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다모여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산들애인
【 산 명 】팔영산(608m)
【 위 치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영남면 우천리
【 개 요 】
높이 608m, 총 면적은 9.881㎢이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중앙의 성주봉(聖主峯)을 비롯해 유영봉(幼影峯)·팔응봉(八應峯)·월출봉(月出峯)·천주봉(天主峯)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이 일품이다.
제1봉 유영봉(儒影峰)-491m
유달은 아니지만 공맹의도 선비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채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제2봉 성주봉(聖主峰)-538m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제3봉 생황봉(笙簧峰)-564m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다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제4봉 사자봉(獅子峰)-578m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전경속에 사지모양 갗췄구려
제5봉 오로봉(五老峰)- 579m
다섯명 늙은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제6봉 두류봉(頭流峰)-596m
건곤이 맞닿은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제7봉 칠성봉(七星峰)-598m
북극성 축을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 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제8봉 적취봉(積翠峰)-591m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여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 쌓여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제9봉 팔영산 정상인 제 9봉인 깃대봉-609m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 제1봉에서 8봉까지의 조망이 제일 좋다 . 한눈에 다 들어온다
팔영산의 본디 이름은 팔전산(八顚山)이었다.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 팔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북서쪽 기슭에 있는 능가사는 1천 5백여 년 전 아도(阿道)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능가사에는 13세기 말에 조각했다는 사천왕상과 범종(전남유형문화재 69), 그리고 능가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가 있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팔영산 가까이에 용바위, 남열해수욕장, 유청신피난굴, 여호 바다 및 강산호 낚시터 등이 있다.
◈ 팔영산(八影山 608m)은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특히 제1봉인 유영봉(儒影峰)에서 성주봉(聖主峰), 생황봉(笙簧峰), 사자봉(獅子峰), 오로봉(五老峰), 두류봉(頭流峰), 칠성봉(七星峰)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積翠峰)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 종주 코스가 유명하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對馬島)까지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이 일품이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영산의 원래 이름은 팔전산(八顚山)이었다.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 팔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있고, 또 산 밑 북서쪽 기슭에는 화엄사(華嚴寺), 송광사(松廣寺), 대둔사(大芚寺)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히는 능가사(楞伽寺)가 자리잡고 있는데, 1,500여년전 아도(阿道)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 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 곳에 능가사 대웅전(전남유형문화재 95호), 능가사 범종(전남유형문화재 69호), 능가사 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팔영산 가까이에 용바위, 남열해수욕장, 유청신피난굴, 여호 바다 및 강산호 낚시터 등이 있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1998년 7월에 개장한 팔영산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과 야영장, 물놀이터 등의 휴양시설과 각종 운동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굴참나무, 갈참나무, 고로쇠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를 이루는 천연림에는 고라니, 산토끼, 노루, 꿩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인근의 용바위와 남열해수욕장, 유청신(柳淸臣) 피난굴, 원효(元曉)가 창건한 금탑사(金塔寺), 여호바다, 강산호 낚시터, 고흥 내발리 백로 및 왜가리도래지(전라남도기념물 33호), 나로도해수욕장 및 난대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등이 있다
【 소 개 】
팔영산(八影山 608m)은 암릉을 오르는 맛이 독특한 산이다. 솟아 오른 여덟 개 암봉을 넘으며 즐기는 스릴 넘치는 산행은 인기 만점이다. 산행 도중에 줄곧 따라 붙는 주변의 시원스런 풍광은 보너스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산행지는 다 그럴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팔영산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낙조다. 해질 녘 산에 올라 붉게 물드는 다도해의 장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국에 이런 멋진 곳도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이곳은 위도가 낮아 한겨울에도 그리 기온이 심하게 떨어지지 않아 낙조를 보기 좋은 환경이다. 산 중턱에 자연휴양림이 있어 연말을 맞아 일몰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기 안성맞춤인 산이다.
해발 600m를 갓 넘긴 높이의 팔영산은 규모와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는 산이다. 산 위에 솟은 여덟 개 암봉만 없었다면 그저 그런 야산으로 불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산세를 자랑하는 바위들이 이 산을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암봉을 오르는 산행지라고 하지만 철계단과 쇠줄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큰 준비 없이도 암릉을 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봉우리 곳곳에 우회로까지 나 있어 초보자나 노약자도 안전하게 산행이 가능하다.
팔영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 위왕과 관련된 전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위왕이 세숫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신하들을 시켜 이 산을 찾아냈고, 팔전산이라 불리던 산이름을 팔영산(八影山)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팔영산은 팔령산(八靈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 등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예부터 유명한 산이다.
팔영산 낙조를 보려는 이들은 동쪽 안양동 계곡의 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산행해야 한다. 휴양림의 위치가 산 중턱이라 주능선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길도 좋은 편이다. 휴양림 끝의 산막 앞에서 작은 계곡을 건너 조금 오르면 지능선으로 올라선다. 이 능선을 따라 15분쯤 가면 제6봉으로 곧바로 오르는 길과 제1봉과 제2봉 사이의 안부로 이어지는 산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 갈림목에서 제6봉까지는 0.5km, 제2봉까지는 0.7km 거리다.
휴양림 기점의 산행은 제2봉으로 올라 제8봉까지 암릉을 탄 뒤 다시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제8봉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산길이 거칠어 주의가 필요하다. 하산길로는 제6봉과 제7봉 사이의 안부에서 동쪽 능선을 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일몰시각에 맞춰 제6봉에 오른 뒤 낙조를 보고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편이 좋다. 주능선에서 휴양림까지 20분 정도면 내려설 수 있다. 하산시 어두워질 것을 대비해 반드시 헤드램프를 챙겨가도록 한다.
일반적인 팔영산 산행은 정상부의 암봉을 제1봉에서 제8봉까지 순차적으로 밟아 간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반드시 이러한 순서대로 산행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 길이 좁아 교행이 어렵기 때문에 역주행하는 이들은 산행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팔영산 산행은 보통 과역에서 가까운 능가사를 기점으로 한다.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 능사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팔영산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지나 좀더 올라가면 합수점이 나오고, 여기서 왼쪽 계곡으로 방향을 잡는다.
자그마한 계곡을 끼고 30분쯤 오르면 마당바위 혹은 흔들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계곡으로 따르거나 능선으로 올라붙어도 길은 제1봉으로 이어진다. 능선 방향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봉분이 있는 능선 마루에 다다르고, 다시 20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제1봉이다.
팔영산 산행은 제1봉에서 제8봉까지 이어진 암릉 구간이 백미다. 암봉에 매달려 해창만 일대와 다도해의 섬들을 조망하는 맛이 짭짤하다. 제8봉 서쪽의 깃대봉은 팔영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긴 하지만 밋밋하고 멋도 없어 보통 생략한다. 암봉 가운데는 제6봉이 그중 까다롭고 경관이 뛰어나다.
쇠사슬과 발판 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다. 제8봉을 지나 계속해 능선을 따라 20분쯤 가면 암봉 구간이 끝나고 육산이 시작된다.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 오른쪽으로 갈라진 내리막길을 5분 정도 내려서면 샘터가 있다. 이곳에서 팔영산 정상인 깃대봉까지는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하산 코스는 정상에서 다시 제8봉 방면으로 약간 내려온다. 이곳에 능가사와 팔영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이 갈린다. 능가사에서 원점회귀 스타일의 산행을 원하면 능가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내려가는 길은 만호에서 성기리로 팔영산을 횡단하는 임도 상의 탑재를 거친다.
탑재에서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조그마한 저수지를 지나 능가사 뒤편으로 내려서게 된다. 임도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서도 능가사로 이어진다. 어느 쪽이나 소요시간은 40분 가량 걸린다.
【 등산지도 】
【 등산코스 】
가장 일반적인 산행로는 능가사에서 시작해 마당바위를 지난 뒤 암릉종주를 마치고 탑재를 거쳐 능가사로 하산하는 능선 종주코스다.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제1봉인 유영봉(儒影峰)→성주봉(聖主峰)→생황봉(笙簧峰)→사자봉(獅子峰)→오노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칠성봉(七星峰)→적취봉(積翠峰)→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제1봉 앞의 이정표에 왼쪽으론 제1봉 (절벽, 위험)이라 되어 있고, 오른쪽으론 제1봉과 제2봉 중간 기점이라 되어 있는데 오른쪽 방향을 선택하여 제1봉을 올랐다가 다시 제2봉으로 간다. 왼쪽 방향으로 들어서면 노약자나 여자들은 오르기가 위험하고 힘들다.
산은 해발 6백m대로 낮지만 능선은 암릉으로 이어져 있어 꽤나 까다롭다. 그러나 위험구간은 사다리.로프.철제난간등으로 안전장치를 설치해 주의만 하면 어린이도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에서 10여분을 걸으면 계곡에 접어들고 약 30분을 오르면 마당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가파른 길을 따라 20분을 더 오르면 제1봉인 유영봉에 닿는다. 비로소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여덟 개 봉우리중 4~5봉 구간이 산행하기에 까다롭다. 6봉에서 7봉을 오르려면 통천문을 지나야 하며 7봉에 올라서면 정상에 오른 듯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왼편으로 펑퍼짐하게 뻗은 암릉을 따라 10여분 더 가야 정상인 8봉에 닿는다. 하산은 8봉에서 5분쯤 남쪽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울창한 송림을 뚫고 지나는 하산길은 마치 강원도 산림을 걷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총 산행시간은 천천히 걸어서 4시간정도 소요된다.
◐ 팔영산휴양림 마지막 주차장→2봉과 6봉갈림길→신선대삼거리→2봉→8봉→헬기장→사거리 좌회전→야영장→팔영산휴양림 마지막주차장 (약 2시간 소요)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1봉→8봉→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약 4시간 30분소요)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유영봉(儒影峰)→성주봉(聖主峰)→생황봉(笙簧峰)→사자봉(獅子峰)→오노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칠성봉(七星峰)→적취봉(積翠峰)→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 구간별소요시간 】
【 주변볼거리 】
능가사 대웅전(보물 제1307호) : 능가사는 삼국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팔영산 하단부에 있는 평지형 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전한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 22년(1644)에 벽천대사가 현 위치에 2개동의 사찰을 중건하여 능가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다. 일단의 시멘트 기단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약간 거칠게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에 비하여 조그마한 기둥머리가 창방과 용머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장식한 용머리가 외 3출목, 내 4출목의 공포를 받쳐주고 있다. 살미첨차의 앙혀의 굽변은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위로 올라갔으며 첨차의 곡면 역시 약간 경사를 두고 비스듬하게 깎았다.
중앙칸은 4분합문이며 기둥 사이 포가 3조 있으며, 협문은 2분합문으로 기둥 사이 포가 2조, 퇴간은 외여닫이문으로 주간포 1조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쳐마이며 직경이 큰 서까래가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설치되어 있다.
내부는 조그마한 닷집이 4개의 높은 기둥에 결구되어 있으며 넓은 공간을 4개의 대량과 4개의 높은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내부공포는 운공형으로 조식되어 있는 살미첨차가 커다랗게 결구되어 있으며 맨밑에는 용의 몸통 부분으로 받쳐지고 있다.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되어 있는 우물천장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창호의 무늬는 빗살무늬문을 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 때문에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나 양식면에서 귀중한 유산이라 하겠다. 건물 전체가 기울어 1999년부터 완전 해체 하여 2000년 12월 완전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능가사 명동종(보물 1557호) : 이 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주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강희삼십칠년 무인삼월일 흥양팔영산능가사……(康熙三十七年 戊寅三月日 興陽八影山楞伽寺……)」라 양각되어 있는 바 그 연대는 숙종 24년(1698)으로 능가사가 창건된지 54년 후에 조성된 것이다. 그런데 능가사 사적비에 의하면 능가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 보현사가 팔영산에 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세부양식을 보면 용뉴는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음관(용통)을 두지않고 조그마한 원형 구멍으로 대신하고 있다. 천판(天板)은 이중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는 바 상단은 16엽이고 하단은 활짝된 무늬다. 그 밑으로 상대(上帶)에는 범자문(梵字文)을 돌렸으며 4면에 장방형의 유곽안에 9개의 유두를 뚜렷하게 조각했다. 양옆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짝모양을 장식하였는데 그 안에 「주상 전하수만세」라는 문구가 양각되었다.
또 종신 중앙부에는 주역에서 나타나는 전양(全陽)인 건(乾·三)에서 전음(全陰)인 곤(坤·三三)에 이르기까지의 팔괘를 양각으로 둘렀는 바 이는 조선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팔괘 밑에 음각의 명문대가 있는데 여기에 능가사 창건주인 정현대사(호·벽천)의 이름이 보인다. 하대로 내려와서는 두줄의 띠를 둘렀고 그 안에 꽃잎과 당초문대(唐草紋帶)를 돌렸다.
금탑사 괘불탱(보물 제1344호) : 이 괘불은 비현(丕賢)과 쾌윤(快允)이 1788년에 함께 그린 것으로,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三世佛)을 표현한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이다.
삼세불은 화면을 횡으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태는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인 원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侈絹)장식 등을 보여준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 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 시기의 것이다.
소재지 : [548-884] 전남 고흥군 포두면 봉림리 700
금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 : 고흥군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으로부터 남쪽으로 15.5km 거리에 해발 550m의 천등산이 있으며, 그 동쪽 산허리에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금탑사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포두면 봉림리 700번지이다. 이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아랫편 입구의 계곡과 윗편 산지의 사면에 걸쳐 표고 190 ~ 410m 범위내 39,937평에 집단적으로 3,313주가 분포하고 있으며 천등산은 북위 34°32′50″, 동경 127°17′30″범위에 위치하고, 북동쪽은 포두면, 동남쪽은 도화면, 서쪽은 풍양면을 이루고 있다.
금탑사의 뒷편에 있는 비자나무숲의 수고(樹高)는 8 ~ 14m에 이르고 가슴높이 둘레는 16cm에서 121cm에 이르고 있다. 계급별로는 50cm이하가 31.4%이고 100cm 이상이 17.2%인데 대하여 51 ~ 100cm 범위의 비자나무는 51.4%로서 절반을 넘고 있고 또 91cm이상 121cm까지가 28.6%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수령은 최고 100여년생으로 추정된다.
이 비자나무숲의 다른 한편에는 140cm되는 것도 발견되었다. 자연생이 아니라면 1800년대 중엽이나 말엽에 처음으로 심은 듯 하고 그 후 하종갱신 된 것이 있어 50cm이하가 31%나 된다. 비자나무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자생지는 산록곡간지이고 분포는 수직적으로 표고 150 ~ 700m, 수평적으로는 전남북, 경북까지이고, 지리적으로는 일본(日本) 사국(四國), 구주(九州)이다. 목재는 치밀하고 심재가 황색을 띄고 있는데다 독특한 향기와 광택이 있어 바둑판, 조각재, 의장재 등에 값있게 쓰여지고 있으며, 종자는 기생충 구제용으로 생식하기도 한다.
류몽인 위성공신 교서(보물 제1304호) : 이 문서는 광해군 5년(1613) 위성공신 3등에 책훈된 한성좌윤 유몽인(柳夢寅)에게 내려진 교서로 원명은 ''교갈충진성위성공신가의대부한성부좌윤영양군유몽인서''이다. 위성공신이란 임진왜란 때 왕세자 광해군을 호종, 분조를 호위하고 국난 극복에 공헌했다 하여 훈적에 올린 신료들을 말한다.
1등에는 최흥원 등 10명을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공신'', 3등에는 유몽인 등 53명에게 '갈충진성위성공신'이란 공신호를 하사였다. 이에 의하면, 3등 공신인 유몽인에게 본인은 물론 그의 부모 처자에게도 1계가 가자되었을 뿐 아니라 노비·전결·은자·기마·표리 등이 아울러 내려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몽인(1559 ~ 1623)은 「어우야담」의 저자로서 조선중기 설화문학의 대가이다. 자를 응문, 호를 어우당 또는 양재, 본관은 고흥이다. 사간을 지낸 충관의 손자이며 탱의 아들이다. 성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1589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 문명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임란 직전에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왜란 발발 직후에 돌아와 의주 행궁에서 복명한 후 세자시강원 사서로 있으면서 왕세자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난후에 황해도 감사, 한성부좌윤, 승정원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관계로 인조반정 당시 화를 면하였으나 곧 바로 유응시 등 반대파의 고변에 의해 아들과 함게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정조 때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흥 운곡사에 배향되었으며 의정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이 문서는 임란직후에 시행된 조정의 반급문서로서 당시 공신에게 내려진 교서의 형태와 그 사례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문서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 있어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소재지 : [548-801] 전남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730
목마산성(사적 제65호) : 측면식(側面式:山腹式) 또는 반면식(半面式) 산성의 대표적 보기이다. 산성 둘레는 약 1,900 m이고, 석축(石築)도 현재 남아 있는 산성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산성으로서는 큰 편에 속하여 부근의 화왕산성(火旺山城)과 거의 같은 규모이나, 이 산성이 반면식인데 대하여 화왕산성은 마안형(馬鞍形)으로 그 형식만 다른 점도 산성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축성하였다는 설과, 말을 기르기 위한 성이었다는 설이 있다.
봉래면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362호) : 상록수림의 소재지는 외나로도의 북서쪽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바로 그 남서쪽에는 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위34°28′, 동경127°27′에 위치하며 난대북부에 해당된다. 이런 관계로 평균기온은 섭씨 14℃, 강수량은 1,400mm에 이르러 상록활엽수가 번성하는데 알맞는 기후조건을 이루고 있다. 난대특유의 임상을 지니고 있으며 수령 100년이상 흉고직경(胸高直徑) 1m에 이르는 동백나무 100여주, 수령 300년이상 수고 10m이상의 구실잣밤나무 300여주, 수령 50년이상 수고 8m이상의 후박나무 50여주가 임상을 표현하는 주요 수종이며 그밖에 황칠나무, 감탕나무, 생달나무, 보리밥나무, 자금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풍산(屛風山) : 산이 병풍을 두른것처럼 바위와 절벽으로 되어 있으므로 병풍산이라 하며, 옛 문헌에는 지래산(智來山) 또는 지내산(智乃山)으로 표시되어 있음.
귀절암 : 귀절암에 대한 기록은 없고, 현재는 두방산 및 약수터 자리에 옛날의 귀절암이 있던 흔적만 있다고 함.
비조암(飛鳥岩) : 이 산위에 큰 바위가 있으며, 수십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바위 밑에 날짐승이 많이 살고 있어 비조암이라 부른다고 하며, 또 날아가는 새의 모양과 비슷하여 비조암이라 부른다고도하고 이 산 바위가 옛날에 부인들이 머리를 얹은 것처럼 생겼으므로 머리얹은 산이라고도 한다.
【 교 통 】
【 숙 박 】
【 맛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