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4장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에 헌신하다 2. 종교화합을 위한 수많은 단체와 조직들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1971년 이후 문선명은 참으로 할 일이 많았다. 꼭두새벽부터 자정이 훨씬 넘을 때까지 그 넓은 미국 땅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여러 일을 하느라 어떤 때는 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했고, 자동차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낯선 도시들과 마을들을 돌며 목에서 쇳소리가 날 때까지 순회강연을 하고, 축복결혼식을 주관하고, 대학을 세우고, 등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봉사활동도 쉬지 않고 했다.
매일 밤마다 파김치가 된 몸을 추스르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때 혼자서만 그렇게 활동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것이 화합을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화합과 사랑, 봉사와 희망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기구와 협회들을 차근차근 만들어 갔다.
국제구호친선재단(International Relief Friendship Foundation:IRFF)은 바로 그 정신으로 만든 첫 번째 일터였다. 문선명이 늘 강조하는 '위하여 살자'를 직접 실천하기 위해 1975년에 만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도와주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교육을 받지 못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꾸려나가도록 도움을 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구호, 교육, 건강의 3가지 목표를 정하고 나이지리아, 가나, 우간다를 비롯해 파푸아뉴기니, 방글라데시, 르완다, 아이보리코스트, 페루, 잠비아, 러시아 그리고 북한등 여러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IRFF는 설립되자마자 세계적 사명을 수행하는 핵심 재단이 됐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모든 선교사들에게 필요 물품을 지원했으며 식량 구호, 의료, 집짓기 그리고 학교를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또한 자연 재해와 참사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들과 난민촌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식량, 의복,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교육 프로젝트에는 지역 사회 학교와 교습소를 세우는 일 등이 포함됐다. 책을 비롯해 다양한 교재도 만들었고, 농업개발 프로그램과 취업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또한 건강에 힘을 기울였다. 영양과 건강을 증진시키고, 에이즈를 예방하는 일에도 뛰어들었으며 의료기기도 기부했다. 나아가 진료소와 의약품 조제실, 병원 건립 등을 도왔다.
1977년에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성직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기독교인들의 봉사활동을 더 넓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만든 단체가 '교회와 사회적 실천을 위한 전미협의회(National Council for Church and Social Action:NCCSA)'이다. NCCSA 역시 순수한 봉사단체로서 많은 일을 했다. 푸드뱅크(Food Bank)를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식재료를 무료로 나눠주고, 헐벗은 노숙자를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옷을 나누어 주었으며, 가난한 동네의 낡은 집을 수리해 주고, 학교와 양로원을 찾아가 문화공연도 펼쳤다. 또 여러 곳에 직업 학교를 세워 더 많은 청년들이 기술을 배워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1984년 7월에는 18톤 트럭 250대를 NCCSA에 기부했다. 더 많은 물자들을 싣고 더 빨리 더 넓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트럭은 가는 곳마다 큰 환영을 받았다.
인종 간의 화합을 위해 만든 단체는 국제소수인종연맹(Minority Alliance International:MAI)으로 1981년에 창립되었다. 미국 정부가 탈세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자 문선명의 지지자들이 이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 10월 22일 열린 집회에서 문선명은 국제소수인종연맹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창립된 MAI는 1982년 1월 15일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는 모임을 맨해튼의 타임라이프 빌딩에서 열었다. 킹 목사의 53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이 행사에는 100명 이상의 인권운동가들과 문선명의 뜻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킹 목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면서 시민인권 분야에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마틴 루터 킹 상'을 수여했다. 미국 하원의원 찰스 란젤(Charles Rangel), 브롱스 자치구 구청장 스탠리 시몬(Stanley Simon), 내셔널토크쇼 진행자인 토니 브라운(Tony Brown), 뉴욕 주의원인 빅터 로블스(Victor Robles) 등이 상을 받았다.
세계종교회의(Assembly of the World's Religions:AWR)는 문선명이 1984년 댄버리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에 구상한 기관이었다. 다른 신앙을 지닌 지도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1985년 11월, 뉴저지 맥아피에서 '전통유산의 회복'을 주제로 열렸으며 85개 나라의 700여 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문선명은 그때 종교 지도자들이 나아가야 할 세 가지 목표를 말했다.
"첫째, 모든 종교 전통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종교 간의 분쟁과 전쟁을 막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서로 협력하는 종교단체로서 세계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셋째, 종교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세계평화와 발전에 공헌해야 합니다. 인류의 행복한 미래는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초종교적 이해와 영적 화해를 기반으로 이념의 갈등, 문화 차이의 갈등, 인종 갈등을 극복함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세계종교의회(Council for the World's Religion:CWR)는 1985년 11월에 세워졌다. 종교 내부에 갈등이 있으면 어떤 종교단체도 평화를 실천할 수 없으며 다른 종교와 대화도 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꼭 이런 질문이 나왔다.
"왜 문선명 목사님은 불교를 위해, 혹은 토착 종교를 위해, 혹은 기독교를 위해 이와 같은 일을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개인의 안위나 명예가 아니라 종교의 화해와 이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문선명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늘어났다. 특히 그랜드 무프티 쿠프타로의 3일 수련회, 무슬림국제지도자세미나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해 종교 지도자들이 통일원리를 이해하면서 타 종교인들이 동참했고, 문선명을 통해 결혼축복도 받았다.
쿠프타로(Sheikh Ahmad Muhammad Amin Kuftaro)는 쿠르드민족의 신학자이다. 시리아의 그랜드 무푸티 쉐이크(시리아 국가의 최고 종교 지도자)로 여러 나라를 순례하며 평화 활동을 벌였다. 그는 「코란」에 서명해서 문선명 부부에게 선물했으며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문선명의 주관으로 결혼축복을 받았다.
쿠프타로는 1990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환교육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학생들을 통일교의 '40일 교육'에 보내 통일원리를 배우게 하고, 문선명은 통일교회 지도자들을 40일 동안 쿠프타로에게 보내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게 했다. 1990년대에 이 일은 세계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쿠프타로는 문선명이 펼치는 초종교 활동에 지지의 뜻을 보냈으며 「세계일보」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해 여러 곳을 다니며 한국의 참모습을 보았다.
문선명이 주관하는 결혼축복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은 아주 많다. 그중 한 명이 임마누엘 밀링고이다. 대주교 밀링고(Archbishop Emmanuel Millingo)는 명망 있는 고위 가톨릭 성직자이다. 1930년 잠비아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1969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잠비아 수도 루사카(Lusaka)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그러나 1983년 가톨릭 전통에 맞지 않는 의식을 했다는 이유로 로마에 소환 되었다. 다행히 요한 바오로 2세의 권한으로 바티칸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통일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 평범한 이탈리아 신도가 로마 시민들에게 통일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가정방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시민들의 집을 순회하다가 우연히 밀링고 대주교가 사는 아파트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깊은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밀링고 대주교는 문선명의 생애와 가르침을 공부하고자 40일 동안 통일원리를 배웠다. 이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문선명은 대주교가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버지니아에 있는 교회 공관인 제퍼슨하우스(Jefferson House)로 오도록 했다. 40일 공부가 끝난 후 그는 문선명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왔다.
대화를 나누면서 결혼축복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는 가톨릭에 입문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했었다. 이제 그 맹세를 깨야 하는지 번민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밀링고 대주교는 축복 결혼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계는 한동안 시끌벅적했으나 그는 갖은 비난을 물리치고 결혼축복을 받았다.
"저는 개종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매일 계속해서 미사를 올릴 것입니다. 2001년 5월 27일, 저는 마리아 성과 축복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신앙심 깊은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이렇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때로 저의 가슴 깊이 번뇌하게 했던 일에 담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의 명령과 문선명 목사 내외의 조언과 지지 때문입니다."
축복결혼을 한 후 밀링교 대주교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이제는 고국인 잠비아로 돌아가 헌신하고 있다.
세계종교청년세미나(Youth Seminer on World Religious: YSWR)는 청년들에게 화합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편견을 깨뜨려 모두가 한 가족임을 알게 해준 단체다. 문선명은 청년 교육을 언제나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늘 고심해 왔다. 그러한 실천의 일환으로 1982년에 YSWR를 만들었다.
YSWR는 세계 주요 종교들의 역사적 성지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1982년 6월 30일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각 종단들의 역사적 성지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이집트의 카이로, 이탈리아의 로마, 인도의 봄베이와 바라나씨, 네팔의 카트만두, 중국의 베이징, 일본의 교토와 나라, 한국의 서울과 경주를 방문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의 종교의식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젊은이들에게 세계의 종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세계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는데 이바지했다.
이 프로젝트는 1982~85년까지 4년간 지속됐다 . 매년 30여 나라에서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국가적 배경을 지닌 약 150명의 창조적인 청년 대학생과 교수들을 선발했으며, 이들은 세계 종교들의 성지와 역사적인 유적지로의 순례여행을 했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켰고, 이를 통해 국가의 장벽, 문화의 장벽, 종교적 장벽을 넘어섰다. 청년 참가자들은 각각의 순례지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들, 학자들로부터 환영 받았으며 종교적 전통과 문화를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