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선병원 개원 50주년을 마지하여- 디트뉴스의 본당 김인 데레사에관한 보도내용 발췌한 것입니다.
선병원 설립자 부인 김인(金仁‧85) 여사.
‘50년의 사랑’ 고 선호영 박사를 기리며.. 자료 : dtnews24 (2016.04.07)
▲1966년 1월. 지방의 의료실정은 전문의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낙후된 시대였다.
그 시절,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선호영 박사가 대전 최초의 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선 정형외과’다. 현재 8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120개의 진료대를 갖춘 매머드 치과병원, 두 곳의 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는 대형 병원그룹으로 발전한 선병원의 모태다.

결혼 전의 고 선호영 박사와 김 인 여사.고(故) 선호영 박사는 1925년 경북 김천에서 7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김인 여사는 193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때 전쟁이 나자 마산으로 피난했다.
고(故) 선호영 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외과에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경남 마산으로 피난을 가 공군에 입대했다. 김 여사를 만난 건 대위 때였다.
전쟁 통에도 사랑은 싹텄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당시 공군병원장이던 고 박병래 전 성모병원장이 둘의 만남을 주선했다. 둘은 연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1966년 1월 전문의가 경영하는 대전 최초의 정형외과로 탄생한 선정형외과가 선병원그룹의 모태다.
▲1982년 7월 중구 목동의 대전 선병원을 지었다.
▲고 선호영 박사는 의술 넘어 仁術 실천한 ‘참 의사’였다.
하루는 소록도 신부님이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대전까지 찾아왔다. 뇌에 종양이 생겼는데 종합병원에서 돈이 없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선 박사는 그 아이를 살려냈다. 물론 치료비는 받지 않았다. 그 아이는 성장해서 이름만대면 알만한 유명인사가 됐다.
한참 시간이 흘러 2000년쯤이었다. ‘소록도 신부님’이 은퇴 후 선화동성당에 강연을 하러 왔다. 신부님은 미사 도중 그 때 일을 회고했다. “우리 성당에 나오시는 베드로가 주인공입니다.” 선 박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없는 사람인양 했다. 하지만 신부는 그를 알아챘다.

▲서예가 남편, 화가 아내
세상을 살아가면서 덕을 근본으로 삼으라는 뜻의 ‘처세덕위본’ 고 선호영 박사의 글씨에 그의 삶이 녹아 있는 듯하다.
▲김인 여사가 최근 완성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 여사는 화가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3회 특선 및 입선했고, 대전미술대전 한국화부분 최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김 여사는 뒤늦은 나이에 그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며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뒤늦게 이루게 됐다고 했다.
선 박사 타계 후 2007년 3월 서울과 대전에서 남편의 서예작품과 아내의 그림을 모아 사모전(思慕展)을 열기도 했다.
편집 박미카엘
첫댓글 김인 데레사님의 보도 내용을 올려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젊은 시절 사진과 백합 그림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