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퇴직을 바라보며 소회
1. 들어가며
남편이 순천시청에서 근무한 지난 3년 10개월의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글을 읽으며 나도 소회를 밝히고 싶어진다. 나도 한편 홀가분 하고, 한편 고마운 마음...
2. 남편의 글
어제, 4년 가까이 출근해 오던 순천시에서 퇴직하였습니다.
들거나 날 때는 소리소문없이, 일은 있는 듯 없는 듯 하자고 다짐했던 시간이 지나서,
페이스북 프로필도 바꿔야겠고, 혹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을 듯 하여 페북으로 알립니다.
순천시에서 일하는 동안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제게 순천시 공무원들과 같이 일해 볼 좋은 기회를 준 사람이 허석 순천시장이어서, ㅎㅎ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특히 “지방 행정 공무원들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엔 전남도 내에서 제일 선호하는 근무지가 순천시였는데, 요즘은 업무가 너무 많아 기피하는 근무지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남에서 공무원 1인당 시민 수는 순천시가 제일 많습니다. 순천시 인구 28.4만에 일반직 공무원 1600명, 여수시 인구 28만에 일반직 공무원 1900명. 구례군 인구 2.5만에 일반직공무원 500명이랍니다.
3. 나의 소회
1) 남편과의 관계 측면
내가 지난 3년 10개월 동안 남편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어찌 당신은 맨날 술만 먹고 다니는데, 그리 현명한가? 미스테리여~~"
내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사실 나는 매일 절명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모임을 한다. 그렇게 매일 수행하듯 갈고닦은 실력으로 겨우 균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드시는 남편이) 훨씬 더 균형감각이 있는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3년 10개월 동안
남편이 고생이 많다고 느껴져서, 안쓰러운 마음 때문인지, 애처로운 마음과 돌보는 마음이 많아졌다. 어쩌다가 한번 대화를 나누면, 이 남자가 나보다 훨씬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쌍심지를 켜고 말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친절한 얼굴로 대하는 횟수가 늘어, 결혼한지 24년만에 약간 친해졌다.
2) 사회적 관계 측면
나는 어려서 부터 사람들을 좋아해서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10년전 언론협동조합을 할때, 인구 30만도 안되는 순천은 너무 좁게 느껴졌다. '분과별 모임' 이를테면 교육분야, 예술분야, 건강분야, 노동분야 필진과 모임을 꾸리려는데, 사람이 좀 더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풀뿌리자치 교육지원 센터에서 하는 정담회를 통해 아는 사람의 폭이 확 넓어졌다. 동네 별로 순천 곳곳에 이토록 귀인이 많은지 미처 몰랐다. 사람들이 정담회로 서로 연결되어 서로의 역량이 보태지니, 안되는 일이 없고 일상에서 새로운 재미가 솔솔 일어났다.
여성친화단이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살면서 이 사회를 지혜롭게 사랑으로 이끌 손길은 여성들로 부터 나온다는 신념이 있다. 지혜롭고 따뜻하고 재미난 언니들을 겁나게 알게 되부렀다.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3) 삶의 태도 측면
어쩐 일인지 나는 어려서 부터 이 세상이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 아마도 어려서 부터 교회에 다니고 하늘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럴까? 봉화산을 오를때도 나의 뒷산, 호수공원을 걸을때도 나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런데 남편이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서인지, (아무 권력과 권한도 없는) 나도 더불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그래서 꼴배기 싫은 사람을 만나도 저 사람을 통해 잘 배우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묘한 것이 그런 생각은 어김없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었다.
과거의 나는 쪼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물론 나는 아직도 수시로 쪼잔하다.)
4) 결론
어쩌면 오십년을 넘게 밥도 먹고, 걷고, 노래하며 살았으니, 당연히 도달할 지평인지 모르겠지만,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이 세상은 모두 나와 우리의 선택과 일상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 대하여 숙고하고 기도하며 그러한 전환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생명문명으로의 전환이 나 개인의 실천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서, 더더욱 우리 허석 시장님이 재선되면 좋겠다. 물론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지만, 조금씩 실천하며 길을 열어갈 숨통은 되어줄 것 같다.
첫댓글 남편분께서
암만해도 술만 드신게 아닌가봐요!!
꽃마리님 못지 않게
아무도 몰래 공부를 많이 하신게 아닐까요?
미스테리네요~ㅎㅎ
ㅎㅎ 본래 문장은 "술만 (퍼)먹고 다니는데..." 여요.
본래 문장으로 해야 생동감이 있는데,,,,남편 체면을 생각해서. 신경을 썼더만 글이 맛이 떨어져요.
"당신은 왜 이리 현명한가?"
감탄 하면 하시는 말씀..
"당신이랑 사는 일이 하도 힘들어서, 입장 바꾸어 생각을 하는 연습을 하도 해서..."
라고 대답했어요.. ㅎㅎ
ㅎㅎ..
소크라테스가
크산티페라는 악처 때문에
훌륭한 철학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떠오르네요.^^
ㅋㅋ 악처는 아닌데.....
우리 남편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무궁무진 다양한 방법으로 애쓴, 하늘의 흔적!