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80 창세기 특강 3 (둘째 날)
장기홍 형제
새벽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주는 창세기 특강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주는 엊그제 토후 바보후, 어제 창세기 첫째 날에 이어서, 오늘은 창세기 둘째 날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엊그제 새벽 예배에서는 토후 바보후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저는 예전에 결혼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혼돈과 공허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혼돈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로 인한 답답함이었고, 공허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제 모습을 제가 바라보는 느낌이었는데, 아픔이나 고통보다는 어째서, 왜? 라는 의문이 크게 다가왔었습니다. 엊그제 혼돈과 공허의 베드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됨이 없는 상태가 혼돈과 공허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둠과 흑암 죽음의 상태에서 빛을 창조하시므로 빛이 생명이고,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창세기 첫째 날의 설교를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과악의 나의 기준에서 생명나무이신 빛을 보여주신 첫째 날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창세기 일곱째 날의 창조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날 : 빛(오르)
둘째 날 : 궁창(라키아)
셋째 날 : 마른 땅(얍바샤)
넷째 날 : 광명체(메오르)
다섯째 날 : 물고기와 새(네패쉬 하야)
여섯째 날 : 짐승(베헤마), 사람(아담)을 창조
일곱째 날 : 안식
1-3째날 과 4-6째 날은 대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은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은 본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사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둘째 날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창1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우리가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언어를 인간의 소리로 내는 순간 그 뜻을 다 담을 수 없지만 히브리어만이 그대로 담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제사입니다. 영의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영의 뜻으로 해석하고 우리에게 실어 나른다고 합니다. 히브리어를 배우고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그속에 담긴 영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때를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보겠습니다.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ויהי מבדיל בין מים למים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라키아 베토크 하마임 바예히 마브딜 베인 마임 라마임
ויעש אלהים את־הרקיע ויבדל בין המים אשר מתחת לרקיע ובין המים אשר מעל לרקיע ויהי־כן
바야아쎄 엘로힘 에트-하라키아 바야브델 베인 하마임 아쉐르 미타하트 라라키야 우베인 하마임 아쉐르 메알 라라키아 바예히 켄
ויקרא אלהים לרקיע שמים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שני
바이크라 엘로힘 라라키아 샤마임 바예히-에레브 바예브-보케르 욤 쉐니
오늘은 욤 쉐니, 둘째 날입니다. 첫째 날에 주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고, 우리에게 빛과 어둠을 나누어 주시고, 그것이 욤 에하드, 첫째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기초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날 빛이 있었고, 빛과 어둠을 나누고, 그 다음으로 주님이 하시는 일이 6절에 나옵니다.
6절 ) 예히 라키아 : 라키아가 있어라
라키아가 어디에 있냐면 베토크 하마임에 있다고 나옵니다. 물가운데 궁창이 있다고 나옵니다. תוך 토크는 가운데 중앙 우리의 본질적인 곳 가장 깊은 곳을 말하는데, 그것을 베토크라고 합니다. 토크는 십자가(ת)에 못(ו) 박힌 것을 적용(ך)하는 것을 말합니다. 토크 속에서 삶이 나옵니다. 이 곳에서 영의 생명이 생겨납니다.
제가 첫 번째 맡은 설교가 베하알로테카 였습니다. 첫째 날의 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베하알로테카에서 불을 올리는 사역, 불을 켜는 사역이 착한 행실이라고 배웠습니다. 베하알로테카와 마아씸 토빔(착한 행실)은 527로 숫자값이 같습니다. 토크 안에 선악의 지식나무를 집어 넣으면 매일 좋은 것 나쁜 것을 따지게 되고 착한 행실을 비출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한 때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사람을 판단 할 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잘 하는지와 매너있게 품행이 올바른지를 가지고 판단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속마음에는 내가 이렇게 예의를 지키면, 상대방도 지켜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겉모습을 가지고, 행동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만나도 빛 가운데로 나온거 같지만 여전히 나에게 어떡해 했느냐에 따라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겉모습을 보지 말고 상대방을 생명으로 보고 한 몸 된 지체로 봐야하는데 여전히 속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봐야 한다는 인식을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과정에 있기를 거부하고 훈련받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계안에 있음에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을 거쳐 진정한 샤밧을 아는 날까지, 그 과정가운데 있음에 감사를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한때 속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었다고 했는데요. 라키아, 궁창이라는 말이 속사람을 의미합니다.
창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히브리어로 보시면 라키아 베토크 하마임, 물 가운데 궁창이 있다고 나옵니다.
רָקִיעַ 라키아 : 궁창, 궁창은 라카(רקע ) 두드려 펴다, 확장하다 에서 왔습니다.
궁창은 히브리어로 라키아 라고 합니다. 머리를 소망하는 관점이라고 합니다.
8절에 보시면 바이크라 엘로힘 라라키아 샤마임 이라고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십니다. 샤마임은 히브리어로 하늘이라고 합니다. 샤마임은 형상을 만드는 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형상은 속사람을 의미하고 모양은 겉사람을 의미합니다.
궁창은 하늘이고 속사람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속사람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을 인정하지 않고는 새 창조도 없습니다.
이것은 겉사람이 나의 본질이 아니라 속사람이 우리의 본질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베토크 하마임은 가장 본질적인 영역 속입니다. 베토크는 ~가운데란 뜻이고 하마임 그 물은 창세기1장2절 히브리어로 보겠습니다.
알 페네 하마임 :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
하마임은 성령이 운행하는 물, 성령이 품고 있는 물을 의미합니다. 그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고 하신것입니다. 라키아라는 뜻에는 라카 두드려 펴다, 확장하다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고라 자손이 들었던 향로를 두들겨 패서 펴서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민16:39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탄 자들이 드렸던 놋 향로를 가져다가 쳐서 제단을 싸서
- 히브리어로 보면, 맨 뒤 세 번째 단어가 치다라는 라카입니다.
출애굽기 39장3절에 보면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에 섞어 정교하게 짜고 첫번째 단어에 라카가 있습니다. 실을 만드는 과정에 금을 얇게 치게 되는데 여기에도 라카가 나옵니다.
금을 얇게 입히려면 단단한 금덩어리를 두들겨 패서 깨뜨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째 날에 빛을 영접하고 자기 부인을 하게 되면 둘째 날에 겉사람을 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겉사람이 깨지지 않고서는 속사람이 흘러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나의 육신, 경험, 감각으로 배웠던 나의 세상의 지식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깨어져야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개념을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둘째 날은 하나님께서 육신이 나임을 여기며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삶을 다루시는 시간입니다. 이때 깨지지 않으려고 버티지 마시고 머리를 소망하는 관점으로 하나님의 뜻,생각,의지 목적을 받아들이시기를 소망합니다. 라키아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지만 땅을 두들겨서 패고 펴서 만듭니다. 이 단계를 지나야 셋째 날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키아의 숫자값은 380 입니다. 같은 숫자값으로는 술람미가 형상에 대한 진리를 훈련하는 여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부로 하나님의 형상에 까지 가기위해 소망을 가지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여기시 술람미, 술람은 사닥다리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형상까지 가는 훈련을 하는 것을 야곱의 사닥다리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샤마임은 숫자값 390이고 동일한 숫자값을 가진 단어는 쉐멘, 기름이라는 뜻입니다. 소제의 예물을 드릴 때 고운가루 위에 쉐멘, 기름을 붓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깨지면 형상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 속사람이 부어집니다. 라키아를 깨닫는 것은 형상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속사람, 형상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속사람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샤마임을 깨닫을 수 있습니다.
하샤마임, 더하늘은 숫자값이 395 입니다. 같은 숫자값을 가진 단어는 네샤마입니다. 숨이란 뜻이며, 형상에 관란 진리를 살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형상이 되는 진리, 수동적인 이름을 받은 영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생명을 살아내는 원리입니다. 생명이 형상을 향해서 나아가면 그 생명에 이름을 줍니다. 쉐멘과 네샤마에 쉠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우리는 샤마임 입니다. 속사람입니다. 우리가 닮아갈 유일한 분은 더샤마임 하샤마임 이신 주님 한 분 뿐입니다. 속사람은 주님을 닮아갈 존재들이며 이것을 인정해야 우리는 둘째날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속사람은 하늘을 담는 그릇입니다.
창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아래의 물과 위의 물로 바달(בדל)하십니다. 윗물은 메알(מֵעַל) 아랫물은 미타하트(מִתַחַת)라고 합니다. 바달은 히브리어로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창세기1장4절에 보시면 바야브델 엘로힘 베인 하오르 우베인 하호쉐크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는데 여기서 바야브델 바달이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6절에 마브딜이라는 단어도 바달동사 앞에 멤을 붙여서 명사화한 말입니다. 궁창위의 물, 속사람 위에 있는 물이고 위치적인 것이 아니라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메알 라라키아 여기서 알은 붙어 있는 것 영어로는 On이라는 뜻입니다. 아래 있다는 Under라는 뜻이고 떨어졌던 것을 붙이라는 것입니다.
Upon
on = 알
Under
그것이 알 (על) 입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의 물, 하나님의 진리와 붙으면 하나님의 인식이 생겨서 사람의 이해가 달라집니다. 경험과 육신적 감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로 바라보게 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인식입니다.
On이라는 뜻을 보니까, 제가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성경일독 관련하여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때 말씀에 가까이 하고 말씀에 접속된 삶을 살고 싶어서 밴드이름을 말씀 On으로 했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가족 밴드를 하고 있는데 그 밴드명 이름은 토라On 입니다. 창세기 둘째 날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디테일하십니다.
지난번 새벽설교를 처음했을 때가 베하알로테크 빛에 관련된 이야기 창세기 첫째 날 이야기인데, 오늘이 두번 째 설교날인데 창세기 둘째 날을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요? 이제는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피부에 닭살 돋는 일은 자주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연이 없으신 분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아랫물은 겉사람에게 속한 인식입니다. 라키아 때문에 윗 물과 아랫 물로 나누어 지게 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아래에 속한 모든 물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랫물은 미타하트(מִתַחַת ) 라고 하는데 תָחַת 타하트 : ~밑에, 권위아래 라는 뜻입니다.
타하트는 타브, 십자가가 두개 인데 목표를 세워서 목표까지 가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배웠지만 우리의 목적, 우리의 목표는 아버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적까지 도달하려면 라키아 소망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머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바뀌어야만 우리는 아버지께 갈 수 있습니다.
머리가 바뀌려면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이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모은 육신의 감각과 개념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윗물인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계속 내려오면 우리의 겉사람의 생각과 개념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도 히브리어로 슈브라고 하고 형상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것 또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개인을 살던 나에서 전체를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카운터를 통해 빛과 어둠을 배웠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오는 저주라는 삶에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배웠습니다. 겉사람이 깨지고 속사람이 나올 때는 고통스럽다고 여길 수 있지만 빛과 어둠이 나뉘어져 있고 속사람이 진짜 생명임을 알기에 그것을 선택하는 우리의 삶은 고통이 되지 않고 축복이 되는 삶입니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고알레카 구속자 고엘(김멜의 신)- 가알( גאל )이라고 합니다. 김멜, 알레프, 라메드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신성을 선택하여 훈련하는 것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의지 입니다. 그 삶이 구속입니다.
이사야 44장 24절에 보면 구속자가 하늘을 펴고 땅을 넓게 펴셨다고 하십니다. 넓게 펴려면 패야하고 패서 넓혔다고 해야 정확한 뜻입니다. 이것이 라키아입니다. 우리에게 라키아가 생기면 곧 속사람이 생기면 이것이 둘째 날에 역사입니다.
욥26:7 그분께서는 북쪽을 빈 곳에 펴시며 땅을 허공에 매다시고
노테(נטה) 짜폰(צפון) 알(על)-토후(תהו) 톨레(תלה) 아레츠(ארץ) 알(על)-벨리(בלי)-마(מה)
북쪽은 짜폰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계신 아주 비밀스러운 곳입니다. 알토후는 하늘을 펼치셨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땅을 허공에 매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땅을 허공에 매달수가 있을까요. 이것을 땅을 속사람에게 매달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겉사람은 속사람에게 매달려 있다는 의미이고 속사람에게 매달려 있지 않으면 3단계로, 셋째날로 나아가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날은 욤 쉐니 라고 합니다. 욤(יום) 쉐니(שני)
욤 쉐니의 샤나(שנה)는 현대어로 하면 transformation[존재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날이라는 것은 바뀌는 것이다. 겉사람에게 매달려서 아둥바둥 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영의 토라에 매달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면 하늘이 속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속사람안에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속사람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욤쉐니도 없고 transformation 도 없습니다. 오직 머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 그래서 아침이 되어 둘째날이 되고 주님의 빛이 비춰지게 되는 것을 믿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반복되는 삶입니다. 저녁은 어두운 상태 거듭나기 전의 상태입니다. 아침은 빛의 상태이며 거듭난 이후의 상태입니다. 어둠가운데 빛이 비추어져야 다음 날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삶을 반복해야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도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목사님과 사모님, 영의 가족들이 그 땅에 계십니다. 절기는 히브리어로 모에드라고 하고 아인과 달렛사이에 바브가 들어가면 오드라고 다시라는 뜻이 있습니다. 삶이란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형상과 모양이 되기 위해 인생이란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52명이라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 땅에 가 있습니다. 52라는 숫자값은 갈렙(כֹלֵב) 과 벤(בֵן)이 있습니다. 콜레브는 온 마음 벤은 아버지의 집을 세우는 자 아들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넓게 펴기 위해 온마음으로 모인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자들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날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훗날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의 속사람이 The 샤마임이신 주님을 닮아가고 온전한 하하나됨 이룰 때 엘로힘 키 토브 ,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라키아의 삶으로 욤쉐니의 삶으로 나아가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첫째날 빛의 역사가 있었고 둘째 날 윗물과 아랫 물을 나누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안에 내려올 수 있는 사역을 시작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겉사람으로 살지 않고 속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오고 어둠과 같고 저주 같은 상황이 우리의 겉사람을 두들겨 팰지라도속사람이 드러나는 복된 시간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라키아를 샤마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닮아갈 곳은 햐샤마임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The Father이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머리가 주님을 소망하는 관점에 온전히 종속되고 나의 인식과 개념이 바뀌는 귀한 하루 되기 원하오면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