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생각하는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간단 명료성의 추구였다고 합니다. 확실하게 아는 전문가는 설명을 간단명료하게 하고, 잘 모르거나 속이는 사기꾼은 말이 복잡하고 중구난방입니다. 칼빈 신학의 계보를 있는 루이스 벌코프의 글을 보면 그분도 칼빈처럼 간단명료합니다. 마치 공무원 수험서적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지요. 구분선 아래 김현광 교수의 소논문에서 해당부분을 읽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한 간단 명료성의 추구
1539년 10월 18일자로 되어 있는 그의 로마서 헌사에서 칼빈은 그가 생각하는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가장 좋은 성경 해석법, 다시 말해서 가장 좋은 주석은 간단 명료한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바젤대학 헬라어 교수였고 로마서를 가르치는 신학 교수였던 시몬 그리네우스 (Symon grynaeus)와의 대화에서 서로 동의했던 이 있는데 그것은 간단 명료한 것이 가장 좋은 성경 해석 방법이라는 사실이었다고 밝힌다.
칼빈의 이와 같은 입장은 그의 일생을 통해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1557년 시편 주석 서문을 통해 드러난다. Richard C. Gamble, “Brevitas et facilitas: Toward an Understanding of Calvin’s Hermeneutic,”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7 (1985), 1-2; Richard Gamble은 칼빈의 간단명료한 해석 방법은 칼빈 자신이 성경 자체의 스타일을 본받으려는 노력의 결과였다고 보았다. Richard C. Gamble, “Exposition and Method in Calvin,”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9 (1987), 153-165. |
칼빈은 로마서 주석에서 지나친 학문적 논쟁을 피하고 있다. 박학다식함을 과시하는 것이 그의 목적은 아니었고 자신의 해석의 우월함을 자랑하기 위함도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길게 학자들의 해석을 설명하거나 반대 논쟁을 장황하게 펼치지도 않는다. 칼빈은 독자들이 그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서 지루해 할 것을 염려한다. 길고 지루하여 중간에 책을 놓지 않도록 길고 장황한 주석 대신 간단 명료한 해석을 통해 로마서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칼빈의 의도였다. 간단 명료성은 칼빈이 이해하는 성경 해석자의 사명과 관련되어 있다.
칼빈은 성경 해석자의 유일한 목적은 성경 저자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성경을 연구할 때 두 가지 해석학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성령의 의도(The Holy Spirit’s Intention)이며, 둘째는 인간 저자의 의도(The Human Writer’s Intention)이다. 해석자는 언제나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인간 저자의 의도를 고려해야 한다. 칼빈은 성령의 의도와 인간 저자의 의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사실상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5), 32-37. |
따라서 장황한 설명을 통해 독자들을 성경저자의 의미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든지 초점을 놓치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칼빈의 견해이다. 그렇다고 칼빈은 길고 장황한 주석을 일방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간단 명료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입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직 그의 성경 해석이 교회에 어떤 유익이 있는가하는 것이다.
학문적인 긴 주석이 유익하지 않다는 일방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D. A. Carson은 여러 타입의 주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의 신약 주석 평가서에서 밝히고 있다. 카슨의 말대로 어떤 주석들은 본문을 확립하고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주석들은 역사적, 고고학적, 사회과학적인 연구에 비중을 두고 있고, 어떤 주석들은 실제적 적용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역을 위해 이와 같은 여러 주석들을 필요에 따라 선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은 결국 칼빈과 같이 최종적으로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D. A. Carson, New Testament Commentary Survey (Grand Rapids: Baker, 2007), 15-17. |
그는 간단 명료하게 성경 저자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것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 따라서 칼빈의 성경 해석은 친교회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에 유익을 주고 교회를 돕는 것이 그의 해석의 목적이다. 한국 교회의 신학교육과 성경 연구는 칼빈의 로마서 해석의 방법과 목적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고 성경은 우리 시대의 교회에게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김현광, “칼빈의 로마서 해석 연구”, 『개혁논총: 제13권』, pp.45∼46.
첫댓글 루터도 간단명료한 변증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카페 회원이 올렸던 아래 글을 읽어 보세요1
https://cafe.daum.net/1107/apJ9/113
역시 대가들은 간단명료하고, 하수들은 요란하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말씀, 신앙, 교리, 신학 등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것이 요리문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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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문답(要理問答, catechism)은 기독교의 교리를 신앙의 교육 또는 고백을 위하여 문답식으로 정리하여 간단하고 평이하게 요약한 것을 말한다. 주로 초신자를 위한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교리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말로 교리문답(敎理問答)이라고도 한다.
요리문답은 신조(信條)와 함께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조직적으로 체계화하여 진술한 교리를 신앙의 내용으로 하여 공적으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신자 및 불신자에게 선언하는 언어의 표현이다. 신조가 그 가르침을 고백하고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면, 요리문답은 그것을 고백하고 선언함과 함께 교육의 목적까지 가진 신앙고백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https://cafe.daum.net/1107/YcL1/13
주관적, 즉흥적 설교로 횡설수설하지 말고 요리문답에서 소재를 얻어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간단하고 평이하게 진리와 교리를 가르치는 방법론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취한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Z4mc/2
이 우르시누스도 수험서적 같은 정확함으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정확하면 간단명료합니다.
옛신앙 출판사로 유명한 김효성 목사도 아래와 같이 성경해석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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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김효성, <요한1,2,3서; 유다서 강해>, "머릿말"
오늘 포스팅하신 본문과 매우 유사한 취지의 글을 쓰신 것 같아요.
네. 아주 공감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간단 명료한 해석을 추구한 것을 보면 칼빈이 정말로 사람들을 존중한 것이 엿보이네요.
좋은 글입니다.
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담백하고 간단명료하며 정직한 해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약장수, 브로커, 사기꾼 같은 장황하고 저급한 성경해석이 교회에서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