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관원장의 꿈 (창40:1-23)
(요약)
하나님께서 요셉을 다스리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두 관원장을 보내주셨다. 이들이 꾼 꿈은 우리 성도들이 영권을 위해서 반드시 꾸어야 할 신앙의 꿈들이다. 즉 술 관원장의 꿈은 성령 충만의 꿈이다. 날마다 성령 충만할 때 비로소 세상과 악을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떡 관원장의 꿈은 날마다 내가 죽는 꿈이다. 즉 날마다 십자가에서 나를 죽일 때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고 주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이다. 해몽 후에도 3년간의 옥살이를 채웠듯 성령 충만과 나의 죽음이 더욱 온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서 감옥에서 두 관원장을 만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틀림이 없으신 속성을 봅니다.
비유하자면 시계 바늘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 하시는 일은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호세아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하였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틀림이 없는 공식이라는 말씀입니다.
2. 자기 백성의 구원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요셉에 대하여 시105:17-19을 보면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토록 연단하심은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기근을 만났을 때 요셉을 통해서 구원받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도 다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3.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귀히 쓰신다는 점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감옥에서 수고했는지 3절의 “요셉의 갇힌 곳”이라 한 말씀의 ‘갇히다’는 용어는 ‘꽁꽁 묶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손과 발을 착고로 동여맨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나라 왕조시대에도 죄수들 목에 칼을 씌어 놓았습니다. 이로 볼 때 요셉의 초기 감옥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귀히 쓰시려고 미리 연단하십니다. 혹시 고령이시라고 실망치 마세요. 일생을 연단 받은 야곱도 딱 한 가지 자기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것 하나였습니다. 여러분도 일생 많은 것을 깨닫고 체험했다면 이제 자손에게 축복된 믿음을 물려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연단이 클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게 사용하심을 깨닫고 낙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4. 인생의 앞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인도하시기 위해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옥중에 보내십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왕의 일반 신하보다 더 강력한 특권과 신임을 받는 신하들입니다. 관원장이란 ‘거세하다’는 말에서 유례한 용어로서 내시나 환관들입니다. 그 중에 술 맡은 관원장은 단순한 술 시중꾼의 차원을 넘어 곁에서 왕의 감정과 대화의 조력자로서 신하 중 고급관리입니다. 그리고 떡 맡은 관원장은 음식에 왕을 해칠 독이 있는가를 확인 감독하는 왕의 대단한 특권과 신임을 받는 직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요셉을 위해서 왕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막강한 사람들을 불러 붙여주셨습니다.
요나단 탈굼을 보면 이들이 왕을 독살하기 위해서 독극물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갇힌 것도 다 하나님의 큰일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왕이 대노하여 두 관원장을 야곱이 있던 시위대뜰의 투옥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처럼 정밀하게 돌아갑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분 간증인데 장기하사로 7년간 근무한 사람입니다. 요즘은 부사관 지원자가 많지만 옛날에 장기 복무하려는 사람이 적었답니다. 그런데 상관들이 자기 실적을 높이려고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강제로 지원서를 꾸몄는데 불만할 때 군인교회에서 “피하지 마라.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하사 중사가 되면 네 밑에 수십 명의 부하가 네 교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해서 감동 받고 지원했답니다. 그런데 7년 동안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가는 곳마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는지 소설을 써도 그렇게 만들어 낼 수가 없답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군인복음화 사명자로 부르신 것을 확신하게 하셨고 결국 극적으로 군인교회에서 군목 못지않게 하나님의 일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간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 관원장을 만나게 해주시고 또 꿈을 꾸게 하셔서 그들의 꿈을 해몽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요셉이 꿈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닙니까? 우리의 꿈도 있습니다. 일차적인 꿈은 성경으로 성경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기에 요셉처럼 세상을 다스리는 은혜를 주십니다. 다음은 성령으로 주신 꿈을 이루게 하십니다.
5.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다스리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두 관원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들이 꾼 꿈은 우리 성도들이 영권을 위해서 반드시 꾸어야 할 신앙의 꿈들입니다.
먼저 꿀 꿈은 성령 충만의 꿈입니다(9-11절).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하게 되는 꿈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꾸어야 할 성령 충만의 꿈입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때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고 악을 다스리고 마귀와 환경을 다스리게 됩니다.
다음 꾸어야 할 꿈은 날마다 죽는 꿈입니다(16-17절).
18-19절에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이 얼마나 불길한 해석입니까? 그러나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사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징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왕의 음식에 독을 탄 떡 굽는 관원장처럼 주님의 주권에 반역하려는 우리 교만한 마음이 죽어야 합니다.
사흘 후 요셉이 꾼 꿈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꿈에 그치지 않고 실행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어떻게 살며 죽지 않고 어떻게 요셉처럼 왕 노릇합니까? 그래서 딤후2:11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되려면 자나 깨나 두 가지의 꿈 성령 충만과 내가 죽는 꿈을 꾸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흘 후에 곧 꿈대로 되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그만 요셉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약 2년간을 요셉은 옥 속에서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 충만과 내가 죽음에 대해서 성경을 알아도 그것을 나에게 충분히 적용하기까지는 자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안에서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연단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과 날마다 내가 죽음을 통해서 온전히 죽어져야 하겠습니다. 그 때 우리들은 주와 함께 왕 노릇하며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