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실 : 인생의 사막에서 만나는 우물 같은 곳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장소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을 쉽게 열어 놓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곳이 있다. 만일 되풀이되는 도시의 일상에 지쳐 둥지로 날아드는 새처럼 그곳을 찾았을 때, 좋은 사람들과 쉽게 어울려 서로 재담과 웃음으로 피로를 풀 수만 있다면, 그건 인생의 사막에서 아마 엔도르핀으로 채워진 우물을 만나는 경우가 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몇 군데는 있다. 특히 가까운 문우들과 만나 치열한 반상(盤床)의 접전으로 불꽃을 튕기면서도, 대국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져도 좋고 이기면 더 좋아하는 그런 기원이 있고, 실내는 비록 좁고 허름하지만 언제나 우릴 기다렸다는 듯(늘 손님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푸짐한 실비집이 있다. 그곳에서 가담항설(街談巷說)을 횡설수설하다 때론 분노의 격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또는 이별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야기에 아련히 공감하는 동안, 오르는 취기와 흥취를 이기지 못해 젓가락 장단이라도 맞추고 돌아오는 날이면, 마른 들판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분위기를 잊지 못해 그곳을 마실 가듯 다시 찾아 가게 된다.
수많은 욕망이 물살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갔거나
혹은 내일의 희망을 가두어 비늘로 반짝이는 그물을 보면
언제나 '노인과 바다'의 어촌 풍경이 오버랩 된다 · 생의 허무를 털고 싶을 때 찾는 남항 부두
그러나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보면 부처도 만나고 도적도 만날 수 있듯이, 뜻 맞는 친우들과 어울려 좋을 때도 있지만 간혹은 우수 짙게 깔린 공간을 찾아 낯선 사람들 속에 섞임으로써 종종 밀려드는 생의 허무를 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충무동 남항부둣가로 마실을 가곤 한다.
남포동에서 시작하여 펄떡거리는 생선같이 활기 넘치는 자갈치 시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다가, 그 끝에 이르러 기역자로 꺾이는 충무동 남항부둣가로 접어들면 이전 풍경과는 완연히 다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내항을 끼고 멀리 남항 방파제와 냉동 창고로 이어지는 오른쪽 도로 옆에는 수산회사, 건어물 상회, 직업소개소, 지난날 다방 수준의 커피숍, 상호도 희미한 술집 등이 이어져 있고, 간혹 그 사이에 낡은 적산가옥들이 드문드문 서 있어 남항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그 흔적으로 보여준다 왼편으론 고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어선들이 줄지어 몸을 풀고 있는 정박지가 대각선 구도로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위에 고즈넉한 오후의 가을 햇살이 내려앉을 즈음이면 남항 부두는 어느 방향에서 앵글을 잡아도 정감 좋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그래서 이곳은 북항과 또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겐추리 크레인(Gantry Crane·레일이동식 대형크레인)이 위압적으로 서 있는 북항이 현대식 부두의 모습이라면 그저 고만고만한 어선들의 마스트(돛을 세우는 기둥)가 어지럽게 수직 구도를 이루고 있는 충무동 남항부두는 친수공간이면서도 인간적이다. 그리고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와도 사뭇 다르다. 자갈치 시장이 생기로 넘치는 들뜬 공간이라면 이곳 남항 부둣가는 늙은이의 시간같이 지긋하게 가라앉은 관조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 그물을 깁는 것은 헐어진 추억을 깁는 행위
나는 그런 분위기에 용해되면서 부둣가를 느릿느릿 걷는 걸 좋아한다. 접안시설물과 도로를 구분하기 위해 펜스가 길게 이어져 있으나 그것은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는 경계선이 아니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군데군데 있는 한 그것은 양쪽을 나누는 벽이 아닌 셈이 된다. 부두 안쪽으로 펜스를 따라 간이천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근해든 원양이든 조업을 나가기 위해 그물을 수선하거나 붕장어 주낙용 모릿줄과 아릿줄을 통에 사려 놓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그물을 깁고 있는 투박한 노인의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수많은 욕망이 물살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갔거나 아니면 내일의 희망을 가두어 비늘로 반짝이는 그물을 보면 언제나 '노인과 바다'의 작품 배경이 되는 꼬히마르 어촌 풍경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산티아고 노인의 억센 삶이 그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노인들 옆에 쪼그려 앉아 가방에서 소주와 오징어를 꺼내 한두 잔씩 나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파도에 묻혀 있을지 모를 그들의 과거가 스멀스멀 되살아나 현재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에서 보냈는 기라요. 대서양 모리타니 어장, 북양 명태잡이 트롤선까지 탔으이 어디 안 가본 곳이 없제. 인자는 나이 들어 배를 내리고 나이 할 일이 뭐 있어야지. 그래도 이 일이라도 있으이 자슥한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기라. 내 건강에도 좋고."
"옛날 말이오? 그거 생각하면 뭐 할끼고. 누구 왕년에 한가닥 안한 사람이 어딨겠능교? 300톤급 트롤선 갑판장 했다꼬 누가 알아줄끼고? 마 모든 걸 다 접고나이 마음은 편한기라. 이리라도 묵고 살 수 있는기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안 그렇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여기에 순정이 있었제. 항차 조업을 떠날 때 저쪽 골목에 숨어 손 흔들어주는 아가씨도 있었고…."
"마 치아뿌소! 순정 좋아하네, 돈 벌어 다 그 밑으로 갖다주이 그깟 손수건 하나 못 흔들것나. 내라몬 더한 짓도 하것다."
말없이 낚시를 사리고 있던 아주머니가 거든다. 하지만 그들이 그물을 깁는 것은 어쩌면 구멍 난 추억의 한 부분을 깁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뱃사람들의 억척같이 질긴 삶을 읽어낼 수 있어 가슴이 뜨거워짐을 종종 느낀다.
·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곳으로 슬슬 걸음을 옮긴다. 윷놀이가 한창이다. 윷판 옆에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 있고, 두 패로 나뉜 사람들의 표정은 승부욕으로 자못 심각하다. 둘러선 사람들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소 우물 들여다보듯 관전하고 있다.
"걸이다! 콱, 동개뿌라. 잡혀 죽으면 죽꼬. 남자가 통이 커야지!" 구경하던 옆 사람이 비실비실 웃음을 흘린다. 천 원 한 장에 걸어야 하는 남자의 통은 얼마나 커야 하냐는 듯. 그러나 모두 할 일이 없어 보이긴 나와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이곳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습에서 진한 연민을 느낀다.
· 파도와 격전을 벌린 상처
중년 여인 둘이 이젤에 캔버스를 걸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부두의 한 부분이 담겨 있는 화면은 무척 평화롭게 보인다. 실경보다 색채가 선명하면서도 화려하다.
"저희는 아마추어예요. 여길 나오면 꼭 외국의 항구에 앉아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요. 구도 잡기도 편하구요. 그래서 자주 와요."
화면에 담긴 실제의 배를 본다. 망망한 대해에서 보낸 시간이 오랜 것 같다. 대양을 헤치면서 거친 파도와 격전을 벌린 흔적이 상처로 남아 녹물을 흘리고 있다. 그래도 조업 준비가 끝나면 또 출항을 할 것이다. 그것은 그림 속의 풍경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려야하는 엄연한 현실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 생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스름이 내리면 부두는 조용해진다.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이게 뭐냐? 비암이란 게야. 비암"을 주문처럼 외던 약장수도 돌아가고 나면, 새벽 출항을 위해 짐을 지고 배에 오르내리는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만 보일 뿐 남항부두의 풍경은 정물화 속의 화면처럼 바뀐다. 그때부터 부두 옆 해안시장통 술집에는 불이 밝혀지면서 생의 무게에 눌린 듯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쓴 소주를 마신다. 그 속에 끼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인생의 고달픔을 나눠 마신다. 그러다보면 내가 혼자임을 알고 슬며시 접근하는 이도 있다. "아재, 배 탈라고 그라능교? 갱험이 없어도 다 방법이 있는기라. 필요하다카면 내가 알고 있는 수산회사에 소개시켜 줄 수도 있는데…"라고 하면서 탁자 위의 술병을 끌어다 자기 술처럼 사이다 컵에 붓고는 재빨리 마셔버린다. 주모가 그를 보고는 고함을 지른다. "이 사기꾼 같은 인간이 어디서 또…!" 나는 허무보다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며 그곳을 나온다.
· 허무로 침잠된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마실 간다
어둠과 정적에 묻힌 부둣가를 거닌다. 정박 중인 배에서 흘러나온 마스트등과 포트등이 물결에 비쳐 흐느적거린다. 우수 짙은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오래된 영화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안개 낀 부두'가 떠오른다.
그렇다. 남항부두에는 설렘으로 시작되는 출항이 있고 순정어린 사랑이 있고 또 이별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 물웅덩이처럼 바닥에 고여 있다. 그뿐 아니다.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이 죽여야 하는 허무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투박한 손으로 삶을 건져 올리는 뱃사람들의 질긴 인생이 무르녹아 있다.
친우들과 가끔 이곳을 찾을 때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아 저마다의 정서에 젖어 술을 마신다. 역시 부두에서 마시는 술은 독한 소주가 제격이고 안주로는 마른 오징어가 제일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남항부두의 정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부둣가를 이리저리 거닐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또 그들의 인생을 훔쳐보는 동안, 삶의 허무로 침잠된 영혼이 조금씩 정화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충무동 남항 부둣가로 자주 마실을 가곤 한다.
문성수 소설가
◇약력=1989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예상 소설부분 가작 당선, '문학21' 신인상 수상. 제12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작품집 '그는 바다로 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