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음악사는 촘촘하게 짜인 직물과 같은 형상을 띱니다.역사 속의 천재 예술가들이 어떠한 문화적인 맥락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서로 아무런 관련도 맺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이는 역사적인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음악가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음악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들 간의 우정과 친분을 열쇠로 삼는다면,음악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조스캥 데 프레(1450~1521)는 대위법 기술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로 끌어올렸으며 인상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음악을 선보인 요하네스 오케겜Johannes Ockeghem(1420~1497)을 특별히 존경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난 오케헴 앞에 머리 숙여 인사하는 의미로 <오케헴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Déploration sur la mort d’Ockeghem>를 작곡하지요. 이 곡의 주요 테마는 성가<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Requiem aeternam>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바흐는 비발디를 존경합니다.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에 관심을 가졌는데,드보르자크의 작품에서 따온 선율로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하고 빈에서 드보르자크의 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애를 썼지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와 모차르트 사이의 우정도 유명하죠. 또 파니 헨젤과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서신을 주고받듯 작품을 교환하며 서로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말러와 브람스는 쇤베르크에게 모범이 되고 실마리 역할을 하는 작곡가들이지요. 드뷔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동료 작곡가,폴 뒤카스Paul Dukas(1865~1935)를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특히 뒤카스의 매혹적인 <Eb단조 소나타>를 여러 차레 작접 연주하며 소개하기도 했지요. 음악은 역사 속에서 전후좌우로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작곡가들은 모든 시대를 오가며 다른 작곡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과 현재와 역사를 향해 질문을 던지며 서로 관계를 형성해나갑니다. 가령 피에르 불레즈와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는 미래의 작곡가들을 위한 프록그램에 14세기의 작곡가들을 비롯하여쇤베르크와 베베른 같은 현대 작곡가들까지 고루 포함시켰지요. 루이지 노노는 브루노 마데르나Bruno Maderna(1920~1973)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15세기 음악 기법도 자신의 음악에 활용하고,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르Gian Francesco Malipiero(1882~1973), 쇤베르크, 베베른에게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죄르지 리게티는 자신의 음악과 해리 파치Harry Partch(1901~1974)의 음악을 비교해 보고, 14세기 말의 아르스 슙틸리오르Ars subtilior(복잡한 리듬,풍부한 장식음과 싱커페이션,풍성한 화음 드의 특징을 지닌14세기 말의 음악 스타일)작곡가들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지요. 이자벨 문드리는15세기 기욤 뒤페Guillaume Dufay의 샹송에 의지하여 클라리넷과 아코디온을 위한 <거울에 비친 상(像)Spiegel Bilder>을 작곡합니다. 그리고 작곡가 진은숙은 스승 죄르지 리게티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그녀만의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나갑니다. 존 애덤스는 찰스 아이브스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아이브스의 노래들을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했지요. 또 애덤스는 다께미스 도루武滿徹의<흐르는 강물Riverruun>에 대한 답으로<에로스 피아노Eros Piano>를 작곡합니다. 그리고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는<신포니아>(1968)에서 음악사에 등장하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만 아니라 이 거장들과 현대음악을 연결시켜주지요. 이렇듯 음악사는 일면적인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소통과 반성과 성찰로 견고하게 뒤얽힌 입체적인 그물망입니다. <출처:쾰른음대 교수진,‘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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