 가지고 있죠? 그렇게 힘든 압박감을 가졌던 남자들 가운데는 신경과민이 되거나 술을 달고 사는
사람이나, 신경증 환자나, 정신 이상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의 목적에서 조직들과 그런 것들을
다시 만드는 것으로, 순서를 완전히 뒤바꾸어버렸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겁니까? 이집트인 한 명을 죽인 것과 같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시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고군분투했습니다. 우리는 값을 지불했습니다. 우리는 힘들게 일하고, 기도모임에서는 철야를 하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뭔가를 꾸며내고, 이런 모든 일들을 하려고
애를 썼지만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캠프 집회들과, 눈물나는 노력들. 왜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게 여러분이 해야하는 일입니다, 아시겠죠.
돌아가 포기하는 겁니다. 네, 우리는 그들이 행한 일을 똑같이 했습니다, 모세가 행한 그 일을 똑같이 했습니다.
그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십 년 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죄수가 되어 있음을 봤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뭘 하려고 노력합니까?
그 큰 축복이 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던 이런 큰일들 모두의 표명이 나올 때;
어떻게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지; 어떻게 우리가 성령을 받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와;
여기 있는 이 모든 것들. (그런데) 아시죠? 여러분! 그 말씀에 붙는 대신에, 말씀의 마구에 채워지는 대신에,
그들이 어떻게 하죠? 그들은 자기들의 교파가 내세우는 이론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실패한 것인데요,
(그들은) 그리고 진리처럼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애씁니다.
저는 거기서 멈춰야겠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여러분이 제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를 충분히 아시고도 남으리라
확신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어난 결과를 보십시오.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부인하는 조직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뿐입니다; 성령의
생명을, “그것은 텔레파시에요,”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자기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뱀의 씨, 영원한 보장, 성령께서 계시하시고 말씀이라고 증명하시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는 제게 와서 제 잘못을 증명해 보라고 계속해서 도전에 도전을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건 뭡니까? 루터가 가진 똑같은 것, 나머지 사람들도, 이집트인 한 명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게 뭐였죠? 어쩌면 어떤 사람으로 시작...도둑질을 멈추게 하거나, 어쩌면 자기 아내에게 충실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죠? 교인입니다. “와서 우리에게 등록하세요.” 아시겠죠?
그 악취 나는 죽은 사람이 모세가 사십 년 훈련받아서 이룬 성공으로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거기 누워 있는 악취 나는, 썩고 죽은 이집트인 한 사람이 말이죠.
오늘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부흥이 끝나고 나면, 소위, 호텐토트족이 애굽의
밤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악취 나는 교인들 무리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면, 그들은, “저는 그걸 안 믿어요.”하고 말합니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그 말씀 안 믿어요.” 합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보는 온갖 노력들과 고군분투에 비해,
그것을 다시 가리켜야 하다니 끔찍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큰 학교를 가리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죽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을 가리킬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도 죽었습니다.
그것은 악취가 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빠져나온 처음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돌아간다면,
“돼지가 진창으로 돌아가고,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죽은 이집트인 한 명.
누군가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모세, 당신은 그 백성들을 위한 마음이 이제는 없는 겁니까? 당신은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어요.” 모세를 알던 사람들은, 그가 이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아닙니다.”
“어, 당신은 나가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아요?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지 않는 겁니까?”
모세는 거기서 (40년 동안 배웠던 세상 때가)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선포했던 타는 가시덤불에서
그 체험을 할 때까지. “나는(I)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AM). 나는 내 약속들을 기억하노라.
내가 그들을 인도하려고 내려왔도다. 내가 그 일을 하라고 너를 보내노라.” 바로 그거였습니다.
모세는 (그때에야) 말씀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의 포부나 소원들이 아니라. 그 다음에 모세는 무엇이 되었죠?
그는 더 이상 이집트인들의 지식들을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것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죄수(노예)가 되었습니다. 아멘. 사십 년 동안의 광야에서의 배움과, 벗겨지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그 타는 가시덤불에서 (하나님께 사로잡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온갖 지성을 갖춘 강한 모세가 말입니다.
성경은 모세가 이집트에 있을 때, 말과 행사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7장22절)
(이집트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워 아는 것들과 행동하는 것들에 있어서 한 치의 흐트러짐과, 실수도 없이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세는 가시덤불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타고 있었던 가시덤불이
조금도 소멸되지 않고 타오르는 모습은 그에게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가 그 동안 배웠던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은 그에게 경이로움을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가 40년 동안 배웠던 지식은 그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과학과 자신의 지식과 신학을 신봉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이세상이 그 동안 쌓아 올렸던 온갖 분야의 방대한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모세가 얼마나 자신의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뼈저리게 느꼈을지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성으로 가던 중에 만난 하늘로부터 온 불기둥을 만났을 때, 그가 배웠던 세상 지식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여, 누구시옵니까?” 그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11장33절에서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에 갇힌 자. 곧 죄수(노예)가 되었습니다.” )
그런데 (모든 지혜를 다 배운) 그 능한 신학자가 타는 가시덤불의 임재 안에서 어떻게 했는지 잘 보십시오.
자기의 무능함을 고백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을 보았을 때,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신학으로 훈련을 받았었고, 그들의 가장 좋은 학교에서
훈련받았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가...그 가시덤불에 그 불기둥이 머물러 있었을 때 어떻게 했죠?
모세는, “나는 주님께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제가 누군데 가야 합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모세야, 신발을 벗어라. (이제야) 너와 얘기하고 싶구나. 벗어라, 너의 신발까지도. 너는 다시 땅에서 평범하게
되었다. 너와 말하고 싶다.” 모세는 말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마침내, 선택된 죄수 한 사람, 선택된 선지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선택되었던 것처럼요. 모세도 선택된, 구원자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택된 사람을 자기에게 죄수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움직일 때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누가 나를 보냈다고 말할까요?”
“아이 앰(I AM)이 보냈다고 해라.” “제가 어떻게 하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 이런! 모세는 죄수였습니다. 자, 이제 모세는 자기의 생각과는 반대되어도 갑니다.
자, 그는 군대를 지휘하는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검, 위로! 뒤로 돌아!” 가게 훈련시켰습니다,
“병거, 준비! 창, 앞으로! 돌격!” 그런 식으로 모세는 점령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뭘 사용해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게 뭐냐?” 하셨습니다.
“막대기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람이 생각하기엔 정말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렇죠?
손에 막대기를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수염은 휘날리고. 여든 살이었습니다. 모세의 아내는 나귀 위에 앉아
있고; 아들은 엄마 옆에 앉아 있고. 조그마한, 늙고 살이 축 쳐진 팔은 내리고 있었습니다;
막대기 하나. 모세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머리만 곧추 세우고 있었습니다.
왜죠? 마침내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모세는 죄수였습니다. “나는 말씀이 나를 움직일 때만 움직일 거다. 나는 말씀이 말할 때만 말할 것이다.”
“어디 가시지요?” “나는 한 가지 사명을 받았어요: 파라오 앞에 서서 이 막대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보일 것이오.” 아멘. “그 뒤에는 어떻게 할 건데요?”
“이 일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밤, 첫 단계로 한 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항복하고, 죄수가 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수가 되십시오.
모세는 죄수가 되었고, 자기는 말도 할 수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수중에 넣으셨을 때는, 모세는 하나님께서 움직이게 하실 때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실 때. 모세는 그게 말씀임을 알았고, 그때 자신을 말씀에 바쳤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성령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마구를 채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도 똑같이 행하셨습니다. 맞습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마구를
채우셨습니다; 체구가 작고, 매부리코, 냉소적인 유대인으로, 철학박사, 법학 박사 학위로 온통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에게 그가 말씀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리라고 보여주리라.”
아시겠죠? 그런데 그는...바울은 거기에 앉아서 말씀을 보았고, 그것이 예수임을 깨달았을 때, 두 손을 들고
주님께 마구가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을 말씀에 마구를 채웠습니다.
“그가 이방인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리라.” 바울은 거기로 갔습니다.
“모세야, 나는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것을 기억하고, 그 약속의 때가 가까웠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내 백성들의 고통을 보노라. 나는 내 약속을
기억하노라. 내가 너를 마구로 채우려고 내려왔노라. 너는 말씀이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거기로 내려가게
하려고 너에게 마구를 채운다, 너에게 권능의 마구를 채워서, 거기로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게 하려 함이라.
손에 증거로 그 막대기를 가져가라, 너는 그 막대기로 행해진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라.”
물매를 가지고 있었던 다윗처럼. 아시겠죠?
모세는 마구가 채워졌고,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복종하고, 마구가 채워진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움직이기 전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얻게 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죄수 된 자, 사랑의 죄수, 사랑의 띠 안에서 하나님께
멍에를 멘 자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사랑의 띠 안에서 멍에를 메었던 것 처럼요.
바울처럼, 그들은 둘 다 똑같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도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로마인들의 수하에서 끌어내고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던
교회의 힘으로,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훈련 학교들, 가말리엘 수하에서 그는 컸습니다.
둘 다 사막으로 들어갔고;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둘 다 불기둥을 봤습니다. 둘 다 선지자였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 그들 둘 다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에서 나는 음성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구원자를 위해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로;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들의 집을 떠나
알아보려고 사막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기 백성들과 모든 것을 떠났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한 방법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방법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한 죄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분입니다.
십 분 정도 더 시간을 내서 이것들을 알아 볼 수 있습니까? [네빌 형제가 “아멘.” 한다.]
저는 잠깐 또 다른 인물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여기 앞에 한 사람을 봅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는 선택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예표였습니다. 그는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도 선지자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는 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도, 그는 자기가
보좌에 앉아 있고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모습을 환상으로 봤습니다. 아시겠죠?
잘 보십시오. 그는...그는 자기가 위대한 사람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 모두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셔야 했죠? 다른 이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구원자였고, 바울도 구원자였고, 이 요셉도 구원자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의 백성을 기근으로부터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어떻게 하셔야 했죠? 요셉을 감옥에 가두셨습니다, 곧 바로 감옥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그는 형들에 의해 한 이집트인에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을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자유를 또 빼앗겼습니다.
거기서 감옥 안에서, 요셉은 울고 또 울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벗기셔야 했습니다.
자 보세요. 하지만, 항상, 요셉은 그 감옥 안에서, 환상에서 자기가 보좌에 앉아 있고 형들이 그에게 절하리라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은사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일이 일어나야 함을 알았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한 교회를 세우실 것이고, 한 백성을 세우실 거라고 했음을,
우리가 그걸 명심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런 것들, 하나님께서는 그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 때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때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진짜 죄수로 삼으시려고, 그분 안에 갇혀있게 하시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래 전부터 부르던 그 찬송 들어보셨죠? “문을 닫고 하나님과 함께 있네”? 저는 문을 닫고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일에 관해 생각하는 겁니다. 문을 닫고 하나님과 함께, 다른 것은 다
놔두고, 혼자 있는 것,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움직이라고 말씀하실 때만 움직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행할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문을 닫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자 명심하십시오, 요셉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셉도 자신에게 완전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는 모든 것,
그는 이해하던 모든 것, 모든 일이, 그는 완전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짜)죄수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불신자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어떤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멘.”]
그의 사역은 아무런 결과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역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감옥 창살에 다가서서 그들에게 설교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걸어가고 있고. 아시겠죠? 하지만 그는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이 바르게 될 때까지, 그를, 죄수로 지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에 내 사람이 있다.” 하셨습니다. 영광을! 완전 실패자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감옥 안에 있는 요셉에게 오셨습니다. 바울처럼,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사를 사용하였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했죠?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주시자
마자, 왕에게, 그의 왕에게서 권세를 받아, 파라오의 옆에, 바로 아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구원을 받아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가 말한 일은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아멘.
감옥에 있을 때, 요셉은 자기는 어떤 목적을 위해 태어났음을 계속해서 기억했습니다. 요셉은 왕 옆에 앉게 될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가 본 환상이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요.
아멘. 하지만 그의 환상이 완전히 성취되기 전에, 그는 죄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요셉은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자, 하나님의 말씀에 죄수가 되고, 그는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어 말하게 하는 것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움직이셨습니다.
보세요, 요셉은 파라오의 통치자들을, 원하는 대로, 묶을 권능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산더러, ‘옮기우라.’고
말하면.”이죠. 그는 파라오의 통치자들을 묶을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집사이든, 장로이든, 주 대표이든 어떤
신분이든지 간에. 그가, “내가 너희를 묶노라,”고 말하면, 그들은 묶였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그의 말로,
그의 원하는 대로 그 일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 저는 삼 분쯤 시간이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자, 우리는 그가 세상에 죄수였다가 하나님께 죄수가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모세도,
마찬가지로, 자기 생각의 죄수였다가, 하나님께로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나왔을 때,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울이 되었... 모세가, 옛날 생각을 내려놓고 그것에서 벗겨졌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죄수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움직일 때는 언제나...“‘그리스도’라고요?”
“그는 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도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께 죄수가 되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그 세 사람은 다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렇죠?
다 하나님의 뜻과 방식들에 죄수가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벗어 버려야 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그의 말로, 묶을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말로, 풀 권능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나의 왕의 이름으로, 너를 풀어주노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파라오는 요셉을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랑의 죄수들을 그분의 아들들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그분이 가졌던 똑같은 권능을 말입니다. 요한복음14장12절, “나를 믿는 자는, (아시겠죠?) 내가 하는 일들을
그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행하리라.” 자 그리스도의 사랑의 죄수는 그의 왕, 그리스도에게 권능을
부여받게 됩니다. 아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이 산더러 ‘옮기우라’고 말하고, 너희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며 네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면, 너희가 말한 대로 되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내게 멍에가 씌워져 있다면,” 그와 그분의 말씀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더라.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도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여기 저기 가 아닙니다.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것을 구하라, 아니, 너희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시행되리라.” 그는 권능을 가졌습니다.
보세요, 나가기 전에, 요셉은 따라 나가서 이발을 해야 했습니다. 왕을 알현하기 전에 몇 가지 잘라 버려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그분의 사람들을 그렇게 데리고 나가셔서 그들의 의지들을 깎아내시고,
그들에게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제 말 의미를 아시죠. 그들은-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완전한 권세 안으로 들어오고 그리스도께
사랑의 노예가 되기 전에, 그들은 먼저 이발을 하고 나서 그 분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깎기 위해서,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해
놓으신 그 목적을 성취하시려고, 그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그들을 데리고 나오십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죠?
형제님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다른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택하시고 자신에게 죄수가
되게 하셔야 했는데, 자기 자신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가 알던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가 훈련받은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그 사람은 인간이 행해야 하는 일과 하나님을 동시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건 서로 너무나도 상반되니까요.
여러분은 동시에 동쪽과 서쪽으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갈 수 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옳은 일과 잘못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인간과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따르든지 사람을 따르든지 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따르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께, 그분의 말씀에,
그분의 뜻에 죄수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여러분은 그것에 죄수가 됩니다.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몇 분이 흘러가고 있는데요, 저는 이 말을 경외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말합니다. 보세요.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행하셔야 하고, 이 마지막 시대에 행하실
일은, 추수를 위한 도구를 찾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탈곡하기 위해서 도구를 찾으셔야 합니다.
농부라면, 추수해야할 때가 되면, 그는 추수할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날이 선 낫이나 그런 것이, 그런 도구가 있어야, 알곡을 베어냅니다. 이제 추수는 무르익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손으로 잡아 주소서.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 매인 종이 되게 하소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죄 많고 저주받은 땅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분”이심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소서.
저로 말하면, 하나님, 저를 죄수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제 형제들이 모두 다 저를 거절하면, 제 모든 친구들이
저를 거절하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죄수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말씀에 마구가 채워져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이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동일한 일들로
확증 받는 것을 보게 하소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가 되길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오늘밤, 고개를 숙인 채로, 우리가 가진 그 포부가, 뭔가 다른 것, 아니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기적인 일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제쳐놓을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여기에 있는 청년들 중, 둘러보고, 이렇게 말할 사람 있을까요? “내가 크면, 나는 어떠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서, “아니 아닙니다. 네. 저는...제 포부들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에,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 마지막
시대의 타작 도구가 되도록 제 자신을 드리길 원합니다.”라고 말할 청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여성 가운데 훌륭한 숙녀의 성품을 가진 포부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예쁘장한 얼굴을 한 미혼 여성들,
아니 어쩌면 언젠가는 할리우드를 여러분의 직업으로 삼으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러분이
이제 여러분의 포부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임재 안에 바치고, 여러분 자신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기 원하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누군지 아십니다.
저는 가까이에 목사님이나, 어딘가 교회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씩 이곳에 옵니다.
저는 오늘밤, 여기 앉아계시는 분 중 삼분의 일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여기에 앉아 있는 이 조그마한 무리만
압니다. 그런 분이 계시면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실까요, “나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건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저-저는 무조건, 그분의 말씀을 설교할 겁니다. 저는 제 조직이 뭐라해도, 저를
쫓아낸다고 해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그 말씀 편에 계속 머물겠습니다. 저-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제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 뜻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 죄수가 될 겁니다.
그분의 은혜와 도움으로, 그렇게 할 겁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동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밤, 몇 분이나 그런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 손도 듭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항복하고 드립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것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릅시다.
모두 드리네. 모두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모두 드...
정말 진심으로 부르십니까? “저는 죄수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저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밤, 토기장이의 집으로 저를 데려 가시옵소서. 절 완전히 깨뜨리시고, 여기에서 다시 빚어 주시옵소서.”
...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 찬송이 계속 연주될 동안, 저는 지금 그 찬송 중간에 들어가 잠시 주님께 얘기하는 게
가장 적절한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나는 모두 드립니다,”라고 생각할 동안, 아버지여, 우리가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들 자신을 드리려고, 씻은 옷과, 씻긴 혼, 씻긴
의지들, 씻긴 포부들을 가지고,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자면, 주의 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다 함께 하나님 말씀에다 멍에를 지우시옵소서. 성령께서 지금 우리를
취하여서, 그 멍에가 우리 마음 둘레에 철컥 끼우는 소리를 들을 때, “오늘밤부터는, 내가 너의 말을 너로 생각
하리라. 이제는 너의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 생각들을 생각해라. 내 뜻을 생각해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고.
하나님,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체험이 되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여기 앉아 있는 이 젊은이들; 부부; 예비 부부들. 여기에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목사님들이, 오래 사역해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주님, 여기에 네빌 형제가 있고, 제가 있습니다, 사다리로 꽤 높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우리는 우리 발걸음이 어디로 가는지 조심합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말해서,
예전처럼 든든하게 발을 떼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가 이 유한한 생명이 시들어 가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지 않으시면 우리는 발걸음을 확실하게 떼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그래 주시겠어요? 주님의 손에 우리의 마음과 뜻을 붙잡아 주시고,
오늘밤 우리가 말씀에, 그리스도에게 죄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여기서 경건한 삶을 살게 하소서.
이 여자분들, 이 젊은 여성들, 이 젊은 남성들, 청소년들이, 그들의 삶을 바치게 하소서,
주님. 그들의 포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겠다는 포부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은혜와 뜻의 죄수가 되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시옵소서.
주님, 제가 할 일이라고 아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이 두서없는 말들, 저는 주님께서 바르게 연결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안은 덥고 사람들은 듣기를 원하는데, 이 안이 정말로 덥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내일 일찍 직장에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이 씨들이 심겨지게 하소서, “한 죄수.”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말하십시오, 그들이... 그들이 오늘 오후나 오늘 저녁에 잠자기 전에 침대 옆에서
기도할 준비가 되기 전에, 서로를 건너보면서, “여보, 오늘은 어떻소?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뜻에
죄수가 되었소, 아니면 우리 자신의 뜻으로 이룬 거요?”하고 말하십시오.
사방에 있는 젊은 남녀 여러분, 특히 오늘밤 이 메시지를 들은 분들,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 보십시오,
“내가 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기꺼이 죄수가 될 의향이 있는가?”
“자기 생명을 구원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찾으리라.”
아버지,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주님의 죄수가 되고, 우리 자신의 포부들과 우리 자신의 욕심들을 버리고,
주님의 것을 찾으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주님, 허락하시옵소서.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이제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겁니다. 열매를 많이 맺고 마지막 날 추수를 위한 훌륭한-
훌륭한 도구들이 나와서, 남녀,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뜻에 자신을 바치고, 그분의 사랑에,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들이 되고, 그리스도께 신성한 사랑의 족쇄들에 묶인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분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모두 드리네, 일어섭시다. 모두 드리네. 사랑하는, 구...?...
다시 그것을 말해 봅시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들고서.
모두 드리네, 모두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자,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폐회 찬송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부르기 전에. 저는 여기 계신 이 형제님께
기도를 부탁하려고 하는데요...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어둠이 내려오는 환상에 대해 간증하시고 치유 받으신
저 자매님. 그런데 명심하십시오, 다시 보니까? 그 베일은 사라졌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기도로 폐회를 해 주시겠어요, 형제님? 하나님의 복들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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