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말합니다. (2)
보리심에 대한 2번째입니다.
보리심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고 나면 막상 대답을 하려면 난감해 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리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분명해 져 있어야 한다.
‘보리’ 는 뭔가? ‘붓다’ ,즉 깨달음이다.
깨달음에는 2가지 뜻이 있다 해다.
1)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 -> 발보리심이다.
2) 그 깨달음을 위해 계속 수행을 하다 보면 결국은 성취를 하게 된다 -> 완성된 보리심이다.
이 뜻을 확실하게 짚고 나면 여기에 살을 붙여 설명이 가능해 진다.
반야바라밀도 똑 같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완성을 얘기한다.
이걸 바로 가닥을 잡고 우리는 살을 붙여서 보다 폭넓은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리심은 깨달음을 일으킨 마음, 깨달은 마음 같다는 걸까? 서로 다른 걸까?
깨달음을 알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고 나서 깨닫고 나니 그때 그 마음이 바로 깨달은 마음,
즉 초발심시변정각이다.
열심히 수행 했는데 깨닫고 나니 본래 부처였다. 도로 아미타불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깨달음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보리심을 발했는가? 깨닫고 싶은 건가?
그러기 위해서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되는데 그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위해서는 바로 ‘ 내가 누구인가?’ 에 대한 것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오온이다.
나를 모르니까 나 자신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모르면 밖에서
나를 찾고자 열심이다.
어느 경전에서든지 가장 먼저 말한 것이 ‘오온’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우리가 경전을 배우는 목적도 바로 ‘깨달음’이다. 누가 깨닫나?
바로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주시는 게 아니다.
부처님도 제일 처음 오온을 제일 먼저 얘기 하셨다.
반야심경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오온, 12처, 18계, 12연기, 고집멸도 (사성제).. 모든 경전의 기초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어디든지 제일 많이 강조하고 제일 많이 접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오온을 얘기하면 바로 알아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 알아들으니
12처, 18계를 또 얘기 한 것이다.
그러니 이걸 내가 확실하게 알면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게 진리다.
그런데 이 진리를 부처님은 사성제 12연기로 설명을 하셨다.
하나하나 나누어 해체 해 보면 알 수 있고 이걸 알면 결국 밖에 있는 모든 것이 홀로 존재 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이 마음도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불이 홀로 존재 할 수 없듯이..
이게 바로 기본 가르침이다.
이걸 유지하는 게 반야다.
부처님은 이 모든 집착을 깨주기 위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하나 나나 해체하면 실체가 없다.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너’라 하는 것도 생각이고 개념이다.
사람도 사람이 아닌 요소들이 모여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깨달음은 보리에서 온다. 보리는 어디에서 오나, 번뇌만 제거하면 된다.
금강경에 보리심을 누가 낸다고 했나!
바로 ‘선남자 선여인’이 발보리심을 일으킨다.
번뇌 망상이 많으면 (악업이 많은 중생) 보리심을 내는데 그 만큼 장애가 많이 오는 것이다.
선남자 선 여인은 아공, 법공을 알았으니 더 이상의 번뇌가 없으니 보리심을 내는데 장애가 없다. 선업을 짓고 번뇌 망상이 없어야 인연이 지어지고 공부를 할 수 있다.
허나 우리는 처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때 깨달음이 뭔지 알고 싶다.
발심을 하면 할수록 자꾸 보리심이 일어날 텐데 ‘안하니까!’
깨달음은 허공에 비유를 많이 하고 있다.
저 허공을 구하고 버릴 수 있을게 아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차 있으면 구름만 없어지면 된다. 구름이 곧 탐진치다.
이것만 없애면 보리는 저절로 온다.
번뇌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보리심을 내면 되고, 그게 바로 반야바라밀의 실천이다.
보살행 중 제일 큰 공덕이 ‘중생구제’다.
반야바라밀의 실천이 바로 중생구제인 것이다.
부디 열심히 발심하고 실천수행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