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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Ⅲ’ 광주공연 감동 후기
나고야 시민들이 열연한 연극 ‘봉선화Ⅲ’가 2월 24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 된 가운데, 공연이 남긴 여운이 작지 않습니다. ‘봉선화Ⅲ’ 관람한 용두중학교 학생 11명, 정신영 할머니, 이경자 할머니, 양금덕 할머니 아드님 등 일제 피해자 및 가족 3명,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과 일반 시민 관객 13명 등 총 28명이 감동 후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감동 후기는 ‘나고야소송지원회’에 전달했습니다. |
▲ ‘봉선화Ⅲ’ 대본과 연출은 물론 배우로 직접 무대에 오른 나카 토시오 감독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 휠체어에 의지한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은 무토 요코씨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 ‘봉선화Ⅲ’ 관람을 위해 나고야에서 광주를 찾은 일반 참가자가 공연에 앞서 환영 현수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중이다.
▲ 한일시민교류회에서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소송지원회 대표가 광주공에 대한 환대에 감사를 표시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 국립 5.18 묘지를 찾은 연극 ‘봉선화Ⅲ’ 참가단. (2.24. 오전)
▲ "고이 잠드소서". 국립 5.18 묘지에 안장돼 있는 일본 소송 원고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묵념을 드리고 있다. (2.24)
저절로 봉선화는 피지 않는다
길고 긴 눈물로 보낸 세월
채 피지도 못한 울밑에 꽃봉오리들
일본으로 끌려간 열 네살의 꿈
사탕발림으로 여린 꽃들을 속였다
눈물로 지새우며 팍팍한 시간
허기진 배 움켜쥐면서 물로 채우고 캄캄한 밤 부둥켜안고
벌렁이는 심장으로 찢어진 마음
달래며 지울 수 없는 상처의 꽃이여
살인적인 강제 노역 시달리며
망가진 몸과 마음 부둥켜안고
사무치는 서러운 가슴에 북바쳐
십자가 바라보는 피에타들이여
어둔밤 지나고 환한 해방의 감격이 동튼 새벽
조국으로 돌아와 가족의 냉대와 이웃의 손가락질에 남몰래 흘린 눈물과 설움 얼마나 되는가
빼앗긴 청춘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구나
그때 없는 길 시민 스스로 만들어
부끄러운 역사를 깨우는 사람들
진실과 정의를 위해
외길 걷는 수십 년 2007년 시작한 도쿄 금요행동이 531회째
양심의 꽃들이 바다 건너
사죄와 배상의 외침
일본의 전쟁범죄와 인권회복을 위한 길
분노와 슬픔이 눈물과 함께 버무러져 정월 대보름에 달을 만진 손들이 얼싸안고 하나가 되어
활짝 핀 봉선화가 빛고을에 피었다.
▲장헌권 목사(시민모임 자문위원)
おのずと鳳仙花は咲かない
(名古屋市民演劇団の鳳仙花3―光州公演をみて)
チャン・ホングォン
長くて長い涙で過ごした歳月
咲きもしない垣根の下に
つぼみたち
日本に連れていかれた14歳の夢
欺くことでか細い花たちを編ました
涙で夜明かしする苦しい時間
へこんだお腹を抱えながら水で満たし
真っ暗な夜を抱きしめて
パクパクする心臓で引き裂かれた心を
慰めながら消すことのできない
傷の花よ
殺人的な強制労役に苛まれ
壊れた体と心を抱き締めて
身に染みる悲しい胸にこみあげ
十字架を眺める
ピエタたちよ
闇の夜は過ぎて明るい解放の感激が
東の空に白む夜明け
祖国に帰って家族の冷遇と隣の
指差しに人知れず流した涙と悲しみ
いかばかりか
奪われた青春 だれも分かって
くれないんだ
その時見えない道を市民が自ら切り開ぎ
恥ずかしい歴史を呼び覚ます人たち
真実と正義のために
一本道を歩み続けて十数年
2007年始めた東京の金曜行動が531回目
良心の花たちが海を渡って
謝罪と賠償の叫び
日本の戦争犯罪と人権回復のための道
怒りと悲しみが涙と共に混じり合い
小正月に月を触った手たちが抱き合って
一つになる瞬間
満開の鳳仙花が光の町に咲いた
(光州市民の会、諮問委員)
▲ 연극 ‘봉선화Ⅲ’ 광주 공연.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 승소 후 가진 기자회견 장면이 배경화면에 펼쳐지고 있다.
▲ 연극 ‘봉선화Ⅲ’ 광주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들이 무대로 다시 나와 광주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봉선화Ⅲ,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이 버무려진 시간”
분노와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열 네 살의 꿈
사탕발림으로 여린 꽃들을 속였다
80년이 넘게 전범국가인 일본은 사죄와 배상이 없는 국가이다.
분노뿐이다. 그래도 일본인 가운데 양심있는 시민들이 있다.
그때 없는 길 시민 스스로 만들어
부끄러운 역사를 깨우는 사람들
진실과 정의를 위해
외길 걷는 수십 년 2007년 시작한 도쿄 금요행동이 531회째
양심의 꽃들이 바다 건너
사죄와 배상의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전쟁범죄와 인권회복을 위한 길에 함께 하는 나고야 지원회와 기억과 계승으로 할머니들의 한을 보듬어주는 연극 봉선화에 감사와 감격이다.
마음 한 편으로 한없는 수치와 부끄럼이다.
현 정부의 굴욕외교와 얼토당토 않는 3자가 변제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또한 한국에 그렇게 많은 연극단이 있어도 우리 연극인 손으로 만든 연극이 없는 것에 부끄러움이 있다.
이번 봉선화Ⅲ는 이처럼 저의 마음에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이 버무려진 시간이면서
동시에 역사정의를 위한 결단과 다짐의 시간이 되었다.
▲장헌권 목사
▲ 왼쪽부터 장헌권 목사, 고이데 유타카 나고야소송지원회 사무국장,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소송지원회 대표, 장휘국 전 광주광역시 교육감
▲ 백금렬 교사의 장구 장단과 아리랑 노래에 누구랄 것도 없이 무대로 나와 어깨 춤을 추는 연극 ‘봉선화Ⅲ’ 출연 배우들.(2.24)
'봉선화' 공연
감동
눈물
연대
미안함
죄송함
안타까움
고마움
든든함
연대감
나고야의 바보들
광주의 바보들
이기자
이길 때까지 가자.
결코 처량하지 않다.
봉선화여.
우리의 꽃이여.
우리의 사랑이여.
* 나고야소송지원회의 헌신과 끈기에 감사드립니다.
▲김남철(역사교사 퇴직, 전남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 "나주에서도 왔어요". 왼쪽부터 김덕수 나주사랑시민회 대표, 김남철 전남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정신영 할머니, 이경자 할머니, 최진연 전 나주사랑시민회 대표.
▲ 연극 ‘봉선화Ⅲ’ 광주 공연. 우측 사진 3장은 사망한 일본 소송 원고(이동련, 진진정, 김중곤)
“처음엔 그렇고 그런 연극인가 하고 반신반의했었죠”
정말 큰 감동이었어요.
한국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생기기도 전부터 일본에서 ‘나고야소송지원회’ 결성되고 ‘금요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어요. 게다가 그걸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이어왔다는 것도요.
금요행동 활동과 관련 소송 등을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남기지 않고, 이렇게 연극으로 만들어 색다른 방법으로 접근한 것도 놀라웠어요. 훌륭한 다큐 연극이었습니다.
비전공자들이 했다고 해서, 처음엔 그렇고 그런 연극인가 하고 반신반의(半信半疑)했는데, 막상 보니 극의 흐름도 그렇고, 연기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연기하신 분들의 연기도 그렇고, 젊은 시민들의 참여나 나이 든 시민들의 열정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아픈 얘기를 일본 사람이 일본말로 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고,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나고야소송지원회’의 오랜 노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선한 개인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람이 일본말로 연기하니, 그 감동이 두 배, 세 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한국말로 공연했으면 더 잘 알아듣고 더 많이 공감했을까 하고 자문해봤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이 일본말로 해서 더 의미가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말이 문제가 아니었던 듯 합니다. 그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였던 듯 합니다. 자꾸 눈물이 흘렀어요.
이 연극은 적어도 두 번은 봐야 제대로 알 것 같아요. 한 번은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은 내용을 음미하며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쿄에서 꼭 공연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모든 일본인들이 다 볼 수 있게 오래오래 공연하면 더 좋겠습니다. 도쿄에서 공연하는 날, 가서 다시 보면 정말 더욱 큰 감동이 될 것 같습니다.
▲정영해(전 동신대학교 교수)
▲ ‘봉선화Ⅲ’ 공연을 마치고 광주 시내에서 가진 한일 시민교류회. 함께 손을 잡고 '아침이슬',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왼쪽부터 교류회에 참석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정영해 전 동신대교수. 두 사람은 부부다.
오늘 연극 ‘봉선화’ 뭉클한 시간~
긴 여정 그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맘이 컸다.
▲손미애
▲ 연극 ‘봉선화Ⅲ’ 공연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들.
▲ 연극 ‘봉선화Ⅲ’ 광주 공연. 왼쪽 사진은 사망한 일본 소송 3명의 원고들(위로부터 김혜옥, 김복례, 박해옥)
“아~! 첫 장면부터 가슴이 먹먹했다.”
일주일 내내 내리는 장대비가 습습하다.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 로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가해국 일본의 전쟁범죄를 일본인의 양심으로 고발한다!.
연극 <봉선화> 공연팀, 지원회 회원 등 일본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러 500여 명 이상 인파가 웅성였다.
객석 불이 꺼진다.
인파 넘치는 아침 역
“나는 물결에 서 있는 한 개의 말뚝입니다.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인간의 강함을 서둘러 가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금요일 시나가와 역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장면에 기타연주에 노래하는 사람들.
양금덕,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빨리 사죄와 배상금, 빨리 해결을 부탁합니다. 혼자 살면서 매우 불안합니다.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속아서 일본에 오고 나서 76년, 재판에 호소했을 때부터 세어도 21년. 하지만 아직 급료를 받지 않았고. 사죄도 받지 않았고. 어쨌든 빨리빨리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뿐입니다.”
아~! 첫 장면부터 가슴이 먹먹했다.
근로정신대를 문제를 대하는 마음의 진심이 아마추어 연극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절절했다. 일본 연기는 절제미가 기본인데, 일본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피를 토하는 감정 연기를 보여주었다.
근로정신대의 진상규명, 도난카이 지진으로 사망한 한국인 소녀 6명의 추도비 건립, 40여 명의 일본 변호인단의 무료 변론, 도쿄 금요행동 등 38년여에 걸친 이야기를 2시간 가까이 풀어냈다.
한일 간 역사를 연극을 통해 공부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일본을 물론, 조국인 한국에서도 외면해 버린 12살 소녀들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전력을 다해 38년을 이어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와 "나고야 시민연극단"에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한다.
45년 해방 이후 78년 세월이 흘러 일제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소녀들 대부분이 별세하셨다. 나고야를 오고 가며 재판을 제기하셨던 양금덕 할머니도 건강이 너무 안 좋아 이 연극을 보러 올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양금덕 할머니 역을 맡으신 배우님께서 피를 토하는 감정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기억과 계승, 그리고 미래로….
대본, 연출, 배우 역할까지 한 ‘니카 토시오’씨는 “‘과거를 망각한 채 결코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에 이번 광주 공연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니카 토시오’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당금(푸른연극마을 대표)
▲ 5.18 구 묘역에서 만난 두 나라 연극인. 왼쪽부터 푸른연극마을 이당금 대표, ‘봉선화Ⅲ’ 나카 토시오 감독, 출연배우 이재용씨.
▲ ‘봉선화Ⅲ’ 관람을 위해 나고야에서 광주를 찾은 일반 참가자가 공연에 앞서 환영 현수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중이다.
“벌써 그들이 그립다”
나는 마을 연극에 3차례 무대에 올랐다.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욕망이 있는 초보자들로 구성된 마을 연극팀. 아주 짧은 대사가 있는 배우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을 연극팀에 근로정신대를 주제로 공연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연출자는 그 역사적 배경을 담아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 정도로 근로정신대 문제를 다룰 연극이 어떻게 무대에 오를 것인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일본 배우들의 공연이라니!!
공연장에서 만난 설레는 사람들의 표정. 몇 해 전 미쓰비시 주주 총회에 참석한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만난 반가운 얼굴, 굽은 허리와 작아진 키, 세월의 무게만큼 고이데 선생님께 나를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다. 언어의 장벽은 불통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고 하나, 둘, 객석은 채워졌다. 지정남 사회자의 공연 시작으로 한글 자막을 찾아 왼쪽 오른쪽 고개가 왔다 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과 역사 탐방길에 나섰던 과거가 겹쳐졌다. 미쓰비시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 소녀 6명의 이름을 찾아냈던 추모비,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진실을 여기에 새긴다”고 돌에 새긴 추도비,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이 빼곡히 정리한 자료가 있던 사무실, 뚜껑 없는 낡은 선풍기, 나고야에서 도쿄까지 매주 금요행동을 하던 회원들, 희끗희끗한 머리를 숙여 가며 유인물 한 장, 한 장 나누던 회원들, 그 과거의 모습이 오늘 연극과 겹쳐졌다. 회원들과 역사탐방을 갔을 때 다카하시 대표님과 고이데 선생님에게 역사강의를 듣는 듯 했다.
옆자리에서 뒷자리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일본 배우의 봉선화 노래는 울컥, 심장이 요동쳤다. 기타 반주에 맞춰 배우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진정한 애국자였고, 일본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고자 했던 살아있는 전사였다. 대를 이어, 국경을 넘어 실천하는 그들의 숭고한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내년 도쿄 공연을 준비하겠지. 벌써 그들이 그립다, 너무 멋진 사람들,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 봉선화 배우들, 스텝들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수희
▲ "마이크 좀 줘 봐요". 한일시민교류회장이 뜨겁다. 장구 장단에 맟춰 금새 무대는 춤사위 판이 벌어졌다. 아리랑을 따라하는 일본 나고야 시민들.
▲ 왼쪽부터 백금렬 선생님, ‘봉선화Ⅲ’ 에서 미쓰비시 공장 직원 역할을 맡았던 일본 대학생 하나무라 노리아키, 박수희씨.
“봉선화Ⅲ, 한일 시민이 함께 걸어온 길에서 태어난 작품...감동과 울림의 2시간”
기억과 계승.
'연극 봉선화Ⅲ'가 전한 메시지는 단호하고, 확고했고, 선명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무대를 보면서 가슴 뜨거웠습니다.
봉선화Ⅲ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그 곁을 지켜준 한일 시민이 함께 걸어온 길에서 태어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진정한 해방, 그토록 기다린 봄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계속되고 이어질 기억, 계승의 투쟁과 함께 살아 숨 쉬며, 멈춤 없이 성장할 작품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피해자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온 승리를 마침내 쟁취한 그 순간이 피날레를 장식한 새로운 봉선화의 무대를 상상해 봅니다.
감동과 울림의 2시간을 선사해 준 나고야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포기하지마'. 봉선화Ⅲ의 다짐과 약속을 새기며,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강경남
▲ ‘봉선화Ⅲ’ 광주공연
▲ ‘봉선화Ⅲ’ 공연 장면
“갑자기 이 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일본 분들이 우리 근로정신대 할머니 이야기로 연극을 한다구요?
공연 소식을 듣고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언어가 달라서 화면 대사도 읽어야하고 무대도 봐야하는데 집중이 잘 될까? 얼마나 많이들 오실까? 멀리 일본에서 오시는데 관객이 많아야 할텐데….
사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딱 맞았다. 공연 집중과 감동도 최고였고, 관객은 만석이었다. 내 뒤에 앉으신 어떤 분은 연극 중반 이후부터는 관람하는 내내 우셨다.
나고야소송지원회 금요행동 장면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대부분 홍보 유인물을 받지 않는 모습, 1심, 2심,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을 때 울부짓던 할머니들과 함께 우는 지원회 분들을 보면서 나도 울컥했다. 무관심한 반응에 힘이 빠졌던 경험이 있어 지원회 분들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이 들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 무엇을 보고 활동을 이어나가셨을까 궁금해졌다.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평범한 일본인들의 대사도 마음에 와닿았다. “그동안 나도 몰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선한 영향력이 더 넓혀갈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엄마에게 늘 들어서 아는 이야기라며 안 오겠다던 자녀들을 설득해서 함께 오게 되었는데 중학생 딸에게 소감을 묻자 “일본 분들이 직접 한국에 오셔서 눈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실감나는 연기로 보여주셔서 뜻깊었다”며 “지금까지 싸워왔던 과정을 노래와 연극으로 볼 수 있어서 더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투쟁 38년 발걸음을 담은 ‘봉선화Ⅲ 연극’을 통해 일본 분들과 진하고 뜨거운 연대감을 느꼈다. 갑자기 이 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한 걸음 뒤에 더 큰 걸음이 새겨질 것이 분명하다.
▲이정현
▲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관객 안내를 도운 회원들. 왼쪽부터 안영숙, 이정현, 장혜숙, 이은영, 서진영 회원
▲ "자, 여기를 보세요!"... 나고야에서 온 참가단 일부가 공연장인 빛고을시민문화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중이다.(2.24)
<용두중학교 봉선화 관람 소감>
(용두중학교 학생 11명은 이날 오전 김정은 사무처장을 초청해 ‘여자근로정신대 바로 알기’ 수업을 진행한 뒤, 김동혁 선생님, 조은미 선생님과 함께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용두중 학생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알리고 또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더군요.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는 참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좋은 기회 만들어주신 나고야 소송지원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시민모임 그리고 그에 동참한 시민들께 감사합니다. 참 뿌듯하고 뜻깊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김동혁(용두중학교 교사)
▲ " ‘봉선화Ⅲ’ 보러 저희도 왔어요" ... ‘봉선화Ⅲ’ 공연장을 찾은 용두중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이 연극을 보면서 앞에 강의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고, 연극이라는 걸 이번 처음 보는데 처음 본 연극이 ‘봉선화Ⅲ’라는 연극을 봐서 인상 깊었고, 다음 세대까지 꼭 이런 아픔을 알리겠습니다. 연극보기 전에 강의를 먼저 듣고 연극을 봐서 이해하기 쉬웠고, 연극에서 나고야 분들이 일본어로 연극을 하셨는데, 옆에 해석도 있고 한국말이 아니라 일본어여서 더 그 분위기를 심취할수 있어서 좋았고, 또한 나고야 사람들의 표정 연기가 더 실감나게 해주었다.
(3학년 최민서)
오늘 강의를 듣고 연극을 보게 되었는데 말로 들은 것보다 연극으로 보고 그 당시 상황이 더 절박해 보이고 간절한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앞으로 이 일을 열심히 알리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연극으로 나타낸 것이 너무 인상 깊었고, 자막이 옆에 나와서 불편했던 게 아쉬웠습니다.
(3학년 최하은)
오늘 강의에서 본 내용을 연극으로 봤는데, 연기로 봐서 그런지 내용이 좀 더 와닿고 감정이 더욱 더 실감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고야에서 오신 배우분들이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일본어로 그대로 대사를 하는 부분이 그때 당시 일본어를 해야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TV로 보여줬던 번역이 대사와 맞지 않고 어색했던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런 이야기가 연극을 통해 알려질 수 있다면 나는 적극 찬성이다. 다들 한번 감상해보고 이런 내용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3학년 이승준)
강의로 들었던 내용을 연극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다음 세대로 이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잘 기억하고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연극을 통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배우분들께서 너무나도 실감나게 연기해주셔서 그때의 상황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3학년 조윤주)
이 사건에 대해서 몰랐는데 정말 정말 좋은 경험이였고, 양금덕 할머니분 배우분이 연기를 너무나 잘하셔서 감정이입이 되며 눈물이 차올랐다. 특히나 몇몇 일본 분들이 연기를 하여 신기하였고, 솔직하게 이 연극을 준비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일본에 대한 위험부담을 가지고 나오신 건데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승소에 기뻐 만세를 외치시는 장면에 가슴이 울리며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이 연극을 더 큰 곳에서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이다.
(3학년 강서현)
전문 배우분들이 하는 연극이 아니라 연극 요소들도 부족하고 지루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이 연극을 통해 일본에도 우리나라에도 근로정신대에 대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소송과 일본 내에서 근로정신대를 널리 퍼뜨려 주신 분들과 연극을 기획하신 분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리싶다.
(3학년 문지회)
일본 강제동원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일본어 임에도 실감 나는 연기로 더욱 재미있었고, 어떤 감정을 담아 연기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배우분들이 연기를 실감나게 해주셔서 일본어임에도 감정이 잘 느껴졌고,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 것과 가끔씩 들리는 한국어에서 가슴이 더 뭉클해졌다.
(2학년 문서현)
오늘 이 연극을 보고 나서 일본 강제동원 문제를 다시 알게 되었다. 이 연극이 인상 깊었고 학교 수업에 나온다면 반가울 것 같다. 이런 연극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연극을 보고 몰랐던 사건도 알게 되었고, 마지막에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해 다음 다음 세대도 기억하자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기억해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나가야겠다. 그리고 배우분들께서 연기를 잘하셔서 실감나게 몰입하면서 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이 연극과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봐야겠다.
(2학년 최예은)
2시간 동안 연극을 보면서 당시 피해자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슬펐을지 상상이 되고, 이 일이 전 세계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본이 하루 빨리 사죄와 배상을 했으면 한다. 배우분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연극을 해주셔서 정말 실감나게 보았고, 통역사분도 정말 열심히 통역해주셔서 모두에게 감사했다. 우리나라의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이런 연극도 해주시고, 많은 운동을 해서 이렇게 알려준 일본의 나고야 시민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이런 연극이 좀 더 유명해지고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3학년 최현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란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권력에 의해 제국영역을 의미 하는 걸 알았고, 연극으로도 봐서 얼마나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일인지 알아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3학년 심세정)
연극 임에도 실제로 바로 일어난 것 같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셨고, 원래도 일본이 우리를 괴롭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2학년 정규리)
▲ 정신영 할머니, 이경자 할머니와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용두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공연에 앞서 오전 사전 교육이 있었다.
▲ 광주 명예시민증 수여. 2017년 다카하시 대표, 고이데 사무국장이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 장면이 무대 배경 화면 비춰지고 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필 그날이라니…”
연극 ‘봉선화Ⅲ’ ... 나로서는 맘 졸이며 맞이했던 공연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공연이다.
2월 24일, 공연 일정이 발표되는 순간,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필 그날이라니...
그날은 집안의 가장 큰 행사로, 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의 합동 제사가 있는 날이다. 당연히, 가문의 여러분들을 모시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외며느리로 오롯이 그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일본의 '한국인 강제동원' 진실을 연극을 통해 밝히고 사죄하려는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하는데, 내가 참관할 수 없다면 난감한 일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일전에 뵌 일이 있는 다카하시 선생님, 무토 요코상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고심 끝에, 여러 날 동안 남편을 공들여 설득하고 시댁 어른들과 형제들께 양해를 구했다. 물론, 조상님께도 빌었다. 예상대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극적으로 제사날이 옮겨졌다. 그리하여, 내가 속한 몇 개 그룹들과 지인들에게 맘 놓고 공연을 알리고 관람을 권유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수고로 정원 500석 이상으로 객석은 만석이 되었고, 우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원하느라 40여 년 세월을 바치신 나고야 분들께 큰 박수와 뜨거운 함성을 보내드릴 수 있었다.
연극 단원들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습하여 충분히 호흡을 맞췄음에도, 광주에서의 짧은 일정 속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리허설을 하셨다고 한다. 최선을 다하신 만큼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뛰어난 기획, 각본, 음악, 주제와 걸맞는 소박한 무대 장치와 조명….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와 노래가 어우러져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객석의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 울컥하기도, 절로 주먹을 쥐기도 하고, 때론 자신도 모르게 눈물도 흘려가면서 몰입하였다. 피해 당사자인 것처럼 온몸으로 표현해주신 배우들의 움직임이 큰 파동이 되어 고스란히 객석에 전해졌다. 절로 박수가 나오고, 함께 외치고, 함께 노래하였다.
'나고야의 바보들'이 어떤 역경 속에서 활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다큐"이기도 한 감동의 무대가 끝났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손이 부서져라 박수를 쳤다. 옆에서, 그 옆에서…. 너도나도 일어나 극장이 떠나갈 듯 끝없이 박수를 보낸다. 나고야 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듬뿍 담은 박수다.
제3자 변제를 거부한 분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운동"을 전개하면서 주변에서 '이제 그만해도 되지않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해국인 한국에서도 이럴진대, 나고야 분들은 일본 현지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까?
나고야소송지원회 분들은 젊은 시절부터 금요일마다 미쓰비시 앞에서 진실을 외치고 전단지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그들을 외면하고 질시하는 시선들을 묵묵히 견디면서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자!' 하신다.
국내에서 승소한 분들이 전범 기업과 일본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일뿐 아니라, '인권' 의 문제로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광주에 <일제강제동원 역사관>을 건립하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봉선화Ⅲ" 광주 공연은 일본과 한국에서 일제강제동원 관련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연대를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손을 맞잡고 나아가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하리라 믿는다.
봉선화 공연단 및 나고야 소송지원회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그리고...사랑합니다!! ♡
ボンソンファ公演団および名古屋訴訟支援会の皆さんに「尊敬と感謝」を送ります、そして…愛しています! ♡♡
▲草芽 황행자(남도역사연구원 부원장)
▲ 왼쪽부터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 김홍석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황행자 남도역사연구원 부원장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위대한 역사”
세상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반복으로 시간을 이어간다. 그 시간 안에 내 인생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은 평범한 것 같지만, 그 평범함 안에는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이 함께하고 있다. 내 일상이 소중하듯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연들의 삶도 소중한 이유다.
2009년, 누군가에게는 덧없기도 했을테고, 누군가에게는 무언가에 대한 희망과 기대마저도 무망(無望)했었을 65년이라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나에게 이웃의 아픈 삶이 전해졌을 때, 난 동네 어딘가에서 옷깃을 스쳤을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연극 봉선화에 오롯이 담긴 슬픈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헤아려 보지도 못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 부끄러움은 지금까지도 흩어질 줄 모른다. 아직 부끄러움을 거둘 봄을 불러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 광주에서 ‘자기 고백’과도 같은 이웃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자기 고백’은 무대 위와 객석이 다를 것이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에 대한 종주국(宗主國) 국민의 통절한 ‘자기 고백’, 과거 자국(自國)이 행했던 야만적 폭력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숭고한 반성과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정의로운 투쟁이 담담하면서도 진하게 펼쳐졌다. 무대 아래에서는 골목길 건너 이웃 할머니의 피맺힌 한(恨)을 살피지 못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부끄러운 ‘자기 고백’, 해방 8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이웃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이 자리를 채웠다.
난 스스로의 고백이 너무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짧지 않은 지나온 시간에서 깨달았다. 그러나, 아! 자기 고백이 없이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아가고 있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자기 고백과 자기성찰에 부대끼는 나고야와 광주의 ‘바보들 이야기’를 마주하며, 난 다시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투쟁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위대한 역사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바보들의 향연'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고야와 광주의 인연을 세계시민의 관계로 가치 구성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역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 내는 위대한 삶의 퍼즐이다.
▲윤영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 공연장에서 반갑게 만난 세 사람. 윤영덕 국회의원, 김정훈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소송지원회 대표.
▲ 국회 간담회(2023.2.16)에서 만난 두 사람. 윤영덕 의원은 시민모임 창립멤버로 양금덕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내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1)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던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2)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3)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이 예 있나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어릴 적 가끔 누나들을 따라 흥얼대던 노래, 그 뜻을 알아가면서 가슴 아팠던 노래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아픈 사연들을, 우리보다 더 아파하면서 기억하고 치유하려고 애쓰신 일본의 정의로운 시민들, 나고야의 의인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 '나고야 시민연극단'에게 다시 한번 거듭 감사드립니다.
연극을 보면서 내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내 작은 몸짓을 생각하며, 고맙고 미안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이웃과 동족들에게 수모와 배척,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신념에 찬 정의감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미쓰비시 본사로 가는 삼보일배 행진과 주주총회장 앞에서의 집회 시위, 단 한 번 참석한 금요집회, 광주에서 교류회에 함께 했던 그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생각하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교육감으로 일하면서 우리 광주 청소년들이 '근로정신대' 문제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잘 이해하고, 한일간의 친선 우호와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 깊이 깨우치도록 노력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할까요? 이대로 지쳐 쓰러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다카하시 대표님, 고이데 사무국장님과 나고야소송지원회 여러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광주시민, (전)광주광역시교육감 장휘국이 드립니다.
▲장휘국(전 광주광역시교육감)
▲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을 비롯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봉선화Ⅲ’ 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진실보다 강한 웅변은 없다”
“연극 봉선화를 피해자들이 계시는 이 곳 광주에서 무대에 올리고 싶다.”
2022년 12월, 3년 만에 광주를 방문한 다카하시 대표님은 불쑥 이런 의향을 밝히셨습니다.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일본어로 말하고, 자막을 통해 전해지는 방식이라면 과연 제대로 될까’, ‘그것도 아마추어라는데, 얼마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수 있을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진실보다 강한 웅변은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자리였습니다.
‘봉선화Ⅲ’는 장장 110분에 가까운 짧지 않은 연극입니다. 1986년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에 의해 사망한 6명 소녀들의 명단을 입수한 것으로부터 38년의 활동을 연극에서 소화한다는 것이 애초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봉선화Ⅲ’는 그런 난제들을 훌륭하게 극복해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사건에 근거해 이렇게 연극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또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이었습니다. 나고야가 먼저 씨를 뿌리고 광주가 뒤를 이어 함께 가꾸고 만들어 온 양국 시민들의 위대한 성취가 대하 다큐멘터리처럼 무대에서 펼쳐졌습니다. 벅찬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소송만 하더라도, 나고야소송지원회와 변호단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주장에 맞서 얼마나 치열히 준비해 법정투쟁에 임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청구권 문제를 알기 쉽게 조목조목 반박하는 대목은 감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다만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무겁게 느껴지거나 전개가 느리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 연극이 시대 ‘풍자극’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고발극’ 성격이라서 그랬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더라도 어느 부분은 축약하거나 약간 무게를 덜어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38년의 세월을 거쳐오는 과정에 위트도, 희망도, 환희도 안고 달려왔던 것을 좀 더 부각시켰어도 좋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양금덕 할머니는 아프고 시린 삶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보다 흥도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몇 번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무대 배경은 어느새 도쿄 금요행동으로 옮겨갔습니다. 2007년 7월 20일 제1회 도쿄 금요행동을 시작으로 지난 1월 530회까지의 금요행동 기록이었습니다. 매회 날짜와 참석 인원, 배포된 전단지 숫자가 기록된 화면이 한 장 한 장 넘겨질 때 가슴 뭉클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세간의 일반적 상식에서라면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남의 것 하나라도 탐하려는 세태에, 이득은커녕 희망도 발견하기 힘든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매달릴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세태에서도 인간이 또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나고야소송지원회’는 현실로서 보여줬습니다.
‘봉선화Ⅲ’는 또 2009년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출범과 한국에서의 소송, 이어 ‘광주명예시민증’ 수여와 나고야소송지원회 활동과 도쿄 금요행동이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돼 실린 대목까지… ‘봉선화Ⅲ’는 한일 양국 시민들이 서로 협력해 써 온 역사정의 투쟁을 가감 없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줬습니다. 그야말로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명작입니다.
특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 세대로 역사적 사실이 계승될 수 있도록 ‘기억 계승’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강제동원시민역사관’ 의 건립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한일을 뛰어 넘어 이 운동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줬습니다.
500여석 좌석이 며칠 만에 매진될 것이라고는 애초 저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연극을 마치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좌석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낸 것도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무대 위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 나고야소송지원회가 걸어 온 길에 대한 이심전심(以心傳心) 광주시민들의 화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처 인사를 다 나누지 못했지만, 이 공연에는 귀한 분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실제 동원돼 고역을 겪은 정신영 할머니(나주), 양금덕 할머니의 셋째 아드님(박상운)을 비롯한 가족, 도난카이 지진에 사망한 고 최정례의 조카 며느리 이경자 할머니(나주), 지진 사망자 오길애의 남동생 오철석 할아버지, 고 김재림할머니, 심선애 할머니의 유족들도 이날 함께 했습니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다 담은 ‘봉선화Ⅲ’가 더 없는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극 ‘봉선화Ⅲ’가 빛고을 광주에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진실보다 강한 웅변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인식시켜 준 ‘봉선화Ⅲ’ 공연단과 ‘나고야소송지원회’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 ‘봉선화Ⅲ’ 공연 장면. 배경 화면에 날짜와 참가인원이 적힌 도쿄 금요행동 기록이 자막으로 선보이고 있다.
▲한일시민교류회.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소송지원회 대표와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건배 제의를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처음 공연장을 들어설 때는 과연 500명의 관객이 와줄까 하고 걱정했다. 관람하러 오신 지인들과 인사를 하고 객석에 들어설 때는 객석이 많이 비어 있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막상 시작 방송을 알리자 객석이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솔직히 이번 공연이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하는 공연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막이 있어서 이해하기는 했지만, 무대와 자막을 번갈아 보느라 어수선하기는 했다.
서서히 근로정신대의 강제동원과 노동의 현장, 지진의 피해로 6명이 사망하는 시점에서는 감정이 끓기 시작하고 분노하다가, 일본 소송의 10년 동안 3번의 기각에 울부짖는 양금덕 분의 무토 요코의 심연의 연기를 보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연극에 빠져들어 시간이 가는 줄 전혀 몰랐다.
후반부에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 앞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혼신을 다해 전단지 한 장이라도 나눠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 같은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있어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고 한국의 시민들과 함께 평화를 나눌 수가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전문 배우들도 아닌데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장장 100분 동안 저런 감동의 극을 펼치도록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심장이 울리며 연극이 끝난 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연극 후 1차 간담회는 한일 회원들의 우정의 자리고 화합의 자리였다. 도쿄 방문 때 뵈었던 이재용씨의 인사가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나고야 방문 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 나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때 교류했다고 반가워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 배우들, 소송지원회 회원분들과 소통이 모자라 아쉬워 2차 음주 자리를 가진 것이 정말 다행이고 좋았다.
한국말이 조금 어눌하지만 잘 이해하고 잘하시는 김원도 선생님, 현직 변호사이면서 극중에도 변호사 역을 맡으신 마츠모토 아츠히로씨, 연출자이시며 다카하시 역을 맡으신 나카 토시오님과 함께 연극 중 있었던 해프닝과 에피소드로 웃고 떠들며 한 잔씩 나누니 더욱 정이 깊어지고, 진심으로 그 분들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그 한 맺힌 고난의 80년 세월, 또한 38년 동안 나고야와 도쿄 그리고 한국에서까지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시는 ‘나고야 소송지원회’ 회원들과 배우님들,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한국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소송지원회 여러분들과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한을 제대로 풀 수 있을 때까지 교류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연극 ‘봉선화 Ⅲ’ 정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효섭
▲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았던 무토 요코씨가 백금렬 교사의 장구 장단에 맞춰 교류회에서 흥겹게 어깨 춤을 추고 있다.
▲교류회를 마친 뒤 헤어지기가 아쉬워 호텔 로비에 다시 만난 두 나라 시민들.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2.24)
“가슴에 맺혔던 한이 일부나마 풀린 기분”
“연극을 보면서 가슴이 찡하고 아팠다. 지진에 죽은 고모님(최정례) 생각도 나고, 어린 딸을 잃고 가슴에 한을 안은 채 돌아가신 시할머니 생각도 나 눈물이 났다.
솔직히 자기 나라에서 저지른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가식적으로 시늉만 보여줬으면 그러지 않을텐데, 사실 그대로 어떤 숨기는 것도 없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그 분들의 진정성이 더 공감이 갔다.
연극도 좋았고, 학생들이 더 많이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피해자의 아픔을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한이 일부나마 풀린 기분이다. 그 많은 인원 이끌고 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고생 많았고, 너무 고맙다.”
▲원고 이경자(1943.2.19. 나주. 도난카이 지진 사망자 최정례의 조카며느리)
▲ 나주에서 공연장을 찾은 원고 이경자 할머니가 반갑게 다카하시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1988년 8월경 처음 만났다. 36년 인연.
▲원고들과 함께! 왼쪽부터 오철석할아버지, 다카하시 대표, 이경자할머니, 정신영할머니, 고이데 사무국장.
정신영 할머니, “안 죽고 살아있으면 다시 보면 좋겠다. 꼭 그 말 좀 전해라.”
“후생연금 99엔을 찾아주신 분이 그 분이었느냐?. 사진을 같이 찍기도 했는데 잘 몰랐다. 우리들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다.
연극을 보면서 지진에 죽은 여섯 명이 생각나 짠하고 가슴 아팠다. 미쓰비시 공장에서 여럿이 나란히 서서 마치 모를 심듯이 작업하는 배우들 모습이 꼭 우리가 그때 작업장에서 일하던 모습과 같았다. 순간 그때 고생하던 생각이 났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근로정신대가 무엇인지 잘 모를텐데, 연극을 통해 조금이라도 우리의 진실을 알수 있도록 해 줘서 고맙다. 이 먼 데까지 와서 좋은 연극을 해주시고, 너무 감사하다.
옛날에는 일본이 죄를 지어 그렇지만, 지금 사람들은 서로 오고 가고 잘 지내야 하지 않느냐. 혹시라도 서로 좋은 일 있으면 더 왕래하고, 또 요즘은 ‘100세 시대’이니까, 건강하게 그때까지 안 죽고 살아있으면 다시 보면 좋겠다. 꼭 그 말 좀 전해라.”
▲원고 정신영 할머니(나주. 2024.1.18. 광주지방법원 1심 승소)
▲"그때 그 친구들은...". 정신영 할머니가 포토존 속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10대 어린 소녀들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다.
▲"귀 좀 줘봐요". 93세 정신영 할머니가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한테 다정하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고이데 사무국장은 일본연금기구를 상대로 정 할머니의 후생연금을 인정 받을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고야에 수양 어머님 생겨 너무 기뻐”
태평앙전쟁 말기 상급학교 진학과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어 고생하셨던 어머님을 모델로 한 연극이어서 진심으로 감명 깊게 관람했습니다.
특히 어머님의 역할을 했던 무토 요코 배우를 비롯한 공연단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공연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고마운 것은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공연한 것에 무한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일본은 지난날 과오를 잊어선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일본 전범기업들은 하루빨리 진정한 사과와 함께 배상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끝으로 나고야에 새로 수양 어머님(무토 요코)이 생겨서 너무너무 기쁩니다.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님을 비롯한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 여러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양금덕 할머니 셋째아들 박상운 올림.
▲ 어머니와 아들? 연극에서 양금덕 할머니 역을 맡은 무토 요코씨와 양금덕 할머니 셋째 아들 박상운씨.
▲ "어머니, 오늘은 제 등에 업히세요"... "새로 수양 어머니가 생겨 기쁘다"는 박상운씨가 양금덕 할머니 역을 맡은 무토 요코씨를 등에 업어드리고 있다. 쑥쓰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무토 요코씨의 표정이 인상적이다.(2.24 교류회)
... 위 일부 사진들은 윤재경 작가님의 재능기부입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으로 표기하시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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