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隱目 눅十九章卄八-四四節
主謂猶人曰 爾目福以其視也(太十三章十六節). 且爾目有罪 以其不能視也(요한九章四一). 同一目也 而或視 或不視 何也? 一見而能知 一見而不能知. 所謂隱目者 亦見而不知之意也.
主入京 猶人大歡 此時主當喜 而望京而反哭, 何也? 有禍臨至 而不見也. 主特言今者 禍不在遠 迫在目前 而不知 所謂隱目也. 禍福有機 皆隱也, 知者聖也 不知者愚也. 土城漸高卽必踕壞 而入過去備忘錄也, 未來預想錄也. 未來之結果 惡乎, 善乎? 風乎, 雨乎? 其機皆隱於目矣.
彼等之目 只見假相, 不見眞相. 聖國之華麗, 子孫之殷盛, 聖殿之華美. 暗中其國 而其內强盜充斥 灰墓展開 不能見. 聖國西有海, 北有山, 南有沙漠. 其國如此 而誰知六十年後? 羅馬大勝則至入 其民盡面之見聞.
且爲選民. 有聖書儀式 備割禮獻祭, 誰知後爲捕虜? 聖殿內 有聖物聖器, 金銀寶貝備焉, 誰知後日 盡積于羅馬市場乎? 皆隱於目今万事. 神振改造乎, 革新乎, 黎明乎, 終末乎? 皆隱於目 若異變世事 蕩心乃己. 主昔視 猶人今視, 世人一般. 主欲使世爲天國 一邊傳洪水 一邊造方舟. 方舟見 而不知洪水. 不見亦不知 亦隱目也. 主之眼 洪水蕩蕩淹沒, 全世目不忍見故災.
且信目無隱. 主謂該隱甫 顧愛何故? 禍孽伏于門也, 伏者隱也. 譬如伏興 禽獸也. 禍孽隱於門 而待多時 而發多時 讎接程多 是不禱之時. 魔來此時 而發可畏哉. 無花果葉 烟知敎近. 不知人子到門 倚待聞角 長而發乎? 天堂地獄 不必待來世, 必在今世. 信目常接 聖書, 聖書爲億信者 內鏡而知 故信目無隱.
眼有各種. 有經濟眼, 政治眼, 法律眼, 宗敎眼 而獨無神靈之眼. 此眼非有多識 而愚者亦有. 今日果有能見 天國者乎? 此果有福矣. 能見地獄者乎? 安有福矣? 當預備也, 如今防空防護. 履霜氷至 風滿雨至, 其理歷然. 曲突徙薪之譬 聖書言, 粬實徙薪之言也 人如信毫理不變之 得救矣.
206. 숨겨진 눈 / 누가복음 19:28-44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눈은 보는 고로 복이 있다(마13:16).” 또 “너희 눈이 죄가 있으므로 볼 수가 없다(요9:41)”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하나의 눈인데 혹은 보고 혹은 보질 못한다 하니 왜입니까? 하나는 보고 알 수가 있고 하나는 보고서 알 수가 없으니, 이른바 ‘숨겨진 눈[隱目]’이란 것은 역시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서울[예루살렘]에 들어오시니 유대인들이 크게 환영하였으니 이때에 주님은 마땅히 기뻐하실 텐데 서울을 바라보시고 도리어 우신 것은, 왜입니까? 재난이 임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은 재난은 눈앞에 다가오는데 아지 못하니 이른바 숨겨진 눈이었습니다. 재난과 축복은 낌새가 있으나 다 숨겨져 있으니, 아는 자는 거룩하고 모르는 자는 어리석게 됩니다. 토성(土城)이 점점 높아지면 필시 빨리 무너진다는 것이 과의 비망록에 있고, 매래의 예상록입니다. 미래의 결과는 악합니까, 선합니까? 바인가요, 폭우인가요? 그 낌새는 모두가 눈에 숨겨져 있습니다.
저 유대인들의 눈은 단지 거짓된 현상만 보고 있을 뿐 진상(眞相)은 보질 못합니다. 거룩한 나라의 화려함, 자손의 번성, 성전의 아름다움은 어두움 속의 나라이며 그 속은 강도가 넘치며, 회칠한 무덤이 전개되고 있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나라는 서쪽으로 바다가 있고 북쪽에는 산이, 남쪽에 사막이 있습니다. 그 나라가 이와 같으나 누가 60년 후를 알겠습니까? 로마가 크게 이기고 당도하게 되면 그 백성들이 그제야 다 보고 듣는 바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선민이 됩니다. 성서와 의식이 있고 할례를 준비하고 제사를 드렸는데, 훗날에 포로가 될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성전 안에는 거룩한 물건들과 그릇들이며, 금은보화가 갖추어져 있었는데, 훗날에 다 로마 시장에 쌓여질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모두가 눈에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 만사를 하나님께서 다 개조하시나요, 혁신하나요, 지금이 새로운 여명(黎明)입니까, 종말입니까? 모두가 눈에는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딴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방탕한 마음뿐입니다. 주님은 옛날을 거울삼아 보시나, 유대인들은 지금을 볼 뿐이며, 세상사람들도 한 가지입니다. 주님은 세상으로 천국이 되게 하시려고 한 편으로는 홍수를 전하시고 한편으로는 방주를 만드십니다. 방주는 보아도 홍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보질 못하니 역시 알지를 못하고 또한 눈에는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홍수가 탕탕히 밀려오는데, 전 세계는 눈을 뜨고도 차마 보질 못하는 까닭에 재난인 것입니다.
다음은 신앙의 눈에는 숨겨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사랑으로 돌아보신다고 하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재난[禍]이 문간에 엎드렸다는 것인데, 엎드렸음은 숨은 것입니다. 비유컨대 엎드리고 일어나는 것은 짐승과 같습니다. 재난이 문간에 숨어서 많은 시간 기다렸다가 일어나는 때가 많습니다. 원수는 숨은 길에서 많이 접촉하니 이는 기도하지 않는 때입니다. 마귀가 이때에 와서 나타나니 가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무화과 잎이 피면 때가 가깝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인자(人子)가 문에 도달하셨는데 문에 기대어 들을 때에 나팔 소리가 길게 들립니까? 천당과 지옥은 내세에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모름지기 지금 세상에 있습니다. 신앙의 눈은 항성 성서를 접하고 성서가 억만의 신자들을 위하여 내면의 거울이 됨을 아는 때문에 신앙의 눈에는 숨겨지지 아니합니다.
눈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제의 눈, 정치의 눈, 법률의 눈, 종교의 눈은 가지고 있으나 유독 신령의 눈은 없습니다. 이 눈은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니 어리석은 사람도 역시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천국의 것입니까? 이 과일은 있으면 축복입니다. 지옥을 볼 수 있습니까? 어찌 축복을 가진 게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예비해야 합니다, 마치 지금 공중의 폭격을 막는 방공(防空), 땅에서 위험을 막는 방호(防護)를 함과 같습니다. 서리를 밟고 얼음에 이르러도 바람이 가득하고 풍우가 이르는 세월이 흘러가도, 그 이치는 역사에서도 그러합니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의 비유는 성서에서도 말하니 곡돌사신의 말씀을 사람이 믿을 것 같으면 터럭만큼도 성경말씀이 변하지 아니하여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메모
寢房勿毁王 飛鳥傳其聲 傳十章卄節.
침실에서라도 왕을 비방하지 말라 날아가는 새가 그 소리를 전한다. 전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